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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도래기재~태백산~꽃방석 고개[화방재. 어산재(2025. 01. 11(토)~01. 12(일)]
□ 때 : 2025. 01. 11(토)~01. 12(일)
□ 곳 : 도래기재~구룡산~고직령~곰넘이재~신선봉~깃대배기봉~부쇠봉[부소봉] 갈림길~하제단~천제단~장군봉~유일사 갈림길~산령각~사길령~꽃방석 고개[화방재]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2명
□ 날씨 : 햇볕
□ 길 : 눈길+흙길
□ 간추린 발자취(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2:47 도래기재 나섬.
○ ?? 구룡산(1345m-‘푯돌’)
○ 04:15 고직령
○ 06:00 향이동 갈림길
○ 06:45 곰넘이재, 참새골 들머리
○ 07:43~08:05 아침밥
○ 08:18 신선봉(1185.0m-‘푯돌’ - 춘양면/춘양면 이장 협의회), 「경주 손씨 무덤」 푯돌.
○ 08;55~09:15 머묾.
○ 10:20~10:25 머묾.
○ 11:05~11:10 머묾.
○ 11:54 깃대배기봉 푯돌,
○ 12:05(?) 깃대배기봉(1368m-‘산림청 푯돌’)
○ 12:10~12:15 머묾.
○ 13:55 부쇠봉 갈림길
○ 14:15~14:20 하제단. 머묾.
○ 14:28~14:3` 태백산 (푯돌), 천제단. 머묾.
○ 14:35 장군봉(1557m-‘푯돌’)
○ 15:15 유일사 갈림길(1260m).
○ 16:12 산령각,
○ 16:15 사길령
○ 16:35 꽃방석 고개[화방재](935m-‘푯말’). 산행 마침
도래기재
도래기재
도래기재
경주 최씨 무덤
신선봉 바로 아래 있다.
대간 길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90도쯤 꺾여 내려간다.
신선봉
'천하 명당 조성 십승지'라고 적어 놓았다
눈이 언덕을 이룬 골짜기 사이를 걷는다
가짜 깃대배기봉
푯돌을 엉뚱한 곳에 세웠다
진짜 깃대배기봉은 여기서 부쇠봉 쪽으로 조금 더 가야 있다.
진짜 깃대배기봉
산림청에서 세운 푯돌이 있다
부쇠봉 갈림길
지친 나머지 200m 떨어진 부쇠봉에 오르지 않았다
하제단
태백산
천제단과 태백산 푯돌
뒤돌아 본 대간 산등성(이)
문수봉이 보인다
당겨본 문수봉
천제단
장군봉에 있는 천제단
뒤로 함백산이 보인다
뒤로 함백산이 보인다
산령각
사길령
사길령
사길령 푯돌
화방재
꽃방석 고개[화방재]
꽃방석 고개
□ 줄거리(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아내의 ‘복장 검사’를 통과한 뒤 집을 나섰다.
저수재~죽령 구간 걸을 때 오른쪽 발목 부위가 시큰거렸는데, 지난 3주 동안 그 후유증으로 불편을 겪었던 터라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22:40쯤 000 역을 떠난 버스는 3시간 53분쯤 뒤 도래기재에 닿았다.
도래기재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지 않았으나 회장 님 당부대로 처음부터 사갈[슈타이크 아이젠, 아이젠]을 신었다.
도래기재 푯말에서 사진을 찍었으나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도래기재를 나서(02:47) 구룡산을 거쳐(구룡산 도착 시간 미기록) 1시간 28분쯤 뒤 고직령에 닿았다.
내 기록이 엉터리였는지 구룡산과 고직령이 앞뒤가 바뀌어 있었다.
고직령쯤부터 승승장구 님이 맨 뒤에 처진 나를 동행했다. “앞에 가라”고 했으나 계속 나를 앞세우고 걸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고직령에서 1시간 45분쯤 뒤 길 푯말(→향이동 2km, ↑곰넘이재 3.65km, ↓구룡산 1.25km)이 있는 ‘향이동’ 갈림길에 닿았다.(06:00)
향이동 갈림길에서 45분쯤 뒤 곰넘이재에 닿았다.(06:45)
곰넘이재는 “이 고갯길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 특히 태백산 천제를 지내려 가는 관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고갯길. 문헌 영가지(永嘉誌)에 웅현(熊峴)이라고 표기돠어 있던 것을...우리말 ‘곰넘이재’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한다.
