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 49: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오늘은 스불론에게 주어진 축복을 살펴보면서 받지 못한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스불론에게 주어진 축복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창 49: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스불론은 야곱의 몇 번째 아들입니까?
큰 아들은 ⓵르우벤이고요? 둘째는 ⓶시므온, 그릭 셋째는 ⓷레위, 넷째가 ⓸유다. 야곱의 다섯째 ⓹아들은 누굽니까?
성경에 이런 말씀을 스불론의 출생과 관련된 말씀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창 30:19-20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스불론이 몇 째라고 합니까?
몇째라는 말씀은 없지만 내가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라는 말씀을 보면 스불론은 몇째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까? 야곱의 아들 중 몇 번째라고는 나오지 않고요 야곱의 아내 레아에게 여섯 번째 아들이다. 그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야곱의 축복을 들으면서 스불론이 몇 번째 축복의 언급이 됨을 보게 됩니까? 다섯 번째로요. 그럼 여섯 번째 아들이라면 다섯 번째는 누구이고 왜 야곱이 그 다섯째 아들보다 스불론 여섯 번째 아들을 먼저 언급하였는지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그 이유와 결과들을 함께 좀 생각을 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게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야곱의 네 아들의 축복을 살펴 보았고요,
오늘은 다섯 번째 야곱의 축복을 살펴보게 될 것인데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은 단이라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다섯 번째 축복은 누가 받아야 됩니까? 단이죠.
그런데 이곳에 야곱의 자식에 대한 축복의 기록에서 단은 몇 번째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야곱이 아들들을 축복하는 순서를 보면 이렇습니다.
⓵르우벤, ⓶시므온, ⓷레위, ⓸유다, 그리고 지금 말씀 드리는 ⓹스불론, 그리고 ⓺잇사갈, 그 다음에 ⓻단이고요, 다음은 ⓼갓입니다, 다음이 ⓽아셀이고요.
그 다음은 ⓾납달리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⑪요셉이고요. 마지막이 ⑫베냐민입니다.
그 기록이 야곱의 아들들의 태어난 순서들입니까?
창세기 29장과 30장에 야곱의 아들들이 태어나는 기록이 나옵니다.
29:32절에 르우벤의 출생기록이 있고요.
33절에 시므온의 출생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34절에 레위의 출생기록이 있고요.
35절에 유다의 출생기록이 있고 난 다음에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30장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창 30:1-6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무슨내용입니까?
사랑은 많이 받으면서도 자식을 낳지 못 하는데 함께하는 시간도 없는데도 네명이나 아들을 낳는 것을 본 라헬이 무슨 말을 합니까?
나로 자식을 낳게 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겠다 하죠?
그래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사람의 방법을 동원한 것입니다.
내가 낳을 수가 없다면 나의 종을 통하여 자식을 얻으리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라헬의 몸종이었던 빌하를 남편에게 첩으로 줍니다.
그래서 얻은 아들이 누구라고 합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긋나게 하면서도 어떤 말을 합니까? 6절이죠.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예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은 라헬의 몸종으로부터 태어난 “단”입니다.
이스라엘 여인들 참 대단하죠? 자식을 얻으려고 자기 남편에게 자기 종을 첩으로 주는 일을 서슴치 않고 하는 것 저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라헬은 그 한 아들로 만족하지 않고 몸종 빌하의 처소로 야곱을 보냅니다.
그래서 빌하가 두 번째 아들을 낳습니다.
창 30:7-8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⓺납달리라 하였더라”
야곱의 여섯 번째 아들도 라헬의 몸종 빌하로부터 얻은 납달리입니다.
그런 모습을 본 누가 또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요?
이미 아들 네명을 낳았지만 이제 더 이상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동생 라헬은 자기 몸종을 통하여 자식을 낳는 것이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레아도 자기의 몸종을 야곱에게 첩으로 줍니다.
창 30:9절 부터의 말씀입니다.
창 30:9-11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⓻갓이라 하였으며”
그렇게 얻은 아들 이름이 갓입니다. 야곱의 일곱 번째 아들입니다.
그리고 12절 13절에 보면 레아의 몸종 실바가 두 번째 아들을 야곱에게서 낳고요 그 이름을 ⓼아셀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여덞번 째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레아가 다시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습니다.
창 30:17-18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⓽잇사갈이라 하였으며”
잇사갈을 몇 번째 아들이라고 합니까? 레아에게는 다섯 번째 아들이고요.
야곱에게는 몇 번째 아들입니까?
먼저 4명의 아들이 있고요. 라헬의 몸종 빌하가 두 아들을 단과 납달 리가 있고요.
그리고 레아의 몸종 실바가 낳은 두 아들 갓과 아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야곱에게는 몇 명의 아들이 있습니까? 8명
그럼 잇사갈은 야곱에게 몇 번째 아들입니까? 아홉 번째 아들입니다.
그리고 20절에 보면 레아는 여섯 번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⓾스불론이라고 하였고요.
그후 레아는 딸 디나를 낳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태어난 야곱의 아들이 라헬을 통해 얻은 ⑪요셉과 ⑫베냐민입니다.
이렇게 하여서 이스라엘에게 딸 하나에 열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다시 야곱의 아들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표를 올립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무엇 때문에 한 사람의 가정사를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하였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시지 않으셨나요?
오늘날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니죠 예수님께서 초림 하셨을 때를 생각 해 보아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내셨을 때 그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두가지 목적이 있었죠?
하나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었고요.
