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음 글을 거꾸로 읽어 보세요” ◑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사이트에서 -
‘자살’, ‘역경’, ‘내 힘들다’라는 말을 잘 보십시오. 이 단어들이 나의 입에서 나올 때 어떨까요? 사실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말입니다. 이러한 단어들이 내 입에서 제발 나오지 않기를, 또 나의 단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을 거꾸로 읽어보세요.
(자살) → ‘살자’,
(역경) → ‘경력’
(내 힘들다) → ‘다들 힘 내’
이렇게 긍정적인 말, 힘이 되는 말이 됩니다. 단지 거꾸로 읽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내 삶이 온통 부정적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온갖 고통과 시련으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순간에 내 삶을 거꾸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새로운 나의 삶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긍정적인 모습만이 내게 주어지고, 또 고통과 시련이 없는 행복한 삶만 내게 주어지는 똑바른 삶이 좋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 똑바른 삶만이 계속된다면 오히려 우리의 영혼은 더욱더 피폐해질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지구가 23.5도 기울어지지 않고 똑바로 있다면 어떨까요? 태양은 적도 위에만 비칠 테고 따라서 생명이 살 수 있는 면적이 절반으로 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도 반대쪽은 항상 겨울이여서 쓸모없는 땅이 될 테니까요.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생명이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많은 고통과 시련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의 삶이 어렵다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꿔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주님께서 가장 좋은 시간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정적인 생각들을 몰아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또한 고통과 시련 안에서도 꿋꿋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참된 제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을까요? 혹시 ‘나는 할 수 없다’만을 외치면서 남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산다는 건 힘들어. 불공평하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삶은 예상치 못하게 만드는 아름다움과 기쁨, 사랑과 황홀의 순간들도 틀림없이 가져다주지(뮈리엘 바르베리).
- 이상 사이트에서 퍼온 글 -
대지는 싱그럽게 서나서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산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기도 하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했다.
고속도로처럼 잘 나가던 사람도 한순간 잘못이나 실수 때문에 지옥 같은 나락(奈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밑속을 들여다 보면 그런 개연성(蓋然性)은 늘 도사리고 있다.
이런 말이 있다.
“100 퍼센트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나라가 잘못했다',
'저 사람이 나빠서다' 하며 나에게는 책임이 전혀
없는 듯이 말하곤 합니다. 이래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더 큰 문제로 발전합니다.
자신이 100 퍼센트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 혹은 사촌, 조카, 손자, 친척 등
누군가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 이하레아카라 휴 렌의《호오포노포노의 지혜》중에서 -
똑같은 사안(事案) ‘물 반 컵’을 가지고,
한 사람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시원한 물이 반 컵이나 있구나!”
한 사람은 부정적으로 생각을 한다.
“애개, 시원한 물이 반 컵뿐이네!”
마치 ‘자살’이, ‘살자’처럼…….
< 소머리 국밥 먹다 >
- 文霞 鄭永仁 -
오늘 월목회는 단출했다. 세 사람뿐이 없기 때문이다. 회장은 비가 온다고 하여 갑자기 동생네 고추도 심기에 간다고 한다.
처음에는 월미산으로 정했다가, 소래습지로 가려고 했으나 결국 응재네 동네 근처 근린공원으로 낙착되었다. 내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응재의 말은 45년 전에 개업한 근사한‘소머리 국밥집’을 알아두었다는 것이다. 문득 시우가 보내준 은퇴 후에 해야 할 당부 중에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걸어라, 가고 싶은 곳을 가 보아라, 먹고 싶은 것을 먹어라’라는 말이 언뜻 떠올랐다.
송내역 나부 광장에서 규형이와 만나서 연수동에 가는 16-1번 시내버스를 탔다. 응재 얘기로는 논현동 사거리를 지나 은봉초등학교 앞에서 내리란다. 입하(立夏)가 엊그제 지나서 그런지 제법 날씨는 초여름을 향해 달리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웠다. 그래도 변두리라고 도심을 벗어나니 드문드문 전원은 녹색의 계절로 갈마듦을 짐작케 한다.
이 얘기 저 이야기하며 응재가 매일 산책하다는 근린공원을 돌았다. 나이 먹은 참나무들은 숱한 꽃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고, 가지각색 철쭉꽃은 요염할 정도로 피어 있다.
쉬엄쉬엄 걸어 응재가 알아둔 ‘호구포(虎口浦) 식당’으로 걸어갔다. 날씨가 그리도 무덥더니 빗방울이 후드득거리기 시작한다. 비를 맞으니 싱그러운 대지는 초여름을 향해 더욱 질주하는 것 같았다. 자연의 색들은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우리가 가고 있는 ‘호구포 식당’은 45년 전에 문을 연 서민 식당이라 한다. 아마 반세기를 서민들과 같이 한 식당인가 보다. 특히 소머리국밥과 가정식 상밥은 ‘굿모닝 인천’ 5월호에 자세히 소개된 할머니 집이기도 하다.
그 식당은 새로 생긴 수인선의 소래역사 근처, 지금은 헐려졌지만 옛 소래역 자리 앞에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다. 정말로 허름하게 어느 면소재지의 70년대 식당과 같은 단층집으로 지어진 밥집 같은 식당이다.