곰넘이재에서 거의 1시간을 걸은 뒤 산등성(이) 오른쪽 비탈에서 바람을 피하여 아침밥을 먹었다.
준비해온 빵은 꽁꽁 얼어붙고, 얼음 빵을 씹었더니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따뜻한 물을 두어 모금 마셨다.
그 과정에서 보온 물병(stanley) 뚜껑을 잘못 놓아, 뚜껑이 비탈면을 타고 아래로 떼굴떼굴 굴려 내려가 버렸다.
20년쯤 애지중지하던 물병이었는데...
승승장구 님이 굴러간 뚜껑을 찾으러 5~6m쯤 비탈을 내려갔다.
나는 포기한 상태라 “올라 오라”고 했다.
결국 병 뚜껑은 신선봉 언저리에 희사한 꼴이 되었다.
22분쯤 뒤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길을 나서(08:05) 13분쯤 뒤 신선봉(1185.0m-‘푯돌’)에 닿았다.(08:18)
푯돌은 ‘춘양면, 춘양면 이장 협의회’ 명의로 세웠고, ‘천하 명당 조선 십승지’라고 써놓았다.
신성봉 바로 아래에는 ‘경주 최씨’ 무덤과 비석이 서 있다.
대간 길은 신선봉에서 되돌아 나와 거의 90도쯤 오른쪽으로 굽어 내려선다.
신선봉에서 정확하지 않은 위치에 세워진 ‘깃대배기봉’ 푯돌에 이르기까지(11:54) 무려 무려 3번이나 도합 30분쯤 쉬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허기가 져 기운이 빠졌던 것이다.
가짜 ‘깃대배기봉’ 푯돌에서 11분쯤 걸려 진짜 깃대배기봉(1368m-‘산림청 푯돌’)에 닿았다.(12:05?)
눈이 많이 쌓여 있기도 했지만, 지친 걸음으로 말미암아, 평소 3~4분 안에 닿을 수 있는 거리를 10분 넘게 걸렸던 것이다.
깃대배기봉에서 1시간 50분쯤 뒤-중간에 5분쯤 쉰 시간 포함- 부쇠봉 갈림길에 닿았다.(13:55)
이 갈림길에서 부쇠봉까지는 불과 200m. 대간 길 걸으면서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던 부쇠봉을 지친 나머지 오르지 않았다.
지치지 않고, 시간이 지체되지 않았다면 부쇠봉 오른 뒤 문수봉까지 갔다 올 것을...
전에는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부쇠봉에 올라서면 눈 아래 문수봉, 소문수봉 따위 전경이 아름다운데, 가지 않아 서운했다.
부쇠봉 갈림길에서 20분쯤 뒤 하제단에 닿았다.(14:15)
권재구 대장에게 물 1병을 얻어 벌컥벌컥 마셨다. 겨울에 찬물을 먹지 않는데, 따뜻한 물은 다 먹고 없었으니 찬물도 감지덕지... 왜 그렇게 갈증을 느꼈는지...
5분쯤 머문 뒤 하제단을 나서(14:20) 8분쯤 뒤 천제단에 닿았다.(14:28)
천제단 아래 ‘태백산’ 푯돌에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늘어서 있었다.
hong 님과 권 대장 누구도 줄 서서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아 인물 사진을 찍지 못했다.
3분쯤 머문 뒤 천제단을 나서(14:31) 4분쯤 뒤 장군봉(1557m-‘푯돌’)에 닿았다.(14:35)
장군봉에서 40분쯤 뒤 유일사 갈림길(1260m)에 닿았다.(15:15)
장군봉에서 유일사 갈림길 여기저기에는 주목이 많다.
죽은 주목도 있고, 사진 찍을 곳이 많은 곳이았으나 시간이 늦어 사진을 별로 찍지 않았다.
이 길에서는 앞쪽으로 함백산이 보이고, 함백산 왼쪽 풍력 발전단지, 함백산 너머에는 매봉 풍력단지가 잘 보인다.
유일사 갈림길에는 유일사 쉼터가 있고, 왼쬭으료 내려서면 유일사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유일사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대간 길은 바로 나아가야 한다.
