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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 오페라 ‘카르멘’ Georges Bizet 1838-1875 Carmen: Elina Garanca Don José: Roberto Alagna Micaela: Barbara Frittoli Escamillo: Teddy Tahu Rhodes Metropolitan Opera Chorus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Conductor: Yannick Nézet-Séguin 2010 MET
실황녹화이니 플레이리스트 왼쪽 위 VIDEO 글자를 클릭하여 동영상으로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영어 자막이 있습니다. 모두 18 트랙으로 1번 트랙은 안내이며 등장인물과 오페라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합니다. 본 공연은 2번 트랙부터 시작됩니다. 나타나지 않은 트랙은 오른쪽 사이드 바를 움직여 이동하시면 됩니다. 다시 플레이리스트로 돌아오려면 동영상 화면 시간 표시 옆 ▲를 클릭하면 됩니다. 즐거운 감상 시간 되세요~~
비제는 뛰어난 신진 작곡가에게 주는 ‘로마 대상’을 받아 이탈리아에 유학했고, <닥터 미라클>(1857), <진주잡이>(1863), <페르트의 아름다운 처녀>(1867), <자밀레>(1872) 등의 오페라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특별한 ‘히트작’이 없었기 때문에 이 작품 <카르멘>에 유난히 공을 들이고 열정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반쪽자리 성공이었습니다. 음악가들과 평론가들에게서는 대단한 찬사를 얻었지만,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거든요. 브람스는 <카르멘>의 예술성에 감탄하며 공연을 20회나 관람했고, 철학자 니체는 “음습하고 우울한 독일적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찬란한 태양의 음악”이라고 말하며 “풍요롭고 정밀한 동시에 건축적으로 완벽한 작품”이라고 <카르멘>을 극찬했습니다. 훗날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오케스트레이션 기법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카르멘>의 악보를 연구하라. 음표 한 개도 버릴 것이 없다”는 찬사까지 이 작품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음악적으로 탁월한 오페라가 대체 왜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을까요? 전통적 여성 이미지와 도덕을 뛰어넘는 여자 카르멘 가장 큰 이유는 카르멘이라는 여주인공의 독특한 개성 탓이었습니다. 대체로 ‘청순가련형’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소프라노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이 메조소프라노 여주인공(소프라노도 부릅니다)은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도덕을 뛰어넘는 인물이었거든요. 마리아 칼라스는 <카르멘> 전곡 음반을 남겼고 독창회에서 이 오페라의 아리아를 노래하기도 했지만, 카르멘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서는 일을 꺼렸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칼라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카르멘은 남자의 내면을 지닌 강한 여자죠. 하지만 저는 상당히 여성적인 성격이고, 여성적인 역할을 좋아해요. 그래서 이 배역으로 무대에 서는 걸 원치 않아요.” 게다가 당시 오페라 코미크 극장은 가족이 함께 공연 나들이를 하거나 맞선을 보는 데 주로 사용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시라는 하층민이 떼로 등장해 밀수를 하고, 점을 치고, 결투를 벌이다가 결국 치정살인으로 끝나는 오페라를 봐야 하니 관객은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특히 초연 때 카르멘 역을 맡은 가수 셀레스틴 갈리 마리의 관능적이고 공격적인 연기는 관객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카르멘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도, 당시의 관객은 이런 여주인공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1803-1870)의 원작 <카르멘>(1845)에 비하면, 오페라 속 카르멘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훨씬 순화된 캐릭터인데도 말입니다.
Herbert von Karajan conducts 'Bizet, Carmen' Carmen: Grace Bumbry Don José: Jon Vickers Micaela: Mirella Freni Escamillo: Justino Díaz Chorus of the Vienna State Opera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안달루시아의 집시, 최하층 노동자 계급의 여자 카르멘
신대륙을 정복하고 나서 남아메리카 선주민들에게서 담배를 배운 유럽인들은 유럽 곳곳에도 대규모의 담배공장을 지었는데,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된 1820년경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 세비야 담배공장 노동환경의 열악함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한여름에도 통풍이 되지 않는 작업장 안에 5백 명쯤 되는 여자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담뱃잎을 말았습니다. 이 당시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란 신분 면에서나 보수 면에서나 최하층 노동자에 속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안달루시아의 집시들이었고, 카르멘 역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스스로 다가오지 않는 한 불러봐도 소용없지/ 협박도 애원도 소용없는 일...” 이렇게 시작되는 카르멘의 아리아 ‘아바네라(Habanera)’는 원래 1800년경 쿠바의 아바나 지방에서 태어난 유행한 춤곡입니다. 탱고와 비슷한 두 박자 리듬에 셋잇단음이 따라 나오는 것이 특징이죠.
Maria Callas sings 'Habanera' Anna Caterina Antonacci sings 'Habanera'
카르멘의 불같은 매력과 깊은 절망과 허무의 오페라 보수적이고 진지한 바스크 지방 출신의 하사 돈 호세는 아바네라를 부르며 자신에게 꽃을 던져준 카르멘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맙니다. 어머니 뜻대로 얌전하고 착한 고향 처녀 미카엘라와 결혼하려고 마음먹어보지만 도저히 카르멘을 마음에서 몰아내지 못하죠. 그때 담배공장 여공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카르멘이 폭행죄로 체포됩니다. 그러나 카르멘은 호송 책임을 맡은 호세를 스페인 춤곡 ‘세기디야’로 유혹해 도주하는 데 성공합니다.
문득 마음에 드는 남자를 보고 유혹의 장미꽃을 던지는 카르멘 2막이 열리면 파스티아의 술집입니다. 다른 집시들과 함께 카르멘은 ‘집시들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느리고 나른하게 시작했다가 템포가 점점 빨라져 나중에는 플라멩코의 ‘두엔데’(duende: 강렬한 춤을 통해 영혼의 폭발을 체험하는 순간)를 연상시키는 광기로 마무리됩니다. 이때 이 술집에 인기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자신의 숭배자들을 거느리고 찾아와 ‘투우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출옥한 호세는 자신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서정적인 아리아 ‘꽃노래’로 카르멘에게 절절한 심정을 전합니다. 그러나 카르멘을 찾아온 자신의 상관과 싸움을 벌이게 된 호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집시들과 함께 밀수의 길을 떠납니다. 3막에서 유랑생활과 범법자 신세에 불안과 회의를 느끼게 된 호세는 가책에 시달리고, 카르멘은 호세가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한편 카르멘에게 반한 투우사 에스카미요는 집시들이 머무르고 있는 산 속까지 찾아와 카르멘을 투우장에 초대하고, 미카엘라도 ‘두렵지 않다고 말은 하지만’이라는 투명한 아리아를 부르며 이곳까지 찾아와 호세에게 ‘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전합니다. 질투와 원망과 증오로 마음이 일그러진 호세는 카르멘을 위협하고 고향으로 갑니다. 4막 도입부에 나오는 투우장의 합창과 파소도블레(paso doble) 음악이 사용된 ‘투우사들의 입장’은 활력과 색채감이 넘치는 장면입니다. 카르멘은 투우장에 입장하는 에스카미요와 사랑을 확인합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투우장에 찾아온 호세는 카르멘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애원하다가, 카르멘의 차가운 거절에 이성을 잃고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이 오페라 여주인공의 독특한 매력은 관객을 사로잡는 불같은 열정과 넘치는 에너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절망과 허무에 있습니다. 카르멘이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려 했던 것은 결국 투우사에 대한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집시의 유일한 재산인 자유였습니다. “관능을 무시하지 말라. 늘 모차르트를 곁에 두어라”라고 말했던 비제의 말 속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카르멘>의 성공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