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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내러티브를 쫒아 가는 게,
연출의도에 접근하는 데 있어, 더 용이해 보여서
스토리와 이해을 섞어서 글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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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챕터의 제목이 커졌다 꺼진다.
(이후로 네 다섯 번째의 소제목이 붙는다.)
영화가 막 시작되면서 주인공의 나레이션이 있었다.
자신이 사는 연변지역에 광견병이 돌았다는...
그러면서 카메라는 어둡고 지저분한 연변의 모습을 여러 번 훑는다.
그런 연변의 어느 어두운 공간에서 마작을 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주인공, 짧은 시간에 목돈을 벌어보려고 도박에 끼어들지만
오히려 힘들게 번 돈을 다 잃은 것 같다.
게다가 돈을 잃고도 중국인들로부터 멸시의 대상이 된다.
밖으로 나가는 주인공, 택시 운전대에 앉는다.
이 주인공은 가나한 조선족 택시 운전사다, 이름은 김구남.
그가 사는 거처는 사각으로 지어져 있을 뿐 짐승들의 거처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에게는 커다란 짐이 있다, 이름하여 빌린 고리 빚.
돈 벌어 삶의 경제적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아내를 한국에 보내려고 빌린 고리 빚.
돈을 빌려 준 어깨들은 매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그 날 번 돈을 가져간다.
그리고는 매번 빨리빨리 일해 빨리빨리 갚으라는 협박이 보너스처럼 보태진다.
구남은 가족들에게 멍에를 안긴 빚으로 갔음에도 돈도 부쳐주지 않고
연락마저 끊은 아내를 원망하고 그리워하며
(영화에서는 구남이 아내를 그리워할 때마다 구남과 아내의 섹스 장면이 반복된다)
하나 있는 아이도 어머니에게 맡긴 채, 고통스럽고 구질구질한 날들을 보낸다.
그러다가 어깨들의 소개로 면정혁이라는 조선족 개장수를 만나 충격적인 제안을 받는다.
한국에 가서 한 사람만 죽여주면 빚 갚을 돈을 한 큐에 벌 수 있다는 제안.
보통사람으로는 생각하기도 힘든 살인청부 제안을 받은 구남은 고민 끝에
돈도 벌고 사라진 아내를 찾아볼 수 있다는 계산을 머리 속에 그리며 실행에 옮긴다.
쓰레기 운반선 같이 더러운 배에 다른 낯선 수십 명과 함께 실려가더니
(그 중 한 사람이 죽어 시체가 된다.)
한국 해안에 다다르자 보트에 옮겨지고
구남은 울진 어느 해안 한적한 횟집에 도착한다.
살인이 완료되어야 할 최종 날자 재확인과
연변으로 돌아갈 배가 뜨는 날자와 시간을 통보 받고
구남은 서울로 이동해, 범행에 옮기기 적당한 동시에
아내의 행적을 수소문해보기 용이한 여관을 하나 잡는다.
살인이 일어날 장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맨 위층에 주택이 있는 4층짜리 근린상가건물.
살인을 완료할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은 보름.
구남은 빌딩의 모든 입주업체, 특히 주택의 방범용 철문,
그리고 살인 대상자의 일일 동선을 면밀하게 체크한다.
대상자에게 아내와 딸이 하나 있는데 깨끗함과 약해 보임 그 자체다.
따돌려야 할 사람은 무술에 능해 보이는 운전사 한 사람.
그는 사층 계단에서 살해를 하기로 결정하고 예행연습을 하면서
살해를 하고 도주할 모든 시간을 초단 위까지 잰다.
구남은 동시에 아내의 행적을 추적한다. 안산일대에서 영등포 등으로.
마침내 아내와 내연의 관계를 하고있다는 수산물 유통업자를 찾지만...
아내가 기거하고 있다는 거처는 썰렁하기만 할 뿐,
그녀를 만나보지 못한 채 시간만 간다.
이제 주어진 날자 하루 전.
살해를 결정하기로 한 그 날, 구남은 식칼을 몸 속에 감추고 한 밤중을 기다린다.
여느 때라면 검은 그랜저 승용차가 도착하고 대상자가 차에서 내려 올라간다.
운전사는 대상자가 사층까지 올라가 집안으로 들어가고
복도의 센서 등이 꺼지면 차를 몰고 갈 것이다.
따라서 빌딩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가서 숨어 있어야 한다.
막 숨어들어가려는 순간.
누가 봐도 거칠어 보이는 두 사람이 건물 주위를 살핀다.
