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입된 사진에 나타나는 날짜와 시간은 뉴욕시간이므로 14시간을 더하면 서울시간이 됩니다)
맑게 개인 날씨의 일요일인 2월21일은 동생들과 하얏트호텔에서 점심식사약속을 한 것 외에는 이태원에 청바지를 바꾸러 가는 계획이 있었을 뿐이므로 오후엔 그동안 가 보지 못했던 벼룩시장이라던가 용산 전자상가 또는 서울의 새로운 모습들을 찾아서 돌아볼 생각을 했었다.
지난 화요일에 인진이 영선이 용환이들의 인도로 광화문광장과 청계천의 일부는 봤지만 시청앞의 모습도 많이 변했을 것 같고 모교인 홍대입구도 많이 타락했다는 뉴스도 있었으며 청계천 복원 이후의 청계8가 벼룩시장은 어떻게 변했을 지도 궁금했고 용산전자상가의 깊숙한 뒷골목에서 새로이 발명된 첨단 도청장치나 스파이용 TV카메라 혹은 추적장치가 있을런지 탐사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었다.
어젯밤 들어 오다 변화를 주기 위해 바로 집골목앞의 훼미리마트가 아닌 그 다음 골목 반대편의 쎄븐일레븐에서 산 햄에그샌드위치를 전자렌지에 뜨겁게 데우고 전기주전자로 끓인 물에 쌍카에 프림을 섞은 모닝커피를 만들어 아침식사를 대충 하면서 TV를 보는데 현재 금메달 4개로 5위를 달리고 있는 동계올림픽팀에 대한 뉴스로 가득차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다른 나라들 그것도 과거 스포츠선진국들을 약올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 고교시절만 해도 실내 스케이트장이라곤 동대문밖에 있던 게 전부였던 우리나라가 이렇게 될 줄은 그 당시 나 뿐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꿈같은 일이었다. 스포츠 강국이 아니면 참가하는 것도 망설여지는 동계올림픽에서 유럽의 전통적 강국들을 누르고 5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다시 말하지만 극동의 조그마한 한반도의 그것도 반쪽인 South Korea는 참 신비로운 나라임에 틀림없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나라다.
당초 25일 목요일 저녁 7시30분 비행기로 서울을 떠나는 스케줄이었는데 너무 촉박해지는 것 같아서 이틀 연기하여 토요일에 출발키 위해 LA전화번호로 생각되는 213-국의 대한항공으로 전화를 하여 연기를 했더니 즉시 토요일(27일) 오후 7시30분 KE 085편으로 변경된 E-Ticket이 이메일로 왔다.
12시 하얏트 호텔에는 미국에 살고 있는 바로 밑의 여동생네를 제외한 두 명의 여동생들과 그 남편들이 같이 했는데 애들은 군대에 갔거나 다른 스케줄이 있거나 해서 안나왔다. 그리고 막내동생 진우는 아이들이 아프다고 계수씨를 애들과 함께 집에 놔 두고 혼자 나왔다.
두째 여동생 복우(福雨 56년생)는 시어머니생전에 하시던 소공지하상가의 골동품도자기상을 남편과 함께 하고 있는데 경기가 안 좋아 잘 안된다고 한다. 그 밑의 여동생 은우(銀雨 59년생)는 고등학교 음악선생을 하고 있고 남편은 건축과출신으로 과거 대림건설에서 과장까지 하다 나와서 이것 저것 하다가 지금은 어느 중소 건설사의 사장으로 부임했다고 한다. 걱정이 없어서 그런지 은우는 살이 뒤룩뒤룩 쪘고 남편도 배가 나왔다. 진우(眞雨 61년생)는 과거 한화그룹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인사컨설팅을 하고 있는데 사업이 잘 되는 반면 밤 늦게 퇴근을 한다.
하얏트1층의 부페는 간이부페라서 먹을 게 별로 없는데도 호텔이라서 그런지 값은 비싼편이었다. 그래도 주차하기 편하고 서울의 한복판에 위치한 때문인지 사람들은 많았다.
식사도중인데 강 은희 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로 “야, 수지로 와라!”는 것이었다. 4시까지 자기집 앞으로 오란다. 전에 은희네 집의 위성사진을 카페에 올리느라 컴퓨터로 답사를 한 바는 있으나 수지라는 동네는 한 번 만져 본 적도 없는 바라 GPS에 의존해야 하므로 “그러마,”하며 주소를 받아 적었다. 당구치고 막걸리를 마시러 간다나. 오늘 좀 돌아다니며 서울의 변한 모습을 보려 했는데 다 틀렸다. 하지만 친구로부터의 초대는 더 즐거운 법이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동생들과 즐거운 점심식사를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동안 동생들에게 전화도 제대로 못 한 내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앞으로 자주 와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밥 먹는데 사진찍는 게 뭐 해서 주차장에서 찍느라 내가 안 나온 사진을 여기 소개한다.
(왼 쪽부터 막내동생 진우(眞雨), 복우(福雨)부부, 은우(銀雨)부부)
동생들과 2시반경 하얏트의 주차장에서 헤어진 후 청바지를 바꾸러 이태원으로 갔다. 그러나 두 개 산 것 중에 좀 작은 하나를 교환하러 간다는 것이 두 개를 더 사게 되어 도합 네 개를 사게 된 꼴이 됐다. 그러나 미국에서 200불 넘는 이테리제 디젤인더스트리나 터키제 다른 프리미엄 진들 보다 기지가 더 톡톡하고 디자인도 더 좋은 반면 값은 5만원으로 45불정도이니 무척 싼 가격이었다. 가게주인 청년이 부르는 값을 한 푼도 안 깎고 거스름돈도 안 받았다. 앞으로 전화로 주문하여 더 사기로 하고 명함을 받은 후 이태원 거리로 다시 나왔다.
