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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의 미적 양상과 시의 생산 방식
-박주택(시인)
1. 들어가는 말
전통적으로 서사시가 민족 공동체적 가치나 종족 혹은 국가의 위대한 인물의 행위를 설화체의 이야기시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반해 서정시란 시적 자아의 정서나 내면적 세계를 주관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으로 일컬어져 왔다. 따라서 서사시가 객관의 세계를 구체화시키며 민족 집단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면 서정시는 객관적 세계를 시적 자아의 내면에 용해시켜 세계를 자아화시키는 특징을 지닌다.
서정시(lyric)는 칠현금 현악기인 리라(lyra)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데에서도 나타나듯이 원래 악기에 맞춰 부르는 노래의 가사였다. 이로 인해 서정시는 소리나 리듬, 율조 등의 음악성이 강조되며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내면 정서를 표출하는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또한 개인의 감정을 미감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양식상의 특징으로 인해 기법이나 장치 등과 같은 수사미와 함께 개성이나 독창성 등이 함께 강조되는 특징을 보인다. 서정시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시적 자아가 보편적 체계인 ‘우리’에서 비로서 주체적인 ‘나’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 근대 이후로, 이로부터 장르적 개념은 주제, 표현 기법, 관찰, 기억, 지식, 감정 등이 복잡하면서도 점점 전문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시의 경우, 근대 문학기에 서구의 서정시가 수용된 이래 그 양상이 다양하면서 중층적으로 변모해 왔다. 김소월에서 보이고 있는 한국적 율조와 애상적 정서, 한용운에서 보이고 있는 심원한 철학적 사유와 유장한 가락, 그리고 김수영에게서 보이고 있는 시대적 현실에 대한 조응과 외면 투사 등에 이르기까지 서정시의 갈래만큼 그 모습이 복잡하게 이어져 왔다.
서정시는 서사시, 극시 등과 분류되는 장르적 개념인 동시에 다양한 형태나 내용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부르고 있는 민중시, 도시시, 해체시, 여성시, 생태 환경시 등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 서정시의 범주에 들 수 있다. 80년대 민중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비록 시가 정치적 상황이 지닌 금제와 폭압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하더라도 시인이 세계에 대해 욕망이나 정서 등을 현실과 대립시켜 세계와 주관적 정서를 교환하고 있다는 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의 본질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도시시 역시 도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나 진보의 허구를 지적하며 현실 세계에 대해 시인의 해석적 관점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서정시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수많은 담론을 포괄하면서 시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이 서정시는 60년대의 시대적 현실에 대한 불안 의식의 노정과 근대 시민 사회로의 희원 의지의 시, 70년대의 문화 재편성에 따른 가치 혼란과 산업화로 인한 농촌 공동체 해체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시 그리고 80년대 정치적 금제와 폭압에 항거했던 민중시 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거대 서사 담론의 붕괴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육체, 여성, 생태 등을 노래한 시가 중심 담론를 이루고 있다.
서정시는 인간 내면에 일고 있는 섬세한 성정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욕망의 동맹 관계를 형성한다. 비록 시대나 작품 생산자에 따라서 시적 내용이 다양할 수는 있지만 길이가 비교적 짧은데다 인간의 내면과 미적 형식을 깊이 있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정서적 가치를 제공한다.
이상의 논의를 염두에 두고 필자는 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했었고 앞으로도 그 문학적 성과를 뚜렷하게 거둘 것으로 기대되는 몇몇 시인을 대상으로 그들의 시에 나타난 정서의 특징과 그들의 시가 지향하고 있는 세계관을 개괄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다. 다만 서정시의 갈래만큼 그 시적 개성이 서로 상이하고 특이한 만큼 논의의 폭을 좁혀 시인의 작품론을 중심으로, 세계관이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시인들을 묶어 그 특징들을 살펴 보도록 하겠다.
