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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교향악
앙드레 지드(1869~1951)
「1869년 파리 대학 법학 교수인 아버지 폴 지드와 루앙 출신의 어머니 쥘리에트 롱도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폴지드는 프랑스 남부 도시인 위제드 출신의 위그노였으며, 쥘리에트 롱도는 가톨릭에서 신교로 개종한지 몇 세대 안 된 부르주아 가문 출신이었다. 지드는 파리의 알자시엔 학교에 입학했으나 신경 발작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자주 학업을 중단했다. 1880년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주로 집 안에서 어머니와 가정교사로부터 엄격한 총교도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문학과 음악에 몰두했던 지드는 처음에는 수필로 시작해서 시, 전기, 소설, 희곡, 비평, 회상록, 번역에 이르기까지 발을 놃혀갔다. 1891년 사촌 누이 마들렌 롱도에 대한 열띤 사랑의 표현을 담은 자전적인 작품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으며, 한동안 시인 말라르메가 이끄는 프랑스 상징주의 운동의 중심지 ‘화요회’에 참여 하면서 상징주의 미학 이론의 영향을 받은 <나르시스 단장>(1891), <위리앵의 여행>(1893)등을 발표했다. 1893년에는 엄격한 청교도식 교육이 강요하는 제약들에 불만을 품고 북아프리카 여행길에 올랐으며, 1895년 10월 마들렌과 결혼한다. 1896년 노르망디 라로크 자치구의 시장이 되었다. 1908년에는 자크 코포, 장 슐륑베르제와 함께 <N.R.F>를 창간하여 프랑스 문단에 상당한 자극을 주었다. 이 잡지를 통해 알랭 푸르니에, 폴 발레리, 생텍쥐베리 등이 등단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지상의 양식>(1897), <배덕자>(1902), <좁은 문>(1909), <교황청의 지하도>(1914), <전원 교향악>(1919),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는다면>(1924) 등이 있다. 1942년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 이듬해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1년 2월 19일 파리의 자택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내면 일기 Ⅰ
[189* 년 2월 10일] 사흘 전부터 계속해서 눈이 내리더니 길이 막혔다. 매달 두 번씩 십오 년 전부터 죽 예배를 보아온 R 마을에도 가지 못했다. 오늘 오전 라브레빈 교회 예배에는 서를 명의 신자밖에 오지 않았다. 나는 이 강제 유폐로 얻게 된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과거를 돌아보며 내가 어떻게 제르트뤼드를 돌보기에 이르렀는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 년 반 전, 쇼드퐁에서 막 돌아 왔는데 전혀 안면이 없는 한 여자아이가 부랴부랴 찾아와 7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불쌍한 노파가 죽어가고 있으니 같이 가달라고 했다. 해는 지고 있었고, 한참 동안 어둑어둑한 길을 지나자 이윽고 내 어린 안내자는 나지막한 언덕 경사지의 초가집 한 채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노파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아직 젊은 한 여인이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여인이 일어섰다. 처음에 노파의 친척으로 생각했던 그 여인은 주인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심부름하는 아이가 데리고 온 이웃으로 그때까지 그 시신을 지키고 있었다.
난로 아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의 형체를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두껍게 떡이 진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눈먼 아이가 있어요. 심부름하는 아이 말에 의하면 조카딸이라고 하던데, 가족이라고는 고작 이 아이 하나뿐인 것 같아요.
그런데 참, 이 애는 바보예요. 말도 못하고 말귀도 못 알아들어요. 오전부터 제가 이 방에 있었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귀머거리인가 생각했지요. 그런데 심부름하는 아이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사실은 죽은 저 노파가 귀머거리라서 오래 전부터 먹고 마실 때가 아니면 이 애에게는 아무에게도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몇 살이지요? 열대여섯은 되어 보여요.
