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성령의 불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루카 12,49-53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어제 책을 보다가 대화의 중요성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연구소의 실험 결과인데, 오랜 기간을 함께 살면서 서로의 갈등을 대화로 잘 해결해 온 부부와 면역력이 그렇지 못한 부부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또 이런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한 임상실험에서 악성 흑색종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한 집단의 환자들은 치료를 받은 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도록 하고 그 모임에서 대화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집단의 환자들은 개별적인 치료만 받도록 하였지요. 이 실험은 6주에 걸쳐 진행되었고 5년이 지난 후 실험에 참가했던 환자들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런데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대화법을 배웠던 환자들은 9퍼센트가 사망한 반면, 그냥 치료만 받은 환자들은 무려 30퍼센트나 사망한 것입니다. 그저 간단한 대화법을 배우고 자신이 가진 고충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살아 있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지요.
이 만큼 우리의 삶 안에서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인간 대 인간의 대화만이 중요할까요? 어쩌면 인간 대 하느님 간의 대화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과의 대화 안에서는 때로는 아픔과 상처를 동반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과의 대화 안에서는 믿음이 키워지며 이로써 구원이라는 커다란 희망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과의 만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만남임을 오늘 복음에서 분명히 말씀해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평화가 아닌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시면서 가족의 분열을 이야기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씀이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즉,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가족의 분열이 오게 되더라도 하느님 사랑이 항상 우선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항상 첫 자리에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친한 친구가 어떻게 내게 생겼습니까? 갑자기 “우리 친한 친구하자.”라는 말 한 마디로 친한 친구가 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삶을 나누면서 친한 관계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라는 대화는 물론 내 삶 전체를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은혜로운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구원이라는 커다란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조명연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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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조명연 신부님 글 하나 더 드립니다~~
「대화가 중요해요...」
어떤 사람이 편도선을 절제하기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병원에서 그 사람의 다리를 절단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이 사건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네요.
사실 이 수술실에는 집도의사 외에도 일곱 명의 조수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그의 다리를 잘라내려고 했을 때 그들이 이상하게 여겼지만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주저하면서 대화를 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대화를 통해 생명이 살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면을 생각하면서 또 용기를 내지 못해서 대화 하는 것을 시도도 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올바르고 다른 이들에게 힘과 도움을 줄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가 열리고, 습관의 씨앗을 뿌리면 성격의 열매가 열리고, 성격의 씨앗을 뿌리면 운명의 열매가 열린다(나폴레옹)>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가 12,49-53)
「わたしが来たのは、地上に火を投ずるためである。
あなたがたは、
わたしが地上に平和をもたらすために来たと思うのか。
そうではない。言っておくが、むしろ分裂だ。」
(ルカ12・49-53)
“I have come to set the earth on fire.
Do you think that I have come
to establish peace on the earth?
No, I tell you, but rather division."
(LK 12:49-53)
年間第29木曜日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ナヌン セサンエ ブル チルロ ワッタ。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ネガ セサンエ ピョンワル チュロ ワッタゴ センカツハヌニャ?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アニダ。 ネガ ノヒエゲ マランダ。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オヒリョ ブンヨル イルキロ ワッタ。
(루가 12,49-53)
「わたしが来たのは、地上に火を投ずるためである。
あなたがたは、
아나타가타와,
わたしが地上に平和をもたらすために来たと思うのか。
와타시가 치조오니 헤에와오 모타라스 타메니 키타토 오모우노카
そうではない。言っておくが、むしろ分裂だ。」
소오데와 나이 잇테오쿠가 무시로 분레츠다
(ルカ12・49-53)
“I have come to set the earth on fire.
Do you think that I have come
to establish peace on the earth?
No, I tell you, but rather division."
(LK 12:49-53)
Thursday of the Twenty-ninth Week in Ordinary Time
LK 12:49-53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 have come to set the earth on fire,
and how I wish it were already blazing!