유일사 갈림길에서 57분쯤 뒤 산령각에 닿았다.(16:12)
산령각이 있는 곳은 “보부상이 수십 혹은 수백 명씩 대열을 이루어 계수(稽首)의 인솔 하에 넘어 다녔다.
산이 험하여 맹수와 산적 등이 많이 출몰하기에 그들은 고갯길의 무사 안전을 위하여 고갯마루에 당집을 짓고 제사를 올리게 되었으며 지금도 매년 음력 4월 15일 태백산 산령(山靈)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다.
현재 태백산 사길령 산령각계회(西吉嶺 山靈閣契會)에 보관 중인 천금록(千金錄)은 200여년 전부터 보부상들이 이곳 태백산 산령각에서 제사를 지낸 기록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유래가 없는 매우 귀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산령각이 서 있는 곳과 산령각이 의미 있는 곳이다.
산령각에서 사길령으로 가는 길은 산길[임도]처럼 길이 넓고 좋다.
내가 싫어하는 내리막이다.
산령각에서 3분쯤 뒤 사길령에 닿았다.(16:15)
사길령 일대에는 산딸기나무와 수리딸기(나무)가 많다.
전에 산딸기를 실컷 따먹은 기억이 있어 산딸기나무를 유심히 보았다.
사길령에서 20분쯤 뒤 꽃방석 고개에 닿아(16:35) 산행을 마쳤다.
‘꽃방석 고개’는 ‘화방재’, ‘어평재’, ‘징거리재’, ‘하비령’ 따위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어평재’ 라는 이름은 이 고개 “서쪽 기슭의 어평이라는 마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평이란, 태백산의 산신이 된 단종대왕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 땅(御坪)이다” 라고 해서 ‘어평리’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고개를 어평재라 불렀다는 유래도 있다“ 고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세조가 권력욕에 취해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영월로 귀양보낸 뒤 뒤주에 감금하고, 사약을 내려 독살시킨 아른 역사의 한 자락이 이곳 이름에 남아 있다.
가슴 아픈 이야기다.
언제나 생각하는 바이지만, 권력을 쥐기 위해 조카를 독살까지 시켰던 역사.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다.
권력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지친 나를 보듬어 준 승승장구 님. 맛있고 영양가 풍부한 ‘천애향”(?) 같은 과일과 비스켓, 초코렛을 아낌없이 내주었던 hong 님, 맛있는 밀감과 물까지 내줬던 권재구 대장 님!
무척 고맙고, 미안했다.
왼발이 불편하여, 사갈[아이젠]도 신지 않고 걸었던 hong 님 특히 고생하셨습니다.
두 분 덕분에 기운을 가다듬고 걸을 수 있었다.
발걸음 늦은 나를 끝까지 동행해준 두 분께 다시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맨 앞에서 눈길을 헤치고 길을 내어준 네오 대장 님 수고하셨고, 내가 늦어 오랫동안 기다렸던 대원 여러분께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모두 수고 많이 했다.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등산 참여 고심
지난 구간(저수재~묘적령~묘적봉~도솔봉~죽령)을 걸을 때 묘적령을 지난 뒤로 오른쪽 발목 부위가 시큰거려 불편했다.
그 뒤로 3주 내내 걷기 힘들고 불편해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 검사 결과 ”아무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고 나흘 치 약을 먹었다.
별 차도가 없어 도래기재~태백산~꽃방석 구간에 참여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움츠러 있었더니 가벼운 고뿔까지 겹쳤다.
가기 싫은 의원에 가서 약을 지어 먹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미정 님, 준모 님이 ”한의원에 가서 침 맞으라...“고 조언했다.
침을 잘 맞는 터라, 토요일(1/4)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심리적인 영향까지 겹쳐 발목이 한결 가벼워졌다.
태백산 구간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2. 복장 검사
몸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나를 두고 아내는 ”산에 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1/11(토)은 가시어머니[장모] 제삿날이었다.
처남, 처형, 처제네 식구들 모두가 시골에 있는 가시어머니 산소에 참배를 갔다. 나만 빠지고...
이래저래 미운털이 박힌 나를 두고 아내가 간섭하기 시작했다.
