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과 나폴레옹
송홍선|민속식물연구소(010-2725-1949, hssong1@hanmail.net)
얼마 안 있어 제비꽃이 필 것입니다. 매년 이 시기에 제비꽃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폴레옹과 그의 아내입니다. 나폴레옹 1세(1769~1821)는 코르시카섬 출신입니다. 그는 프랑스 반혁명파 진압에 공을 세우고, 1799년 브뤼메르 구테타로 통령 정부를 수립해 제1통령에 취임합니다. 1800년 마렝고의 전승과 함께 1802년 영국과의 아미앵 조약을 체결한 후 종신 통령이 됩니다. 그는 나폴레옹 법전의 편찬, 프랑스 은행 설립 등을 실시한 후 황제가 되고, 1806년 대륙봉쇄령, 1808년 에스파냐 점령 등으로 전성시대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는 에스파냐 게릴라에 괴로움을 당하고, 1812년 러시아 원정에 실패했으며, 1813~1814년 해방전쟁의 패배로 퇴위(退位)합니다. 그래서 엘바섬으로 유배됐다가 이듬해 탈출해 다시 황제가 되었지만 워털루 싸움에서 패해 100천하로 끝나고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최후를 마칩니다.
나폴레옹 2세(1811~1832)는 1세의 아들로 어머니는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루이즈입니다. 프랑스 국민의 축복 속에 출생한 그는 1814년 아버지의 퇴위 때, 후계자로 지명됐으나 연합국에 의해 거부됩니다. 그는 1818년 라이히슈타트공이 됐지만 병약(病弱)하여 일찍 사망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 3세(1808~1873)는 1세의 조카로 1836년과 1840년 제정부활 반란이 실패해 영국으로 도망갑니다. 그는 1848년 혁명 후 귀국해 국회의원이 되고, 소농민의 지지로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1852년 국민투표로 황제가 됩니다. 크림전쟁과 이탈리아 통일에 간섭해 명성을 유지하다 멕시코 원정의 실패,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해 포로가 되고, 1871년 퇴위한 후 영국으로 망명해 그곳에서 최후를 마칩니다.
이상은 나폴레옹 족보의 간단한 이력입니다. 여기에 나폴레옹의 제비꽃 사랑을 하나 첨가하면 이렇습니다. 나폴레옹 1세는 엘바섬에 유배되자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그 말은 “제비꽃이 필 무렵이면 다시 돌아가리라”는 것입니다. 그는 약속대로 튈르리 궁전으로 돌아와 다시 황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젊었을 때 ‘제비꽃 소대장’이라 불렀으며, 동지를 확인하는 표장(標章)으로도 제비꽃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유럽(프랑스) 최대 권력을 자랑하던 절대왕정 부르봉 왕가가 부활하자 제비꽃은 반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 3세 때는 다시 인기가 부활했고, 3세가 죽자 그 관은 제비꽃으로 엮은 꽃 보자기로 덮였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의 첫째 아내 조세핀도 제비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조세핀은 프랑스 혁명으로 남편과 함께 감옥살이를 할 때에 옥졸(獄卒)의 딸이 선물한 제비꽃의 다발을 받은 후 석방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제비꽃을 무척 좋아해 옷에도 그 꽃을 수놓았습니다. 그녀는 생일 때마다 남편 나폴레옹으로부터 한 아름의 제비꽃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조세핀은 이혼 후에 제비꽃을 2번 다시 보지 않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