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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려고 열심히 일하고 있지!”
샬롬! 늘 평안하심을 기원하며 즐거운 주말이 되시길 빕니다. 아래에서 올라올 땐 운동 삼아 계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집들이 음식물 쓰레기나 기타 잡동사니를 밖에 내다놓기 때문에, 올라
다닐 때마다 이상야릇한 냄새를 맡아야만 합니다. 때로는 계단 공간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냄새나는 것들은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화창한 봄날, 아이들이 공원에서 놀다가 공원 한쪽 벽에 페인트칠하는 세 명의
어른들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이 그 어른들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들, 지금 뭐하고 계세요?” 첫 번째 어른은 “페인트칠하고 있다. 지금 너무 힘드니까, 조용히 해줄래?”하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두 번째 어른은 “뭐하긴? 돈 벌려고 열심히 일하고 있지!”하고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어른은 즐거운 표정으로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이들은 다시 “벽에 그냥 하얀색만 칠하고 있는데, 어디에 그림이 있어요?”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아저씨는 웃으면서 “여기 하얀 벽이 내가 그리는 그림이고
작품이야! 나는 항상 깨끗한 벽을 만들어내고 있단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저 아무렇게 쌓아올린 벽돌에 불과한 벽이라도, 진정한
자부심으로 페인트를 칠한다면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합니다. 그러나 어떤 자부심도 없이 일한다면 ‘그저
해야만 하는 의무’에 불과하겠지요. 아무튼, 긍지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참으로 가치가 있고 멋진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출처: 따뜻한 편지)
한 번쯤 들어봤을 예화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즐겁게 일해야 한다는 겁니다.(물맷돌)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십시오(딤전6:17)]
저를 위로해주는 남편은 어떤 약보다 강력했어요!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도 행복하게 잘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느 분이 ‘부부(夫婦)’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한 글자로는 ‘짝’, 두 글자로는 ‘하나’, 세 글자로는 ‘나란히’, 네 글자로는 ‘평생친구’, 다섯 글자로는 ‘사랑합니다’, 열아홉 글자로는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결혼 7년 차 현정 씨와 상규 씨는 관계가 단절되면서 부부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정 씨는 심한우울증으로 낮 동안 거의 누워 지냈습니다. 결혼 전의
자신감은 사라지고 만사가 귀찮았습니다. 아이에게 쉽게 화를 냈습니다.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도 칭얼거리는 아이 앞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또다시 화내고
자책했습니다. 남편 상규 씨도, 우울한 아내를 보는 순간, 무력감에 빠지고 불행감이 엄습했습니다. 두 사람은 상담을 통해서
서로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퇴근 후에 ‘힘들었을 텐데 먼저 쉬라’는 아내의 한마디는 피로를
사라지게 하는 청량제가 됩니다. 쉬지 않아도 아내의 위로 덕분에 피로가 풀립니다. 아내와 좋아지자, 회사 일도 힘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합니다.” “저의 우울증을 이해하고, 저를 위로해주는 남편은 어떤 약보다
강력했어요. 마음을 알아주는 남편이 육아 스트레스를 막는 해독제 역할을 합니다. 상담을 통하여 저의 우울감이 남편과의 단절로 시작된 것을 알았어요. 그
순간이 우리에게 기적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애착관계는 ‘안식처’역할을 합니다. 서로가 위로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누워있는 것보다 위로가 안식(쉼)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출처; 좋은생각, 박성덕)
남편과 아내,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혼자서도 살 수 있겠지만, 남편과 아내가 해주는 ‘위로’ 한 마디가 이처럼 큰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으니, 이왕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에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을 갖게끔 힘써야겠습니다.(물맷돌)
[집과 재산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지만,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선물이다.(잠19:14) 남편과 아내는 이제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엡5:28)]
삶이 우리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는?
샬롬! 5월 두 번째 주말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빕니다. 지난 8일자 신문에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산다?’는 글귀가 포함된 광고가 실려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장수(長壽)가 오복(五福) 중의 하나’로 여겼는데, 이제는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화(禍)가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입니다.
