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7 – 11. 2 갤러리이즈 (T.02-736-6669, 인사동)
에너지 추상, 생동하는 흔적(Trace)
이우섭 개인전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나는 자연산이다. 나는 양식이 아니다. 남의 그림과는 타협을 하지 않겠다!”
이 말은 진지한 유머를 청년 같은 유쾌함으로 전환시키는 이우섭 작가의 좌우명이다. 그 어떤 시련도 작가와 만나면 도전이 된다. 세상을 향한 반문들 “얼마나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시험에 들게 하는가?” 이 질문은 즐기면서 창작하는 삶의 의지이자 “마음이 시키는 일은 반드시 행한다.”는 작가정신과도 일치한다. 일생이 작품 활동을 향한 준비기간 이었다면, 여든에 여는 첫 개인전은 말 그대로 잘 차려진 ‘전시잔치’인 셈이다. 작품들은 홍대 건축과 출신답게 공간 위에 시간을 아우르는 계획성 있는 에너지를 표출하면서도, 대가의 청년시대 작품을 펼쳐놓은 듯 완성도 높은 아우라(靈氣, Aura)를 자아낸다. “이제 작업할 시간! 여든부터 시작”이라는 이우섭 작가의 첫 개인전 “Trace”(10.27~11.2, 인사동 이즈갤러리 2층)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의 흔적
이우섭 작가의 작품들은 시간을 잘 머금은 청바지의 색감처럼 ‘필터링 된 추상’이다. “편안하면서도 역동적인, 세련되면서도 자유분방한” 양가적 에너지를 모두 머금은 잘 만들어진 건축 연작 같은 느낌이다. 이번 전시는 시간을 머금은 드립핑(dripping) 기법이 하나의 구조를 이루면서 공간에 스며드는 연작들로 채워진다. 작가에게 포치되는 중요한 특징은 정확히 떨어지는 원형의 흔적들이 시간성을 머금으며 여백과 대상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실제 물감의 농도와 정제된 색감의 어우러짐은 노동과 수행을 작품과 연동한 작가만의 독창적인 방식이다. 시리즈를 바탕삼아 이어진 드립핑의 향연은 실제 작업실 바닥에 떨어진 자연스러운 흔적을 구체화 시킨 것이다. 작업의 크기와 색감은 다양한 에너지를 아우르면서 자연스러운 생명력을 담는다.
여든의 대가와 같은 풍모, 화통한 성격에서 나오는 분방한 에너지, 그럼에도 작품은 그의 이름처럼 청년 같은 불꽃과 옥돌 같은 정제함을 내뿜는다. 작가의 실제 이름은 이규섭. 평생을 매진해 온 명품소파회사의 네이밍 ‘SUBI DESIGN’도 이규섭의 끝자 ‘섭(Sub)’을 풀어쓴 것이다. 선진국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브랜드의 철학과 작품에 매진했듯이, 그에게 이름이란 자부심이자 열정의 표현인 것이다. 그가 작가로 새롭게 출발하는 이름 중간에 ‘옥돌 우(玗=최고의 돌)’를 사용한 것은 최고의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일종의 다짐은 아니었을까. 이우섭 작가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 부딪혔을 때, “얼마나 잘 될라고 이런 시련이 생기는가”라고 생각한다. 더 잘되기 위한 도전의 과정, 이러한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의 삶이었기에, 자신의 오늘을 뛰어넘는 청년 같은 실험정신이 작품 안에 스며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에 걸 맞는 작가
우리 모두는 76세 최고령 신진 작가에서 86세 슈퍼스타 작가로 로즈 와일리(Rose Wylie)를 기억할 것이다. 47세에 미술학위를 받고 큰 명성을 얻지 못하다 30여년이 흐른 최근에서야 빛을 발한 영국의 핫한 작가. 어찌 보면 이우섭 작가는 그보다 많은 에너지를 응축하고 오랜 준비를 해왔기에 해외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새로운 걸 도전하기 전에 “이 나이에 뭘 하겠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우섭과 만나본 이들은 인생철학에서 한번, 작품의 깊이에서 다시한번 매료된다. 늦은 나이라고 하기엔 넘치는 열정,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창의적인 질문과 형식실험을 향한 끊임없는 사유 속에서 늘 자신을 새로운 가능성 안으로 몰아넣는다. 작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개성있는 나만의 작업’을 선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항상 세계최고의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 완성도와 책임감이 중요했고, 매순간 새로움을 갈망했다. 그러면서도 늘 떠나지 않던 것은 작품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 그 생각이 오늘의 나를 작가로 만든 것 같다. 박서보 작가처럼 현재 화단(畫壇)을 보이콧함으로 나 자신의 개성을 세우고자 한다.”
