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연
1958년경남 산청군 생비량면 출생
계명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경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전)백천문화인쇄사 20년 경영
(전)계명문화대학교 뷰티코디네이션과 겸임교수
(현)한국여성경제인협회 대구지회 부회장
(현)주식회사 뷰티코하트 대표이사
simjh0506@naver.com
‘文이 뭐라고 생각해?’ 文이 問합니다. 文,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는 어정쩡함. 글에 대한 나의 자세가 그러했습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꼬맹이가 엄마 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울고, 엄마가 부지깽이를 들고 쫒아 나오면 삽짝밖 저만치 도망가면서 울고, 엄마가 지쳐 돌아가면 또 따라가며 울고……. 등록금을 받을 때까지 딱 그런 모습입니다. 매 맞을 용기도 없고, 등록금 없이는 학교도 선생님 무서워 못가니 만만한 엄마 주변만 빙빙 돕니다.
그러기를 한 사십 년하고 있는데 이번에야 딱 맞닥뜨렸습니다. 그새 숨길 것이 없어졌나봅니다. 제법 용기도 생겼습니다. 무식하다 소리 들어도 괜찮을 용기 말입니다. 그만한 세월을 ‘글〔文〕아, 같이 놀자.’라고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언저리 빙빙 돌며 끙끙거린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지성이면 감천이라 異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막 창작에 대한 꿈이 발현되기 시작하나 봅니다. 새삼스럽게 사계에 감정이 쏠리는 것을 느낍니다. 숨겨져 있던 감정들이 표면으로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모양이랄까. 전과는 다르게 심연 깊숙이 응축되어있던 감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직은 멀고도 먼 창작의 길이지만 언젠가는 紙上으로 솟구쳐 올라갈 수 있게 찐하게 몰입해 보려고 합니다. 손잡아 끌어주며 글 쓸 수 있다는 용기와 격려를 주실 분들이 더 생길 것 같습니다. 진돗개처럼, 물었으니 이젠 놓지 않을 결심입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윤창규
47년 7월29일생
대구 영남고등학교 졸업, 합천군지방공무원 퇴직
합천 백남오 수필교실 수료
합천수필문학회 회원
ychg80@daum.net
2022년 끝머리에 내 인생에서 가슴 벅찬 기쁜 소식 하나를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친구의 권유로 수필 쓰기 공부에 4년을 참여하였으나 너무나 부족하여 스스로 주눅이 들어, 내 인생 2막을 넋두리하는 데 급급하여 왔습니다.
수필 문학 강의를 꾸준히 수강하였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수필 쓰기와는 친숙하지 못하였으며, 이제 겨우 평범한 소재는 성실한 일상에서 많이 발굴할 수 있다는 것 정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수필을 좋아하지만 쓰기 재능이 너무 부족하여 신인 등단 응모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었습니다. 이번에 지도 교수님과 문우들의 권유에 힘입어 응모하였지만,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소식이었습니다.
나의 부족한 글을 읽고 심사평을 해 주신 선생님들께서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필 쓰기 공부하는 동안 포기를 하지 않게 응원의 손길을 뻗쳐준 친구가 있었고, 이끌어주신 훌륭한 교수님이 계셨으며, 함께하는 문우들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나의 무모한 작품에 너무 외람되고 조금 심한 표현도 있어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충격이 될까 우려되지만, 상처는 도려내야 치료가 된다는 것을 가족들도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강인한 생활력으로 뒷받침해 준 내 인생의 반려자에게 난생처음으로 감사를 표하며, 사회인으로 무던히 활동하고 있는 아들딸 삼남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상의 행복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과 에세이스트의 무궁한 발전과 백남오 지도 교수님을 비롯하여 함께해준 문우 여러분의 앞날에도 늘 행복하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최향자
1969년 경북 경주출생
부산미술협회, 대한민국창작미술협회
chyangj@hanmail.net
전업작가회 회원호텔 페어를 끝내고, 연이어 펼쳐진 부산국제아트페어를 오늘로 마무리하였습니다. 거듭된 행사로 제대로 살피지 못한 집안이 어지럽게 눈에 들어옵니다. 늘어져 쉬고픈 마음 꿀떡 같지만, 부지런히 손놀려 말끔히 치우고 자리 앉았습니다.