오죽하면, 어린이날에 아이를 하나씩 끌어안고 죽었을까요? ‘아무리 애 써도 수천만 원의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절망했을, 삼십
대 젊은 부부의 마지막 선택이 너무 아픕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을 믿고
조금 더 힘을 냈더라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옛말을 품고 조금만 더 희망을 가졌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아이들도
죽음을 원했을까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래서 더 살고 싶지
않았을까요? 엄마 아빠가 아이들만 남겨놓고 떠났더라도, ‘다
덤벼! 지지 않을 테야!’ 두 주먹 불끈 쥐고, 닥쳐오는 어려움을 잘 이겨내지 않았을까요? 누구보다 지혜롭게, 누구보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서, 제 몫을 해내는 근사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 누구도 언제나 행복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절망하지 않는 겁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조차,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죽을 것 같아도 계속 살아내는 겁니다. 자연이
돌려달라고 할 때까지 살아가도록 서로 돕는 겁니다. 삶이 우리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는, 살아가는 것입니다.(출처; C닷컴, 김규나)
그렇습니다. 삶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삶의 끝이 어떻게 될지, 그 결과는 아무도 모릅니다.(물맷돌)
[인간이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잖습니까? 인생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는 걸, 제가 압니다(렘10:23)]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샬롬! 아름다운 계절 오월의 두 번째 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다.”
어느 날 하루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한 학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한 눈먼 소녀가 아주 작은 섬 꼭대기에 앉아 비파를 켜면서 언젠가는 배가 와서 구해주리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비파로 켜는 음악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물이 자꾸 차올라 섬이 잠기고, 급기야는 소녀가 앉아있는 곳까지 와서 찰랑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자신이 어떤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노래만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그녀는 자기가 죽는 것조차 모르고 죽어갈 겁니다. 이런 허망한 희망은 너무나 비참하지 않나요?”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 밑져야 본전이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안 부르든 어차피 물은 차오를 것이고, 그럴
바엔 노래를 부르는 것이 낫다. 갑자기 물때가 바뀌어 물이 빠질 수도 있고, 소녀 머리 위로 지나가던 헬리콥터가 소녀를 구해줄 수도 있다. 그리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다.” 그때, 제가 한 말은 어쩌면 그 학생보다 저를 향하여 한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립니다.(출처;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장영희)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해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고로, 우리가 바람직한 희망을 품고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단 하나, 하나님은 소리 나게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한참 지난 후 조용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에 우리가 모르게 이모저모로 도와주신 사실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물맷돌)
[여호와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이 내가 죽는 날까지 나와 함께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나는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시23:6) 너는
혼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데서 아버지께 기도하라. 너의 비밀을 아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마6:6)]
우리 삼남매는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귀양지에서 ‘소학(小學)’을 읽었다고 합니다. 학문의 최고경지에 오른 학자가 어린아이의 수양서를
다시 읽은 것은 ‘학문과 수양의 끝이 모든 허식과 포장을 벗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곧,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늦은 밤, 아버지가 오셔서 방안으로 들어서자,
술 냄새와 찬 공기가 뒤섞여 방안을 돌아다녔습니다. 벌건 얼굴과 벌건 눈동자의 도깨비 같은
몰골로, 아버지는 우리를 죽 훑어봤습니다. 어머니는 죄진
것 없는 죄인이 되어 아버지의 기분을 살피며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습니다. 잠시 후, 아버지가 큰소리로 트집을 잡으며 어머니를 다그쳤습니다. 이유 없이
거친 말을 쏟아내며 완력을 쓰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약간의 반항을 하다가 애원하면서 절규했습니다. “맘껏 다 부수고, 그러고나서 나를 죽이세요.” 잠에서 깨어난 동생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며 눈치 보다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나도 울고 싶었지만, 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울 수도 없는 투명인간이
된 지 오래됐습니다. 형과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어붙어버린 서로를 보면서 무력감과 나약함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머니는 동생을 껴안으면서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와
우리 삼남매는 집을 나섰습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삼남매는 뿔뿔이 헤어졌습니다.(출처;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임상철)
글쓴이가 그간 겪었을 고초가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런 아픔이 있는 분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있길 빕니다.(물맷돌)
[이번에 그를 보내는 것은, 여러분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 형편을 알아보고, 또 여러분을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아드리기 위해서입니다.(골4:8)]
집에서도 쫓겨나고, 갈 데가 없었습니다.
샬롬!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우리 몸은 원래 계속 움직이게끔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피로를 해소하려면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편이 더 낫다고, 그 의사는 말했습니다.