토요일 짐을 챙기는데 아내가 ‘복장 검사’를 하겠다 했다.
나는 검사니 검열이니 하는 말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편이다.
산에 다니기 40년. 복장 검사를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아내는 내의, 오리털 바지까지 입도록 강요했다.
”말 안 들으면 산에 못 간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고집 센 편인 나였지만, 속수무책으로 아내 말을 따랐다.
산행 내내 두툼한 옷에 따뜻하기는 했지만, 눈사람처럼 부푼 내 몸은 움직이기 많이 불편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용의 검사’(容儀 檢査)를 자주 했다.
당시에 난방 시설은 물론이고 몸을 씻을 시설과 뜨거운 물 자체가 귀했던 터라 아이들은 겨울이 되면 손발에 떼가 끼고 얼어 터지기 일쑤였다.
3~4월이 되면 선생님께서 대대적인 ‘용의 검사’를 한 뒤에 학교에서 200m쯤 거리에 있던 냇가로 학생들을 인솔하여 단체로 차가운 물에 손발을 씻게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상급생 ‘기율 부원’들이 등교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복장 검사’를 했다.
서슬 퍼렇던 ‘기율 부원’ 들의 거들먹거림이 아니꼬울 때도 있었다.
군대 생활 하면서는 자주 ‘군장 검열’을 했다.
3박 4일, 4박 5일, 때로는 일주일 단위 부대 훈련을 할 때 완전 군장한 병사들을 연병장에 모아 줄지어 서게 한 뒤 부대장의 일장 훈시와 이어지는 간부들의 ‘군장 검열’은 엄했다.
그래서 검열이나 검사 라는 말에 거부감이 많다.
3. 무모한 발걸음
어느 산악회에서 백두대간 길을 걸을 때였다.
2007. 1. 21(일) 도래기재~태백산~꽃방석고개[화방재] 구간을 걸었다.
내가 산에 다니면서 지도를 빠뜨리 않았다.
그런데 그날 유일사 갈림길에서 내가 가야 할 백두대간 길과 유일사 뒤로 보이는 산등성(이)를 견주어 봤다.
대간 길 보다 유일사 뒤로 보이는 산등성(이)이 더 높아 보였고, 그 길이 대간 길로 보였다.
백두대간이나 정맥 길 따위를 걷다 보면 둘레에 더 높은 산등성(이) 있다.
그러나 낮아도 맥이 이어지는 대간, 정맥, 기맥, 지맥 길인 경우가 있다.
등 가방[배낭]에 들어있던 지도도 살피지 않고 대뜸 유일사로 내려서 유일사 뒤에 있는 산등성(이)을 올랐다.
길도 없고 나뭇가지와 나무, 돌덩이에 무수히 부딪히면서도 무릎 위가지 오는 눈을 헤치고 미련스레 올랐다.
금방 닿을 것 같았던 산등성(이)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계속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에 있었다.
마치 사막에서 낙타를 몰고, 목적지를 좇아가는 대상(隊商)들이 만나는 신기루가 내가 그날 손과 발에 잡히지 않았던 산등성(이) 그것과 닮아 있을까? 아니 그것은 아득함 그 자체였다.
한 시간 넘게 무모한 헛일을 하다가 생각했다.
내가 이러다 실신할 수도 있겠구나, 쓰러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전에 이야기 했던, 하늘재~조령3관문~신선암봉~조령산~이우릿재[이화령] 구간을 걸을 때 뇌성벽력이 퍼붓는 길에 억지로 동행시켰던 여성과 같이 나선 것이다.
이러다 귀한 여성까지 사지로 내몰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여성은 생활력이 강했던 분이다.
쉬지 않고 일하는 분이다.
지금은 70줄에 들어섰는데, ‘해파랑길’ 따위를 걷고 있다.
나는 미련을 뒤로 하고 물러났다.
무려 1시간 16분 만에 유일사 갈림길에 되돌아와 정상적으로 유일사 갈림길~사길령~꽃방석 고개[화방재]로 걸었다.
지금 생각해도 큰일 날 뻔했던 하루였다.
그때 레키 지팡이가 고정되지 않아 불편했다.