구남은 흠칫 놀라며 맞은 편 건물 뒤로 몸을 숨긴다.
그런데 그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불꺼진 사층 계단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당황스럽다. "저놈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 돈벌이를 방해하다니..."
구남이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데, 여느 때와 같은 시각.
검은 그랜저가 도착하고 대상자가 계단을 오른다.
운전사가 운전석 쪽 차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사층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보디가드를 겸하고 있던 운전자는 의외로 움직이지 않는다.
살인자들과 한 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살해 대상자가 만만하게 당할 대상이 아니었던가 보다.
숨어 기다리던 낯 선 두 남자 중 한 남자가 유리창 밖으로 튀어나와
그랜저 위로 떨어지고 남은 한 남자도 고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운전자는 그제서야 뛰어 올라간다. 구남도 잠시 후 따라 뛰어 올라간다.
상황은 먼저 올라 간 두 사람은 죽어 있고
운전사는 피투성이가 된 대상자를 마지막 죽이고 있는 장면.
구남과 마주치자 운전사가 구남을 보고 놀라며 달려들지만
이미 살인행위로 인해 체력이 떨어져 구남이 피하며 밀자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는다.
구남은 당황한 중에 면정혁이 한 '꼭 대상자의 엄지손가락을 가져와야 돈을 준다.'는
말을 떠올리며, 살해당한 이의 엄지를 식칼로 자르려는데 뼈 때문에 잘 안 잘라진다.
한 편, 집 안에 있던 아내는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공포에 떨면서 경찰에 신고를 한다.
구남이 손가락을 절단할 즈음, 대한민국 최고 치안경찰이라는 강남경찰이 속속 몰려든다.
하지만 구남은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입자 사무실을 지나 유리창을 깨고 뒤로 나가
강남의 대로들을 발로 뛰어 경찰차로 추격하는 강남경찰을 따돌리고 포위망을 벗어난다.
구남은 인천의 어느 아파트 공사 현장 사무실에 침입해 돈과 작업용 외투를 훔쳐 행색을 바꾼 후,
면정혁과의 연락을 시도하지만 그는 사라지고 없는 인물이 되어 버렸다.
돈이 든 통장을 손에 쥐어주며 살해에 성공하면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을 주었지만 더 이상 그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자신은 대상자를 살해하지 않았음에도 살인현행범이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건 이 이야기에서
아내의 배신 이후로 주인공 구남이 당한 두 번째 배신이다.
"도대체 나 말고도 대상자를 살해하려던 그들은 누구였으며 동기는 무엇일까?"
"죽여 달라고 나에게 청부살인을 부탁한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동기는 또 무엇일까?"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맨 마지막에 살짝 보여준다.
그것도 아주 확실한 반전으로.
경찰에 쫒기는 구남은 티브이 뉴스를 항상 눈여겨본다.
그러던 중에 그가 찾았던 아내의 정부, 수산물 유통업자가
조선족 여자 살해혐의로 체포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아내가 결국 죽었다는 소식이다.
영화는 이 대목에서 구남의 아내가 정말 죽었는지 마지막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맨 마지막에 아내가 고향역에 내리는 장면을 보여 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더 혼돈스럽게 만든다.
구남은 이 사실을 보다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어서 사설탐정을 고용하지만
그는 구남에게 보수를 받기 위해 확인이 되지 않음에도 아내가 틀림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화장비까지 받아내 돈을 챙긴다.
이건 이 이야기에서
구남이 당한 세 번째 거짓(배신)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 시(時)점에서 시(視)점이 바뀐다.
즉 구남의 시점에서 다자(多者) 시점으로 전환된다.
죽임을 당한 사람은 김승현.
유도 금메달 선수출신으로 대학교수까지 하고 있는 사회 지도층이며,
많은 부동산과 유흥업소를 가지고 있는 일명 어깨두목이다.
(그래서 살해 현장에 세 사람이나 올라갔지만 쉽게 죽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와 동업을 하던 김태원 사장.
시내버스 운송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가족들과 함께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는,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가장 정상적이고 모범적으로 보이는 인간.
하지만 본업은 깡패질인 또 다른 두목어깨다.
동업자가 죽임을 당하자 함께 투자하고 운영하던 업소들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김 사장은 사태의 발단을 알아내기 위해 부하들을 풀어 독촉한다.
죽인 자들은 누구이며 시킨 자들은 누구인지.
그래야 동기와 목적을 알고 대처할 것 아닌가?
