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성공한 이유
외지인이 1650년에 일본을 방문했더라면,
재앙과도 같은 삼림 파괴현장을 보고 일본사회가 곧 붕괴될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희귀해진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대 이스터 섬이나 마야, 아나사지, 그리고 현대의 르온다, 아이티와는 달리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은 어떻게 상의하달 방식의 해결책을 발전시켜
삼림 파괴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제 14장에서 논의할 포괄적인 문제, 즉 집단의사결정에서
사람들이 왜, 그리고 어떤 단계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가에 관한 예에 해당한다.
중기 및 후기 도꾸가와 일본의 성공을 설명할 때 흔히 거론되는 설명
ㅡ 자연에 대한 사랑, 인생에 대한 불교도들의 관점, 유교적 견해 ㅡ 들은
이에 대한 답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일본이 처해 있던 복잡한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 외에도
이런 간단한 답들은 초기 도쿠가와 일본의 자원고갈 현상은 물론,
오늘날 일본의 해양 자원, 기타 다른 나라의 자원 고갈 현상을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해답의 일부는 일본이 가진 환경적 이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티코피아, 퉁가, 기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이스터 섬, 그리고 몇몇 다른 폴린시아, 멜라네시아 섬들은
왜 남벌 현상으로 종말을 맞아야 했는지를 설명한 제 2장에서 이미 논의된 바 있다.
티코피아, 퉁가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우연히도 생태학적으로 뛰어난 이점을 가진 땅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행운아다.
이곳에서는 촉촉한 땅에서 나무가 빠른 시간 내애 성장한다.
일본에서도 많은 강수량, 토양의 비옥도를 높여주는 화산재와 황사 현상의 빈번한 발생,
젊은 토양 등으로 나무가 신속히 자라날 수 있었다.
해답의 일부는 또 벌채 위기가 닥치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일본이 가진 사회적 이점에 있다.
우선 일본에서는 풀을 뜯어 먹거나 새싹을 뜯어 먹어
산림을 항폐화시키는 데 일조했던 염소와 양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또 전쟁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기병이 필요없게 되자 초기 도쿠가와 일본에서는 말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또 풍부한 해산물로 인해 단백질과 비료의 공급원구실을 하던 산림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일본 사회는 황소와 말을 가축으로 활용했지만
벌채가 진행되고 숲에서 나오는 사료의 양이 줄어 들자 이에 맞추어 그 숫자를 줄였고
사람들은 대신 곡괭이, 가래, 기타 장비를 이용했다.
성공의 또 다른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은 다른 지역 사람들과는 달리 일본의 엘리트와 대중 모두,
숲을 보존하는 면에서 상당한 정도의 장기적 이해관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먼저 엘리트였던 도쿠가와 쇼군은 국내적으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평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모반의 위험성이 적고
해외로부터의 침입의 우려도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도쿠가와 가문이 계속해서 일본을 통치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며, 이는 이후 250년 동안 사실로 나타났다.
평화, 정치적 안정, 미래에 대한 근거 있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도쿠가와 쇼군은 자신의 영역에 대한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및 계획을 입안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자신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던,
아니 자신의 임기조차 제대로 채울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없었던
마야 왕, 아이티 대통령, 르완다 대통형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또 내부적으로 이질성이 커서 불안정했던 르완다, 마야, 아나사지와는 달리
일본 사회 전체는 인종적인 면이나 종교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동질성을 띠고 있었다.
도쿠가와 일본은 지리적 고립성, 거의 전무했던 외국과의 교역, 그리고 외국 침략 정책의 포기는
일본이 자신의 자원만 의존해야 하며
타국의 자원을 약탈함으로서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같은 맥락에서 쇼군이 일본 전체에 평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재애 대한 수요를 이웃의 목재를 빼앗아 해결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외국 사상의 주입이 없는 안정된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본의 엘리트와 농부들 모두 미래도 현재와 같울 것이라고 예측했고,
따라서 미래의 문제는 현재의 자원으로 해결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도쿠가와 시대에서 부유한 농민이나 가난한 농민이나
자신의 땅을 궁극적으로 후계자에게 넘겨주고 싶어하는희망을 갖고 있었으리라고 일번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숲에 대한 통제권은 점차 숲에 보다 장기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자신의 자녀들이 그 숲을 사용할 권리를 계승하리라고 예측하고 희망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많은 마을에서 공유지는 개별적 가구들의 분리된 계약으로 분할되었으며,
제14장에서 논의하겠지만 이에 따라 공유지의 비극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기타 마을의 숲은 벌목되기 이미 오래전에 작성된 목재 판매 계약을 바탕으로 관리되었다.
정부는 마을이나 상인에게 정부 소유의 임야를 관리하도록 맡기고
그 대가로 목재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장기 계약을 맺고자 시도했다.
이런 모든 정치적,사회적 변수들로 인해 쇼군, 다이묘, 그리고 농부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숲을 지속적으로 관리했던 것이다.
따라서 메이레키 대화재 이후에는 단기적인 관점에 따른 숲의 과잉 개발은
바보스런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장기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항상 현명하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자주 단기적 목표를 선호했고 단기적 관점에서나 장기적 관점에서나 어리석은 일을 실제로 저지르기도 했다.
비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인물사나 역사가, 화학 반응 과정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며,
이 책이 환경론적 결정주의를 주장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지 수동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지도자, 위기를 예견하고 초기에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지도자,
상의 하달 방식으로 통찰력 있는 강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는
진실로 자신이 속한 사회에 커다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용기 있는 시민, 행동하는시민도 하의상달 방식을 통해 사회를 변모시킬 수 있다.
도쿠가와 쇼군, 그리고 텔러 야생생물 구호단체를 만들었던 몬태나의 내 친구들이
바로 자신들의 장기적 목표를 위해, 또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이런 두 가지 접근 방식을 취했던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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