그때 기록을 보았더니 도래기재~태백산~꽃방석 고개까지 9시간 58분 걸렸다.(헛걸음 1시간 16분 포함)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제법 빨리 걸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
4. 스탠리 보온병 뚜껑 떼굴떼굴
허기지는데 음식이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08:00 넘어 앞서가던 무쏘 꿈 님이 바람을 피해 요기를 하고 있었다.
몇 발 더 가다가 승승장구 님과 바람을 피하여 비탈에 앉아 빵을 먹는데 얼기도 했지만 목에 넘어가지 않아 두어 번 씹다가 그만 두었다.
목이 말라 따뜻한 물을 마시고 두어 번 더 마시고 보온병 뚜껑을 땅에 놓았는데, 아래고 떼굴떼굴 굴려 내려갔다.
나는 ‘저런...’ 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승승장구 님이 몇 발짝 보온병 뚜껑을 찾아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저만치 굴러갔을 것이나 찾지 말고 올라오세요...” 했다.
2007. 3. 10(토)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4기 32구간. 백복령~고적대~청옥산~두타산~댓재 구간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른바 ‘남진’할 때였다.
백복령을 나서 얼마 걷지 않았을 때였다.
적바림[메모]하는 종이가 바람에 날아 비탈을 따라 떼굴떼굴 굴러갔다.
내가 잡으러 가면 종이는 더 아래로 날아 가고, 내가 더 내려가면 종이는 더 아래로 내려갔다.
눈이 많이 쌓인 비탈길에서 종이는 잘도 굴러 내려갔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 기억이 있어 보온병 뚜껑을 더 찾아 내려가지 않았다.
스탠리(stanley) 보온병.
내가 35년쯤 단골로 다니는 코오롱스포츠 00점 여주인이 내게 특별히 선물한 것이다.
그 주인은 젊었을 때 일본 북알프스에도 갔다 오고, 산에도 많이 다녔으나 요즘은 산에 가는 일이 드물다 한다.
그 주인은 내가 옷이며 용품을 사러 가면 선물을 가득 담아 준다.
내가 뚜껑을 잃어 버렸다 하면 서운해 할 것이다.
벌써 20년 이상 사계절 빠지지 않고 애지중지하며 갖고 다녔던 보온병이다.
보온이 잘 되어 뜨거운 물을 넣으면 만 하루가 지나도 물이 뜨겁게 유지된다.
아깝지만 나를 버리고 가버린 보온병 뚜껑을 잊기로 했다.
새로 스탠리 보온병을 사야겠다.
5. 산딸기 밭
2009. 6. 28(일)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7기 24구간(도래기재~태백산~꽃방석 고개) 구간을 걸을 때 사길령 옆에 산딸기가 아주 많아 배불리 따먹었다.
산행하면서 뜻하지 않았던 오염되지 않은 순수 자연산 보양식을 공짜로 먹었다.
몇십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남을 만큼 많았다.
당시 산딸기를 같이 따먹었던 누군가는 “산딸기 먹었으니 이따 내려가서 소주 먹으면 ‘복분자주’ 먹은 거 된다...”고 하여 한바탕 웃었다.
그때 복분자 먹은 대원들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을 것이다.
6. 백두대간 등 예찬
백두대간이나 정맥, 기맥, 지맥을 걷다 보면 수많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이제 봉우리는, 오르막은 끝났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고 그러다 내리막이 나타난다.
조금 지나면 또 오르막이다.
처음에는 그런 오르내림에 당황하고 지치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흐름에 꽤 익숙해졌다.
마치 우리 인생의 궤적을 보는 듯하다.
처음 길을 나선 곳, 들머리는 어린 시절, 인생의 첫 출발지 있 수도 있고, 중간에 높은 봉우리는 한창 젊었을 때 청장년기, 또는 가장 성공한 시기. 날머리는 노년기에 비유할 수도 있다.
우리가 대간 길을 이어가면 한 구간에서 적어도 한 번은 찬란했던 청장년기를 맞을 수 있다.
오르막에서는 찬란한 미래를 그리며 오르는데 힘을 쏟고, 내리막에서는 화려했던(?) 과거를 돌아보고, 차분하고 의미있는 일에 집중해야 함을 느낀다.
7. 밥을 말아 놓고 남겼다
나는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 태어나 쌀 한 톨, 반찬 하나라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버릇이다.