버려진 그 불쌍한 아이를 돌보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곧장 머리에 떠올랐던 것은 아니다. 기도를 올리고 난 뒤에,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침대 맏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 이웃집 여인과 심부름하는 소녀와 함께 기도를 올리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내 삶의 길에 일종의 의무를 내려주셨고, 내가 비굴한 인간이 아닌 이상 그 의무를 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잠시 더 죽은 노파의 잠자는 듯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묵하게 들어간 주름진 입매는 단 한 푼도 흘리지 않으려고 끈으로 단단히 졸라맨 구두쇠의 지갑 같았다.
눈 먼 아이는 아무 의식도 없는 짐 꾸러미처럼 끌려왔다. 이목구비는 반듯하고 꽤 예뻤지만 완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내 아내 아멜리는 미덕의 정원 같은 사람이다.
아내는 자기가 해야 할 의무 이상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깔끔한 사람이다. 마치 사랑이 언젠가 다 써버릴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그녀의 자비심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신 또 무슨 짐을 짊어지고 오신 거예요?”
“당신은 저걸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그 아이가 자리를 잡고 앉자 아내가 다시 말했다.
“나는 길 잃은 양을 데리고 온 거요.”
아내가 그처럼 내게 쏘아붙이기 시작하자 그리스도의 말씀 몇 마디가 목 끝까지 차올라 왔지만 내 행동에 대해 복음서의 권위를 방패 삼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기 때문에, 꾹 울러 참았다.
나는 그 언쟁에서 그만하면 이제 내가 이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내 사랑하는 아내 아멜리는 호의적으로 제르트뤼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2월 27일]
아내의 얼굴에는 이미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몸을 씻기고 닦아주어야 할 때는 어쨌든 아내에게 맡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야 나는 가장 힘들고 불쾌한 보살핌에는 내 손길이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르트뤼드라는 이름은 샤를로트가 붙여준 것으로 곧 우리 가족 모두가 그 애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얼마가 지난 후 제르트뤼드가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 처음의 미소들은 그 동안 내가 겪었던 모든 어려움을 위로해 주었고 내 보살핌을 백 배로 갚아주었다. 그것은 마치 알프스의 높은 산들에 새벽이 오며 어둠 속을 뚫고 나와 눈 덮인 산봉우리를 떨리듯 비추는 자홍색 빛처럼 갑작스러운 서광과 같았다. 신비로운 빛깔과도 같았다. 나는 또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잠자고 있는 물을 깨운다는 그 베데스타 연못을 생각하기도 했다.
첫 성과를 얻기가 어려웠던 만큼 그에 바로 뒤이은 발전은 매우 빨랐다.
제르트뤼드가 늙은이처럼 계속 난롯가에만 있음으로써 쇠약해지지 않을까 두려워진 나는 그 애를 산책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애는 내 팔짱을 껴야지만 산책을 하는 데 동의했다.
그 애는 이렇게 말했다.
“대지는 새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말로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왜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더 해주지 않나요? 왜 목사님은 제게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세요? 제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배려해서 혹시 제게 괴로움을 줄까 봐 겁이 나서 그러세요? 그렇다면 목사님이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저는 새들의 노랫소리에 담긴 이야기들을 모두 알아들을 것만 같거든요.”
[2월 28일]
자크는 우리와 함께 크리스마스 방학을 보내기 위해 집에 와 있는 동안 스케이트를 타다가 팔을 다치고 말았다. 그 애는 고등학교를 마친 로잔에서 신학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자크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던 제르트뤼드에게 갑자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나를 도와 열심히 읽기를 가르쳤다.
[29일]
목사님, 목사님은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세요? 목사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저를 보세요, 거짓말을 하면 그렇다고 얼굴에 나타나지 않아요? 저는 목소리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요.
저를 속이려 하셔선 안 돼요. 목사님도 아시잖아요. 눈먼 사람을 속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일이라는 걸요.