변소는 녹슨 자물쇠로 채워졌고, 간신히 열고 들어가니 완전 푸세식 재래식 변소이다. 변소라기보다 어쩌면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 뒷간이라고 하는 게 딱 알맞다. 그것도 시멘트도 아니고 판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나마 판자를 수리해서 조금 다행이긴 하다. 중학교 때, 나는 숭의동 109번지 전도관 밑에서 자취를 했다. 모든 집들의 변소를 푸세식이었다. 비가 많이 오면 하천에다 퍼내어 버리던 모습이 떠 오른다.
인분을 치우던 아저씨들이 똥통을 지고 다니며 “똥퍼, 똥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머리가 허옇고 자상한 주인 할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우리는 소머리국밥에 소주 한 병 시켰다. 김치나 깍두기가 내 입에 맞는다. 부추와 미나리를 데쳐 무친 나물이 맛깔스럽다.
주인 할머니는 기사들 때문에 새벽 4시면 어김없이 문을 연다고 한다. 일 년에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을 정도로……. 할머니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기사들 때문에 새벽에 문을 안 열 수가 없어!”
소머리국밥이 나왔다. 여느 소머리국밥보다 머릿고기가 푸짐하다. 바특하게 끓인 국물이 어렸을 적 장터에서 먹던 국밥과 비슷하다. 아마 내가 먹어본 소머리국밥 중에 제일 맛나다. 소머리국밥은 7,000원, 가정식 상반은 5,000원이다. 테이블은 대여섯 개쯤 된다.
지금은 없어진, 수인선 협궤열차(挾軌列車)가 다닐 때의 옛 소래역 자리 앞이란다. 얼마나 많은 우리네 엄마들이 다라에다 생선을 받아다 도붓장사하던 역이 아닌가? 정작 그 엄마들은 돈이 아까워 이 국밥을 먹지도 못했을 것 같다.
사방 신도시의 고층 빌딩 숲에 둘러 싸여 있다. 이 식당가도 개발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 풍경 또한 우리 주위에서 조만간에 사라지리라 !
이 식당은 보통 맛꾼들이 말하는 맛집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주인이나 가족이 카운터에 앉아 있고, 보통 낡은 간판을 그대로 쓰고, 주인이 직접 조리를 하고, 또 식당이 허름하고, 게다가 뒷간까지…….’
밖에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우중명일이라 하더니 오늘이 그날이다. 깍두기가 맛있고, 국밥 한 숟가락에 깍두기 얹어 먹는 맛이 구수하다. 연신 깍두기 더 달라고 해도 할머니는 싫은 내색 없이 갖다 주기 바쁘다.
이제 이런 풍경도 머지않아 사라지리라. 마치 수인선 협궤열차 사라지듯이…….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이런 소박한 것들이 개발에 밀려 너무나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삭막할 정도로……. 빠름과 속도감과 부귀영화 땜에.
오늘은 무가네로 응재가 계산했다. 자기 동네에 온 손님이라 대접하는 것이라고.
새로 생긴 수인선 타고 응재는 집근처 논현역에서 내렸고, 우리는 원인재역에서 갈아탔다.
누가 그랬다. 행복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은 ‘소박한 일상의 행복’이라고…….
오늘은 구수하고 바특한 하루 행복이다. 행복이 뭐 따로 있겠는가. 비가 오는 날에 구수한 소머리국밥에, 친구와 같이, 그것도 얻어먹었으니 말이다. 봄날 소래포구에서 먹은 국밥이. 그나저나 ‘호구포 식당’보다는 ‘범아가리 식당’이라고 식당 간판을 바꿔보는 것이 어떨가 하는 객쩍은 생각이 든다.
이 집이 없어지기 전에 몇 번은 더 와서 가정식 상밥도 먹어보고 수육도 먹어 보고 싶다.
봄이 엊그제 온 것 같은데, 벌써 초여름이 성큼 다가 왔다.
<목욕탕에서 만난 신종 인간형 >
- 文霞 鄭永仁 -
꼭두새벽에 목욕탕에 갔다.
한동안 안 갔더니 카운터 아가씨가
“아저씨,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왜요?”
“아니, 오시던 분이 안 오셔서요?”
그게 다 인연이라는 것인가 보다.
사우나 안에는 알지는 못하지만 많이 보던 얼굴들이 그대로 존재한다. 늘 안마탕에 엎드려 거시기를 안마하는 친구, 냉온탕을 주살나게 드나들어 얼마나 그랬으면 온몸이 새빨개진 장년, 몽유병 환자처럼 그냥 욕탕 안을 서성거리는 노인네…….
가만히 보면 목욕하는 스타일이 다 나름대로 다르고 패턴이 있다. 나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그런지 대개가 같은 자리에서 하기 십상이다. 서서 샤워하는 곳, 앉아서 때 미는 곳, 안마탕을 하는 곳 등이 거의 정해져 있다. 길들여져서 그런 것인지, 너무 그러면 빨리 늙는다고 한다.
내 옆자리에는 산수령(傘壽嶺)쯤 되 보이는 노인네가 나보다 먼저 와서 열심히 아주 꼼꼼히 닦고 있다.
한참 후에 이것저것 다 정리해 놓고 나간다. 물바가지는 잘 닦아 제 자리에, 엉덩이 바치는 낮은 의자는 닦아서 제자리에 엎어 놓고, 그가 앉아있던 자리 근처에 사방팔방 벌창이 된 비누거품까지 샤워기로 깨끗하게 닦아 놓는다. 심지어 자기 앞자리 거울까지 닦는다. 자기가 쓴 수건은 모아서 모음통에다 넣는다. 샤워기 대가리까지 바르게 제자리에 걸어 놓는다.