이번 도래기재~태백산~꽃방석 고개 구간에서 음식이 목에 넘어가지 않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랬더니 허기가 졌다.
허기지면서도 음식은 잘 넘어가지 않았다.
식당에서 갈비탕이 나왔다.
허기진 나머지 갈비탕에 밥 한 공기를 다 부었다.
평소에 잘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깍두기와 배추김치를 넣은 갈비탕을 몇 숟가락 먹었는데 도저히 밥을 다 먹지 못해 제법 남겼다.
농사짓는 농부와 식당에, 내 자신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종업원이 왔기에 내가 밥을 남긴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밥과 반찬을 모조리 비워 음식물 찌꺼기로 처리하려고 그릇 하나에 담아갔다.
내 미안함이 조금 가시는 느낌이었다.
아래는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7기 24구간(2009. 6. 28. 일) 사진임.
첫댓글 차분하신 한길님과 듬직하신 대장님과의 긴시간 동행의 영광을 얻다니..
한구간을 마무리하다기보다
따뜻한 인생선배님 두분을 따박 따박 걷고 걷고 긴시간 고행을 하고나니
참 고마우신분들 이십니다
춥고 시린 엄청난길에 좌우로 버팀을 해주시니 은혜롭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을 기도 하는 마음으로 걸었어요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병환으로 응급입원 하시고 일상의 소소한 나의 일거리로 돌아와 그날의 하얀하루를 그려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입맛이 없어 허기졌는데, hong 님이 주신 맛과 비타민 듬뿍한 밀감과 촉촉한 초코칩, 초콜릿 덕분에
기운을 북돋워 걷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같이 걸으면서 내 존재가 든든하기는 고사하고 짐이 되었을 것입니디.
도화지에 한 구간 한 구간 빈칸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대간 길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흘린 땀과 무거운 발걸음이 나를 키우고 풍부하게 하는 과정이라 봅니다.
불어나는 구간과 함께 더 단단한 몸으로 가꾸고, 삶의 의미를 더 살찌우는 과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하루 빨리 아버님 병환 쾌차하실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시기 바랍니다.
한길님, 한 글자 한 글자 귀한 글을 읽는 동안
뭉클한 감동이 목구멍까지 차오릅니다.
장구한 시간을 한 길에 바친 분에게서 절로 우러나오는
삶의 애환이 농축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늦게까지 하산하지 않으셔서 걱정이 많이 되었고
함께 발걸음하지 못했음이 괜시리 죄송스럽습니다.
* 복장검열하신 사모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 스탠리말고 써모스로 갈아타셔요.
보온력은 비슷하고 훨씬 가벼워요.
대신 보온병 커버도 함께요ㅋ
* 2009년의 모습이나 지금 모습이나 변함없는 젊은이십니다👍👍👍
춥고 긴 구간, 수고많으셨습니다.
저희 낙동 19기의 로망이십니다~^^
알맹이 없는 무미건조한 말을 늘어놓아 민망합니다.
요즘 시대 상황이 영상 우선, 글은 뒷전, 그 글도 짤막한 단문이 대세인데,
지극히 주관적인 넋두리를 귀중한 공론장에 올릴 수 있는 가치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다 보니 늦게 되어 대원들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 없었고,
걱정 끼쳐드려 미안합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담지 못했습니다.
'복장 검열' 덕분에 걸음이 뒤뚱뒤뚱 불편하기는 했으나, 춥지는 않았습니다.
보온 물병은 추천하신 귀중한 정보를 바탕으로 써모스도 선택지 안에 두고 두 제품을 견주어 보겠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12시간 이상을 눈을 밟으며 걷는 산행이란, 마치
젊은날 뼈가 시린 냉골인 방에 돌아와 곤로 위에 양은냄비로 끓인 삼양라면만 먹던 일상과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라면만 먹다가 누군가 용돈이 생겼다고 6첩 반찬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공깃밥을 먹던 기억이, 하산해 낙동산학회 버스를 발견하던 순간과 무엇이 다를까~~ㅋㅋ
라면만 먹던 그 촌놈과 함께 목적지를 걷는 대형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시간이 있었으면 대간 길에서 조금 떨어진, 망경사에 가면 라면을 팔기도 하는데,
허기져서 그곳에 들를까 생각도 했습니다.
