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섭의 소설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주요섭 소설 전집』3(정정호 엮음)을 푸른사상에서 간행했다. 한국 문학사에서 세계시민으로서의 시대적 풍정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 주요섭 소설의 진면목을 이 전집에서 만날 수 있다. 제3권에는 「붙느냐 떨어지느냐」 「여대생과 밍크코우트」를 비롯해 1955년부터 1970년 초반까지 발표된 12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했다. 2023년 7월 25일 간행.
■ 작가 소개
소설가. 호는 여심(餘心). 평양 출신. 시인 주요한(朱耀翰)의 아우이다. 평양에서 성장하였다. 평양의 숭덕소학교, 중국 쑤저우 안세이중학, 상하이 후장대학 부속중학교를 거쳐 후장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스탠퍼드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중국의 베이징 푸렌대학, 경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국제PEN 한국본부 회장을 역임했다. 1921년 단편소설 「이미 떠난 어린 벗」 「치운 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인력거꾼」 「사랑손님과 어머니」 등 39편의 단편소설, 「첫사랑 값」 「미완성」 등 4편의 중편소설, 『구름을 잡으려고』와 『길』(1953) 등 4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영문 중편소설 「김유신(Kim Yu-Shin)」(1947), 영문 장편소설 『흰 수탉의 숲(The Forest of the White Cock)』(1962)도 남겼다.
■ 엮은이 소개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석·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위스콘신(밀워키)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영어영문학 회장, 한국비평이론학회장, 국제비교문학회(ICLA)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 『영미문학비평론』 『비교세계문학론』 『문학의 타작』 등이 있으며, 역서로 『현대문학이론』 『사랑의 철학 : P. B. 셸리의 시와 시론』 등이 있다. 현재 문학비평가, 국제PEN 한국본부 번역원장,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 책머리에 중에서
그동안 주요섭 소설들은 단편소설 위주로 소개되고 논의되었다. 지금까지 출간된 십수 종의 작품집들을 보면 주로 「인력거꾼」, 「사랑손님과 어머니」 등의 단편소설 위주로 중복 출판을 이어왔다. 중편소설 「미완성」과 「첫사랑 값」, 장편소설 『구름을 찾으려고』와 『길』은 출판되었다. 그러나 상당수의 단편들과 중편, 장편들은 거의 출판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요섭의 소설 문학에 대한 전체적인 논의와 조망은 불가능하다. 편자는 수년 전 이러한 주요섭 소설 문학에 편향된 시각과 몰이해를 일부나마 교정하기 위해 주요섭 장편소설 4편을 모두 신문과 문예지에 연재되었던 원문과 일일이 대조하여 출간한 바 있다.
이번에는 단편소설 39편 전부와 중편소설 4편 전부를 가능한 한 원문 대조 과정을 거쳐 출판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명실공히 주요섭 소설 세계의 전모가 드러날 수 있게 된다. 뒤늦었지만 이제 일반 독자들은 물론 연구자들도 주요섭 문학에 대한 새로운 그리고 총체적인 접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추천의 글
주요섭은 진폭이 큰 작가이다. 이 ‘큰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이는 문학을 다루는 이들의 책무이다. 주요섭은 「사랑손님과 어머니」라는 대표작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 「인력거꾼」 「살인」 등 단편도 대표작의 또 다른 울타리이다.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기 위해서는 ‘전집’을 기획해야 한다. 전집은 어느 작가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의욕과 문학적 사명을 반영한다. 현실여건을 넘어서는 출판의 사명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 내는 중단편소설들은 작가 주요섭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큰 작가’는 한두 마디로 규정되기를 스스로 거부한다. 주요섭은 지극한 섬세성과 광대한 전망을 동시에 포괄하는 작가 정신을 실천한 작가이다. 전체성에 대한 욕구 그 자체가 소설의 본령이다. 주요섭은 단편을 통해 인간 심성을 섬세하게 드러냈고, 『첫사랑 값』 『셀스 껄』 『미완성』 『떠름한 로맨스』 등 중편소설을 통해서는 시대의 풍정과 전망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이 전집이 주요섭 이해와 연구의 바탕이 될 것은 물론, 작가의 소설사적 위상을 드높이는 도약대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우한용(소설가, 서울대 명예교수)
■ 작품 속으로
“떨어지느냐? 붙느냐?”
중이 염불하듯이 무의식중에 자꾸자꾸 되풀이해 중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철규는 발견하였다.
중학교 마당은 인파(人波)로 흐늑흐늑하였다.
수험생들뿐이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다 긴장한 모습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시험장 안으로 아들 수남이를 들여보낼 때까지는 온 정신이 자기 아들 하나에게만 팔려져 있었기 때문에 어른들도 꽤 많이 왔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었다. 그러나 가슴마다 수험표를 단 학생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자 보호자 수가 수험자 수보다도 더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하기는 철규 자신도 애 업은 아내까지 데리고 온 것이 사실인데, 어떤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험생의 가족은 물론 사돈의 팔춘까지도 다 떨어나온 모양으로 보이는 축이 수두룩했다. (「붙느냐 떨어지느냐」, 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