목욕탕에서 새로 발견한 신종인간형(新種人間形)이다.
목욕을 하다보면 각자의 심성이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다 훌러덩 벗어서 그런가 보다. 정말을 물을 물 쓰듯 하는 형, 수건을 예닐곱 장이나 쓰는 사람, 로션을 온몸에 쳐 바르는 인간형, 냉탕에서 철푸덕거리는 어른 등.
그 사람은 뒷정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이상문의 「뒷정리를 잘하는 꽃」이라는 동시가 있다.
“질 때는 뒷정리를 잘하는 꽃/ 당번 활동 끝내고/ 꼭 짜놓은 물걸레처럼/ 꽉 오므리고 떨어지는 꽃/ 하루 내내/ 분필가루 날리던 칠판/ 깨끗이 닦아내고/ 내일 쓸 분필 하나 올려놓듯/ 뒷정리를 잘하는 꽃/ 잘 여문 씨앗 하나 두고 간다.//”
꽃을 보면 뒷정리를 잘하는 꽃과 잘 못하는 꽃이 구별된다. 대개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인 목련이나 장미는 지는 모습이 아주 지저분하다. 그 반면에 수수하고 남이 잘 알아주지 않는 무궁화, 나팔꽃 등은 지는 모습이 아주 정갈하고 가지런하다.
사람이나 짐승도 그렇다. 코끼리나 거북이는 자기가 죽는 장소가 따로 있다고 한다. 사람도 그렇다. 뒷정리를 잘하고 죽은 사람, 죽은 후에 더 지저분한 사람도 있다. 요즘 한창 회자(膾炙)되는 웰다잉(well-dying)이 그런 것이 아닌지…….
공수신퇴(功遂身退)! 물러 갈 때를 멈출 때를 아는 사람이 뒷정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뒷정리를 잘하지 못해서 물러난 다음에도 두고두고 말을 듣는다. 그래서 존경 받지 못하고 칭찬 받지 못하는 대통령이 되고 있다.
제19회 박근혜 대통령은 깔끔하게 뒷정리를 잘해서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그가 밟고 지나간 눈발자국을 뒤따라가는 사람이 따라 갈 수 있는 족적(足跡)을 남기기 바란다.
무궁화꽃은 다 가지런히 오므리고 떨어진다. 목련꽃은 모든 꽃잎파리를 흩날리고 떨어진다. 이리 밟히고 저리 밟힌 목련꽃 이파리는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마치 인간의 영욕(榮辱)을 보는 것 같다.
목욕탕에서 뒷정리를 잘하고 떠난 노인네!
아마 그의 죽음도 정갈하고 가지런할 것 같다. 동시처럼 잘 여문 씨앗 하나 두고 가는 것 같다.
아! 나도 장례사전의향서나 작성해야 하겠다.
◐ 개구리의 우화(寓話) ◑
개구리의 우화(寓話)가 생각난다.
개구리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개구리 아내는 알을 잔뜩 낳고는 떠나가 버렸다.
남편 개구리는 알들을 입에 가득 넣고 그 알들을 혼자서 키우기 시작했다.
알들을 입에 넣은 개구리는 먹을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없었다.
노래도 안 하고 먹지도 안하는 것을 본 친구 개구리들은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하나씩 떠나기 시작했다.
남편 개구리는 어느새 외톨이가 되었다. 남편 개구리는 알들이 부화를 하게 되면 이 외로움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귀여운 새끼들 하고 오순도순 살면서 아빠로서 대장 노릇도 할 수 있고 외롭지도 않고 더욱 재미있게 살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개구리는 그때를 생각하면서 외로움과 불편함을 참고 견디었다.
마침내 알들이 부화되어 올챙이가 되는 날, 남편 개구리는 즐겁게 입을 벌려 올챙이들을 쏟아 내었다.
그리고 그들이 곁에 머물며 그 동안의 외로움을 보상해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올챙이들은 개구리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소리치며 모두들 바깥세상을 향해 달아나고야 말았다.
아빠 개구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붙잡을 수도 없었다.
남편 개구리는 다시 외롭게 홀로 남게 되었다.
늙어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주위 사람들을 따뜻하게 사랑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면서 낙천적으로 살수 있다면……. - (이상 퍼온 글) -
노인의 외로움이 조금은 덜 할런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이 우리 마음대로 산 삶이 얼마나 되는가? 우리에겐 삶의 선택권이 별로 없었다. 진학할 때는 가난 때문에, 결혼해서는 부모 봉양, 자식 키우기, 자식 결혼 시켜서도 손주 보기, 자식 A/S에 허덕인다. 지금도 혹시 그렇지 않은가? 무엇에 얽매어 내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등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제 정신 제 몸으로 살 날이 말이다.
어제 어느 모임에서 부부동반으로 화성시에 있는 온천을 다녀왔다. 그 옆, 우리나라 꽃식물원을 보고, 송산(사강)에 가서 회로 점심을 먹었다. 제2서해안고속도로를 거쳐 대부도 ‘튤립축제’를 구경했다. 구경거리는 없고 고생만 좀 했다.
나는 이 얘기를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한달에 한번쯤 부부가 훌훌 털고 나가서 그리 먼곳이 아니더라도, 부부가 짬뽕 한 그릇이이라도 먹어 보길 바란다. 가까운 월미산이라도…….
아주자주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다. 우리 인생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개구리 우화’처럼 자식들을 위한다고 그들은 당연(當然)하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이모작 인생(二毛作人生)을 설계하고 실행하라!