내가 중학생 시절 쯤 '삼양라면'이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촌놈들이 라면 사먹는 것도 호사에 속한 시절이었습니다.
무쏘꿈 님.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명당에 자리 잡아 식사하는 모습이 우아해 보였습니다.
내가 대원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걷는 내내 미안함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어두운 밤길.
그 길은 하얬습니다
고직령을 지나
제가 마지막인 줄 알았답니다.
볼 일 보고 올라 오니
랜턴 빛.
배낭 osprey stratus44
회(갈)색
어깨끈 뒷쪽 휴대용 의자
한길
왜 늦지?
궁금하였으나 산행기를 읽고
이해하였습니다.
정말 정말
수고많았습니다.
힘듦에 죄송합니다만
함백산 구간에서
또 한번 저의 모습 한 컷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손이 시려 벙어리 장갑을 끼고 그 안에 핫팩을 넣었더니 지팡이 잡기가 불편하여 걸음이 많이 지체되었고,
급기야 다시 다섯 손가락 장갑을 갈아 끼는 우여곡절 끝에 승승장구 님을 만났습니다.
분명히 앞에 갔는데, 홀연히 나타난 까닭을 짐작하기는 했으나 묻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가라고 이야기 해도 계속 동행하여 고맙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고직려에서 사진을 찍었으나 잘 나오지 않았고, 내 보온병 뚜껑 찾느라 고생시켜 미안했습니다.
함백산 바람은 여름에도 거세게 부는 곳이라 바람 대비 잘 해야 할 듯합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선배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을사년에는 좋은 일만 그리고,
福 많이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비나 님!
대원들 사진 찍느라 종횡무진 활약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올 한해 건강하고 보람 있는 일 만이 만드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발목까지 상태가 안좋은채로 걸으셨군요
정말 고생 많으셔습니다.
치료 잘 받으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구간에 뵙겠습니다 ~^^
여러 대원 오래 기다리게 하여 미안합니다.
산이랑 님,. 발이 워낙 빨라 산에서 모습 볼 수 없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추운 날씨 건강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발목도 불편하신 상태에서, 먼 대간 길을 안전하게 완주 하심에
대단하시다는 말씀과 존경심외 별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네요.
언제부터인가, 제가 한길 큰형님의 연세가 되었을때,
이렇게 추운 날씨에 긴 대간 산행에 참여할 수 있을까 하고 반문하면서,
힘들때 마다, 형님을 통해서 많은 교훈과 영감을 얻게 됩니다.
산행을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고,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모님의 복장 검열은 참으로 지혜로우신 판단 같으시고,
순순히 따라주셨다니 참 재미 있네요. ㅎ
20년이 넘게 애지중지 사용해오신 보온병은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 듯하네요.
따듯한 차맛이 일품이였는데요. 천태산에서 따끈한 온도에 반해,
알마전에 저도 형님과 같은 보온병을 구입했었는데요.
저도 시골에서 자라, 예전 말씀들은 언제나 아련한 기분 좋은 추억으로 회상하게 됩니다.
다음 대간 산행코스도 만만치 않은 코스 같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셔서, 좀 더 펀안한 맘으로 산행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산사랑 제이 님! 과분한 칭찬 부끄럽습니다.
제이 님을 비롯한 우리 대원들께서는 나이 들어도 나보다 훨씬 꿋꿋한 모습으로 건강하게 산행하실 거라 믿습니다.
대원들 힘찬 모습이 좋고, 동시에 지난 일을 되새기면서 내딛는 발걸음이지만, 내 굼뜬 행동으로 대원들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하는 것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스포츠 용품 사장 님이 내게 선물한 물건이라 그 분의 마음을 새기고, 아끼던 물병이라 유난히 정이 듬뿍 들었습니다.
이제 나와 인연의 시효과 끝났다고 생각하고, 00 님이 추천해준 좋은 물병을 장만하러 합니다.
산사랑 제이 님. 늘 발 빠르고 경쾌한 발걸음 보기 좋고, 부럽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추운 겨울 건강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형니의 산사랑 한길을 보았습니다 감명 받았습니다 후배들도 열심히 따라 가보겠습니다
해피맨 님, 참석 않아 빈자리가 돋보였던 산행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