2. 근대 공간의 체험과 자연 서정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에서 오늘날의 서정은 그 미학적 존재를 드러내고 이를 재생산하기 위하여 이제까지의 담론들과 부단히 저항하면서 그것을 다시 포괄해야 하는 실천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서정은 인간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욕망을 제어하며 인간이 지니고 있을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해야 하는 윤리적 책무를 지고 있으며 날로 정보화되고 기술화되고 있는 사회에 삶의 방식들을 적응하도록 해야 하는 조정 기능의 부담도 안고 있다. 이미, 진보만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은 깨어진 지 오래다. 탈근대에 접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행복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근대에 대한 미적 체험은 자연이 지니고 영성(靈性)과 유기체적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해 주었다. 생명의 귀중함을 일깨우고 훼손되고 있는 ‘주체’를 복원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이 미적 체험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의미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떠올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동체적 연대감을 형성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오늘의 서정시는 이같은 흐름에 기대어 있으면서 80년대 거대 서사의 붕괴 이후 그 공백을 농밀하게 메우며 현실의 여러 문제를 맥락화시킨다. 김용택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화로 인한 농촌 공동체의 해체를 걸걸하면서도 섬세하게 묘파한 적이 있는 그는 남도의 구성진 가락을 바탕으로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섬진강’이라는 구체적 현실 공간을 아름답고 맑은 서정으로 그려낸다. 그는 해맑은 감성으로 무구(無垢)의 세계를 노래하며 사유의 건강함 속에 자연에 대한 사랑과 삶의 예지를 유장한 어조로 시 속에 아로새겨 놓는다.
섬진강 끝
하동에 가 보라
돌멩이들이 얼마나 많이 굴러야
저렇게 작은 모래들처럼
끝끝내 꺼지지 않고
빛나는 작은 몸들을 갖게 되는지
겨울 하동에 가 보라
물은 또 얼마나 흐르고 모여야
저렇게 말없는 물이 되어
마침내 제 몸 안에 지울 수 없는
청청한 산 그림자를 그려내는지
-김용택「강끝의 노래」부분
김용택 서정의 특징은 사물과 자연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지닌다는 데 있다. 그의 시는 우리를 따뜻하면서도 풍요로운 감성의 세계로 인도한다. 시적 체계를 이루는 공간이자 근대 공간인 ‘섬진강’을 주로 노래해 ‘섬진강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에게 자연은 삶의 원천이며 근원의 공간이다. 그의 대지적 상상력은 자연의 오염이나 황폐를 노래한 문명 비판류의 시와는 다르다. 그는자연이 본래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온기를 꾸밈없이 그려낸다. 우리가 잃어 버리고 있던 마음의 고향을 섬세하게 복원시켜 놓는 그는 산벚꽃이 희게 핀 모습에서 고독을 발견하기도 하며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들판에서 가슴을 적시는 애틋한 서러움을 발견한다. 돌멩이가 수억 겁의 세월을 구른 뒤 작은 모래로 빛나는 것, 혹은 수없는 물이 모여 제 몸 안에 청청한 산그림자를 그려내는 것을 발견해내는 그의 서정은 건강하고 맑디 맑은 이데아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에 비해, 작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그윽한 사유를 이끌어 내고 있는 안도현은 시의 서사성을 중심축으로 하여 선명한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의 시는 어렵거나 애써 무거운 주제를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산문적인 형식을 띠면서도 함축적인 여운을 주는 주제를 선택해 장면적이면서도 정확한 의미 전달을 지향한다.「가을의 전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시는 재미성이 표징을 이룬다. 저수지 물가에 배 한 척이 매어 있어 단풍놀이를 즐겨볼까 싶은 심산으로 주인집을 찾아 갔더니 고추를 매만지던 주인 아낙이 “대낮에 일도 없이 뭔 배를 탈라고 헌다요?” 하는 말에 그만 아내가 부끄러워 불이 붙은 단풍나무가 되었다는 이 시는 언어 유희적 요소가 시의 곳곳에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어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재미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타는 배와 사람의 배, 매운 고추와 사람의 고추 그리고 “대낮에 일도 없이 뭔 배를 탈라요?”에 함의된 해학적 의미 등은 시적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시를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제공한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안도현「겨울 강가에서」부분
강물이 세차게 뒤척이는 까닭을 ‘어린 눈발이 사그러져지게 되는 것이 안타까워서’라는 그의 시각은 독특하다. ‘어린 눈발’을 의인화시켜 우리에게 연민을 이끌어 내며 무형의 존재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그의 시적 방법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사소하게 흘러만 가는 강물에서 따스하고도 넉넉한 모성성을 이끌어내는 그의 서정은 그윽한 사유에서 나오는 통찰력이 아니면 만나지 못하는 삶의 예지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오늘날의 시에서 쉽고 평이한 언어로 독자의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그의 시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답하고 있는 시에 다름 아닐 것이다.