[3월 8일]
그로부터 고작 반년여가 지난 8월 초순의 어느 날, 한 불쌍한 미망인을 위로하러 갔다가 집이 비어 있는 바람에 그냥 돌아오는 길에 나는 교회로 제르트뤼드를 데리러 갔다. 그 애는 내가 그렇게 빨리 돌아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했다. 게다가 나는 그 애 곁에 자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대단히 놀랐다. 내가 들어올 때 소리를 거의 내지 않은데다 오르간 소리에 묻혀 버렸기 때문에 두 아이 모두 내 인기척을 듣지 못했다. 엿본다는 것은 전혀 내 성격과 맞지 않았지만 제르트뤼드를 감동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내게는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발소리를 죽여 연단으로 이어지는 계단 몇 개를 살그머니 올라갔다. 관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장소였다. 그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동안 나는 두 아이 모두 내가 듣기에 거북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두어야겠다. 그러나 나는 제르트뤼드 곁에 앉아 있는 자크가 여러 번 그 애의 손을 잡아 손가락을 건반 위로 가져다 놓아주는 것을 보았다. 전에 내게는 그런 도움을 받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으면서 혼자 해보겠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자크의 지도는 허락하는 것이 이미 수상한 징조가 아닌가? 나는 그 순간 당혹스럽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여 그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3월 10일]
[3월 12일]
아 참, 내일 자크가 떠난다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 내일 떠난단다. 그 애가 네게 말해 주던? 말해 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어요. 오래 떠나 있어요? 한 달…… 제르트뤼드야, 네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단다. 자크가 교회로 너를 보러 온다는 걸 왜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니? 두 번 왔어요. 정말이에요! 목사님께는 아무것도 숨기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말을 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더 그럴 거야. 그 애의 손이 내 손을 더듬으며 찾았다. 자크가 떠나는 것을 괴로워했어요. 아 참, 제르트뤼드야…… 그 애가 널 사랑한다고 말했니?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말을 안 해도 저는 잘 알아요. 자크는 목사님만큼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럼, 너는 제르트뤼드야, 너도 그 애가 떠나는 게 괴롭니? 떠나는 게 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자크에게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아니, 그럼 너도 자크가 떠나는 게 괴롭단 말이구나? 목사님, 잘 아시잖아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목사님이라는 걸 말이에요. 오! 왜 손을 빼시는 거예요? 목사님이 결혼하지 않으신 분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말하진 않았을 거예요. 사람들은 앞 못 보는 여자와는 결혼하지 않아요. 그런데 왜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없는 거죠? 말씀해 주세요. 목사님 그게 나쁜 건가요? 사랑에 나쁜 것이란 없단다.
■내면 일기 Ⅱ
[4월 25일] 나는 환자를 돌보는 것처럼 그 애를 돌보았다. 그 애를 교육 시키는 것을 도덕적인 책무이자 의무로 삼았다.
자크가 떠나자 우리의 생활은 곧 다시 아주 평온해졌다.
부활절에 나는 그 아이에게 영성체를 시켜주었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났다. 한 주 동안의 방학을 우리 곁에서 보내기 위해 와 있던 자크는 놀랍게도 나의 성찬례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건 아주 유감스럽게도 아멜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우리가 결혼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모자가 공모하여 그 엄숙한 의식에 불참함으로써 나의 기쁨에 먹구름을 드리우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5월 3일]
제르트뤼드에게 신앙 교육을 하면서 나는 복음서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게 되었다. 갈수록 나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을 이루는 많은 개념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닌 성 바울의 해석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나는 복음서의 어느 구절에서도 계명이니 위협이니 금지니 하는 것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은 성 바울로부터 유래한 것들일 뿐이다.