오로지 주식을 하고 싶은 마음에 사채까지 빌렸습니다. 가정은 파탄이 났습니다. 다시는 주식을 하지 않겠다고 열 번의 각서를 썼습니다. 그 중 세
번은 혈서였습니다. 결국 가정에서 내쫓겼습니다. 그래서 노숙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집에서도 쫓겨나고,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갈 데 없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니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예배당이라는 곳을 처음 가 봤는데, 중독에서 벗어나는 듯했습니다. 학습지교사, 떡 공장을 다니면서, 삶이 조금씩 돌아오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주식에 대한 미련은 좀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99% 다 끊었다고 생각하지만, 1%의 미련이 계속 남아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식을 하면 더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가족과 목사의 동의로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온갖 치욕을 다 겪었습니다. 수갑이 채워져 독방에 갇히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어?’ 자살시도까지 했습니다.” 그는 중독을 ‘사탄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중독은 영혼의 암입니다. 한 번에 딱 끊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의학적 치료도 필요하고, 본인의 자각도 있어야 합니다.”(출처; 빛과 소금, 김덕희)
중독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주변 사람들의 깊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물맷돌)
[믿음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치료해주실 것입니다.(약5:15)]
최소한 이 네 가지만 거꾸로 해도
샬롬! 5월 들어 두 번째 주말인 오늘,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어느 축구해설가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라운드의
명선수는 얼마만큼 넘어지지 않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얼마만큼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TV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화제입니다. 불륜·이혼·증오·복수·미련·연민·집착·원망을
파격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모든 부부는 결혼을 한 그 후로도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는 결국 이혼하고 마는, 잔혹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결혼생활을 망가뜨리고 이혼으로
향하는 부부에게 나타나는 네 가지 징후가 있습니다. 첫째는 상대에 대한 경멸입니다. 의견다툼이 생겼을 때에 빈정대는 듯한 눈동자 움직임과 반응을 보이며, 냉소와
조롱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둘째, 인신공격입니다. 반대 의견을 내세우는 정도가 아닙니다. “당신은 늘 그렇게 짜증나는
소리만 한다.” “당신은 왜 허구한 날 그 모양이냐?”면서
성격이나 인격을 싸잡아 부정적인 말을 내뱉습니다. 셋째, 신경질적인
태도입니다. 걸핏하면 성질을 부리거나 화를 내면서 말을 되받아침으로써 사사건건 사태를 악화시킵니다. 넷째, 상대의 말에 돌벽 쌓기입니다. 마치 벽에 대고 이야기하고, 쇠귀에 경 읽듯 무슨 말을 해도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불길에 부채질을 합니다. ‘부부의 세계’는 최소한 이 네 가지만 거꾸로 해도
갈등과 다툼이 없는 평화공존이 가능합니다.(출처; 윤희영의 News English)
사람 인(人)자를 보면, 넘어지려는 사람을 다른 한 사람이 받쳐주는 형상입니다. 배우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혼자서는 ‘올바로 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연약하여 넘어지려고 할 때에 서로가 붙들어주기 위하여 ‘부부의 연(緣)’을 맺어 가정을 이루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물맷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구나! 짝이 없이는 바로
설 수도 없을 테니, 저 사람의 짝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야
저 사람이 바로 살아갈 수 있겠지!’하고 말씀하셨다.(창2:18, 현대어) 남편들도 아내를 제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진심으로 받들어 깊이 존경해야 합니다.(엡5:28,33)]
정말이지, 구세주가 따로 없었습니다.
샬롬! 어버이날인 오늘 하루도 내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길게 설명하려고 할 때가 적잖습니다. 이것은, 상대로부터 관심이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본능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꼴을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겁니다.