김용택과 안도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주변을 맑고 결고운 서정으로 따뜻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면 오늘의 시의 한 징후를 보여주고 있는 이윤학의 시는 근대 체험과 과거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신 안에 숨어 있는 황폐의 감정을 현동화(acturlization)시킨다. 시적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시키는 그의 언어적 인식은 대상에 자신의 입김을 불어 넣어 대상과 자신이 구별하기 힘들게 만든다. 자아와 대상이 서로 교호하며 삼투하여 동일화를 이루는 그의 시는 사물이나 풍경을 막연히 그려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통해 대상의 뒤에 숨은 의미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알레고리의 시학’을 보여주는 그의 시는 상징과 지시 대상이 중층화되며 입체성을 이룬다. 이를 통해 그의 시는 소읍과 변두리 도시 공간을 주 배경으로 삼고 이와 연계하여 음울한 자아의 모습을 흐린 흑백 필름처럼 아련하게 보여 준다.
잠을 이룰 수 없는, 겨울,
낮은 키의 울타리를 넘어오는 사람.
이불을 둘둘 말아 가슴속에 구겨넣고
먼 곳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야 했다.
밤새, 우리의 죄는 먼 곳에 있고······
뼈 속으로 스미는 빗물에
그 무엇도 지울 수가 없었다.
입술의 푸른 멍이 몸 구석구석으로
녹아들고 부르튼 열매들이 붉은
꽃을 피워냈다. 시퍼렇게
도는 피를 닮은 잎들, 문신들,
-이윤학「사철나무」부분
시적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전이시켜 문맥화시키는 그의 시는 주관적 감정과 체험이 강조되는 특징을 보인다. 추억이 주는 통점과 자아와 세계와의 불화를 조직화된 감수성으로 농밀하게 그려내는 그는 공허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내면의 공간에서 발화하고 발효된 이미지들을 하나씩 불러내 어두운 영혼의 그림자를 시의 전면에 유포시킨다. 그의 시는 김용택과 안도현의 시와 구별된다. 김용택과 안도현의 시가 세계와 동화하며 조화와 균형을 노래하고 있다면 이윤학의 시는 세계와 대응하며 세계에 끊임없이 위협받는 자아의 불안과 불화를 노래한다.
이윤학과 같은 시적 공간에 잇대어 있으면서 구수한 충청도 방언과 위트 넘치는 입담으로 어둡게 보일 수도 있는 삶을 밝고 명랑하게 그려내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 이정록은 가늘지만 질긴 생명력을 사물에 불어 넣는다. 믿음직스럽고 신뢰할 수 있는 그의 목소리가 시의 곳곳에 포진하면서 완성미를 갖추고 있는 그의 시에는 밝은 사랑과 진솔한 삶이 묻어 있다.