[5월 8일]
마르탱 박사가 어제 쇼드퐁에서 왔다. 그는 검안경으로 제르트뤼드의 운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5월 10일]
부활절에 자크와 제르트뤼드는 내가 보는 앞에서 재회했다. ~~~자크는 내가 걱정할 만큼의 흥분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지만, 지난해 떠나기 전에 제르트뤼드가 그의 사랑에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열렬했던 그 사랑의 마음을 억누르는 게 쉽지는 않았으리라는 걸 나는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5월 18일]
날씨가 다시 좋아져서 나는 제르트뤼드와 다시 산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목사님은 자크가 아직도 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세요? “그 애는 너를 단념하기로 결심했단다.” 내가 곧 대답했다. “그러면 목사님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자크가 안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앞에 이미 옮겨 적어놓은 것처럼 지난여름의 그 대화 이후로 우리 사이에 사랑이라는 말이 한 번도 발설되지 않은 채 반년여가 흘렀다. 내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절대로 단둘이 있지 않았고 그러는 편이 더 나았다…… 제르트뤼드의 질문이 내 마음을 너무도 설레게 해서 나는 걷는 속도를 좀 늦춰야 했다. “이런, 제르트뤼드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야.”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애는 속지 않았다. “그게 이니 고요, 목사님, 목사님은 저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으셨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 애는 머리를 숙인 채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아멜리 아주머니는 알고 계세요. 저는 그것이 아주머니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요.” “네 아주머니는 그게 아니어도 항상 우울할 사람이야.”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우울이 그 사람의 기질이거든.” “아이! 목사님은 언제나 저를 안심시키려고만 하세요.” 제르트뤼드가 좀 화난 듯 말했다. “하지만 저는 목사님이 그러시는 걸 원치 않아요. 저를 불안하게 하거나 괴롭게 할까 봐 제게 안 알려 주시는 게 많다는 건 저도 알아요. 저는 많은 것을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때로는……” 그 애의 목소리가 갈수록 잦아들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숨이 가쁜 듯 말을 중단했다. 나는 그 애의 마지막 말을 받아 이렇게 물었다. “때로는 어떻단 말이지?” “그래서 때로는.” 그 애는 우울하게 말을 이었다. “목사님께 빚진 저의 모든 행복이 저의 그 무지함 덕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제르트뤼드야….” “목사님, 제 말씀을 더 들어보세요. 저는 이런 행복은 원치 않아요. 목사님도 아셔야 돼요. 저는…… 저는 그렇게 행복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에요. 차라리 저는 아는 쪽을 택하겠어요. 제가 모르는 많은 우울한 것들이, 확실히 많은 것들이 있어요. 목사님께 제가 그것들을 모르게 할 권리는 없어요. 저는 이 겨울 몇 달 동안 오래도록 깊이 생각해 보았어요. 목사님, 목사님도 아시듯 저는 이 세상이 목사님이 제게 믿게 해주신 것만큼 아름답지 않을까 봐, 아니 그보다 훨씬 못할까 봐 겁이 나요.” “인간이 세상을 자주 추하게 만들었던 게 사실이지.” 나는 그 애의 생각이 너무 비역할까 두려워서 조심스레 그렇게 그 애의 말을 결론 짖고는 아이의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려 애썼다.
“목사님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눈이 먼 사람의 아이는 당연히 장님으로 태어나지요? 나는 그 대화로 우리 둘 중 누구의 숨이 더 막혔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때 우리는 어쨌든 대화를 계속해야만 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는 않아, 제르트뤼드야,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그 애들이 그렇게 태어나야 할 이유는 없단다.” 그 애는 아주 안심하는 것 같아 보였다. 이번에는 내가 왜 그것을 물었는지 그 애에게 되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어설프게 다른 말만 계속했다. “하지만 제르트뤼드야, 아이를 가지려면 결혼을 해야 하는데.”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목사님, 저는 그 말씀이 틀렸다는 걸 알아요.” “나는 네게 말해 주어도 틀리지 않는 말을 했는데.”. 나는 반박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자연의 법칙은 인간과 하나님의 법칙이 금하는 것을 허락하기도 하지.” “목사님은 제게 하나님의 법칙은 사랑의 법칙 그 자체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거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사람들이 흔히 동정이라 부르는 그런 사랑은 아니란다.” “목사님은 동정심에서 저를 사랑하시는 거예요?” “너도 잘 알지 않니. 제르트뤼드야. 그렇지 않아.” “그렇다면 목사님은 우리 사랑이 하나님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정하세요?” “그게 무슨 말이니?” “오! 목사님도 잘 아시잖아요. 그러니 그건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나는 애 둘러 말해 보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가슴은 혼란에 빠진 내 설득 수단의 퇴각을 알리는 북이 울리듯 끝없이 두근거렸다. 나는 정신 없이 소리쳤다. “제르트뤼드야, 너는 네 사랑이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 되니?” 그 애는 내 말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우리의 사랑이에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내 목소리에서 애원 같은 것을 읽었지만 그 애는 숨도 돌리지 않고 자신의 말을 끝마쳤다. “하지만 저는 목사님을 사랑하는 것을 그만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모든 것은 어제 일어난 일이다. 나는 처음에는 이것을 여기에 적는 걸 망설였다…… 나는 산책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마치 도망치듯 급한 발걸음으로 걸었다. 나는 그 애의 팔을 내 몸에 딱 붙여 그 애를 꼭 안고 있었다. 나의 영혼은 길에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만 있었어도 우리 둘 모두 땅바닥에 나 뒹굴어 넘어지고 말았을 것처럼 내 몸을 떠나 있었다.