There is a baptism with which I must be baptized,
and how great is my anguish until it is accomplished!
Do you think that I have come to establish peace on the earth?
No, I tell you, but rather division.
From now on a household of five will be divided,
three against two and two against three;
a father will be divided against his son
and a son against his father,
a mother against her daughter
and a daughter against her mother,
a mother-in-law against her daughter-in-law
and a daughter-in-law against her mother-in-law.”
2024-10-24「わたしが地上に平和をもたらすために来たのではない。むしろ分裂だ。」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29木曜日です。
慈しみ深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愛すべき御母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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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わたしが地上に平和をもたらすために来たのではない。むしろ分裂だ。>
そのとき、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12・49「わたしが来たのは、地上に火を投ずるためである。その火が既に燃えていたらと、どんなに願っていることか。50しかし、わたしには受けねばならない洗礼がある。それが終わるまで、わたしはどんなに苦しむことだろう。51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地上に平和をもたらすために来たと思うのか。そうではない。言っておくが、むしろ分裂だ。52今から後、一つの家に五人いるならば、三人は二人と、二人は三人と対立して分かれるからである。
53父は子と、子は父と、
母は娘と、娘は母と、
しゅうとめは嫁と、嫁はしゅうとめと、
対立して分かれる。」(ルカ12・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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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ョ・ミョンヨ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昨日本を読んでいると、対話の重要性についての文章を目にしました。
アメリカの研究所の実験結果ですが、長年一緒に暮らしながらお互いの葛藤を対話でうまく解決してきた夫婦と、そうでない夫婦と比べて免疫力がはるかに高いことが分かりました。また、次のような研究結果もあります。
ある臨床実験で悪性黒色腫を患っている患者を2つのグループに分け、一方のグループの患者には治療後定期的に集まりを持ち、その集まりで対話法を教えました。これに対して、もう一方のグループの患者たちは個別の治療のみを受けさせました。この実験は6週間にわたって行われ、5年後に実験に参加した患者たちを再び訪ねました。すると、定期的に集まりを持ち対話法を学んだ患者は9パーセントが死亡していたのに対し、ただ治療だけを受けた患者は30パーセントも死亡していたのです。簡単な対話法を学び、自分の抱えている困難を他の人々と共有した人々の方が、そうでない人々と比べて生存率がはるかに高いことを示していました。
このように、私たちの人生において対話が重要であることを示しています。しかし、人間対人間の対話だけが重要なのでしょうか?もしかすると、人間対神の対話の方がより重要かもしれません。なぜなら、人間との対話の中では時に痛みや傷が伴うことがありますが、神との対話の中では信仰が育まれ、それによって救いという大きな希望を持つことができるからです。
主は人間との出会いよりも神との出会いが重要であることを、今日の福音で明確に話してくださいます。だからこそ、この世に平和ではなく分裂を起こしに来たとおっしゃり、家族の分裂について語られます。一見すると、この言葉は家族を愛してはいけないという意味に捉えられるかもしれませんが、それよりも神を愛することが優先であるべきだと強調しています。つまり、極端に表現すると家族の分裂が起こったとしても、神への愛が常に優先されるべきだとおっしゃっているのです。
神を常に第一の座に置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のために必要なのは、神との対話です。親しい友人が私はどうやってできたでしょうか?突然「親しい友人になろう」という一言で親友にはなりません。絶えず話し、人生を共有しながら親しい関係になるのです。それでは、神を第一の座に据えるということは何でしょうか?祈りという対話はもちろんのこと、自分の人生全体を神に捧げることができるときに初めて可能です。
神との多くの対話を通じて、神を第一の座に迎える恵み豊かな一日となりますように。そうすれば、救いという大きな希望を抱くことができ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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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福音を聞き、常に主との対話、すなわち「祈り」を通して、主のことを優先し、正しい生き方を学び、毎日が地上の天国を生き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