내 나이가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코딱지만하게 작은 일이라도…….
내가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다.
자식이 결코 내 인생을 살아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말초세대(末初世代)에 산다. ‘말초세대’란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며, 자식에게 효도 못 받는 첫 세대라는 것이
◐ 남편을 파는 백화점 ◑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사이트에서 -
남편감을 파는 백화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이 백화점에 가면 마음대로 남편감을 골라 살 수 있었다. 5층으로 되어 있는 백화점에 는 층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고급스러운 상품을 진열해 놓았다. 단 규정이 하나 있었는데, 일단 어떤 층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남편을 선택해야했다. 쇼핑을 포기하고 백화점을 완전히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이미 거쳐 왔던 층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두 여자가 꿈에 그리던 남편을 사려고 백화점을 찾았다. 백화점 1층에 당도하니 안내문이 하나 걸려 있었다.
"이곳에는 직업이 있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한 여자가 말했다.
"괜찮군, 직업도 없는데다 아이들까지 좋아하지않는 남자라면 곤란하지, 다음 층에서는 어떤 남자를 팔까?'
2층에도 안내문이 있었다.
"이곳에는 돈을 잘 벌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아주 잘 생긴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흠, 아주 좋아, 그래도 위층에 어떤 남자들이 있는지 확인은 해봐야겠지?'
두 여자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 한층을 더 올라갔다. 3층에 걸린 안내문.
"이곳에는 돈을 잘 벌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아주 잘 생겼고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우와!" 여자들이 외쳤다.
"정말 여기서 내리고 싶어지는 걸! 하지만 이렇게 되면 위층에는 어떤 남자들이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잖아!"
두 여자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4층으로 통하는 문 앞에는 다음 같이 적혀 있었다.
"이곳에는 돈을 잘 벌며,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주 잘 생겼고, 집안일을 잘 도와줄 뿐 아니라 아주 로맨틱한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맙소사!" 두 여자는 경악했다.
"4층이 이 정도라면 위층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들 은 어떨지 상상조차 안돼!"
두 여자는 서둘러서 5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5층의 안내문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5층은 비어 있습니다. 이곳은 여자들이란 결코 만족이란 것을 모르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로만 사용됩니다. 출구는 왼편에 있으니, 계단을 따라 쏜살같이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 남편을 파는 백화점(문화인류학자가 풀어쓴 비범하고 유쾌한 위트 상식사전에서)-
◐ 주저리주저리 ◑
동가홍상(同價紅裳), 값은 값이면 다홍치마!
말 타면 종 부리고 싶고, 복권 일등 당첨 되면 딴짓하고 싶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욕망은 끝없이 굴러가고, 그 끝의 덫에 걸리기가 쉽다.
욕망의 제어장치(制御裝置)가 제대로 작동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제, 진달래 만개한 산등성이 갔다가 사람 주르르 모인다는 쭈꾸미집에 점심 먹으러 갔다. 80%가 여자들이다. 남자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일터에, 아니면 집안 구석에….
나도 백수(白首)지만, 어딘가 남자들의 위상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든다. 이 산 저 산에서는 진달래꽃이 두견이(杜鵑)이 피 토하듯 피고 있는데.
그 옆에 김소월의 시비((詩碑)가 서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이젠 나도 역겨운 존재로 전락(轉落)해 가는 것은 아닌지…. 특히 퇴직 후 남자들의 존재가 말이다.
이젠, 20:80이 아니라, 30:70 정도 제자리 찾기 운동을 벌여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 “내 스타일이 없어요!” > - 文霞 鄭永仁 -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외손녀에게 물었다. “제니야, 남자 친구 사귀었니?” (외손녀, 자기가 지은 영어 이름이 ‘제니(Janine)'다. 참고적으로 그 녀석이 지어준 외할애비 영어 이름은 ’제임스(James)다, 다행히 영어 이름이 ‘J' 자 돌림이라…….) “남자 친구가 없어요!” “왜 없어?” “제 스타일(style)이 없어요.”
아마 자기 맘에 맞는 이상형인 남자 스타일이 없단다. ‘원, 흥부가 기가 막혀!’ “그럼, ‘강남 스타일’ 싸이는 어떠냐?” “싫어요, 배가 나오고 눈이 작아요.” 그 소리를 들은 옆에 있던 제 애비는 눈을 크게 꿈쩍거린다. “너는 새우젓 눈을 싫어하는구나?” “할아버지 ‘새우젓눈’이 뭐예요?” “새우눈처럼 아주 작은 눈을 빗대어 하는 말이란다.” “아아, 새우깡 같은 눈이로구나!”
“그럼, 사촌오빠 지누는?” “그 오빠는 뚱뚱하고 배가 나와서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러면 네 이상형은 누구냐?” “광수 오빠에요. 나 크면 광수 오빠하고 결혼할 거예요.” (참고적으로 ‘광수 오빠’는 초등 3학년 고종사촌 오빠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에게 곰살궂게 해주는 상대가 최고인가 보다. 옆에서 미소를 짓던 사위가 “제니야, 너 나하고 결혼한다고 했잖아?” “광수 오빠나 아빠하고 할 거예요?” “제니야, 네 아빠는 너의 스타일이냐?” “아빠는 눈이 크고, 비싼 화장품을 엄마에게 사다주잖아요?” 아마 외국계 유명 화장품 브랜드와 관계있는 회사에 다니는 아빠가 맘에 들었나 보다. “제니야, 그럼 외할아버지는 네 스타일이냐?” “전현대요, 배불뚝이고 머리가 허옇잖아요.” 옆에서 듣던 외할머니인 집사람이 한수 거둔다. “제니야, 그건 아주 탁월한 선택이다.” 이거 아이이거나 어른이거나 간에 나이가 들면 예외인간으로 전락하니…….