입학시험을 못 치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근처 화방을 찾아다녔지만, 좀처럼 눈에 띠지 않았습니다.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기적처럼 화방 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다짜고짜 문 앞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죄송한데 지금 가게 문 좀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주인아저씨는 볼 일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말투였지만, 염치불구하고 사정사정을 했습니다. 간절한 애원 끝에, 아저씨는 가게로 나와주셨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화구(?具)는
손에 쥐었지만,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0분, 당장 택시를 타고 가도 제시간에 도착할지 장담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마음이
불안해서 정신없이 계산하고 돌아서는데, 아저씨가 날 불러세웠습니다. “학생, 내가 차로 태워다 줄게.” 주말 이른 아침에 생면부지인 저를 위해서
가게를 열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데려다주기까지 하신다니, 정말이지
구세주가 따로 없었습니다. 덕분에, 제 시간에 도착해서 무사히
실기시험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출처; 샘터, 정진욱)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을 때, 그걸 외면하거나 뿌리치지 않고 들어주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물맷돌)
[‘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듯이, 네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라’고 하신 주님의 명을 지키고
있다면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약2:8)]
어느 순간, 그분에게 물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샬롬! 어버이날인 오늘 하루도 행복한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어느 날, 우체국에 들렀더니, 창구에
처음 보는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둥그스름한 그녀의 얼굴엔 환한 미소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다시 갔더니,
그 얼굴에서 환한 미소가 사라지고 조금은 짙은 그늘이 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에는 그 환한 미소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뱃속에 있을 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느 유명한 스님과 함께 백일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100일쯤 되었을 때, 어머니는 “딱 한 번만 가 보자!”는 친구 손에 이끌리어 처음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주님을 영접하셨습니다. 그 뒤, 우리가족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힘겹게
얻은 아들을 얼마나 귀하게 키우셨을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좌우간 저는 곱게 자랐습니다. 문제는, 제가 어렸을 적에 ‘잘 없어졌다’는 겁니다. 잘난 아들 유괴라도 당했을까 봐, 어머니가 마음 졸이며 저를 찾아다니면,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을 모아서 어디로 데리고 가던데…”라고 말했답니다. 어머니가
부랴부랴 찾아가보면, 제가 아이들을 전도해서 교회에 데리고 갔더라는 겁니다. 어머니가 늘 기도하시던 모습을 보고 자라났기 때문일까,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수저를 들기 전에 함께 기도하던 풍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어느 날 ‘하나님’이란
존재가 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뒤에서 늘 든든하게 저를 지켜주고 계시는 하나님이
정말로 느껴졌습니다. 어느 순간, 그분에게 물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감색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무렵부터 지금까지(출처; 영화배우 신현준의 고백)
신현준 씨 경우를 보아, 신앙도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변에 바람직하지 못한 신앙인들로 둘러싸여 있으면, 신앙 갖기가 정말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는 반대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물맷돌)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구원해주시지 않고, 멀리 떨어져 계십니까? 내가 신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십니까?(시22:1) 그 때에 저는
히브리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을 발로 차 보아야 너만 다칠 뿐이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행26:14)]
괜찮아!
샬롬!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우리 반이 좀 일찍 끝나서, 저 혼자 집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골목을 지나던 깨엿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 아저씨는 가위를
쩔렁이며, 목발을 옆에 두고 대문 앞에 앉아 있는 저를 흘낏 보고는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리어카를 두고 다시 돌아와 저에게 깨엿 두 개를 내밀었습니다. 순간, 아저씨와 제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주 잠깐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무엇이 괜찮다는 건지 몰랐습니다. 돈 없이 깨엿을 공짜로 받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면 목발을 짚고 살아도 괜찮다는 말인지….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그날 마음을 정했다는 겁니다.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곳이라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고, ‘괜찮아’라는 말처럼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출처;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장영희)
고(故) 장영희 교수는 소아마비 수필가였습니다.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서강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습니다. 특히, 장 교수는 암 투병 중에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면서 강단에 섰던 분입니다. 그의 부친은 고(故)장왕록 교수입니다.(물맷돌)
[그때에는, 소경들이 다시 볼 수가 있고, 귀머거리들이
다시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때에는, 소아마비가 사슴처럼
펄쩍펄쩍 뛰고, 벙어리의 혀가 기뻐서 환호성을 칠 것이다. 사막에서
샘물이 터져 나오고, 광야에서 물줄기가 흘러나갈 것이다.(사35:5,6)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요9:3)]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시려고
샬롬!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영국에서는, 2009년부터 매년 5월 한 주간 동안, 삶의 마지막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죽음에 관한 깊은 논의를 회피해온 사회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시작했다는
겁니다. 시민들은 이 기간 동안, 자신의 장례계획을 세우고, 유언장과 장기 기증서를 작성한답니다.