큰애야 이따 돌아갈 때에는
네 아비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수덕여관엘 가봤으면 좋겠다
가슴 속 빨랫방망이를 꺼내어 눈물 찍으신다
피서 와서까지 그러시냐고 투덜거리자
나는 여기와서도 피가 서는구나 하신다
앞산이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도토리만한 소나기를 훑고 지나간다
한바탕 빨래를 마친 하늘에 된장잠자리들 가득하다
저것이 다 먼저 간 것들이여 한참을 올려다보신다
광목 홑청처럼 하늘이 팽팽하다
-이정록「피서」부분
할머니가 영면하시 전 ‘가곡’라는 곳으로 피서를 가서 건너편 산의 도토리는 누가 따갈까 걱정하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군더더기 없이 기술하고 있는 이 시는 부풀리거나 축소시키는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를 그려냄으로써 시적 호기심을 유도해 낸다. 슬픔을 슬픔으로 그리지 않고 슬픔 속에 깃들어 있는 강한 페이소스를 드러내 보이는 그의 시는 시적 주제에 압도당하지 않는 그의 감성적 여과력을 보여준다. 시적 대상을 통어하며 서정의 건강함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시는 시인의 체험과 음성이 짙게 배어 있다는 점에서 시는 곧 그 사람이라는 텍스트적 의미를 지닌다.
김용택, 안도현, 이윤학, 이정록의 시는 각각 산, 강, 농촌, 도시 변두리와 같은 근대 공간을 배경으로 자신의 서정을 표현한다. 그들의 시는 서로의 개성에도 불구하고 늘상 부딪치는 현실의 체험을 어려운 수사를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시에서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서정의 세계를 미감 있게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가 잃어 버렸거나 혹은 잊어 버리고 있던 자연의 아름다운 서정과 원체험적 인식들이 진실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이러한 미의식이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전자 정보화되어 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일깨워 줄 것이 틀림없다.
3. 비극적 세계관의 추체험적 인식
90년대의 시는 세기말적 불안과 휴머니티의 상실이라는 위협 속에서 비극적 현실 인식이 문면에 전포되어 있었다. 절대적 권위를 누리던 담론들과 결핍된 욕망만의 분열된 주체의 몸 안에 기생하고 있었다. 90년대의 시는 인문학적 사유가 사라진 파편화된 욕망을 환유한다. 과학에 지배된 반윤리가 새로움의 이름으로 시를 감염시키기며 폐허에 풍경을 만들어 냈다. 남진우, 송찬호, 박형준의 시는 이같은 비극을 내면화시키며 그 내면 속에서 겪는 불화와 혼돈을 정합화시킨다. 80년대에 독특한 개성의 시세계를 보여준 바 있는 남진우는 죽음과 소멸, 종말과 허무와 같은 비극적 세계관을 몽유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영혼의 그림자를 떨쳐 버리기 위해 전부 그의 사유를 할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철저하게 죽음의 이미지에 천착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불안은 외부로부터의 단절이나 소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부에서 생성되는 비극적 에너지에서 온다. 그는 죽음을 넘어서려 하거나 죽음 앞에서 무력한 비굴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내부에 가득찬 소멸과 죽음의 목소리를 그로데스크하면서도 깊이 있는 언어로 낯설고 진기한 죽음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밤 죽은 자를 태운 배가 내 집 앞에 도착했다
새벽이 오기 전 그 배에 불을 질러
더 먼 바다에 떠나보내야 한다
그 배가 삐걱이며 내 잠 속으로 가라앉아버리기 전에
죽은 자들과 한 모든 계약을 끝마쳐야 한다
식인 상어와 암초들을 피해 어렵게 흘러든 해안
간신히 잠에서 빠져나온 내가 눈을 비비고 일어서면
희미하게 밝아오는 창문 저편
죽은 자를 태운 배는 서서히 떠나고 있다
-남진우「검은 돛배」부분
죽은 자를 태운 배가 집 앞에 당도했다고 믿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의식은 세계를 인식하는 그의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를 지배하고 있는 죽음에 대해 사로잡힌 망령은 지극히 병적이다. 그에게 공간은 죽음을 인식하는 기제에 불과할 뿐 그가 죽음을 인식하는 공간이 도시이거나 그의 집 혹은 그의 내부이거나 하는 것은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시간 역시 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시적 환경에 불과할 뿐 시간이 주는 의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의 집요한 죽음에 대한 천착은 그러나 우리들 의식 저 편 깊숙히 허무로 자리잡고 있는 세계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 외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무의식 속에서 역동적으로 파동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고 침묵적이다.
