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강씨 은열공 1세조 강민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예산재입니다.
은열공 강민첨 장군의 제례는 충과 예, 효의 정신을 기리는 시향제, 기신제, 탄신제 춘향례 등 일 년에 4 차례의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진주강씨는 고구려 때 도원수를 지낸 강이식을 시조로 삼고 고려명장 강민첨 장군을 중시조로 6개분파가 있으며
원길(元吉) 밀직공파.원감(元鑑)첨사공파. 원찬(元鑽) 학사공파. 원전(元鐫) 호부사공파.원함(元咸)사평공파.
원익(元益)진사공파.후로 소지파는약 50개파의 소지파가 분파되고 있음니다
.( 설매 임계정 판서공파는 원감(元鑑)첨사공파 후 판서공파로 분파됨니다.)
강민첨 장군은 고려가 건국한지 46년 되던 광종 14년(서기963년)11월 29일 경남 진주시 비봉산 자락에 있는 진주 옥봉남동 622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당시불교가 융성하던 15세기 고려 초에 진주 향교에서 유교의 글을 공부 진주향교 사교당이란 강당을 세워 청년들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43세에 과거를 보아 벼슬을 했습니다.
48세에 애수진 의 장수가 되었고 그해 11월 거란족 40만 대군을 물리치고 1016년 12월 거란장수 소배 압의 60만 대군도 물리쳤습니다. 현종12년(서기 1021년 11월 12일 59세로 별세했으며 그 후에 임금이 "은렬"이란 시효를 내리고 국장으로 충청도 예산군 감천동 언덕에 예장했습니다. 고려 11대 문종께서 공이 거란병 을 크게 섬멸한 전공을 칭송하여 공신각에 형상을 그려 후세 사람으로 하여금 본받게 했다고 합니다.
제례복을 입으신 분들이 오늘 시향제를 지내는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과 안내를 하는 알자님입니다. 헌관님들은 해마다 대종회에서 80세 이상 되는 분들 중에 종사에 공로가 있고 덕망을 갖춘 분들을 추천하여 대종회의 심의를 거쳐 헌관에오른 문중 어르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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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 절차는 10시에 문중 종원들이 묘소 제단(절하는 자리)에 서자 집례(사회자)의 홀기를 부르는 순서에 따라 행해졌습니다.
곧이어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님들이 순서데로 집례의 홀기에 따라 알자의 안내를 받으며 1세 민첨조 제물단 앞에가셔서 꿇어 앉아 술과 전을 올리며 절을 두번하고 물러 납니다.
초헌관은 선조님께 첫잔을 올리는 사람으로 집안에서 덕망있는 종원님 이 하고 둘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 그리고 마지막잔을 올리는 종헌관 순서로 이어집니다. 헌관님 들은 알자의 안내를 받으며 조상님께 잔을 올리고 절을2번 합니다.
제사를 올리는 예를 돕기 위해 상집례와 하집례가 올라갑니다.
상집사(집례)는 한문으로 축을 낭독하면 하집례는 경상대학 강동욱 한문학 교수께서 한글로 변역 낭독하여 초헌관이 알자의 안내에 따라 제를 지냅니다.
초헌관은 절을 두번 하시요"배.흥. 배. 흥.초헌관이 굴신으로꿀어안고 대축관이 초헌관 옆에 꿀어안좌 축을 낭독을 하고나면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순서로 알자의안내를 받으며 제례예식을 행합니다.
선조님께 제사를 드리기 전에 초헌관은 먼저 알자의 안내를 받아 손을 씻으며 마음을 정결히 합니다. 그다음 수건에 손을
딱고 술잔에 술을 받아서 제단에 올립니다.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시제 절차를 보니, 돌아가신 선조님께 정성을 들여 지내는
우리나라 전통 의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수대야 물 에 손을 씻은 다음에 수건으로 깨끗이 닦습니다.
이번 시향제에는 서울에 사시는 강국서님께서 초헌관으로 선정되어 선조님께 제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향제례를 통하여 선조에 대한 제사를 올리는 후손들의 지극한 정성을 엿볼수가 있었습니다.
집례의 홀기 낭독에 따라 종원님들이 모두 함께 절을 합니다.
시향제가 끝난후에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례 모습입니다.
오늘 시향제에 오신 전국의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기를, 강민첨 정군의 공덕을 추모하는 영당과 사당은 현재 경남하동궅 옥종면 두양리 산 두방재와 두방영당이 있으며 매년 동짓달 열이틀 양력 2월 14일에는 하동 옥종 두방재 영당에서 제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은일공 강민첨장군 께서는 16세에서 43세까지 경남 하동 두방산에서 공부하고 활쏘기, 말타기 등 무예를 익혔다고 전해집니다.