몇 해 전, 102세 할머니가 TV에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지금도 경로당에 자유롭게
다니시고, 당신이 입던 옷가지는 반드시 당신이 직접 빨아서 입을 정도로, 아직도 정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 댁을 방문해서 취재하던 기자가 “할머니, 할머니께서 지금
가장 바라시는 소원이 뭔가요?”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는 “내가 바라는 건 다만 한 가지, 객지 생활하는 내
자식들이 그저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는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평범한 대답인 것 같지만, 그러나 사실 모든 부모들이 원하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좀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디 가든지 사람구실을 제대로
하면서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도 우리네 부모와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자녀로 삼으신 것도, 그리고 주일마다 하늘의 양식을 열심히 베풀어주시는 것도, 결국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게 하심으로써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출처; 2015년 주일설교 중에서)
우리 인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바로 알아야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물맷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6-18)]
빼앗긴 봄
15세기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밤마다 금성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금성이 초승달 모양에서 보름달 모양으로, 다시 그믐달 모양으로 바뀌는
것을 봤습니다. 그는 진리라고 믿었던 천동설이 잘못된 이론이며 지구와 금성, 목성이 태양을 공전하고 있다는 지동설이 사실임을 확신했습니다.
봄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생명의 찬란한 아름다움이 온 땅을 덮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만물의 법칙 속에 새싹을 피우고 줄기를 내리고 새 옷을 갈아입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네 삶의 뒷모습은 여전히 겨울밤 외로운 굴뚝의 연기 같아 보입니다.
그럴 땐 말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장막을 나와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지 않지만 일정하게 움직이는 하늘의 별들 사이로 쓰인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보십시오. 그때 우리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던 불가능의 고정관념이 깨어지고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 편지가 쓰일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전담양 목사(고양 임마누엘교회)
비교당하는 봄꽃
도보 15분 거리 장소에서 회의가 열려 둑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벚나무에 꽃망울이 맺혀 곧 피어날 기세였습니다. 바닥엔 노란 민들레꽃과
하얀 냉이꽃, 파란 봄까치꽃이 가득 피었습니다.
봄꽃을 보며 미국 유학 초창기 기숙사 화단에 핀 작은 야생화 한 송이를 꺾으려다 할머니께 혼난 기억이 났습니다. 야생화도 소중하니 꺾지 말라는 말에 연신 “쏘리(sorry)”라고 말하며 얼른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들꽃 하나 보기 힘들었기에 할머니를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습니다.
봄꽃은 참 귀한 선물입니다. 봄꽃 중에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 불렀고 철쭉은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느 들꽃도 참꽃이나 개꽃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꽃들도 서로를 그렇게 비교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철쭉은 철쭉대로 아름답습니다. 들꽃은 들꽃만의, 벚꽃은 벚꽃만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봄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감사하고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독수리 신앙
‘공작새·앵무새·통닭·독수리 신앙’이 있습니다. 날지 못하는 공작새는 수려한 날개 빛만 자랑하려 합니다. 열매 없이 이파리만 무성한 나무 같습니다. 앵무새는 가지에 걸터앉아 수다만 늘어놓습니다. 통닭은 생명감을 잃고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통닭 신앙은 고난의 시기에 “쨍하고 해 뜰 날이 오겠지” 하면서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신앙입니다.
독수리 신앙은 고난의 시기에 간절한 예배와 기도의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는 신앙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을 독수리처럼 강하게 만드는 훈련소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바람을 타는 법과 날갯짓을 가르치며 독수리처럼 하늘의 제왕이 되라고 하십니다. 고난의 바람이 불 때 공작새와 앵무새 신앙의 허영을 벗어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로 힘껏 날갯짓을 해 독수리처럼 날아올라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
사랑의 다른 의미
즐겁게 춤을 춘 것도 아닌데, 그대로 멈춰버린 것은 맞다 싶습니다. 당연하다 여겼던 일상이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그냥 멈춰 선 것이
아니라 중심축을 잃은 팽이처럼 내남없이 세상이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교회도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한 달여 모이지를 못하고 있으니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지요.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하던 중 문득 우리보다 더 어려운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같은 지역에 미자립교회가 13곳 있습니다. 한 달 월세를 보태는 마음으로 100만원씩 전하기로 했습니다. 그 일을 의논하는 자리, 우리도 어려운데 주저하는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마음속에 찾아드는 같은 생각을 지운 것은 그와 다른 두 가지 생각이었습니다.