알아 본 바로는 살해 팀이 하나가 아니라 둘.
하나는 뉴스에 알려진 대로 조선족 김구남, 그리고 면정학 또는 그 뒤의 어떤 자.
다른 하나는 건달막노동꾼들, 그리고 그들을 사주했다는 미지의 은행원.
도대체 오리무중, 혼돈이다.
그리고 감독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혼돈이다.
이 혼돈 속에서
혼돈을 가속하는 또 하나의 배신이 진행된다.
김 태원 사장의 불륜.
불륜의 대상은 나름 예쁘고 세련되고 커리어 있어 보이는 여자.
그런데 그 여자는 나약해 보이는 죽은 김승현 교수의 아내와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카메라는 그 옷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클로즈업시키는 장면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사실은 영화의 마지막 반전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상황은 김태원 사장과 김구남에게 만만하지 않다.
김승현을 죽이고 그의 재산을 가로채려고 노린 면정학은
김승현의 재산을 노리면서 동시에 김구남의 목숨도 노린다.
면정학에게 구남은 김승현을 없애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구남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면정학을 만나기 위해 처음 도착했던 울진의 그 횟집으로부터 시작해
면정학이 연관된 장소들을 탐문하며 좁혀 들어간다.
가다가 경찰 검문에 걸리고 총상까지 입지만 그는 초인적인 힘으로 움직인다.
아마도 그의 그러한 힘과 용기는 돈을 받아내야 한다는 일념 하나 때문이었으리라.
빚의 근원인 아내도 이미 저 세상으로 갔으니 말이다...
구남은 면정학을 찾으려고 다시 중국으로의 밀입국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가 수소문해 찾은 밀입국 주선자들은
돈만 받고 구남을 컨테이너에 가둬 죽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자들.
구남은 그들의 마수에서 간신히 벗어난다.
밀입국 실패는 구남이 배신당한 네 번째 사건이다.
구남은 계속해서 면정학을 찾지만
그러나 그는 얼마 안 가서 면정학이
자신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벅찬 아주 잔인한 거물 폭력배임을 알게 된다.
면정학은 자신의 물적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리고 김승현 살해 수단이었던 구남을 제거하기 위해 한국으로 입국한다.
쫓다가 쫓던 대상에게 쫓기는 신세.
구남은 경찰에게는 물론 면정학에게도 쫓기게 된다.
한편,
면정학은 한국에 있는 한 업소를 근거로 하여
김태원 사장과 대결 - 타협 - 전쟁의 길에 들어선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폭력의 향연이 서로가 파멸할 때까지 계속된다.
아울러 면정학은 생존본능이 생각보다 강한 구남과도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야기 속에서,
구남은 싸우면 싸울수록, 몸은 만신창이가 되지만 의지만큼은 강한 전사가 된다.
그건 주인공의 특권이 아니던가. 잡초 같은 민초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반면에 면정학과 김태원의 조직은 서로 싸우면 싸울수록 파멸에 가까워진다.
주먹과 칼부림, 소뼈다귀와 도끼, 달리는 자동차들의 충돌...
그리고 땅에 쏟아지는 인간의 피, 보여지는 모든 것은 물리적 폭력의 세계다.
마침내 면정학과 김태원은 일대 일 대결을 하고,
김태원은 자신의 버스종점에서 면정학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승리한 면정학도 봉고를 타고 떠나려다 건물 기둥을 들이받으면서 죽게 된다.
피투성이가 된 채, 봉고 운전석에 앉아 죽어가고 있는 면정학.
구남은 그 현장에 나타나 마지막 시간을 맞고있는 면정학, 그를 보고있다.
면정학을 쫓기도 하고 그에게 쫓기기도 할 때,
구남이 우연히 알게 된 의문의 청부살인 의뢰인, 은행원 모씨.
구남은 그 은행원의 명함을 보고 궁금해하며 은행 지점에 들른다.
이름을 확인하며 그 은행원 남자를 응시하는 순간,
은행원이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구남을 의아하게 여기며 눈길을 주는 그 때,
그 은행원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성 고객이 같이 고개를 돌린다.
그런데 그 여자는 바로 다름 아닌, 살해당한 김승현 교수의 아내다.
아무 힘없이 당하기만 할 것 같던 나약해 보이기만 하던 그 여자,
그 여자가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아니 가로채기 위해,
내연의 남자인 젊은 은행원과 짜고 남편을 청부살해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메가톤급 배신의 결정체이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구남은 은행문을 박차고 나가더니 행인들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한 열차가 연변의 고향 역에 정차하는데,
구남의 아내가 역에서 내리더니 가벼운 걸음걸이로 제 집으로 향한다.