그전에는 배나온 거지 없고, 배가 좀 나와야 부자형(富者形 ) 스타일이었는데……. 이젠 배가 나오면 어디에든지 쓸모가 없는 사람으로 분류가 된다. 몸짱의 젊은이 사회는 물론 군대사회, 생명보험 등에도 허리둘레로 보험료를 산정하기도 한다. 또 허리둘레는 복부지방의 원흉이고, 생명과 반비례한다고 한다. 엊그제 타이어회사 마쉐린은 뚱보 직원에게 내년부터 건강보험료를 허리둘레가 기준치 이상이면(남자 40인치, 여자 35인치) 1,000달러 더 내야한다고 한다. 또 남태평양 사모아항공은 몸무게 근수에 따라 항공료를 산정한다고 한다. 독일에선 배가 나온 주로 가난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독일에서 제일 싼 식료품이 살을 찌게 하는 고기와 감자라고 한다. 세계적인 명장 ‘이순신 장군’의 요대(腰帶)를 보면 어마어마하다. 현재 군인으론 아마 불명예 제대감이다. 그런데 늘어나는 것은 몸무게뿐이니……. 하기야, 중국 속담에 ‘한 입 먹어서 뚱보가 될 수가 없다.(일구흘불성개반자:一口吃不成個胖子)’라 했으니 그저 먹어대니 그렇기도 하다. 과연 지금은 스타일 전문화 시대다. 학생 교복이나 제복도 다 스타일화 되 가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신조어인 ‘폼생폼사’가 생길 정도다. 또 살아도 폼있게 살아야 하고, 죽어도 폼있게 죽어야 한다. 그게 웰빙(well-being)이고, 웰다잉(dying)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은 똥똥하가나 뚱뚱한 것은 젬병이니 배가 나올 리가 거의 없다. 헬스장이 불타고 부얼부얼해야 할 허벅지가 젓가락 같으니 어떤 때는 위태해 보인다. 며느릿감도 옛날에는 너구리처럼 오동통하고 얼굴이 달덩이 같아야 맏며느릿감인데, 지금은 그랬다간 결혼정보회사의 최하위 등급으로 분류될 것이다. 뚱보가 오랫동안 부유와 성취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인격·능력·신분 등을 가르는 선택 기준이 되었으니……. 하기야, 이 늙은 나도 늙은 할망구의 스타일에 못 미치고 있으니 말해서 뭣하랴!
그나저나 늙어가면서 스타일 구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어찌 보면 스타일이란 자기자신의 진정성보다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면이 더 많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전 세계를 열광 속으로 불어 넣어 말춤을 추게 한다. 여기에 다문화 식구 리틀 싸이도 세계에 도전한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쓴 프랑수아 를로르는 행복의 23개 조건 중에 두 번째가 ‘자기 스타일로 사는 것’이다.
“여보, 나도 싸이의 말춤이나 배워볼까?” 집사람은 ‘이 양반이 아침부터 못 먹을 걸 먹었나?’ 하는 못마땅한 눈치가 역력하다. “그냥 이제껏 살아온 스타일대로 사슈!”
제니야, 할애비 세대는 제 스타일대로 살기가 참 어려웠다. 그냥 세파에 떠밀려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인 아니다. 제니는 네 스타일대로 살려무나. 그러나 너도 자기 스타일대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되리라. |
![]() |
♨ 신종 7계급 ♨
- 2013-04-06(토) 동아일보에서 -
▷공산주의 계급투쟁론에 사망 선고가 내려진 이후 상류층 중산층 저소득층이라는 사회적 계급 분류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경제위기, 사회의 분화, 정보통신기술의 부상과 함께 전통적 의미의 중산층 카테고리에 담을 수 없는 새로운 사회계급이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심층 면접결과를 토대로 현대 영국 사회에 맞는 7계급 모델을 제시해 관심을 끈다.
▷신종 7계급은 ① 엘리트, ② 안정된 중산계급, ③ 기술적 중산계급, ④ 부유한 신노동자계급, ⑤ 전통적 노동자계급, ⑥ 신흥서비스 노동자계급, ⑦ 그리고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다.
이 모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소득 재산 등 ▶ 경제적 자본과 ▶ 사회적 자본(직업) 외에 ▶ 문화적 자본을 도입한 것이다.
예컨대 컴퓨터게임을 하느냐 아니면 스포츠를 하느냐, 클래식을 듣느냐 아니면 재즈를 듣느냐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취미가 싸구려이면 계급이 떨어진다.
▷지난해 한국과 프랑스의 상이한 중산층 기준이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녔다.
▶ 한국의 중산층 기준은 대출 없는 30평 이상의 아파트, 월급 500만 원 이상, 2000cc 이상 승용차, 1년에 한 번 해외여행, 현금 1억 원 등 ‘돈’과 관련된 것인 반면, ▶ 프랑스 기준은 외국어 1개 이상 구사, 악기 1개 이상 다루기, 남들과 다른 특별한 요리법, 불의에 일어서고 약자를 돕기 등 ‘문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 BBC 모델에 따르면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바꾸고 취향이 고급스러워지면 신분이 올라간다. 자신의 계급이 궁금하면 BBC홈페이지(www.bbc.co.uk)에서 간단한 설문에 응해보길 바란다. 다만 심각하지 않게. 심심풀이로. - 이상 신문에서 발췌 -
♨ 주저리주저리 ♨
나는 어느 계급에 속할까? ▶ 영국식 계급으론? ☞ ⑥, ⑦ 계급쯤 되나?