‘어려울 때 못하면 넉넉해도 못한다’는 것과,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도우려는 교회보다 빚 갚을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순간 슬며시 우리 생각을 거들고 있는 분은 주님이시다 싶었습니다. 고통의 끝자리, 십자가에서 사랑을 택하신 주님이 빙긋 웃으신다 싶었으니까요.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현자 타임
젊은이들의 신조어 중에 ‘현타 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지금 전 세계 여러 나라가 강 건너 불구경하다가 갑자기 ‘현타’가 온 형국입니다. 적당히 넘어가겠지 생각했다가 갑자기 보건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두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전 세계 열방의 공포와 대응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을 생각합니다. 주님은 내가 올라간 그대로 다시 이 땅에 내려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준비하는 자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늘 기억하고 준비된 상태를 말합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오는 것을 알고 기름을 늘 준비해 두었습니다. 신랑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갑자기 현타가 온 미련한 처녀들과 달랐습니다. 재림의 그날을 기대하며 살아갑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이성준 목사(인천 수정성결교회)
지금이 기회
인생은 후회의 연속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가장 많이 되새기는 것이 후회가 아닐까요. 호주의 브로니 웨어는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입니다. 그는 임종을 앞둔
암 환자들을 12주 동안 유심히 살핀 후 사례를 모아 책을 발간했습니다. 그는 책에서 ‘사람이 죽기 전 대부분 후회하는 것 다섯 가지’를 모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한 삶을 사는 용기가 필요했는데 그걸 못했다. 그렇게 너무 열심히 살 필요가 없었는데….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용기가 필요했는데 주저했다. 친구를 좀 더 자주 만났어야 했는데…. 좀 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했어야 했는데 주저했다.
시간과 대인관계를, 환경을 고귀한 선물이라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헐값의 상품으로 낭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여기서 갈립니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고성능 백신입니다. 세 가지 금이 있다고 합니다. 황금 소금 지금입니다. 셋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 지금이라고 합니다. 호흡이 있을 때 지금 실천해야 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김상길 목사(대전순복음교회)
우리를 향한 아버지 생각
언젠가 ‘태풍’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강한 바람과 쏟아지는 비, 번개와 파도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풍이 인간에게
끼치는 유익도 많다고 합니다.
첫째로 지구의 온도를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게 균형을 맞춰주고, 둘째로 물이 부족한 지역에 많은 비를 내려 생명이 자라나게 하며, 셋째로 강한 바람을 일으켜 해수면을 뒤집고 순환시켜 적조를 없애고 플랑크톤을 끌어올려 생태계를 활성화한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의 현장 속에 지금 태풍이 붑니다. 그 바람은 파괴의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김입니다. 땅을 바라보던 우리가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게 하고 메마른 마음에 은혜와 위로의 비를 뿌려줍니다.
굳어져 있던 우리 마음을 뒤집어 불신과 염려, 두려움의 적조를 없애주시고, 달리다굼의 역사로 우리 믿음을 성령으로 살아나게 하십니다. 선하신 섭리로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시들어야 할 것은 시들 것이요, 살아날 것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전담양 목사(고양 임마누엘교회)
색깔 품은 빛
전도사 시절 소년부에서 빛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한 아이가 “해와 달, 별이 넷째 날 만들어졌는데, 어떻게 빛이 첫째 날 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참 좋은 질문이어서 답변을 하고 설교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빛이 먼저 있어야, 전등처럼 그 빛을 비출 해와 달과 별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해줬습니다.
천지를 창조할 때 만든 빛은 정확히 말하면 온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입니다. 우리는 그중 아주 작은 영역의 빛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 빛을 가시광선이라고 합니다. 빨간색 밖에 있는 적외선도 볼 수 없고, 보라색 밖의 자외선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밝음과 따뜻함뿐 아니라 색깔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가시광선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색이 있습니다. 색을 보며 즐거워하는 피조물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색을 가진 열대어라도 서로 감탄하진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수많은 색을 만들어 온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했습니다. 이제 봄 색깔로 온 세상이 물들 것입니다. 색깔의 선물을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선량한 목소리
올리버 골드스미스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길에서 위험에 처한 한 여성이 있었다. 여성은 어떤 남자에게 심한 욕설을 들으며 구타를
당했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나중에 경찰이 이곳에
오자 사람들은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했다. ‘남자의 말을 들어보니 여자가 잘못한 것 같았어요.’, ‘이 시간에 나오면 위험하니 여자 잘못이에요.’, ‘도와달라고만 했으면 도와줄 수도 있었을 텐데.’ 여자가 맞는 모습을 보고 그냥 있던 사람들은 선량한 방관자가 아닌 범죄자에 동조하는 시민이었을 뿐이다.”
