(단상)
고뿔귀신 이야기
- 정영인 -
요즈음처럼 내가 쥐꼬리만한 단편지식을 가지고 왜 그렇게
오지랖 넓게 풍을 치는 지 생각을 해봅니다.
쥐뿔도 아는 게 없으면서 나서고, 개뿔조차 없는 게
중뿔나게 나서는 것이지요.
‘말을 할 때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하기 보다는 귀 기울여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 지어주고, 맞장구도 치고 추임새도 놓고…….
그런 버릇을 쇠뿔도 단김에 빼랬는데,
지나쳐 미주알고주알이니 한심합니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코가 막히고
나중에는 콧물이 줄줄 흐르니 애꿎은 휴지만 작살냅니다.
그 바람에 그전에 읽은 구비문학(口碑文學)의
‘고뿔귀신’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번 슬그머니 웃으면서
쥐알봉수 같은 이 놈을 너그럽게 봐 주시지요.
<감기 들면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오는 이유>
옛날에 어떤 王으 아덜(아들)이 ××가 두 개가 달렸었다.
이 王 아덜이 장개들 나이가 돼서 신부감얼 고르넌디
○○가 두 개 달리넌 처재(처녀)를 고르고 있었다.
그런디 ○○가 두 개 달린 처재가 어디 그리 쉽게 나오나.
그래서 王언 여러 신하럴 여러 군데로 내보내서
○○ 둘 달린 처재럴 찾아내게 혔다.
그런디 몇 해럴 돌아댕김서 찾아봐도
그런 처재넌 통 나오지 안혔다.
그러다가 이 王으 아덜이 장개도 못 가고 죽었다.
그런디 이 王 아덜언 죽어서 구신이 됐어도
장개가고 싶어 ○○ 둘 달린 처재럴 찾아 돌아댕겼다.
그런디 아무리 찾아 댕겨도 그런 처재는 없었다.
그런디 돌아댕기다 보니 사람은 콧구멍이 둘이 나란하 있넌 것을 보고
王 아덜 죽은 구신언 거그다 대고 그 짓얼 혔다.
이 죽은 王 아덜언 죽어서 고뿔구신이 돼서
그 짓을 헐 적에넌 사람 콧구멍에다 △을 박고 그 짓을 혔다.
그렁께 감기럴 첨 앓을 적에넌 코가 꽉 맥혀서 숨도 못 쉰다.
그 짓이 끝나고 △을 빼고 가 버리면 감기가 낫넌디
그때넌 콧물이 주르르 흘르고 코도 탁 틔어서 숨도 제대로 쉬게 된다.
<임석재 전집 한국구전설화 제7집에서>
(주저리주저리)
사회가 어수선하다. 국회는 여당과 야당이
샅바 싸움에 민생은 젖혀 놓고, 모처럼 손발이 짝짝꿍했으니
전직 국회의원에게 120만원씩 철밥통 만들어준 것이다.
자기 밥통도 미리 만든 꼴이니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유분수.
그네들이 뭐 한 일이 있다고. 물가는 날로 오르고,
상추는 금추라고 하는데. 많은 서민들은 국회의원수를
수를 줄이자는데 날로 동감하고 있다
.
거기다가 우파다 좌파도, 보수파다 개혁파다.
이 나라는 무슨 놈의 파가 그리도 많은지.
이럴 때 잠깐이나마 속 시원히 웃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우리 민족은 얼마나 재치가 있고 기발한가. 가히 천재적 발상이다.
이 이야기는 한국문화 속에서만 창조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우리 민족은 현세 구복적인 삶은 최고로 삼는 인생관을 가졌고,
현세에서 욕망을 못 이루지 못하면 저승에 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청춘 남녀가 시집 장가를 가지 못하는 것을
가장 억울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죽은 귀신은 총각귀신, 처녀귀신이라 하여
가장 한 많은 귀신으로 여기고 어떻게 하든지
그 원을 이루려고 애를 쓰고 있다.
무속의 굿에는 ‘명혼굿’이라는 것이 있다
.
즉, 죽은 총각과 처녀를 찾아 혼인식을 올려주는 것이다.
현세에서 장가를 가지 못한 왕의 아들이 죽어서 고뿔귀신이 되어
그 못다한 욕망을 채우는 것이 감기라니
얼마니 인간적인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인가.
삼풍사태 때 죽은 처녀, 총각의 영혼 결혼식도
이런 민속적인 정신의 맥락이라 할 수 있다
.
이제 우리 주위에 들이 닥치고 있는 재벌 문어발 귀신,
정경유착 귀신, 부정부패 귀신, 떡값과 콩고물 귀신,
불로소득 귀신, 사치풍조 귀신, 압구정동 철없는 귀신,
이북 찬양귀신…. 우리말에 이런 말이 있다.
“요즈음 귀신들 다 무엇하나? 저런 것들 안 잡아가고.”
하기사 귀신 씻나락 까 먹는 소린지도 모르겠다.
우리 고장 인천에는 인천을 바다로부터 지켜주는 호구포(虎口浦)
즉, 범아가리라는 곳이 논현동 소래 근처에 있다.
우리 모두 이 어려운 난국을 정신차리고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호랑이한테 물려 가드라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지 않은가.
감기에 걸리드라도 우리나라 총각귀신인 고뿔구신에나 걸리고,
홍콩독감, 조류독감, 신종풀루 등 외국 감기귀신에게는
걸리지 마시오.
그리고 되도록 서양 감기약을 먹질 말고
,
뜨끈한 우리나라 콩나물국에 움파를 듬뿍 썰어 넣고
우리나라 태양초 고춧가루를 팍 집어 넣어서 먹으시요.
미신이 아닌 우리 민족의 과학적인 감기 대증요법임을 잊지 마시길….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걸린 것 보니 개보다 못한가?
"♬~ 저 구름 흘러 가는 곳/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