그 역에는 아무도 없고 그녀 혼자만 내리고 걷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구남의 꿈이며 희망일 것이다.
이야기는 구남의 예쁜 아내가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보여 주면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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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관객들은 우울한 혼돈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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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평>
1. 세상은 '개판'이다.
이 영화에 숨어 있는 메타포어는 '개'다.
주인공에게 살인청부를 맡긴 주먹패거리 대장 면정학, 오직 폭력 그 자체로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그는 연변에서 개장수로 등장한다. 주인공 김구남이 그를 처음 만나러 가는 시점에서 감독은 개들이 서로 으르렁대는 장면을 두어 번 의도적으로 보여 준다. 주인공 김구남은 가장 원초적인 폭력의 세계인 짐승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면정학의 주변 세계만이 짐승들의 세계인 것만은 아니다. 주인공 김구남이 살아가는 일상 세계 역시 개들과 같은 동물의 왕국이다. 아니 김구남의 내면 세계마저도 짐승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고 감독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주인공의 이름에 감추어져 있다. 바로 그의 이름 '구남'. 영화에서는 한 번도 드러내 주지 않지만 그의 이름 구남의 '구'자가 개 구'狗' 자라고 추측한들 별로 빗나간 해석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수컷 개새끼' 정도로 해석될 것이다. 사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그의 거처와 삶은 숲 속 늑대들의 삶과 별다를 바 없는 것처럼 누추하게 묘사되고 있다.
결국, 감독이 우리에게 주장하려는 이 세상에 대한 선언은 이 세상이 '개판'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아무리 문명과 겉치레 도덕으로 포장되어 있어도, 결국 이기적 욕망의 궁극적 솔루션은 폭력인 동물의 왕국이다.'
2. 세상은 '배신'이다.
이 영화에서는 배신이 내러티브 전체에 점철되어 있다.
돈 벌어 가정을 일으키겠다고 떠난 구남의 아내의 배신.
서울 가서 단 한 사람만 죽여주면 빛 갚을 만한 수고비를 주겠다던 면정학의 배신.
돈 받고 밀입국을 주선하던 자들의 배신.
김태원 사장의 결혼 서약에 대한 불륜이라는 배신.
김승현 교수에 대한 청순 가련형 아내의 청부살인이라는 끔찍한 배신.
이 영화 속에는 신의가 없다. 모든 것은 배신의 연속이다. 모든 인간은 타인을 자기 생존과이익의 수단으로만 여길 뿐이다. 왜 그러냐고? 주인공 이름이 함의하는 것처럼, 인간은 그 내면의 본성이 짐승,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짐승의 세계에서 나 보다 약한 상대방의 존재, 상대방의 신체는 배고픈 나의 식사거리가 아니던가?
그럼 여기서 하나의 찜찜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개'라는 짐승은 우리의 경험칙 상, '충성', 또는 '충직'의 대명사다. 그런데 나홍일 감독은 왜 이 신의 없는 세상, 배신의 세상을 '개판'이라고 했을까?
그건 그가 주인공 김구남의 입을 빌어 영화의 도입부에서 연변 일대에 '광견병'이 돌았다는 나레이션을 넣은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개들은 원래 충직하지만 광견병에 걸리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광견병에 걸린 광견들은 서로 물어뜯을 뿐만 아니라 그 주인도 문다.
결론적으로 나홍일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통해 세상에게 외치는 것은.
'세상은 미친 개들의 판이다.'
단, 이 영화는 왜 세상 사람들이 미친 개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 현상에 대해서만 폭로할 뿐이다. 세상은 마치 아닌 것처럼 연하고 있지 않은가?
3. 그리고... ...
그럼에도
구남과 같은 밑바닥 인생은...
그 폭력과 배반의 정글 속에서
무엇을 하든 악착같이 일해서
예쁘고 신의 있는 아내와 소박하고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꾼다.
여전히...
그건 소망일까 환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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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래도 세상이 아직은 살만한 것을 보면 바로 소박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그것을 소망으로 가지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인 것 같죠. 저는 개인적으로 지독한 폭력이 화면에 나오는 영화는 보질 못합니다. 스트레스를 넘 많이 받아서
예술적이고 이념적이고 꼭 봐야될 영화라도...ㅋㅋㅋ
대신 꼭 영화를 본 것 같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대신 합니다.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