남진우가 우리들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세계를 비정하게 파헤치며 음울의 벽화를 통일성 있게 그려내고 있다면 유추의 언어로 건조한 서정을 펼치고 있는 송찬호는 비약과 절제 같은 지적 조작을 통해 시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시는 감정을 최대한 감춘 채 대상을 장면화시킨다. 이로 말미암아 그의 시는 시적 해석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한편 이러한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조합을 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맥락화시키고 보다 심원하게 의미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고소하고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러가는 달빛처럼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송찬호,「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전문
송찬호의 서정은 고정되어 있는 사물의 관념을 일탈시키며 시적 주제까지 관습적 의미로부터 탈골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의 시는 언어가 서로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텍스트 내 숨기거나 허구화된 관념을 코드화시킨다. 이로 인해 그의 시는 현실이 현실로서 읽히지 않은 채 우리에게 새롭게 부가되는 낯선 힙들을 강화한다.「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도 마찬가지다. 이 시 역시 우리의 보편적 인식을 거세시키며 관념들이 빚어내는 추체험 인식을 요구한다. 그의 시는 명료성을 유예하는 대신 의미를 다중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는 언어가 빚어 내는 미적 세계로 관습적 시 문법에 감금되어 있는 담화 방식을 깨뜨린다. 송찬호가 언어적 상상력으로 낯선 힘들을 강화는데 비해, 박형준은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의 불화를 드러내며 자아를 속박하고 있는 억압을 끊임없이 해방시키고자 한다.
자전거를 타고 방죽에 왔다.
들끓는 잎의 물결이 바퀴살에 갈라져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섬을 지고 있는 거북처럼 논 사이에서
파닥거리는 수금 방죽에 자전거를 타고 왔다.
침례교도들이 차가운 물을 헤치며
소름이 돋는 몸을 움직여 세례를 받는다.
(····················)
아침 방죽을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거닌다.
산책만이 살아 있는 유일한 형식,
누군가 모과나무 사이에서 바라본다면 좋으리라
-박형준,「수금 방죽」부분
박형준 시의 균형은 자아와 시적 대상과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며 상호 교환적 태도를 유지하는 데 있다. 자아와 대상이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 습합되고 있는 그의 시는 흥분이나 과장 대신 치밀한 질서를 계량하고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되살려 놓는다. 이완과 긴장을 번갈아 가며 시의 전면에 펼쳐는 그의 서정은 시적 대상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불순과 모멸을 정화시킨다. 그의 세계관은 우울하면서도 힘이 있다. 자아의 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음울하게 드러나는 그의 시는 우리의 감성적인 에너지를 자극하며 자아의 내부에서 충돌하고 있는 정서를 스팩타클하게 보여준다.
남진우, 송찬호, 박형준의 시는 자아 내부에서 일고 있는 감정을 감춘 채 현실에서 유추된 세계를 언어 미학적으로 구조화시키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의 시는 현실의 세계가 거의 거세된 채 상상력과 추체험적 인식들로 채워지는 은유 구조를 갖는다. 비록 생경스럽지만 우리 시의 관습에서 벗어나 현대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시는 우리 시의 영역을 한층 더 넓히며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할 것이다.
4. 건강하고 순결한 영혼을 찾아서
정보화 사회라고 일컫는 오늘날 인간의 정서적 가치가 한층 더 강조되는 느낌을 주는 것은 과학이 주는 진보와 합리가 더 이상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각은 이미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인간과 생명의 문제에 대한 공동 관심에 그 기본을 두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갖는 소비적 욕망이 탐욕적 인간을 만들고 과학이 주는 허구적 환상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이때 서정에의 관심과 복귀는 점점 잊혀져 가는 인간의 문제를 새삼 발견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서정과 존재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김기택, 장석남, 박용하의 시는 우리 시의 전망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먼저, 관찰과 묘사를 바탕으로 사물과 존재에 내재해 있는 생의 의지를 치밀하게 형상화시키고 있는 김기택은 ‘육체의 시학’이라 할 수 있는 몸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그의 시적 탐험을 계속한다
난로 위에 머리카락 하나가 떨어진다.
