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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자랑시런 진도 출신 트롯여왕 송가인(본명 조은심) 미스트롯 진이 뜸시로
그 엄매(송순단-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진도씻김굿 전수조교)하고 얽힌
우리 고향 진도의 자랑시런 민속 ‘씻김굿’에 대한 관심덜도 높아징께 찰로 기분 좋구만이람쨔.
그란데 진도 출신이라므는
놈덜한티다가 자랑이나 소개는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충 상식적이남둥 그 내용을 알고넌 있어사라겄걸래
진도인덜 스스로 고향 공부도 되거끄럼 간단하게 정리럴 잔 해 볼란 맘이로 해봤는데
너마 방대한 자료덜이라 잔 질어졌어도 그남둥 빠진 야기도 많아제만 하여튼 취할 건 취하고
내뿔 껏언 내뿜시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당골래(무당)의 굿을 미신이라고덜 말씸덜 하제만
내 생각이로는 불교에서 극락정토로 가는 것이나 기독교에서 천국으로 가는 것이나
종교가 없는 사람덜이 황천이로 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고,
불교의 장례식과 천도제나 천주교의 장례미사(연도 煉禱)나 기독교의 장례(영결 永訣)예배 등도
모두 이러한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떠나가는 길을 배웅하는 절차로
이 역시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특히나 진도의 장례 풍속에서 이뤄지는 씻김굿과 다시래기, 야락잔치는
새로운 길을 떠나는 죽은 이에게는 생전에 맺힌 고를 풀어드리고 깨끗이 씻겨서
정결하고 가벼운 영혼으로 저승의 새길을 편히 가시도록 흔쾌히 보내드리고 이승에 남은 이들도
그 가운데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어 또 남은 삶을 힘차게 다시 살아가도록 이끄는
아름다운 이별의 방법이라 하겠다.
기왕에 상반되면서 한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내내 슬픔만으로 못 보내고 힘들어 하기보다는 편히 보내드리고 또 삶에 희망을 찾는
이러한 진도의 장례풍습이야말로 한층 승화된 아름다운 이별 의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먼저 진도씻김굿의 종류를 따져보자면
「곽머리 씻김굿」이 있는데 초상이 나면 관이 있는 옆에서 직접하므로 「진씻김」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소상 씻김굿」,「대상 씻김굿」,「탈상 씻김굿」이 있는데 3년상에 따라 각각하던 굿이다.
「날받이 씻김굿」은 집안에 우환이 있든가 죽은 이의 넋이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날을 받아서 하는 굿이다.
그 외에도 「용신굿」, 「용왕굿」이라는 이름도 있는 - 물에서 죽은 자의 넋을 건져 주고자 할 때 하는 「혼 건지기 굿」, 초분을 이장하면서 하는 「초분 이장 씻김굿」, 처녀망자와 총각망자의 영혼들끼리 혼사를 시켜 이장하면서 하는 「저승 혼사굿」 등이 있고
또 조상의 비석을 세울 때나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하므로 「경사굿」이라고도 부르는 「영화 씻김굿」도 있다.
이 모든 진도씻김굿은 집안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진도의 세습무(世襲巫)인 당골과 고인(樂士)들이
상호 교감하면서 합동해서 진행하는데,
진도씻김굿의 악사는 잽이라고도 하지만 고인(工人)이라고 하는 바
이는 조선시대에 악사를 일컫던 고인(工人) 혹은 아공(樂工, 捧上樂工=밧자아공)에서 유래한 명칭이고
진도 당골은 흔히 당골래라고 부른다.
진도의 세습무계는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에게로 사제권이 전승되는 부가계내 고부계승(父家系內 姑婦繼承)이 원칙으로
당골래(世襲巫)가 일정한 지역이나 문중의 관할권인 당골판을 갖고 관할 내의 온갖 굿을 도맡아 하게 되며
세습무계(世襲巫系) 남자들은 거의가 고인(樂士)으로 협업에 동원된다.
당골래는 보리와 벼 수확기에 각자의 당골판 소속 가정에서 곡식을 거두어 가는 도부제를 통해
경제적 기반을 삼으면서 평시에 비손이나 물림굿 등을 해주고 큰 굿은 여러 당골들이 협업해서 치른다.
진도 당골(世襲巫) 계보로는 박(朴)ㆍ함(咸)ㆍ노(魯)ㆍ채(蔡)ㆍ최(崔)ㆍ이(李)ㆍ김(金)로 주된 칠성(七姓)받이와
강(姜)·안(安)·양(梁)·진(陣)·한(韓) 씨 등도 있어 12개 씨족 전수가 있었는데,
이 중에서도 특히 9대 째 진도세습당골이었던 전 예능 보유자 고 박병천(2007년 타계)의 아들과 딸들로
10대 째럴 잇는 박환영, 박성훈 두 아들이 고인(工人, 樂士)으로 씻김굿을 하고 딸 박미옥은 당골래(世襲巫女)로 그 대를 이어온 밀양 박(朴)씨가 가장 뚜렷하다.