올리버는 이 글을 통해 “침묵은 동의를 뜻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훗날 골드스미스의
법칙으로 불리며 많은 사례에 인용되었습니다.
흑인들의 인권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마틴 루터 킹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악에 대해서 항의를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실제로 악에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는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악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뿐이다.”
사회의 부조리함과 잘못된 사항들에 대해서 우리들은 당당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고, 누군가는 대신 해주겠지 라는 생각 대신 믿음을 따라 움직이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이웃의 어려움을 모른 체 방관하지 않고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게 하소서.
양심에서 도우라고 한 사람을 돕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도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전도의 비법
어떤 유능한 신입영업사원이 중요한 고객과 미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건만 성사되면 엄청난
실적을 올릴 수 있었기에 열과 성을 다해 자료를 준비하고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고객은 막판에 계약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돌렸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신입사원은 회사로 돌아와 상사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정말 자신 있었는데 놓쳤습니다. 거의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왜 실패했을까요? 아무리 열심히 물가로 말을 끌고 가도 역시 물을 먹일 순 없기 때문일까요?”
그러자 상사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생각만 조금 바꾸면 훨씬 더 나은 실적을 올릴 수 있을 걸세. 잘 듣게, 우리의 목적은 고객을 물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목이 말라 물을 찾게 하는 것이라네.”
상사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신입사원은 이후 지역에서 가장 많은 계약을 성사시키는 사원이 되었습니다.
외적인 보상으로 억지로 끌고 오는 전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참 진리가 무엇인지, 바른 믿음이 무엇인지 먼저 보여주고 타는 목마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로 인도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제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셔서 많은 열매 맺게
하소서.
복음을 전할 때 사탄도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성령님을 의지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직접 찾아가라
‘언어를 익히는 가장 빠른 방법’에 대해서 학자들이 연구를 했습니다. 조사 결과 가장 빠른
방법은 ‘사람과 일대일로 대면해서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가장 느린 방법은 ‘비디오나 오디오 교재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효과가 훨씬 미미했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결과 대로 엄마와 오랜 시간 있으면서 실제 대화를 하는 듯한 말을 많이 듣는 아기가 말도 빨리 배웠고, 자라면서도 어휘력이 아주 높았습니다. 그러나 어학교재나 교육비디오를
활용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말을 배우는 속도가 늦었으며 자라면서도 집중력 저하와 같은 안 좋은 부작용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어휘력을 위해서는 전문가가 만든 영상이나 교재를 주는 것보다도 엄마가 함께 대화를 해주고 놀아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온라인 예배가 발달하고 메신저 채팅 기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가 모이고 함께 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의 신앙을
나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고 싶다면, 또 다른 성도들을 진정한 제자로 양육하고 싶다면 모이기를 힘쓰고, 먼저
찾아가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모이기를 등한히 해 신앙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소서.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무조건 교회에 출석해 예배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한 표의 중요성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한 표’라는 글에 나오는 자료입니다.
1645년에 영국에서의 한 표는 올리버 크롬웰에게 영국의 지배권을 주었습니다. 그는 영국에
혁명을 일으켰고, 또 혁명에 의해 죽었습니다.
1776년에 미국에서의 한 표는 미국이 독일어 대신 영어를 사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만약
이 한 표가 없었더라면 지금 미국은 독일어를 쓰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1845년 텍사스에서의 한 표는 텍사스가 연방정부에 가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한 표가
없었다면 지금도 텍사스는 미국에 속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875년 프랑스에서 한 표는 왕정에서 공화정 체제로 바꾸었습니다.
1923년에 독일에서의 한 표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나찌당의 대표 자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역사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입니다.
이처럼 때론 한 사람의 투표가 역사에 있어 중대한 변화를 가져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표는 곧 한 사람의 중요성을 뜻합니다. 그렇듯 말씀을 전하는 한 사람의 변화가 엄청나게 많은 생명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말씀을
따라 변화되고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지극히 적은 것도 주님 안에서는 존중하는 성숙한 삶을 살게
하소서.
한 사람이 역사와 환경과 상황을 바꿀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천국을 바랄 자격
강에서 우렁을 잡아먹으며 사는 두루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못 보던 하얀 새가 강가로 날아왔습니다. 두루미가 그 새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묻자 그 새는 자기가 천국에서 날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천국이라는 곳이 정말 있구나... 그런데 거기는 어때?