▶ 프랑스식 계급으론? ☞ 외국어 못한다, 악기도 못 다룬다, 특별한 요리법 모른다, 불의에 있어 약자 돕지 않는다. ☞ 이 조건으로도 중산층이 안 된다. 거기다가 뽕짝을 좋아한다.
▶ 한국식 계급으론? ☞ 대출 있다, 30평 이상이다, 환진갑 다 지난 2000cc짜리 자동차 있다, 근자에 해외여행 갔다, 현금 1억원 택도 없다. ☞ 그러니 중산층이 못 된다.-
| ||
|
< 암호 ‘ㄱㅁㅇㅇ’ >
- 文霞 鄭永仁 -
세계에서 가장 짧은 편지는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의 편지라 한다.
빅토로 위고는 『레미제라블』을 다 써서 출판사에 보냈다. 그런데 자기가 쓴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몹시 궁금했나보다. 위고는 출판사에 편지를 다음과 같은 ‘’ 한 개의 문장부호를 달랑 보냈다. 그랬더니 출판사에서 답장이 왔다. 역시 한 개의 문장부호 ‘’였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해석하면,
빅토르 위고 : → “내 책이 얼마나 팔리느냐”
출판사 : →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
요 근자에 한국에서도 그런 편지를 쓴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엊그제 물러난 전 대법관이며 전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인 김능환 씨다.
남편이 무사히 퇴임하자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부인이 남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동안 수고했어요.”
남편 김능환 전 대법관은 쑥스러워서 다음과 같은 암호를 문제메시지로 보냈다.
“ㄱㅁㅇㅇ”
부인은 그 암호 문자메시지(“ㄱㅁㅇㅇ”)를 해석하다 못해 “가만있어(ㄱㅁㅇㅇ)”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면 이 암호(“ㄱㅁㅇㅇ”)의 정답은 무엇일까? 물론 정답의 키워드는 김능환 씨가 갖고 있다.
정답은
“고마워요”(“ㄱㅁㅇㅇ”)
우리는 뭐라고 해석을 할까?
지금은 그 전직 대법관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내가 운영하는 코딱지만한 편의점에 출근하여 코흘리개들에게 막대사탕 등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바라다보는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 ○○○○!, □ 하고 □□!
참, ○○○○! □□들이 □□거리겠다.
전직 대법관쯤 되면 전관예우다 하여 대형로펌에서 거액을 들여 스카우트하려고 줄을 섰을 것은 자명한 이치다. 풍문(風聞)에 의하면 전관예우 기간 중에 변호사로 개업하면 일생을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마련하고도 남는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지는 사실만 보더라도 짐작하고도 거슬러 받는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편의점으로 출근하는 전 대법관을 비정상적으로 보는 사회라 할 수 있다. 돈과 권력의 가치가 어떤 가차보다 최우선하는 지본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보통 사람으로 환원된 대법관을 정상적으로 볼 리가 없다.
인사청문회 면면을 들여다보면 법을 우리 사회에서는 부(富)나 권력을 축적하려면 법을 지키거나 정상적으로는 쌓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들 관행(慣行)이라는 빌미로 위장전입도 하고, 부동산도 사고, 세금도 안내기도 하고……. 그리고서 하는 말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냐?, 관행이다.”
우리 사회는 이름이 중요하게 아니라, 그 앞에 붙는 수식어 대법관, 선거관리위원장, 벤처신화, CEO 출신, 장관, 총장, 별 3개, 교장, 박사, 판검사, 교수, 의사 등’더 중요하다.
나는 가끔 시험 감독을 나간다. 사전 교육 시 교육담당자는 우리이게 신신당부한다. 제발 어깨에 힘 빼고, 계급장을 떼고 임하라고 한다. 가끔 시험생들에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아직도 내가 과거에 누구였는데, 무엇을 했는데, 어떤 자리에 있었는데……. 담당자는 제발 모든 계급장은 떼고 어깨에 힘 빼라고 한다.
모든 인생의 좌표는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는 점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수직적인 구조와 체면, 계급장, 나이 등에 연연하고 있다.
우리는 대법관 출신이 편의점 직원이 되면 안 되고, 교장이 교사가 되면 못 받아드리는 사회구조다. 큰 차를 타다가 작은 차를 몰기는 쉽지 않고, 큰 평수 아파트에서 작은 평수 아파트로 내려가는 것을 비정상적으로 보는 사회다. 그러니 올라가서 내려오기가 쉽지 않다.
모근 인간의 평가 잣대는 돈과 권력이 우선적으로 환산되는 사회에서는,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인간의 가치는 소유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있다.”라는 말이 참으로 공허하게 드린다.
엊그제도 판사가 초등출신이 대학출신과 결혼했다고 해서 마약을 하고 결혼했냐고 비아냥거렸다. 결국 판사의 눈에는 그 상황을 비정상적으로 본 모양이다. 그 정도 생각하는 판사는 아마 결혼 시 열쇠 3가지 이상을 요구했을 지도 모른다.