한창 전시 중에 등단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반가움보다 부끄러움이 앞섰습니다.
저는 그림으로 얘기하는데 익숙한 사람입니다. 오랜 세월을 그러다 보니 대중 앞에서 말을 하거나 글로 표현하는 데 많이 서툽니다. 따라 자신도 없습니다.
고마운 인연으로, 그림으로 표현한 얘기들을 글로 옮겨보자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림에는 제 속을 다 쏟아내어도 모두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덜 부끄럽습니다. 다채로운 색과 표현기법으로 관람자의 해석에 따라 미화될 수도 있지요. 물론 그림에도 드러나는 적나라함이 있지만, 글은 더 한 것 같습니다.
아름답게 꾸미려 애를 쓰면 쓸수록 불편한 글이 되어가는 느낌, 그러고 보면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림도 글도 모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담는 그 무엇일 테지요.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담느냐? 또 다른 고민의 문이 열린 것 같습니다. 조금 부끄럽더라도 진솔하게 그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갖게 된 욕심이 하나 있습니다. 그림을 통해 세상에 조금이라도 이로운 일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그 생각은 아직 변함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리는 시간 동안 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성찰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글을 통해 내면이 더 단단해지고, 사고의 유연함을 갖고 싶은 욕심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천년약속’ 선생님들의 격려가 이 자리를 있게 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 힘든 시간을 견뎌왔습니다. 참으로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일교차가 큰 요즘입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나날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황 혜 란
1977년 경기도 이천 출생.
2001년 충북대학교 국제경영학과 졸업.
중소기업에서 17년간 근무 후 퇴사.
현재 주부로 블로그와 브런치 작가로 글을 짓고 있습니다.
에세이를 확장하여 장편소설 집필 중입니다.
polhwang@naver.com
태어나서 스물네 해를 책 한권 없이 몸이 커지며 잘 자랐다. 그 다음 십칠 년은 글과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일을 하고 가끔 책과 글자와 만났다. 일을 관두며 엄마와 아내로 육년을 살다가 드디어 나의 세계와 조우했다. 어떤 허울도 없이 여자 사람이 되었다.
마흔 여섯의 봄, 나는 바깥세상으로 마음을 꺼내보았다. 울퉁불퉁하고 발간 내 것을 요목조목 살폈다. 글자를 돋보기 삼은 내면으로의 여행이었다. 날것의 감정을, 미숙한 경험을, 불타오르는 가슴을 색실로 꿰어 글을 짓기로 다짐하였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꽁꽁 숨겨둔 기억의 서랍이 열렸다.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자그마한 기술로 많은 밤을 눈물로 수놓았다. 처음에는 고단하기만 했던 과거를 꺼내어 썼다. 세상에서 나만이 고독하고 서러운 줄 알았다. 글과 한 발짝 가까워지면 질수록 교만과 어리석음에 고개가 숙여졌다. 하얀 종이 위에 기록이 쌓여갔다. 다 컸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갈피를 잡지 못하던 인생이 이제야 제 길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다시 꿈꿀 수 있다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배운 것도 없는 무지렁이가 글 값의 무게를 감당할지 의문스러웠다. 계속 써내려 가다보니 지금에 다다랐다. 치기 어린 젊은 날의 내 머리칼을 용서로 빗어준다. 날 섰던 인생살이를 뭉근하게 끓여준다. 펜 끝에서 나만의 글 향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글을 쓰면 생각의 고리는 확장된다. 나에서, 가족으로, 멀리 타인으로 종국에는 지구라는 행성에까지 미칠 것이다. 나로 시작한 작가의 시선이 세계로 확장되길 소망한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로 생애 첫 신인상에 대한 소감을 갈음하고자 한다. 대추 한 알에 우주가 담겼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는 시의 첫 구절을 읊조린다. 나란 사람도 마흔 여섯 번의 인생 절기를 거저 보냈을 리 없다. 작가로서의 첫 발걸음이 필시 선물이리라. 우연인 듯 필연처럼 생각지도 못하게 글 스승을 만났다. 그 분이 아니었다면 나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