화가의 덕목, 10代에 깨달은 개성화의 길
데뷔를 늦게 하다 보니 여러 해프닝도 적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과 호흡하며 그림을 그리고자 모 기관의 회화수업을 들어갔는데, 다른 이들은 정물화나 풍경화 같은 정해진 양식으로만 그림을 그렸다. 젊은 선생은 어떤 가르침을 주기보다 모사하고 그려주느라 바빴다는 것이다. 선생은 8개월 간 조용히 그림만 그린 이우섭 작가에게 “붓과 나이프 소리가 너무 크다”고 컴플레인 했고, 작가는 “소리 없이 어찌 그림을 그리냐”며 칠판에 커다랗게 “클래스를 이러해서 떠나니 죄송하다”라고 남겨놓았다. 2019년 경기미전에서는 주최측이 작품을 거꾸로 거는 해프닝을, 인천미전에선 그림에 스크래치를 낸 일화도 있었다. 미술계가 가진 책임감 없는 행동들에 작가는 늘 개성어린 항변을 보여준다. 김창열과 윤형근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도 누가 보더라도 자신만의 개성화 세계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양식화된 작품은 진짜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은 개성중학교 시절 제국대학 회화과 출신이었던 김종식 선생의 가르침에서 온 것이다. 미술수업 시간에 그리는 겨울 홍시를 쏙 빼먹고 미술실을 일주일간 청소하게 된 이우섭은 미술반에 흥미가 생겨 들어가게 되었고, 친구들의 작품을 흉내낸 모작들을 여럿 그렸다. 그 때 지적한 선생의 한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이게 어찌 니 그림이니? 쫓아 그리는 건 도둑질이다. 개성이 없는 거다!” 이후 만난 선생들은 그리는 기술만 가르쳤지, 진짜 미술이 무엇인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미술은 내가 그리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다.”라고 깨달았고, 회화과를 가는 등록금이 아까워 건축과에 가게 됐다. 작가는 건축과에 다니면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다. 남들은 다 은퇴했을 나이, 2018년까지 42년간 ‘SUBI DESIGN’을 운영했고, 개인전을 준비하는 오늘날에까지 작업실 한 켠에는 그가 디자인한 가구들과 30년 이상 된 이젤이 캔버스와 물감과 함께 항상 준비돼 있었다. 매주 인사동에서 수 백 점을 이상의 작품들과 교감했고, 한 달에 만점 이상의 그림을 접하면서 잘 그린 그림은 많지만 개성화의 작품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후원자 최병기 대표는 작가의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다. “나는 그림을 전혀 모르지만, 이우섭의 작품에는 다른데서 볼 수 없는 창의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사업할 당시 이웃의 인연으로 만났는데, 그는 늘 탐험가였다.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험가 같은 작가, 그림 자체도 기존의 그림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모든 삶에 있어 항상 도전하고 안전하고 익숙한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움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는 행위들이 작가의 오늘을 만든 게 아닐까.”
생동하는 추상, 진정성 어린 작품의 귀환
이우섭 작가는 액자를 쓰지 않는다. 작품의 두께만큼 벽면에서 떼어낸 작품구조를 연구해서 실제 작품의 자유로운 디스플레이를 유동성 있게 조절한다. 건축과 출신에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한 탓에 작품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운영한 까닭이다. 초기 그림들은 면과 구획이 있는 단순화 작품들이었다. 복잡한 스토리텔링을 피하고 개념화된 붓질을 통해 시끌벅적한 삶의 가운데에서도 가장 단순화된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단순함을 추구하면서도 지우고 생략하며 흔적을 얹어낸 작업들은 있는 그대로를 쭉 펼쳐놓은 듯 깊은 잔상을 남긴다.
“눈을 감으면 그림이 잘 보이는데, 눈을 뜨면 그림이 어렵다. 잠을 자는 도중에도 삶의 모든 시간 중에도 작품 생각이 난다. 24시간 감각으로 그린다. 작품 안에 빠져드는 물아일체의 시간들, 결국 인간은 태어나는 것은 죽기 위한 것이다. 반면 죽는다는 것은 영원히 살기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은 발상의 전환이 아닐까.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는 시각은 당연하지만, 봄이 온다는 발상은 새로움을 부른다.” 작가의 자기 독백과 같은 말은 80살에 이름을 바꾸고 아티스트로 살겠다는 새로운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작품을 다시 시작할 때의 다짐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잡상인들하고는 섞이지 않겠다. 아무리 외롭더라도, 상대하지 않겠다. 나 스스로도 아주 못된 것 같다. 나는 인사말 주례사처럼 쓰는 어려운 그림은 싫다. 편안하게 그린 그림이 좋다. 그림은 필링이다. 무릎을 탁 치며 ‘아 좋네!!’를 연발하게 하는 그림, 보는 것은 보이는 대로 느끼면 되는 것 아닌가.”
작가는 선생한테 배운 그림보다 자기 직관으로 그린 아이다운 그림을 좋아한다. 그리는 동기에 대한 순수, 그렇게 시작된 드립핑 추상에는 그래선지 순수한 미감이 살아 숨 쉰다. 수긍이 될 때까지 지우는 작업, 캔버스 안에 여러 그림들이 묻혀있는 까닭은 대중들이 봤을 때 분명한 의견을 제시할 때까지 그려내기 때문이다. 보편적 아름다움에 대한 요구는 분명하다. 베토벤의 운명이 설명과 가사가 없음에도 감동을 주는 것처럼, 인문학적인 필터링보다 다양한 순수한 감성과 예술언어로 획득한 아름다움이 이우섭의 회화가 주는 진정성이 아닐까 한다.
나는 자연산이다. 나는 양식이 아니다. 남의 그림과는 타협 하지 않는다.!
그림은 배워서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내 느낌을 흔적으로 남기는 것이다.
고로 내가 그림을 즐긴다. - 이우섭 작가노트 -
이 우 섭
U SUB-LEE
전 : subi 디자인 대표
개인전
2021 갤러리이즈
2017 이천 산수유 축제 사생대회 참여
2018 경기미전 입선
2018 인천미전 입선
현재 : 경기 광주 미사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