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리 큰샘
성배순
할머니는 말씀하셨지.
열여섯 나이에 시집을 왔단다.
조치원 큰말이라 부르던 새터였단다.
동네에는 야트막한 안산이 있었고
산자락 끝에 샘이 하나 있었지.
그 샘을 우리는 큰 샘이라 불렀단다.
매운 시집살이에 친정엄마가 눈에 밟혀
아침밥을 짓다 말고, 슬리퍼를 신은채로
새터길을 달음박질했단다.
문득 백관 길로 가다 주변을 보니
여기도 복숭아밭, 저기도 복숭아밭
연분홍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지.
상촌 길로 가도 복숭아꽃, 승적 골로 가도 복숭아꽃.
창고개 뜸옥골 청거리로 가도 복숭아꽃.
봉산리 내칭이로 가도 복숭아꽃 천지였단다.
아홉 거리 어디를 가도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었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구경을 했단다.
장등 고갯길에서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저 멀리 청주 친정집이 보였단다.
그 순간 왜 시부모님이 생각났는지.
큰 샘물로 만든 두부 맛이 떠올랐는지.
부리나케 큰 배미 논둑길을 달렸단다.
안산에는 작은 뱁새들이 까만 눈 동그랗게
비비배배 포릉포릉 날아다녔지.
노오란 나비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카시꽃 향기를 지나쳤단다.
으름덩굴 암꽃 수꽃은 넓죽하고 길쭉하고
애기똥풀 앙증맞게 피어 있는 길을
온 몸이 흠뻑 젖도록 뛰어왔단다.
아침상을 물린 시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큰 샘으로 가셨지.
시원한 샘물 한바가지 퍼주시며
이 물 맛을 잊을 수가 있더냐고
아카시 줄기 잎을 떼더니 어린 며느리
긴 머리 풀고 곱슬파마를 해주셨지.
신흥리 사람, 침산리 사람 식수며 빨래까지
펑펑 써도 마르지 않던 샘.
뱁새들도 황금날개깃을 적시고 가던 샘.
물이 부드러워 비누가 필요 없던 샘.
목욕하면 피부병도 씻은 듯이 낫던 샘.
두부를 만들면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던 샘.
국수를 부드럽게 호르록 마냥 먹게 하던 샘.
낮에는 남자들이 등목하고
밤에는 여자들이 목욕하던 곳.
둥둥둥 북을 치고 늴리리 피리를 불며
나라 사람 동네 사람 무사태평하라고
칠월칠석날 샘제를 지내던 곳.
청소하려고 물을 다 퍼내면 어디서 들어왔는지
붕어며 송사리가 바글바글 넘치던 곳.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서
고무장갑이 필요 없던 샘.
지금은 땅 속에 잠들어 있는 샘.
그 샘 다시 터지기를
죽기 전에 그 물 맛 볼 수 있기를
할머니는 두 손 모아 말씀하셨지.
신흥리 큰샘 물맛은 천상의 맛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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