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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옛날 가슴 아푼 연탄불 사연그때 그시절이
형택이가 죽었다. 아침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했었다.
누가 정해놓기라도 한 것처럼, 항상 가장 먼저 등교하는 형택이가
조회시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형택이는 아이의 짝이었다. 동네는 서로 반대방향이었지만
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형택이와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에게 물어봤지만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가면이라도 뒤집어 쓴 듯 침통한 선생님 얼굴이었다.
선생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형택이는 이제 학교에 나오지 못한다."
아이는 선생님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형택이는 죽었다. 형택이네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것이었다.
원인은 역시 연탄가스였다.
작년 종구네 식구들이 죽은 뒤로 두 번째 참변이었다.
아이는 학교 뒤 으슥한 빈 공간,
형택이와 둘이서 자주 놀던 곳을 찾아가 펑펑 울었다.
2교시 종소리가 아이의 가슴에서 땡땡 울렸다.
아이는 슬프고도 무서웠다.
자신도 언젠가는 형택이처럼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할머니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꼬박꼬박 동치미국물을 머리맡에 떠다놓았다.
나무를 때던 시절그리 생각해서인지 아침에 일어날 때면
머리가 무거웠다. 나무 때던 시절이 그리웠다.
지게 지고 나무를 하러갈 때마다 그렇게 지겨웠는데...
1960년대를 정점으로 연탄의 급격한 보급확대는 일종의 생활혁명이었다.
나라에서는 홍수방지 같은 명분을 내세워 나무 채취를 엄격하게 금했다.
그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이 연탄이었다.
연탄은 하루 종일 방을 따뜻하게 해줬고 언제나
밥과 국을 끓일 수 있는 매력적인 연료였다.
도시는 물론, 농어촌에서도 앞다퉈 연탄화덕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었다.
무연탄은 화력도 좋고 값도 비교적 싼 편이었다.
그래도 서민들에게 연탄 값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가난한 집과 부잣집을 나누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부잣집들은 온 겨울을 날 수 있을 만큼 창고에 쌓아놓고 땔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생기는 대로 한 두 장씩 사다 쓸 수밖에 없었다.
연탄은 생활을 편리하게 해줬지만 불편한 점도 많았다.
제대로만 갈아주면 몇 년이라도 꺼질 리 없는게 연탄이었지만
새벽에 깜박 시간을 놓치면 그대로꺼져버렸다.
국내에서 연탄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대한제국 시절 일본인에 의해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