[5월 19일]
마르탱이 오늘 오전에 왔다. 제르트뤼드의 눈은 수술이 가능하다고 한다. 루 박사는 그것을 분명히 밝히며 그 애를 한 동안 자기에게 맡기라고 했다. 나는 반대할 수 없었다.
[5월 19일 밤]
제르트뤼드를 다시 보았지만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아까 저녁에 라 그랑즈에 있을 때 거실에 아무도 없길래 그 애의 방까지 올라갔다. 우리 둘 뿐이었다. 나는 그 애를 오랫동안 꼭 껴안아 주었다. 그 애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그 애가 나를 향해 이마를 들었을 때 우리의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
[5월 23일]
주여, 당신은 우리를 위해 이토록 깊고 아름다운 밤을 만드셨습니까? 저를 위해 만드셨습니까? 포근한 바람이 불어오고, 열린 창 사이로는 달빛이 비쳐 듭니다. 저는 하늘의 무한한 침묵에 귀 기울입니다. 오, 당신에 대한 삼라만상의 황송한 마음의 경배, 그 경배 안으로 말없이 저의 마음도 황홀하게 녹아 듭니다. 저는 열렬히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만일 사랑에 어떤 구속이 있다면 그 구속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입니다. 오! 저의 사랑이 비록 인간의 눈에는 죄짓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당신에게는 경건하게 보인다고 말씀해 주세요. 저는 죄라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제게 죄는 어쨌든 견딜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리스도를 저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요, 저는 제르트뤼드를 사랑함으로써 죄를 범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제 가슴을 캐내 버리지 않는 한 저는 제 마음에서 이 사랑을 캐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지요? 제가 만일 이제 와 그 애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저는 동정심에서라도 그 애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애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 애를 배신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애는 저의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주여, 저는…… 저는 당신밖에 모릅니다. 저를 인도해 주소서. 때때로 저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 그 애가 되찾게 될 그 시력이 마치 제게서 빼앗아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르트뤼드는 어제 로잔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 이십 일 후에나 퇴원할 것이다. 나는 아주 불안한 마음으로 그 애의 퇴원을 기다리고 있다. 마르탱이 우리에게 그 애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제르트뤼드는 내게 그때까지 자기를 보러 오지 말라고 부탁했다.
[5월 22일]
마르탱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수술이 성공했다. 정말 천만다행이다!
[5월 24일]
떠날 때까지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나를 사랑한 그 애에게 이제 내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부담스러웠다. 그 애가 나를 알아볼까? 생전 처음으로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덜 관대하고 덜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여,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애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5월 27일]
하루 종일 그 애의 모습이 내게서 떠나질 않는다. 내일이 바로 그 애가 돌아오기로 되어 있는 날이다. 이번 주 들어 내내 아주 기분 좋은 모습만 보이며 내가 그 애를 잊게 하려고 했는 것 같았던 아멜리는 아이들과 함께 그 애가 돌아오는 것을 축하할 준비를 하고 있다.
[5월 28일]
아아! 드디어 저기 그들이 보인다.
[28일 저녁]
얼마나 끔찍한 어둠 속으로 나는 빠져들고 있는가!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그 애를 사랑하는 것을 단념하겠습니다. 하지만 주여, 그 애가 죽는 것만은 허락하지 마소서!