다른 하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요,
이삭은 다시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이 둘째 아들로 태어 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열두 아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와서 허락하신 가나안땅에 열두 지파들로 정착하게 됩니다.
그 후 오래지 않아서 남쪽에는 유다와 베냐민으로 그리고 나머지 열 지파는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으로 북쪽으로 이렇게 남북으로 나라는 분열됩니다.
그리고 그 이름도 성경에는 없지만 북방 이스라엘 남방 유다 이렇게 불려졌습니다.
그리고 북쪽도 남쪽도 다 멸망하게 되었고요.
고레스의 명에 의하여 멸망당한 이스라엘이 돌아 갔을 때에는 이스라엘민족이라는 이름으로도 기록되었지만. 유다인이라는 이름이 쓰여진 것을 보게 됩니다.
더욱이 유다인의 수난사를 기록한 에스더서에는 유다인이라는 명칭이 43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남방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예레미아에 의하여서도 6번이나 기록되어 있고요.
예수님 오셨을 때는 유다인이 아닌 유대인으로 기록이 나옵니다.
신약성경에 무려 183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이름과 함께 유다인 혹은 유대인으로 기록되어 있을까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태인이라고들 부르죠?
그게 무슨 의미 입니까?
이스라엘 열두 지파중에 제대로 남아 있는 민족은 누구 뿐이라는 말씀입니까?
유태인들 뿐이다.
물론 계수에 포함되지 않았던 레위 인들도 있었습니다.
12아들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가 두 아들 혹은 세 아들의 역사로 남아 있는 것을 봅니다.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사람의 방법으로 그렇게 자식을 낳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역사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사람의 생각으로 무엇인가 이루어 보려는 꿈들이 있다면 포기하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보다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십니까?
우리의 필요들도 더 잘 아실까요? 우리의 영적건강을 위하여서 무엇이 필요한지도 하나님이 더 잘 아실까요?
그럼 여러분들의 잔꽤 들을 다 버리고 오로지 말씀에 순종만을 하게 되길 바랍니다.
야곱의 아들들 축복에 관한 말씀을 읽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누구에 대한 축복을 읽다 왔습니까? 스불론
창 49: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스불론은 야곱의 몇 번째 아들이라고 이해하셨습니까?
또 보여 드립니다.
열 번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축복은 몇 번째 받았습니까? 다섯 번째로 받았습니다.
왜 그런지는 우리 성도님들이 생각해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야곱은 둘째이면서도 아버지의 장자의 축복을 속여서 받았고요.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할 때도 둘째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열 번째 아들을 다섯 번째로 축복을 한 기록이 있습니다.
축복을 하면서 그는 어디에 거주할 것이라 합니까?
해변에 거주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시돈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 합니다.
아마도 열두 아들에게 축복을 하면서 어디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기업으로 받을 땅을 구체적으로 언급된 아들은 스불론 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아름다운 축복의 내용들은 많지만 구체적으로 땅 어디를 얻을 것이라는 말씀은 없었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스불론 지파들은 무엇이 확정된 지파입니까?
아버지에 의하여서 어느 곳에 살게 될 것이라 것이 미리 받은 셈이죠.
알지 못하고 가보지 못하고 밟아 보지 못한 땅을 미리 받았다.
자식으로서 영광입니까? 엄청난 복이라고 생각이 듭니까? 그렇죠?
그런 백성들 또 있습니까?
시편기자를 통해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시 37:9-11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어떤 사람들에게 땅이 주어질 것이라 합니까?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 그리고요 온유한 자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우리 성도님들 세상을 소망하시지 말고요 여호와를 소망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온유한 자들로 살아가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스불론의 자손들이 아버지의 축복처럼 바다를 끼고 있는 시돈까지의 지역을 기업으로 받았을까요?
후에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을 점령하고 기업으로 받은 열두지파의 지도를 다시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시돈은 제일 꼭대기의 빨간 원이 시돈입니다.
그리고 스불론은 어디인지 보이시나요?
빨간 작은 원이 있는 색깔이 스볼론입니다.
해변 땅은 아셀 지파가 차지하였고요 아셀지파도 시돈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불론은 므낫세와 잇사갈 그리고 북쪽으로는 납달리 서쪽으로는 아셀 사이에 그렇게 크지 않은 부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스불론이 받을 것이라는 지역을 아셀이 차지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왜 이렇게 결론이 났을까요?
그것도 우리 성도님들께서 연구해 보시길 바랍니다.
힌트를 드린다면 저주 받은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지파가 되었다는 것을 참고로 하시고요.
이제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온유한 자들이 땅을 차지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도 직접 그런 말씀하셨습니다.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어떤 사람들이 온유한 사람들일까요?
예수께서 이런 말씀하셨죠?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우리가 온유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주신 말씀처럼 생각이 되나요?
온유하신 예수그리스도께 배워라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저는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멘입니까?
안식일 지키라고 하면 아니다 일요일 지키는 것이 더 낫다 이런 말 말고요, 그냥 안식일을 지키고요,
십일금을 내어라 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우리 생활 걱정하지 말고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고요.
화요일 저녁 그리고 금요일 저녁도 예배드리라고 하면 아니 그것은 성경에 없는대요 하지 말고요 그대로 순종하고요.
전도하라 하면 듣는 사람 없는데요 하지 말고 듣던지 아니 듣던지 전도하고요.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라 하면 섬기는 사람들로 살고요.
아니 그렇게 하고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하시겠습니까?
그 결과의 책임은 다 하나님께서 지실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온유하고 겸손히 순종하여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시온산에 반드시 서게 되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