일요일이라 거리주차도 단속이 없어 내가 차를 세워놓은 명당자리의 인도에 여러가지 달력 등을 파는 구루마가 있어서 고궁과 한복입은 여인들이 있는 달력을 두 개 사고 또 한국의 여러 풍경이 담긴 달력도 하나 샀다. 2010년도 이미 두 달이 가고 있는 판에 달력값은 비싼 편이었으나 즐거운 마음으로 샀다. 그 대신 그 구루마의 주인영감은 달력들을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짐속에 넣어도 구겨지지 않게 아주 잘 싸 주었다. 역시 이태원 인심은 내 카투사 군대시절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3시반이 다 되어서 4시까지 수지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해 졌지만 서둘러 출발을 했다. 이태원에서 반포대교(잠수교)를 건너 좌회전 해 올림픽대로를 거쳐 고속도로를 통해 분당을 지나 수지로 가는 그런 코스였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반포대교를 지나는 시각이 뉴욕시간 새벽1시42분으로 서울시간으로는 오후 3시42분이어서 이미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려는 내리막길에 있었다.
차에 달린 GPS덕에 한 번 지시를 어기고 달리다 되돌아 오는 실수는 있었어도 40분이상이 늦은 4시43분에 은희네 아파트 단지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었다. 아파트단지입구의 경비는 내차가 03허-번호로 렌탈카인데다 관상이 도둑으로 보이지는 않았는지 차 번호만 적고 바리케이드를 올려주었다.
거기서 당구장으로 오라는 지시에 길을 건너 당구장간판이 보이는 빌딩을 향해 걸어갔다. 상가가 즐비한 주변을 둘러 보니 급속한 개발속에 아직 정리가 덜 된 동네 상가District이지만 유아원을 비롯해 없는 게 없다. 윗층의 당구장을 찾아 올라가니 거기엔 허슬러(The Hustler)의 내기당구꾼 폴뉴먼을 닮은 강 은희가 낯선 선배(55회 김 광섭)와 당구를 치고 있었다. 완전히 동네터줏대감 스타일들이다. 그 께임이 끝나고 한 판을 같이 쳤는데 맞지가 않는다.
그동안 55회 고 재복 선배, 53회 이 한웅 선배, 김 도, 윤 태병이 왔고 수원으로부터 달려온 양 영선이 71회 김 만회후배를 데리고 같이 들어왔다. 거기서 굴튀김을 먹으러 간단다. 어느 선배인가가 어디서 가져온 생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일요일날 식구들과 헤어져 다 들 여기에 모인 것이다.
당구장에서 나와 몇 발자국을 가니 윗층에 ‘굴마을'이라는 간판을 붙인 굴과 낙지전문 식당이 있었다. 넓은 좌식 홀 바닥 한 가운데에 상을 두 개 붙이고 털퍼덕들 앉아서 마시고 먹기 시작했는데 영선이와 53회 김 선배의 목소리 뿐이다. 71회 후배가 내 카메라를 들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그런 가운데 굴파전과 굴튀김에 생막걸리! 자동차 운전이야 나중 문제고 일단 나도 마시고 먹었다. 굴튀김은 강 은희가 얘기 했던대로 아주 맛이 있어서 다 들 더 시켜서 먹었는데 나중에 누가 돈을 냈는지 기억이 없다.
(위 사진 오른쪽 끝에 보이는 이가 71회 김 만행)
(위 사진 좌로부터 55회 고 재복, 53회 이 한웅, 55회 김 광섭, 그리고 나)
이렇게 즐거운 식사와 좌담 그리고 만남들… 나의 복임에 틀림 없었다.
거기서 나와 맥줏집에서 입가심을 한 후 먼저 집으로 간 김 도를 제외한 57회만 따로 남아 근처의 노래방으로 들어가 뒷풀이를 가졌다. 거기서 60년대 고교시절의 올디스 팝쏭들을 모두 함께 합창을 했다. 내가 짐 리브스의 He'll Have To Go를 부르려 하자, 영선이가 “나 이 노래 알아!”하면서 일어나 같이 불렀다.
그런데 노래방에서 찍은 사진들은 플래쉬를 끄고 찍어서 다 흔들렸다.
즐거운 시간이 흐르고 밤 10시 반경 헤어져 영선이는 택시를 타고 수원으로 갔고, 난 윤 태병이를 근처 동네의 집앞까지 데려다 준 후 강남으로 향했다. 숙소에 들어 오니 11시반이다.
반달이 나오는 밤이면 GPS 내비게이션 스크린에 똑같이 반달이 나타나는 건 미국엔 없다. 역시 우리나라다.
내일은 다른 스케줄을 미루고 근래에 건설된 대표적인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찾아보고 사진도 찍으며 답사를 하기로 계획한 날이다.
West Side Story.mp3
첫댓글 55회 선배님들 고맙습니다.막걸리는 고재복형께서 동생분 양조장에서 직접 공수하시고,김광섭형께서 스폰까지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