머리카락은 타면서 액체가 된다.
액체는 거품을 물고 격렬하게 꿈틀거린다.
그 꿈틀거림 속에서 고약한 냄새가 뿜어져나온다.
뿌리를 뻗으며 식물인 양 얌전하게 자라던 것이
불에 닿자마자 슬픈 몸짓 역한 냄새로
제 뜨거운 동물성을 있는 대로 드러내니,
눈 달린 것 이빨 달린 것 숨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독한 냄새를 지우려고 창문을 열자
차고 커다란 겨울바람이 들이닥친다.
머리카락 속에서 용쓰던 힘과 냄새는
그 바람 속으로 고분고분하게 빨려들어간다.
-김기택,「머리카락 하나」부분
김기택 시의 특징은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는 것을 예리하게 붙잡아 사물의 외양 뿐만 아니라 속성까지 치밀하게 재생산해 내는 데 있다. 고요하고 번득번득한 삶의 통찰자로서의 표정이 짙게 배어 있는 그의 시는 몸 안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온몸으로 삭혀 그 스스로를 무기화한다. 이런 까닭으로 그의 시는 부드러움보다는 강인함이, 낭만보다는 리얼리티가 문면에 자리잡는다. 남성적 자아로서의 세계 인식을 보여주며 육체의 건강함을 복원하고 있는 그의 시는 우리 시에서 부족한 논리로서의 시의 미감을 건강하게 보여주며 서정을 맥락화시킨다.「머리카락 하나」역시 난로 위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액체가 되는 단순한 사실을 치밀하게 관찰한 후 급기야 죽음으로 인식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시를 형상화 하는데 있어 얼마나 집요한가를 보여준다. 이에 반해, 80년대 거대 서사가 붕괴된 이후 독특한 서정의 세계를 펼쳐 보인 장석남은 시류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시세계를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완성도 높은 시를 써온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순수 서정’과 ‘탁마된 언어’이다.
요즘은
바람 불면 뼈가
살 속에서 한쪽으로 눕는다
꽃잎이 검은 무늬를 쓰고
내 눈에서 떨어져
발등을 깨친다
나는 안보이는 나라를 편애하는 것이 틀림없어
이 진흙별에서 별빛까지는 얼마만큼 멀까
-장석남「진흙별에서」부분
장석남의 서정은 우리가 잃어 버리고 있던 꽃, 별, 나무, 바다 등과 같은 자연적 소재를 시 속에 끌어들인다. 디테일한 정서를 자연적 소재에 호흡을 입히고 있는 그의 시는 언어의 미감에 공을 들이는 한편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의 울림이 주는 여운적 감동에 힘을 기울인다. 그는 사물의 세계나 속성을 핍집하게 그리기보다는 재현적 세계를 무효화시키며 시가 주는 관념의 모형을 제시한다. 영롱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로 우리들 심층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순수 서정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그의 시는「진흙별에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진흙별은 “뼈가/ 살 속에서 한 쪽으로 눕”고 “꽃잎이 검은 무늬를 쓰고/ 내 눈에서 떨어져/ 발등을 깨치”는 현실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 현실의 세계는 시적 언어에 전화되어 시의 내면에서는 관념화되어 나타난다. “이 진흙별에서 별빛까지는 얼마나 멀까”라는 구절이 의미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그가 현실 속에서 지향하는 이데아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만 제시할 뿐이다. 장석남이 시 속에 현실의 문제를 용해시키며 융화된 순수 서정을 아름답게 펼쳐 보이는데 반해, 박용하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위기의 문제들을 시 속에 적극적으로 끌여 우리를 사로잡는다. 유년 체험에서부터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역사와 사회적 상황까지, 에두르지 않고 문맥화시키고 있는 그의 시는 우리에게 시를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숨소리라니!
국가에 물들어 있지 않은
無爲의 나무들이 문을 잎여는
믿음의 전화 소리가 들린다.