문제인 대부분의 법조인조차 전 대법관이 법조인의 품격, 밥그릇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현 정권이 그리도 추구하고 강조하는 ‘국민행복’은 무엇인가? 아마 나중에 국민으부터 “ㄱㅁㅇㅇ”와 같은 암호 메시지를 받을 때 판가름 날 것이다.
조디 피코(Jodi Picoult)가 그의 소설 ‘19분’에서 말한 ‘행복의 수학공식’이라는 것이 있다. 행복의 공식은 ‘현실÷기대’이다. 분수로 말하면 현실은 분자이고, 기대는 분모이다. 그러니 행복해지려면 ‘현실〉기대’이든지, ‘기대〈현실’이든지 하여야 할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우리도 기대하고서 현 정권을 선택했다면 기대에 부응해야 ‘국민행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너무 기대말자. 그간 겪어온 정권들을 보면 그 밥에 그 나물인 경우가 허다했으니…….
그리도 강조하는 ‘경제 민주화’보다도 우선 ‘사람 민주화’가 우선이 아닐까?
나도 아내에게 ‘ㄱㅁㅇㅇ’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아마 아내는
“이 양반, 벌써 망녕 들었나?”
<흥정> - 文霞 鄭永仁 -
재래시장에 가면 으레 흥정을 하게 된다. 물론 가격표가 붙어 있어도 흥정을 한다. 요즈음 흔히 말하는 관행이라고는 할까? 정조(情調)된 인지상정이다. 이는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는 서민 심리도 기인하지만 일종의 거래 재미다. 당기고 끄는 줄다리기이다. 장사꾼은 이문이 없다느니 본전치기라느니 손해보고 준다느니 라고 눙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세상 천지에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손해본다고 하면 세상 3대 거짓말을 하게 된다. 노처녀가 시집 안 가겠다, 노인이 죽고 싶다, 그리고 장사꾼이 손해보고 판다는 것이기 때문에.
밀고 당기는 속에서 에누리도 하고 덤도 받고. 가게주인은 인심 쓰는 척 콩나물 한 줌 더 얹거나 제일 비실한 과일 한 개 더 넣어준다. 그러면 사는 사람은 좀 싸게 산 것 같고, 상인은 팔아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그러니 우리 속담에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 그런데 사는 사람이 너무 흥정거리를 야박하게 했다간 까딱 잘못하면 바가지를 쓰거나 덤터기를 쓰기 십상이다. 사실 오래 장사한 상인들은 그 바닥에서 도가 튼 사람들이다. 즉, 전문가이다. 그들은 아마추어인 우리들 마음을 꿰뚫고 있고 우리 머리 위에서 헤아린다. 그들은 그 방면에 프로페셔널이고 달인이기 때문이다.
흥정에 제 3자가 끼어드는 것이 거간꾼(居間)이다. 즉 흥정을 붙이고 싸움은 말리고 이리왈 저리왈 해서 흥정을 성사 시키는 조정꾼이다. 이게 국가적인 흥정의 거간꾼을 로비스트라 하고, 혼담의 조정자는 중매쟁이다. 국가와 국가, 총각과 처녀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조정하는 거간꾼이 있게 미련이다. 그래서 혼인이 잘 성사되면 술이 석 잔이요, 잘 되지 못하면 뺨이 석 대라는 말이 있다. 혼인은 인륜지대사이기 때문이다.
대개 아마추어 거간꾼은 흥정이 만족스럽게 되면 최소한도 탁배기 몇 잔은 얻어먹게 된다. 그런 것을 예전에 우리는 구전(口錢), 구문(口文)이라 했다. 우리 사회 역시 대표적인 거간꾼으로 구전을 챙기는 사람들이 복덕방이요, 오늘날에는 부동산중개업자이다. 이들은 양쪽 당사자에게서 구문을 먹는다. 요즘 혼인 거간꾼은 기업화돼서 현대판 뚜쟁이는 결혼상담소이다. 이즈음 잘나가는 뚜쟁이들의 구전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이렇게 흥정을 성사시켜 탁배기 몇 잔, 옷 한 벌 얻어 입던 거간꾼 날로 번창하여 이제는 어마어마한 구전을 챙기는 거간꾼 , 로비스트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챙기는 대구전(大口錢)이 리베이트(revate)이다. 특히 정치판의 대구전과 무기거래의 리베이트는 항상 상상한 초월한 베일에 가려져 있게 마련이다. 은밀한 거래다. 문제는 정치판의 이상한 논리다. 억대의 구문을 받아도 대가성이 없으면 괜찮다는 논리이고 특별사면을 해준다. 다 그놈이 그놈이다.
이젠 이런 소박한 구전문화가 날로 번창하고 진화되어 우리 생활 깊숙이, 국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의사와 제약업자 사이에, 교수와 입시생간에, 국회의원과 후보자 사이에, 공무원과 업자 사이에도 요지부동의 구전 관행문화가 암조직처럼 번져가고 있다.
그저 구전을 못 챙기는 놈이 병신처럼 되 가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는 눈먼 돈이 너무나 많은가 보다. 심지어는 도서벽지 가난한 어린이에게 줄 학용품값을 꿀꺽한 소위 국립대 교수도 있다. 또 노인네들이 한두푼 모아 노후에 대비하여 저축한 돈을 마구 떼먹은 저축은행과 거기서 대구전을 챙긴 대형님께서도 계시다. 다 벼룩의 간을 내먹고, 어디에 붙은 밥풀까지 떼어 먹을 위대한(胃大)한 분들이다. 그들은 그저 돈이라면 먹을 돈, 먹지 말아야 할 돈을 구분 안 한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쓴다는 말은 선사시대 속담이 된다.