생각을 좀 정리해 봐야 할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이 내게 해준 이야기는 이해가 되지 않거나 앞 뒤가 맞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루이즈 양의 정원사가 의식을 잃은 그 애를 아까 낮에 라 그랑즈로 업어다 놓았다. 그는 그 애가 시냇가를 따라 걷다가 정원의 다리를 건넌 뒤 시냇물 쪽으로 몸을 굽히는 것까지 보았다고 했다. 그런 뒤에 그 애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는데 물속에 빠진 줄 알았더라면 당연히 달려가야 했겠지만 처음에는 그런 줄 몰랐기에 달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정원사는 물살에 떠내려간 그 애를 작은 수문 근처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내가 달려가 제르트뤼드를 보았을 때 그 애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루이즈 양의 주장에 의하면, 그 애는 시냇가에 수북이 자라 있는 물망초 꽃을 꺾으려 했는데, 아직 거리 측정이 서툴러서인지 아니면 평평하게 수면을 덮고 있는 꽃 무리를 단단한 지면으로 잘못 알았는지 얼떨결에 발을 헛디뎠다고 한다.
그 말을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단지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내 영혼에게서 얼마나 끔찍한 부담을 덜 수 있을까! 그렇지만 아주 명랑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식사 시간 내내 그 애에게서 떠나지 않은 그 이상한 미소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 미소는 내가 그 애에게서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시력을 되찾은 뒤 생겨난 새로운 미소겠거니 하고 생각하려 애썼지만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 미소는 눈물처럼 눈에서 흘러내릴 것 같은, 보고 있노라면 다른 사람들의 즐거운 기분까지 불쾌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그런 미소였다. 그 애는 식사 시간의 즐거운 분위기에 합류하지 않았다. 어떤 비밀을 발견한 것 같았고, 내가 그 애와 단둘이 있게 되면 당연히 내게 그 비밀을 털어놓을 것 같았다. 그 애는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애의 이마와 창백한 뺨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담은 채 감고 있는 눈 위의 우아한 눈썹, 그리고 아직도 마르지 않고 해초처럼 베개 주위로 늘어져 있는 머리카락에서 눈을 떼지 않고, 호흡곤란 때문에 불규칙해진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애의 머리맡에서 두 시간여를 보냈다.
[5월 29일]
“그런데 제가 시냇가에서 꺾으려 했던 하늘색의 그 작은 꽃 이름이 뭐지요? 목사님이 저보다 더 장하실 테니 그 꽃으로 꽃다발 하나만 만들어 주실래요? 여기 제 침대 옆에 놓아두게요……”
억지로 말하는 체하는 그 애의 목소리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오늘 아침엔 목사님께 말씀 드리기가 힘드네요. 너무 피곤해요. 저를 위해 꽃을 꺾으러 가주시겠어요? 조금 후에 다시 와 주세요.”
그리고 한 시간 뒤 그 애에게 줄 물망초 꽃다발을 가지고 다시 왔지만 루이즈 양은 제르트뤼드가 누워 쉬고 있어서 저 녘 까지는 나를 맞이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 애는 열이 있는 게 틀림없었고 숨 쉬는 것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내가 손을 내밀자 그 애는 열이 있는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그 애 곁에 나는 그렇게 서 있었다.
“목사님 한 가지 꼭 고백해야 할 게 있어요. 당장 오늘 저녁에 죽게 될까 봐 겁이 나서 그래요.” 그 애가 말했다. “오늘 아침에 전 목사님께 거짓말을 했어요, 꽃을 꺾으려던 것이 아니었어요…… 자살하고 싶었다고 말씀 드려도 목사님은 저를 용서해 주시겠지요?”
나는 잡고 있던 그 애의 가냘픈 손을 다시 한 번 꼭 쥐면서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하지만 그 애는 내게서 손을 빼더니, 눈물을 감추고 흐느낌을 억누르기 위해 침대 시트에 묻고 있던 나의 이마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내게 다시 다정하게 말했다.
