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신선대
2014/09/27
백운, 벽암, 벽초, 학산
도봉산역-능원사-도봉사-금강암-구봉사-성도원-마당바위-자운봉 옆을 지나 신선대-포대능선 정상-우이암-원통사 방학능선-방학동
아침 첫 버스(06:00)로 동서울 터미널로 달린다. 도봉산을 가기 위해 부지런을 떨어 서울 도착이 9시15분 터미널 2층 기사 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강변 역에서 건대입구 가는 전철을 탄다. 건대 입구에서 도봉산역까지 7호선 지하철을 타니 점촌에서 산행 들머리까지 세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참 편한 세상이 아닌가. 도봉산역에서 산 입구까지는 산행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파는 점포들이 빼곡하다. 우리는 능원사앞 벤치에서 산행에 필요한 걸 모두 재 점검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능원사 - 도봉사
도봉산의 정상인 자운봉과 주봉인 신선대를 뒷배경으로 들어선 절은 호화롭기 그지 없다. 절의 규모도 하루가 다르다고 하니 그만큼 우리는 불완전으로 인한 삶을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다는 게 아닌가. 능원사 앞에서 스틱을 꺼내고 옷을 한 겹 벗고 도봉사를 지나 산으로 들어선다. 도봉산 탐방 지원 센터에서 건네받은 '도봉산 지구 탐방 안내도'에는 거미줄처럼 얽힌 탐방로가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그 많은 탐방로 중 마당바위 신선대 코스로 간다.
금강암 - 구봉사
서울은 서울이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산을 오르고 내린다. 계곡을 따라 천축사 방향으로 가려던 게 금강암에서 곧바로 구봉사 쪽으로 계곡을 따라 간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신선대로 향하는 게 일반적이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계곡에는 벌써 사람들이 도심의 열기에서 탈출한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무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금강암을 지나 계곡을 따라 가니 계곡의 물이 있는둥 마는둥하여 화강암 바위로 이루어진 도봉산의 작은 물줄기가 아쉬움을 더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곡에 빠진다. 구봉사 옆을 돌아가니 담너머 대형 부처님의 미소가 담을 넘어 우리에게 쏟아진다. 생각이 없어도 불교가 가지는 자비로움을 배우라는 게 아닐까. 계곡을 따라 지어진 여러 암자들 탓인지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가는 인파 탓인지 계곡은 목이 마른데도 바위에는 지저분한 이끼투성이다. 구봉사계곡의 다리를 건너 등산로를 벗어나지만 다시 정규 등산로에 합류한다.
구봉사계곡
구봉사 앞에서
구봉사를 지나 마당 바위 가기전 전망대 및 능선의 바위
숲사이로 내려다뵈는 천축사와 마당바위
당초에 거치기로 한 천축사가 발 아래 숲사이로 어렴풋이 보이고 우린 마당바위에 올라선다. 마당 바위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비스듬한 경사가 있는 그리 넓지 않은 암반에 서니 멀리 우이암과 빌딩들이 눈 앞에 도열한다. 산아래 아파트 숲들은 마치 중국의 석림같이 말 없는 인공물인데 언제 어떤 모양으로 변해갈 것인지 2,30년 후의 도시를 산에서 상상해 본다.
자운봉 아래 신선대 가는 길
도봉산을 오르는 길은 바위 산이라도 거의 평탄한 길이지만, 마당바위를 지나고서는 다소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하여 자운봉 옆을 돌아 신선대에 이르는 길은 할딱고개라 할 만큼의 급한 경사로이기에 땀을 흠씬 빼는 곳이다. 자운봉 바로 밑의 쉼터에서 가쁜 몸을 쉬면서 백운이 가져온 떡으로 참을 먹는다. 여기서 신선대까지는 철계단과 철봉을 의지하는 길이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분리해놓은 길이기에 정체가 덜 하지만 몇년 전에는 바위 옆 쇠밧줄에만 의지하여 밀려올라가고 밀려내려오는 것으로 시간이 꽤 많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신선대에서
도봉의 정상인 자운봉은 오를 수 없고, 옆의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이 복잡하나 오름과 내림의 길을 일방 통행화하여 쉽게 신선대에 올라선다. 신선대로 꾸역꾸역 몰려오는 산객들 때문에 표토존은 방 빼라는 소리가 이어진다. 우리도 금방 흔적을 새기고 돌아선다. 정상에서 사방을 돌아볼 여유나 공간이 제한적이기에 금방 반환점을 터치하여 내림길로 선다.