하기야 돈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 돌고 돌아서 인간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마법의 존재다. 다만 그렇게 돌아가는 제도의 운영이 문제이다. 어디 눈먼 돈이니 굴러다니지 않나 눈여겨보아야겠다. 하여간에 ‘돈’이란 돌고 돌아서 돈이라니깐. |
|
<인생이라는 극장에서>
- 文霞 鄭永仁 -
개장 시간이 정해진 공원이나 시설에서 마감 시간이 얼추 가까우면 다음과 같은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십상이다.
“여러분! 퇴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퇴장 준비와 함께
앉았던 장소를 정리해주시길 바랍니다.”
인생이라는 극장·공원과도 그렇다.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퇴장 시간이 있게 마련이다. 아무도 그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인생이 단풍 드는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은 할 수 있다.
그 인생극장에서 주연·조연으로, 혹은 엑스트라로 연극을 했던 간에다 퇴장을 해야 한다. 물론 자기 인생 극에선 모두가 주연일 것이다.
그리고 퇴장 준비와 앉았던 자리도 정리해야 한다. 가져갈 것이 무엇인지, 두고 갈 것이 무엇인지…….
하기야, 입장할 때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으니 퇴장할 때도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 혹자는 퇴장할 때 가져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어림없는 집착이다.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우리는 앉았던 자리를 정리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흔적이 남게 마련이다. 호사유피(虎死留皮)라 하듯……. 뒷정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이니깐.
막상 퇴장 준비를 소홀하기 쉽다.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생의 집착은 죽어서는 일생 동안 따라 다니던 그림자조차도 가져갈 수가 없다.
친구한테 전화했다.
“야, 너! 어느 상조회에 들었냐?”
“나, 상조회애 가입 안했어. 나는 시신을 기증했기 때문에 거기서 화장을 해준대!”
‘아, 이 친구 퇴장하기 위한 뒷정리를 다 했구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나보다 인생극장의 주연급이다.’
갈맷빛 인생도 노을이 들고, 단풍 들고, 낙엽지며 정리하게 된다.
뒷정리를 잘하는 꽃과 잘 못하는 꽃이 있다. 무궁화나 나팔꽃은 별볼일 없는 꽃 같지만 꼬옥 오므리고 정갈하게 떨어진다. 그런 반면에 꽃 중의 꽃이라는 장미나 목련은 생전에 화려하지만 뒷정리가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우물쭈물하다가 그럴 줄 알았다.’ 라는 묘비명처럼 야구의 삼진아웃처럼 어느 순간에 우리는 퇴장을 해야 한다.
막이 내리면 관중은 그 배웅의 연기에 따라서 여운을 가질 것이다.
가랑잎이 표영(飄零)하듯 어느 산골짝의 이름 모를 나무의 거름이나 됐으면 좋겠다. 질척거리며 이리 밟히고 저리 밟히는 젖은 낙엽이 되지 말고…….
문학평론가 故 김현은 그의 저서 「행복한 책읽기」에서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번은 육체적으로, 다른 한번은 타인의 기억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으로 죽는다.” 라고 했다.
故 서강대 장영희 교수는
“잊혀지지 않은 자는 죽은 자가 아니다.” 라고 했고.
아프리카 스와힐리족은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경계를 '存在에 대한 記憶'에서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스와힐리족에게는 두 가지의 시간 개념이 있다. 하나는 '사사(sasa)'이고, 다른 하나는 '자마니(zamani)'이다.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은 '사사'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그 망자(亡者)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는 죽었다기보다는 '사사'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그 말자(亡者)를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세상을 뜨게 되면, 더 이상 아무도 그를 기억 못하게 되면 비로소 亡者는 영원한 침묵의 시간인 '자마니'의 망자(忘者)의 시간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기억하는 한,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한 그 사람의 영혼이 우리 곁에서 살아있는 셈이다. 亡者가 忘者가 될 때까지…….
퇴장의 시간이 다가온다.
세월은 흘러 여기까지 왔고,
인생은 흘러 황혼에 기운다.
< 삶의 향기 >
- 文霞 鄭永仁 -
연말연시가 되면 동쪽으로, 동해안으로 해돋이를 보려 부산하다.
아마 떠오르는 새날의 해를 보면 마음을 다고잡으려 하나보다.
사실 어제의 해가 오늘의 해이련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방법이 좀 다르다.
동양인은 주로 해돋이를 보러 동쪽으로 몰리고,
서양인은 해넘이를 보러 서쪽으로 간다고 한다.
시작과 마무리의 차이다.
어찌 보면 살아가면서 시작보다 마무리가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사람에 따라 餘光과 餘香, 餘韻을 남기게 때문이 아닌가 한다.
初發心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을 마무리하기까지 견지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해돋이와 해넘이는 時間的·空間的 의미를 같이 內包한다.
그저 未盡이나 餘燼을 남기지 말고 餘生을 노을처럼 불태울 수 있는 餘力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해돋이에 결코 뒤지지 않게 아름다운 노을에 餘韻을 남기고 싶다.
삶은 알파(A)DY, 오메가(Ω)가다.
해돋이의 돋을볕도 중요하지만,
해넘이의 노을빛은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누구 말마따나
‘아름답고 곱게 남겨진 뒤끝’
남기고 싶다.
Jung youn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