경남진주 옥봉동의 은렬사에서는 강민첨 장군의 탄생지로서 해마다 장군의 탄생을 기리는 탄신제를 올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 산앙사 영당에서 민첨 1세조 춘향례를 매년 음3월23일 올립니다,그리고 충남 공주 의당면 도신리에 강씨 집성촌 부락이 현존 한다고 오늘 참석하신어르신이 말합니다.
강민첨 은열공1세조 장군의 묘소 아래에는장군을 모시던 마부와 말의 무덤이 있습니다.
장군의 묘에서 바라본 대술면 이티리 마을은 가을색과 함께 평온합니다.
강민첨 장군의 묘가 충남 예산에 있는 이유는요. 고려시대 수도 개성에있는 관직에 계시다가 불교가 성행하던 고려시대에 행정업무를 보던 지금의 성환에 있는 상원사 절 일대에 도적들이 끓어 관청 업무러 보러 이곳에 내려와 계시니 도적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일대의 혼한스러움을 잠재우고 살다가 돌아 가시자 일대의 명당터인 지금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 안장 되었다고 합니다. 천안 근교 성환에 있는 상원사에는 고려시대의 비(관청 기록)에 전해집니다.
그후에 돌아가시자 명당터인 이곳에 안장 되셨고 이후에 땅주인이 이곳이 명당터임을알고 장군의 묘를 숨겨 놓았는데요. 강씨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찾기위해
문중후손이 머슴으로 예산에와서 살다가 어느날, 땅주인이 "애야 비가올려고 하니 장군의 묘에 가서 소를 데려와라" 는 말을 듣고 장군의 묘임을 발견하고 문중에 알려서 되찾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진주강씨 은열공파 예산재 강운식 재장님입니다.
전북 완주군에서 수십년간 이곳 시제에 참석하신 강희목 선생입니다.
"새마음갖기 운동 본부 회장을 맡고 있는 일암 강선생님은
고산 향교전교를 지낸 유생이며 "새마음갖기 갖기 운동 회장을 맡고
계신다고 합니다. 전국의 333명의 효부효자상을 주셨으며 태교운동,
양심운동을 펼치고 계신데요. 효심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얀 수염과 선비처럼 고고한 품위를 지닌 일암 선생님이 말씀 하시길,
예전 양반의시대에서 현재 물질만능의 선호시대에 살고 있는
머잖아 양심의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아흔의 연세에도 곧바른 정신과 먼 곳에서 이곳까지 대중 교통으로 버스를
다섯번이나 갈아타고 오신 체력에 감탄을 합니다.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선생은 양심을 지키고 살아온
정신이며 이외에 4년동안 쥐눈이 검정콩을 날마다 복용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경남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는 진주 강씨 은열공후 판서공파 집성촌 부락 어른신들을 뵙게되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제가 어린시절 저희 조모님 조동마님께 세배하러 끊임없이 저희 집을 방문하여 제 조모의 건강과 안녕을
염원하던 분들이 이제 어르신이 되어 강민첨 장군의 시제에 찾아 오심을 뭐라 감사 드려야 할지 송구스러웠습니다.
뜨근한 소머리 국밥과 돼지고기, 전, 김치로 식사를 하셨습니다.
제주도 전라도, 경상도 전국에서 관광차 여러대로 오신 문종 어르신들이 되돌아 가는 버스가 진입로가 좁은 관계로 휘어청 하여 조금 불안 했습니다. 길이 조금 확장 되었으면 좋겠고 성씨를 초월해서 이런 고유의 전통 제례문화를 이어갈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지역 인사분들도 참여하여 예산의 아름다운 전통 문화를 계승발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진주에서는 은열공 강민첩의 생가에서 해마다 장군의 생일날 행하는 탄신제에는 진주지방의 유림들께서 참례하여 유림제로 제사를 올린다고 합니다.
오늘 강민첨祖 시향제를 적극도와 주신 좌측에 계신 수철리 이우병 이장님과 묘소 관리인 신대식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멀리 제주도에서 오신 진주강씨 종사연구회를 맡고 계시고 붓글씨에 조예가 깊은 강선창님과 제주 해오름의 저자 강성현님께서 추사김정희 고택을 방문하고 싶다고 하셔서 제차로 모시고 안내를 해드렸습니다. 추사 김정의 유배지였던 제주도에서도 추사연구가들이 추사 김정희를 추모하며 글씨 연구회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진주강씨 1세조 은열공 강민첨장군 시향제에서 선조님게 예를 갖추어 드리는 제사는 한국의 孝를 행하는 중요한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댓글 작년 시묘제의 글인데 내용에 오류가 너무많아 수정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