“목사님은 자살이 아주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그 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목사님, 나의 목사님, 목사님의 마음과 삶에 제가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목사님은 잘 알고 계세요. 목사님 곁으로 돌아오자 마자 저는 그 점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차지하고 있던 그 자리가 저 때문에 슬퍼하는 다른 분의 자리였다는 것도요. 저의 죄는 바로 그 점을 좀 더 빨리 깨닫지 못했다는 거예요. 저에 대한 목사님의 사랑을 이미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목사님이 저를 사랑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는 것부터 잘못된 일이었어요. 이제서야 제 눈으로 직접 수심이 가득한 그분의 가엾은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자 저는 그 슬픔이 저 때문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목사님은 자책하지 마세요. 그냥 저를 떠나게 내버려 두시면 돼요. 다시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세요.”
그 애는 내 이마를 쓰다듬던 손을 거두었다. 나는 그 애의 손을 움켜잡고 눈물을 흘리며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나 그 애는 못 견뎌 하며 손을 빼냈다. 또 다른 괴로움이 그 애를 동요시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에요.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다고요.” 그 애는 반복해서 말했다. 그 애의 이마가 땀에 젖어 있는 것이 보였다.
“목사님이 제게 시력을 되찾아 주셨을 때 저의 눈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어요. ~~~~ 제가 목사님의 집에 들어갔을 때 맨 처음 제게 보인 게 뭔지 목사님은 아세요…… 아아! 그렇지만 목사님께 말씀 드려야 해요. 제가 처음 본 것은 우리의 과오, 우리의 죄였어요. 그러지 마세요. “만일 너희가 눈이 먼 사람이라면 죄가 없으리라” 라는 말씀으로 저를 안심시키려 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보이는걸요…… 일어나세요, 목사님, 여기 제 곁에 앉아보세요. 제 말을 끊지 말고 들어주세요. 병원에 있는 동안 저는 목사님이 제게 읽어주지 않으셔서 제가 모르고 있던 성경 구절들을 읽었어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읽어달라고 했어요. 하루 종일 되 뇌이던 성 바울의 이 구절이 기억나요.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그 애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아주 큰 소리로 말을 하더니 끝의 몇 마디는 거의 고함을 지르다시피 했다.
“누가 그 구절을 네게 읽어주었니?” 내가 물었다.
“자크가요.” 그 애는 눈을 다시 뜨더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자크가 개종한 건 목사님도 아셨지요?”
더는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애에게 제발 그만해달라고 간청하려 했다. 하지만 그 애는 벌써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목사님, 제 말이 고통스러우실 거예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어떤 거짓말도 남아 있어서는 안 돼요. 자크를 보게 된 순간,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목사님이 아니라 바로 자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자크의 얼굴이 바로 목사님의 얼굴이었던 거예요. 제가 상상하던 목사님의 얼굴 말이에요…… 아아! 목사님은 왜 제가 자크를 밀어내게 하셨어요? 우린 결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야, 제르트뤼드야, 넌 아직도 그 애와 결혼할 수 있단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소리쳤다.