정말 천국이 그렇게 좋은 곳이니? 여기보다 훨씬 좋아?”
“그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천국에서 온 새는 두루미에게 천국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천국의 이야기를
넋놓고 듣던 두루미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천국에도 우렁이 있니?”
“아니, 천국에 우렁이는 없어. 대신 훨씬 좋은
것들이 많지.”
그러자 두루미는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됐어, 그럼 난 안 갈래. 천국이든 뭐든 나는
우렁만 있으면 그만이거든.”
천국을 정말로 사모하며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의 것들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보다 귀하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말이 아닌 삶으로 천국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이 땅의 생활에 연연하지 않고 천국을
소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이 땅을 떠난다 할지라도 조금도 두려움과 아쉬움이 없게 삽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탐욕에 눈이 멀 때
제나라의 황제 경공에게는 세 명의 호위무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뛰어난 무술로 많은 백성이 존경하고 왕의 신임이 두터워 점점 명망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왕의 명령도 무시한 채 횡포를 일삼았습니다.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고 있었던 경공이나 세 무사의 실력과 세가 만만치 않아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공자도 인정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안영이 자신이 그 일을 맡겠다며 왕을 안심시켰습니다. 다음날
안영은 세 무사를 궁으로 불러 복숭아 두 개를 주며 말했습니다.
“황제만 먹을 수 있는 궁 후원에서 수확한 복숭아네, 수가 모자라 특별히 두 개만 하사할
테니 자네들이 공을 따져 알아서 나누게나.”
세 무사는 서로 자기가 복숭아를 가져야 한다고 말다툼을 벌이다 급기야 칼을 꺼냈고,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때문에 복숭아 두 개로 세 사람을 죽인다는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라는 말이 생겨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 때 작은 복숭아 하나로도 생명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삶을
하찮은 욕심으로 버리지 말고 주님의 은혜를 위한 일로 사용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주님 외에는 그 무엇도 소망하지 않는 성숙한 믿음을 주소서.
내 안에 주님만 영광 받으시길 원하는 강렬한 마음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진실의 가치
페르시아의 황제 코스로스가 신하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좋은 황제인지 궁금하오. 그대들의 생각을 솔직히 말해주시오. 듣고서 일리가 있으면 진귀한 보석을 하사하겠소.”
코스로스 황제는 자존심이 매우 강했기에 신하들은 보석이나 받으려고 그럴듯하게 아첨을 했습니다. 그러나
신하 중 가장 지혜로운 엘림은 달랐습니다.
“진실을 어찌 돈이나 보석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그저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폐하는 향략에 너무 많은 예산을 쓰고 계십니다. 그로 인한 세금으로 백성들이 힘들어하고
있으니 그 부분만 신경을 쓰시면 성군이 되실 것입니다.”
황제는 엘림을 총리로 임명하고 나머지 신하들에게는 보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몇몇
신하들이 보석을 팔러 갔는데 상인들이 가짜라고 했다며 왕을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그대들이 나에게 거짓 조언을 했기에 나도 가짜 보석을 주었네, 뭐가 잘못됐나?”
진리의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소중한 믿음을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마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진실된 삶을 살며 사람들에게 진실 되게 행동해 신뢰받게 하소서.
하나님께 서원하고 구하는 기도가 어떤 마음인지 살피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아직 할 수 있는 일
교통사고로 하반신마비가 된 한 남자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하반신 마비가 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1만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이 9천 가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천 가지를 아쉬워하며 평생 살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가능한 9천 가지를 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오로지 선택은 나의 몫이지요.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 내 인생의 길목에 큰 바위가 놓여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 올라갔을 때 저 멀리 아름다운 지평선이 보일지 누가 알겠습니까? 지금 보기엔
엄청 커 보이지만 막상 올라가면 별 거 아닐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저는 선택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이 사실 한 가지를 기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여러분이 그 일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입니다.”
남자의 이 글은 베스트셀러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도 실렸고, 다른 많은 글들보다
훨씬 사람들의 많은 응원을 받았습니다.
가진 것에 상관없이,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에
상관없이, 아직 할 수 있는 많은 일이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없는 것에 마음 아파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지난날 극심히 어려웠을 때 어떻게 그 어려움을 통과했는지 생각해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