국가가 괴물일진대
교회가 더 큰 죄를 키우는 휴식일진대
나에게 넉넉한 교회는
나무들의 뽐내지 않는 품.
나무들은 세상 밖과 안의 경계에서
인간들을 만난다.
그 경계의 밖으로 떠나지 않는 나무들의 마음
그 복판에서 나는 자연의 국가를 숨쉰다.
-박용하「靑銅 구리빛 나무들의 노래」부분
박용하가 노래하고 있는 나무는 국가와 교회, 인간들과 구별되는 비세속적 대상이다. 나무는 박용하에게 있어 자신을 넉넉하게 받아 주는 무구(無垢)한 존재이며 무구한 국가이다. 박용하는 현실과 자아의 대립을 통해 자신이 속하고 있는 현실의 허위를 부정하고 냉소한다. 그는 자신이 꿈꾸고 있는 행복에 가깝게 가기 위해 역사와 사회 속의 불안정한 자아를 투명하게 그려내며 과거와 현실의 문제를 희망과 전망으로 전이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아와 사회가 서로 길항하면서 발견되는 세계의 모순을 적의적으로 바라보면서 영혼을 억압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조소한다. 우리들 삶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승리로 이끌려는 그의 ‘정체성의 시학’은 세계의 균열을 해석화하고 참된 질서를 실현시키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주체적이라 할 수 있다.
김기택, 장석남, 박용하의 시는 인간의 존재를 문제 삼으면서 순수 서정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다. 이들에게 있어 현실은 불화와 허위의 대상이며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를 통해 이들의 시는 육체와 정신의 건강함을 되찾는 한편 폭력과 허위로부터 우리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폐허의 서정을 구출하고자 한다. 생명과 그 생명 속에 깃든 영성(靈性)을 찾아내 이를 사려 깊게 펼쳐 보이는 이들의 시에서 우리는 오늘의 현실에서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눈여겨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5. 나오는 말
서정시는 인간의 감성에 감응을 요구하며 시대와 환경 혹은 시인의 경험과 개성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모해 왔다. 특히 오늘의 시는 후기 산업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다양한 가치와 탈근대로 치닫고 있는 주변 환경과 서로 맞물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다원적이며 중층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지배 담론을 형성해 왔던 거대 서사 담론의 붕괴 또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던 억압된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우리 시의 지형도를 한층 더 높은 미적 세계로 바꿔 놓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본원적 가치와 생명적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서정시는 응전과 반전을 거듭하면서 그 책임을 다 해왔다. 비록 그 목소리가 변화해 가는 문화 환경을 다 담해내지 못하고 권력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의 부정적 기능들을 다 파헤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시 자신의 정체성을 않으려는 노력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서정시가 지니고 있는 미적 양상은 다양하기 그지 없다. 남성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여성의 권리 찾기를 노래하고 있는 페미니즘 시에서부터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자연 파괴와 환경 오염을 적시하는 생태 환경 시 그리고 육체성과 인간의 내면 감정을 노래하는 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 시에는 생산 조건이나 생산 방식은 다르다 하더라도 인간의 감정을 대상화시켜 타자들과 교감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다는 점에서 또한 인간과 사회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존재를 거세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서로의 공통점을 갖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근대 공간의 체험과 대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조화와 불화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김용택, 안도현, 이윤학, 이정록의 시는 원체험적 인식을 드러내며 물화된 자연과 인간의 내부를 결고운 언어로 담아낸다. 