8대 째 박범준(朴凡俊)과 진도에서 굿을 제일 잘하는 단골무당이던 김소심(金小心)이 박병천의 부모이고,
마당놀이의 유명 국악인 김성녀(金星女, 중앙대 교수)의 이모 박보아(朴寶我)와 어머니 박진옥(朴眞玉)도
이 집안 출신으로 외할아버지 박동준(朴東俊, 8대 세습)과 외할머니 강삼단 사이에서 태어났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의 유일한 예능보유자로 남은 박병원은
1945년 진도군 의신면 송정리 출생으로서 박병천과는 8촌간으로 같은 집안의 9대째 세습무계이다.
아버지 박남준은 피리와 가야금을 잘 하는 마을 농악패의 상쇠였고 어머니 함양화도 세습무가 출신이다.
** 진도씻김굿은 김대례(金大禮, 1935~2011), 채계만(蔡桂萬, 1916-2002), 박병천(朴秉千, 1933∼2007) 보유자 타계 이후로 박병원(朴秉元, 1945~) 보유자 한 명에 김오현 전수조교(현 진도군립예술단 단장), 송순단 전수조교(가수 송가인 모친), 박미옥 전수조교(박병천 딸로 10대 째 세습당골래)의 전수조교 세 명과 이종대, 박환영, 이태백, 홍옥미, 임수정, 강은영, 장필식, 박성훈, 박향옥, 박영례 등의 이수자와 기타 전수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 뿌리가 되는 민속 문화 환경이 망가진 가운데에서 제대로 된 전통의 굿보다는 민속 공연의 보존을 이끌어 가고 있는 형편이라고 본다. ***
이제는 사라진 진도의 제대로 된 마지막 당골래라고 불리는 당골래로는
김대례(金大禮, 김대심(金大心), 임회 삼막리, 1935~2011)와 채정례(蔡貞禮, 의신 원두리, 1925~2013)가 있는데
채정례는 2003년 제작된 다큐멘터리영화 <영매(靈媒)>의 주인공으로
1925년 신안군 하의면 출생이나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언니들(채자녜, 채둔굴)과 함께 진도로 이사하게 되고,
18세에 같은 무계의 악사인 함인천(咸仁天, 1927~)과 결혼했다.
광복 후의 진도 당골들로는
피리와 젓대 名人 朴成國, 가야금 名人 蔡孟仁, 피리 名人 金海千, 태평소 名人 韓雲龍이 있었고,
그밖에 李太權, 蔡斗仁, 蔡成仁, 朴京俊, 李太弘, 朴南俊과 같은 樂士들이 있었다 전하고,
선굿의 명인으로 朴先禮와 같은 무렵에 蔡桂萬의 어머니 金石硯이 있었다 한다.
1979년에 진도씻김굿을 지정 조사할 당시에는
鄭淑子, 朴秉千, 韓三舟, 姜漢洙, 蔡桂萬, 朴昌集, 金貴鳳, 金大禮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박병천, 채계만, 김대례가 보유자로 인정을 받았고 뒤에 김귀봉이 악사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김영하(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를 비롯한 주장으로는
오늘날 무당(巫堂)을 이르는 당골이라는 말의 어원은 단군(檀君)으로 투르크인(Turk)의 Tangri 또는 몽골의 천신 텡그리(tengri)와 같아서 띵기르, 당기르, 당구르, 당굴…. 등으로 불리었던 것이라고 한다.
또 홍윤표(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의 글에 따르면
‘스승’의 어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예로부터 무당(巫覡)이었다고 한다.
이리 보면 제정일치 시대의 하늘과 인간을 잇는 최고 통치자였던
제사장(祭司長)으로 단군(檀君)의 위치가 긴 세월 속에 불교의 전래와 유교적 왕권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에게도 하대를 받는 팔천(八賤)의 당골래로 까지 떨어졌으나,
오늘날은 무형문화재로 다시 받들어지게 되었으니 이도 참 기구한 운명의 세습(世襲)이라 하겠다.
이전에 보면 제대로 된 씻김굿은 여러 명의 당골래들과 잽이들이 협동해서 하는데,
해도 저물기 전부터 시작한 굿이 날을 꼬박 새도록 하곤 했었다.