자운봉
자운봉과 그 아래 봉우리
포대능선
포대능선으로
도봉산의 꽃이라 할 만큼 다양한 암봉이 이어지는 포대능선에 올라선다. 포대능선의 암릉을 오르내리면서 하산을 하고 싶으나 공휴일은 능선으로 오름길만 암릉이고, 우회로만 내림길의 일방통행이란다. 어쩌랴, 사전 도봉산에 대한 예비지식의 부족이 원인인 걸. 우리는 포대의 맨 마지막 봉우리 위에서 능선으로 올라오는 인파들을 보면서 우이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되돌아 본 자운봉과 신선대
↓포대능선 끝머리에 ↘ 포대능선의 아쉬움을 뒤로
우이암 가다가 점심 식사
'우리 걸음이 이제는 할애비 걸음인가부다.' '맞지. 이사람. 암만 빨리 걸어도 젊은 사람 같을 중 아남.' 여섯시간 예상거리면 두시간 늘여 잡아 여덟시간 잡아도 산에 올 수 있다는 게 행복인 게다. 신선대를 돌아 우이암 쪽으로 가다가 적당한 자리에 점심 자릴 편다. 땀을 흘리고 꽤 먼 산길을 돌아왔어도 시장기를 잊은 건, 오면서 떡이랑 배, 초코렛까지 쉴 때마다 조금씩 보충해온 탓이리라. 거의 오후 2시 가까운 시각에 오찬이니 오후 새참을 먹는 셈이다. 점심자리가 통행로 길에서 멀지 않아 오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늦은 점심꾼에게 시선을 보낸다. '점심이 너무 늦었네요.' 하는 듯. 점심을 먹고 아기자기한 암릉을 내려가면서 오봉 능선과 지나온 능선이 배경이 되는 풍경을 자꾸 돌아본다. 포대능선에 들어서지 못해도 도봉산은 어느 능선이나 나름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충분히 볼거리가 제공된다.
화강암이 드러나고 푸른 소나무가 바위에 박힌 산수도는 서울을 둘러싼 산들의 매력 중 하나다. 조선의 도읍지로 서울을 선택했다는 무학대사의 혜안이 서울의 산에 오를 때마다 돋보인다. 하늘을 나는 새의 눈이 아니면 전체를 조망할 수 없었을 당시의 산간을 어떻게 파악했을지. 서울이 가진 명산은 세상 어느 나라의 수도에서 만날 수 있으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능선을 타는 재미는 산행의 가장 큰 묘미이다, 올라서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고 온 길을 되돌아 보면서 스스로 자부감을 가지고, 내려다 보면서 지금도 아래 세상에서 답답한 일상이 펼치고 있을 현상들을 생각 하면서 빙긋이 웃음 한번 보내는 여유로움을 즐기는 특권도 있다.
우이암 전망대에서 본 오봉능선과 지나온 길
우이암 전망대를 오르는 텍크 계단에는 길게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서 오봉 능선과 신선대 쪽 암봉들이 한 눈에 들어 온다. 계단의 끝자락은 우이암을 바로 앞에 둔 전망대 바위다. 바위 위에 앉으면 우이암이 왼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에 우뚝하다. '어데 저기 소 귀를 닮았누. 택도 없다.' 그런가. 아무튼 우이암은 능선에서 홀로 하늘로 치솟아 있다.
전망바위를 내려서 원통암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자 마자 천연 대피소가 눈길을 잡는다. 커다란 바윗덩이가 하늘에서 굴러오다 양쪽 바위벽에 걸려 만들어진 아늑한 비박자리다. 몇 사람이 자릴 잡고 있어 우린 들여다 보는 것으로 지나친다. 원통암으로 내리는 길은 바위 문도 지나고 경사진 길과 평평한 암자터 같은 평지도 지난다. 도봉산 골골의 암자 처럼 원통사도 우이암을 등 뒤에 두고 명당의 자리에 앉아 있다.
우이암과 원통사
'본 절은 물이 부족하여 식수만 제공합니다.' 라는 원통사 주지의 산객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띈다. 바위로 둘러싼 절에 무슨 샘이 있을까 하나 절의 가운데 멋진 샘이 맑은 석간수를 내 쏟아낸다. 물 한잔으로 우이암까지의 산행노고를 씻는 보시를 받는다. 천연 동굴을 비롯한 절을 한바퀴 돌아나와 쉼터에서 학산이 내 놓은 쑥떡 간식은 오후 마지막 새참이 되어 입안을 화사하게 한다. 7시 30분 버스를 예매하였으니 시간적인 여유가 다소 있지만 내림을 서두른다.
내림길
우이동 탐방 안내소로 내림길을 잡은 걸 중간에서 엉뚱하게 방학동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지하철 역에만 집착한 탓이다. 우이동은 지하철이 멀고 방학동은 방학역이 가깝다는 50대 아줌마의 안내에 끌린 게 오히려 화가 된 게다. 우이동 쪽보다 훨씬 멀고 지루하누 방학능선을 꼬박 걸어서 둘레길로 방학동에 내려서니, 여기서도 전철역은 멀리 있으니 어쩌랴. 택시를 타고 방학역 근처에 와서야 목이 마름을 깨닫는다. 시원한 하산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면서 오늘을 마무리하고 동서울 버스 터미널에 선다.
담 안의 부처와
담 밖의 바위 위에 얹힌
오가는 사람들이 쌓은 작 은탑
그 사이를 갈라놓는 듯한
담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부처나 바위에 얹힌 사람들이나
오직 한가지로 다가가려는 게 있지 않으랴.
우리 모두가 꾸는 꿈
그게 부처나 탑으로 표현될 뿐이려니.
분열로 표현되는 모든 담들이 이같이 '있으나 마나' 면 좋지 않으랴.
담은 그저 담쟁이 덩굴의 삶으로 장식되는
아름다운 풍경일 따름이기에.
2014/09/29
문경 아침도시의 산돌
첫댓글 산돌 사인방이 도봉산을 접수!
서울 친구들과 산행 함께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