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갑산 정혜사(七甲山定慧寺)
- 충남 청양군 장평면 화산리
841년(문성왕 3) 진감 혜소(眞鑑慧昭)가 창건했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범우고(梵宇攷)』에는 ‘정혜사(淨慧寺)’라 나와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휴정(休靜)이 의승병의 도량으로 사용했다.
1908년 의병과 일본군과의 전투 중에 전소했으나 불상만은 화를 면했다. 같은 해에 월파(月波)가 중창했다.
1930년 불상을 개금한 기록이 있는데, 이때는 절 이름이 ‘정혜사(定慧寺)’라 나와 있다.
- 동국여지승람/1481년(성종 12) 편찬, 범우고/1799년(정조 23) 편찬
(인터넷 검색, 자료 정리)
아래 사찰에서 세워논 안내판의 내용과는 아주 조금 다르다.
1907년 또는 1908년 불로 전각이 소실되었고, 1908년 승려 월파가 중창하였다.
정혜사는 칠갑산 자락에 있다. 반대편 칠갑산엔 장곡사(청양군 대치면)가 있다.
장곡사보다 완만한 곳에 절이 있고 경내는 조용하다.
장곡사처럼 전각이나 문화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또한 칠갑산 산행의 들머리(날머리)가 있는 곳이 아니 정혜사(七甲山定慧寺)
정혜사 구법당(舊法堂)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1호
1908년 승려 월파가 중건하였다. 현 법당이 건립되기 전까지는 법당 겸 요사채로 사용되었다.
'정혜사' 편액의 글씨는 구한말 개혁파 오세창(吳世昌) 선생의 솜씨이다.
위창(葦滄, 韙傖) 오세창(吳世昌)
1864년 7월 서울, 1953년 4월 졸 / 1919년 33인의 민족대표로 기미독립선언서 서명한 독립운동 하신 분이다.
'오세창' 이름과 낙관이 선명하다. 가끔 색을 입히는 모양이다.
대웅전
목각 석가여래삼불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1호
석가여래, 아미타불, 약사여래 등 삼불이며, 복장유물이 없어 언제 조성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조각의 기법으로 보아, 당시 충남지역에서 활동한 법령파 불상 양식으로 17세기 승려 법령(法靈)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정혜사는 해야할 불사가 많다. 개금 불사도 해야 하고 수각 불사도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룩 되길 기원한다.
칠성각
관음전
모덕사(慕德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2호
- 청양군 목면 송암리
조선 말의 유림 최익현(崔益鉉)을 배향.
최익현의 고향은 경기도이지만 삶의 후반기엔 이곳 장구(長久)마을에서 살으셨다.
의병으로 활동하였던 그는 충신이었다.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906년 청양군 유림에서 발의, 1913년에 공덕사(恭德祠)로 건립되었다.
광복 후 사우를 중수, 고종의 밀지(密旨) 내용 중 ‘慕卿宿德(그대의 큰 덕을 사모함)’에서 ‘慕’자와 ‘德’자를 따서 모덕사라 함.
1982년과 1985년에 유물전시관·장서각(藏書閣) 등을 건립하고 고택(古宅) 등도 보수하였다.
1982년부터 모덕사관리사무소를 두어 관리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 자료 정리)
모덕사는 이번 여행 계획엔 없었던 곳이다.
장곡사를 걸쳐 칠갑산을 산행, 하산 후 전통사찰 봉정사를 가려고 하였지만 이 절이 네비 검색이 안 된다.
시간의 여유가 생겨 모덕사로 왔으나 지금은 코로나19로 수상한 세월이다.
저수지가 크다. 정문이 아닌 저수지를 돌 수 있는 길로 들어 갔으나 제지하는 직원이 없다. 물론 건물 안으로 진입은 불가.
면암 최익현 선생 상이다.
우목저수지
모덕사 시설 앞에는 연못이 따로 있다. 전체적으로 보는 그림이 괜찮다.
홍살문
사당
사진 촬영은 볼 수 있는 곳에서 찍었다. 담장 밖에서.
고택
면암 선생의 고향은 경기도 포천, 벼슬을 내려놓고 이곳으로 1900년(68세) 이사 오셨다.
안채, 사랑채, 영모재(조상의 위패 봉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구동정사 또는 중화당이라 하였는데, 이곳에서 애국지사를 모아 강의하고 독립운동을 논의하였다.
1908년 의병을 일으킨 산실이기도 하다.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삼층석탑
- 청양읍사무소 뒤편 공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