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 방송과 북핵 제재의 효과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지난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핵실험 이틀 후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박 대통령 말대로 북한 핵문제의 성격이 변화되었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다.
김정은은 “경제강국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는 경제에 방점을 두는 신년사를 발표했다. 그러나 닷새 뒤 북한은 “시험용 수소탄 폭파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작년 10월 당 창건 70주년 행사를 계기로 잠시 잊고 있었던 ‘핵·경제 병진노선’이라는 김정은의 브랜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면 ‘수소탄’에 대한 제재는 훨씬 강해질 텐데 이 같은 일을 벌이는 김정은의 속내는 무엇일까? 필자는 북한이 작년 10월부터 제기한 미·북 평화협정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1993년 3월 북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이번 4차 핵실험까지의 과정을 뒤돌아보면, 핵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핵 활동은 중지되거나 핵능력 강화 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협상이 깨지거나 제재가 시작되면 북핵 활동은 오히려 강화됐다. 핵실험이 차수를 더해 갈 때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도 강화되었다. 이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핵능력이 오히려 강화되어왔다는 걸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그런 점에서 북핵능력 강화는 곧 북핵 제재와 표리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클린턴 정부 시기 미국은 협상을 통해 1994년 ‘미·북 제네바합의’를 만들었다. 그 합의로 북핵 활동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부시 정부가 ‘제네바합의’를 깨자 북한은 핵활동을 재개했다. 결국 이를 막기 위해 6자회담이 열렸고, 2005년 북핵 문제 해결의 로드맵이라 할 수 있는 ‘9·19공동성명’이 채택됐다. 그런데 성명 발표 다음날 부시 정부가 마카오 소재 한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 대북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그러자 북한은 핵활동을 재개하고,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에 이어 10월9일 1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핵실험 후 부시 정부는 북한과 양자접촉을 시작했다. 북한의 요구 사항이 반영된 합의들이 도출되면서 북핵 활동이 다시금 중단되었다.
그런데 1차 핵실험 후 부시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압박과 제재가 북한의 핵실험을 자초했다는 판단이 섰던지, 2006년 11월 하노이 한·미정상회담 때 부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리가 김정일을 만나 한반도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시키는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한반도 전쟁의 공식적 종료’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출발점이다. 부시는 2007년 9월 시드니 한·미정상회담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평화협정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의 이런 입장은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 4항에 반영되었다.
현재 미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은 오바마 정부 1기 국무장관 취임 직후인 2009년 2월, “북핵 해결을 위해 미·북 수교와 평화협정을 북한과 논의하겠다”고 했다. 2차 북핵실험(2009·5·25) 후 대북제재가 진행 중인 7월과 11월에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러나 힐러리의 구상은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작년 10월부터 북한이 미·북 평화협정을 다시 들고 나왔다. 이런 점에서 이번 4차 핵실험도 미 차기정부와의 협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 수 있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유엔 대북제재 논의가 시작도 안된 시점에 정부는 서둘러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이런 남한의 독자 응징은 핵문제와 남북문제를 혼탕시켜 국제 제재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또한 남북간 군사긴장을 고조시켜 국민 불안을 가중시킬 것이다. 무엇보다 남북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여지를 없애버린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다. 정부는 북핵 제재가 오히려 북핵 능력을 강화시켜 왔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장차 협상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퇴로도 열어두기 바란다.(2016.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