“자크는 수도사가 되겠대요.” 그 애가 격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몸을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다. “ 아아! 저는 자크에게 고백하고 싶어요……”
“이제 남은 것은 죽는 일뿐이라는 걸 목사님은 잘 아시겠지요. 목이 말라요, 누굴 좀 불러주세요. 숨이 막혀요. 저를 혼자 내버려 두세요. 아아! 목사님께 말씀 드리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떠나주세요. 우리 헤어져요. 목사님을 보는 걸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5월 30일]
아아!, 이럴 수가! 나는 그 애가 잠들어 있는 모습밖에 다시 보지 못했다. 저녁 내내 정신착란과 고통 속에서 헤매다가 오늘 아침 동틀 무렵 그 애는 세상을 떠났다. ■
[Review]
신약 성서의 계명을 하나로 말한다면 ‘사랑(agape)’이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향해 보여준 사랑이며(요13:31), 실천적으로는‘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인간이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이룰 수 있는 사랑이다. 엄격한 청교도적 가정에서 자라난 앙드레 지드(1869~1951)는 기질적으로 감수성이 예민했으며 순수한 종교적 열정에 심취하며 육체적 욕망과 윤리 사이에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드의 이 작품<전원 교향악>은 신앙적인 사랑과 인간의 사랑 사이에서 번뇌하는 한 시골 목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종교적으로 자기착각 에 빠져있는 신앙인들에게 보내는 비판적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고아가 된 눈먼 소녀를 처음 데려 오는 날 목사는 그것이 잃어버린 양을 구하러 오셨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탐탁해 하지 않는 아내를 설득하고, 말과 글을 가르치는 헌신적인 사랑에 소녀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모해 감에 따라 목사는 그를 이성으로 사랑하게 된다. 물론 목사는 외면적으로는 자신의 사랑을 순수한 사랑으로 합리화 하려 하지만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속일 수 없었다. 이러한 감정을 눈먼 소녀의 입을 통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목사님은 동정심에서 저를 사랑하는 거예요?” - 너도 잘 알지 않니. 제르트뤼드야. 그렇지 않아. “그렇다면 목사님은 우리 사랑이 하나님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정하세요?”
- 그게 무슨 말이니?
“오! 목사님도 잘 아시잖아요. 그러니 그건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나는 애 둘러 말해 보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가슴은 혼란에 빠진 내 설득 수단의 퇴각을 알리는 북이 울리듯 끝없이 두근거렸다.
결국 목사는……
“나는 그 애의 팔을 내 몸에 딱 붙여 그 애를 꼭 안고 있었다. 나의 영혼은 길에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만 있었어도 우리 둘 모두 땅바닥에 나 뒹굴어 넘어지고 말았을 것처럼 내 몸을 떠나 있었다. 우리 둘 뿐이었다. 나는 그 애를 오랫동안 꼭 껴안아 주었다. 그 애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그 애가 나를 향해 이마를 들었을 때 우리의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 그리고 고통스런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주여, 당신은 우리를 위해 이토록 깊고 아름다운 밤을 만드셨습니까? 저를 위해 만드셨습니까? 포근한 바람이 불어오고, 열린 창 사이로는 달빛이 비쳐 듭니다. 저는 하늘의 무한한 침묵에 귀 기울입니다. 오, 당신에 대한 삼라만상의 황송한 마음의 경배, 그 경배 안으로 말없이 저의 마음도 황홀하게 녹아 듭니다. 저는 열렬히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만일 사랑에 어떤 구속이 있다면 그 구속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입니다. 오! 저의 사랑이 비록 인간의 눈에는 죄짓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당신에게는 경건하게 보인다고 말씀해 주세요.”
목사의 도움으로 개안수술에 성공한 소녀가 드디어 눈을 뜨게 되던 날, 소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사랑이 죄였던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 관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침묵으로 일관해온 목사 아내의 우울한 표정, 그리고 자기를 이성으로 사랑했던 목사의 아들 자크가 상심한 나머지 평생 결혼을 포기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된 일을 알게 되는 순간 그녀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고 자살에 이르는 것으로 소설을 끝난다. “아아! 그렇지만 목사님께 말씀 드려야 해요. 제가 처음 본 것은 우리의 과오, 우리의 죄였어요.” 저자는 이 책에 대한 비평에서 주인공 목사에 대해 ‘윤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너그럽든 너그럽지 않든 언제나 깨어있는 비판정신에 의해 엄격하게 감시 받지 않을 경우 자신의 견해가 봉착할 수 있는 위험을 묘사했다’(역자의 해설에서 발췌)고 말 함으로서 작품의 의도를 명확히 했다고 한다. 그러나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목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번뇌에 한없는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며, 소녀를 통해 얄밉도록 약점을 들추어내는 집요함, 그리고 마지막 눈을 뜬 순간 소녀가 목사에게 한 말에서 인간의 이중적인 마음이 너무 잘 묘사되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자크를 보게 된 순간,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목사님이 아니라 바로 자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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