1980년 11월 17일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당시의 진도씻김굿의 순서로는
먼저 1.조왕반으로 시작해서 2.안당, 3.혼맞이, 4.초가망석, 5.처올리기, 6.손님굿, 7.제석굿(제석 근본 찾는 대목, 제석맞이, 제석 유람, 시주받기, 명당터 잡기, 성국터 잡기, 지경 다구기, 집짓기, 입춘 붙이기, 성주경, 벼슬궁, 축원, 노적청, 업청, 군웅, 조상굿, 액막음), 8.고풀이, 9,영돈말이, 10.이슬털기(씻김), 11.왕풀이, 12.넋풀이, 13.동갑풀이, 14.약풀이, 15.넋올리기(천근풀이), 16.손대잡이, 17.희설, 18.길닦음, 19.종천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다양한 굿의 종류에 따라 굿의 내용과 순서가 약간씩 다를 수밖에 없고,
당골 가계(家系)마다 연행과 순서에 조금씩 다른 부분들이 있었으며 각기 사설들은
개인마다 또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진도씻김굿을 절차적 내용으로 분류해서 보자면
맨 처음에 청신(請神)의 과정이 있는데 이는 신을 청하여 모시는 과정으로
조왕반과 안당은 조왕신과 조상신께 굿을 아뢰고 초가망석과 혼맞이는 씻겨드릴 망자를 비롯해서 조상님네와 친구 망자 등을 불러 모시는 것이라 하겠다.
그 다음에 오신(娛神)이라 하여 신을 찬양하여 즐겁게 하는 과정은 복덕과 재수를 관장하는
제석신을 청배해서 떠들썩한 잔치판의 분위기를 펼쳐 내면서 이승에 살아있는 자들의
부귀와 영화를 다루는 흥겨움에 액막음이 있는 순서다.
다음으로 절연(絕緣)은 생과 사로 길이 갈린 망자와의 인연을 끊어내기 위한 절차인데
망자굿도 있지만 조상굿 혹은 선영굿은 실제 조상의 현신으로 상징되는 절차를 통해
산자와 죽은자가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신맞이에서 하강한 신(亡者)을 모셔 놓고 액풀이, 고풀이, 씻김, 넋올리기라는 절연의 절차가 있다.
이제 천도(薦度)의 절차로 죽은 사람의 넋이 좋은 세상으로 편히 가시도록 기원하며 보내드리는 과정인 천근, 희설, 길닦음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이승길에서 저승길로 보내드리는 배송(拜送)의 절차로 종천이 있는데
당골래 혼자 징을 두들기면서 한다.
미처 못 떠난 신들을 보내고, 아직 얻어먹지 못한 잡신들을 먹여 보낸다는 뜻으로 ‘종천맥이’라고도 한다.
또한 굿을 할 때 태워야 할 물건들을 모두 나와 불사르면서 배송을 하는데
곽머리 씻김굿(진씻김)에서는 연직사자(年直使者), 월직사자(月直使者), 일직사자(日直使者), 시직사자(時直使者)의 사직사자(四直使者)에게 짚신과 밥과 용돈을 놓고 망자를 잘 모시고 가달라는 기원을 올리면서 진도씻김굿의 마지막 대단원을 끝내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기에 삶과 죽음은 동전에 양면과 같다.
또 망자에게 이 세상의 끝은 또한 저 세상의 시작이고
또 남은 자들은 이생에서 나머지 삶을 다시 살아가야 하기에
슬픔만으로 죽은 이를 못내 못 보내드리면서 그 슬픔을 안고 남은 이들이 우울하게 여생을 살아가기 보다는
새로운 길을 떠나는 죽은 이는 생전에 맺힌 고를 풀어드리고
깨깟이 씻쳐가꼬 정결하고 가벼운 영혼으로 흔쾌히 새로운 존 시상이로 편히 보내드리고
남은 이들도 그 속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어서 또 남은 삶을 힘껏 다시 살아가야 하기에
상반되면서도 한곳에 있는 삶과 죽음처럼 슬픔과 흥겨움이 공존하는
이러한 씻김굿이야말로 한층 승화된 아름다운 이별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겄지라?
그라고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3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5개, 도지정 무형문화재 6개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느 곳에도 군 단위 소도시에 이토록 많은 무형문화재가 몰려있는 곳은 아매도 없을 것이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3개 -강강술래, (진도)아리랑, 농악(소포걸군농악),
국가지정 5개 - 강강술래(8호), 남도들노래(51호), 진도 씻김굿(72호), 진도다시래기(81호), (진도)아리랑(129호)
도지정 6개- 진도북놀이(18호), 진도만가(19호), 진도홍주(26호),
진도잡가(34호), 진도소포걸군농악(39호), 조도닻배노래((40호)가 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에도 흥그레타령, 산아지타령, 둥덩에타령, 엿타령, 짓봉산산타령 등의 타령류, 노동요와 노동풍물을 비롯해서 세시풍속과 관련된 당제, 거리제, 걸궁, 뫼구굿(매굿), 샘굿, 지신밟기에다 도깨비굿에 생이굿, 두레굿, 또 남한산성도척놀이……. 등
이케 자랑시런 민속에 보고(寶庫)인 우리 안태고향 고향 진도를 맘껏 자랑함시로
오눌도 모도모도 건강덜 하십쇼~! 덜~!
- 제59회 송현 출신 조병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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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병현 선배님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하게 잘 지내십시요~~~
우리 안태고향 진도는
충분히 자랑할만 한데여~!
모도 이녁 건강이 젤로 중한 것잉께
항꾼에 건강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