이에 비해 죽음, 소멸, 쇠약, 부도덕과 같은 사회와 인간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병리 현상을 은유 구조화시키고 있는 남진우, 송찬호, 박형준의 시는 고도의 시적 장치를 통해 깊이를 심원화시키고 넓이를 확장시키고 있다. 또한 김기택, 장석남, 박용하의 시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깃든 신성과 폐허의 서정을 강건하게 그려내며 순결한 영혼이 꿈꾸는 세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서정시는 온갖 병폐와 대응하면서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을 순수한 정감을 드러나게 해야 하는 전략적 책무를 지닌다. 컴퓨터와 같은 전자 매체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생활 습관까지 바꿔놓는 오늘의 상황에서 서정시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서정시는 위기로 인식되는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할 도덕적 책무를 지니며 동시에,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고도 바르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만이 시가 확보하고 있는 주체의 자리를 지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주택 시인】
*1959년 충남 서산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 졸업.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꿈의 이동건축』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사막의 별 아래에서』『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시간의 동공』,
* 수상
《제 5회 이형기문학상》(2010년)
《제 20회 소월시문학상 대상》(2005년)
《제 17회 경희문학상》(2004년)
*현재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
<출처: 위키백과사전>
박주택 시인 작품
하루에게
박주택
너는 어디로 가서 밤이 되었느냐 너는 어디로 가서
들판이 되었느냐 나는 여기에 있다 여기서 희미한
이를 닦으며 귀에 익은 노래를 듣는다
존재를 알리는 그 노래는 추억의 중심으로 나를 데려간다
네가 살아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전화를 받고 차를 마시고 또 무엇인가 두려워 마음을 졸였겠지
네가 가고 난 책상엔 먼지가 한 꺼풀 더 쌓이고
건물들은 늙어 어제를 기억하는 데도 지쳤지
네가 풀잎이라면 나를 초원에 데려가는 게 좋겠다
더더욱 네가 그리움의 저편 석양처럼 붉게 타오른다면
나도 모르는 그리움 속으로 데려가 다오
그 속에서 온갖 그리움들을 만나 그리움의 기억을
가슴에 새기며 내가 왜 여기 서 있는지를
저 나무에게나 물어보리라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박주택
그 무렵 잠에서 나 배웠네
기적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게을렀고 복록을 찾기엔
너무 함부로 살았다는 것을, 잠의 해안에 배 한 척
슬그머니 풀려나 때때로 부두로 드나들 때에
쓸쓸한 노래들이 한적하게 귀를 적시기도 했었지만
내게 병은 높은 것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낮은 것 때문이었다네
유리창에 나무 그림자가 물들고 노을이 쓰르라미 소리로
삶을 열고자 할 때 물이 붙잡혀 있는 것을 보네
새들이 지저귀어 나무 전체가 소리를 내고
덮거나 씻어내려 하는 것들이 못 본 척 지나갈 때
어느 한 고개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네
나 다시 잠에 드네, 잠의 벌판에는 말이 있고
나는 말의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초원을 달리네
전율을 가르며 갈기털이 다 빠져나가도록
뼈와 팔다리가 모두 떨어져나가
마침내 말도 없고 나도 없어져 정적만 남을 때까지
정육점
박주택
완벽한 육체를 이루었던 소는 칼에 찢겨
피에 젖은 갈고리에 걸려 있다, 가끔씩 날파리들이
핏물을 빨다 냉동고 위로 날아가버리면
몸에서 쫓겨 나간 영혼만이 갈고리 주위를 맴돈다
바닥에 핏물을 떨어뜨리는 기억의 몸뚱이
마치 남은 말이라도 쥐어짜듯이 팽팽한 얼룩들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거푸 숨을 몰아 내쉬며
한 방울의 핏빛 눈물을 짜낸다
진열대 속 자동 분쇄기에 가지런히 썰려 있는
살점들, 한 그루 시간의 붉은 잎사귀처럼 서로 몸을
포갠 채 지독한 적막 속에 끼어들 때
일생을 캐묻듯이 유리의 깃털들이 펄럭인다
게으른 책임을 두 눈 속에 퍼부었을 소
그러나 이제, 시간에게 상속 받은 것이 얼룩뿐이라는 듯
붉은 燈을 바닥에 하나 둘씩 켜놓는다
문양
박주택
안내견 앞서 가네, 눈을 끔벅거리며
약국 앞 지나네, 먼 길을 걸어온 듯 혀를 길게 빼물고
사람들이 비켜주는 길을 따라 토요일 속으로 걸어오네
벚꽃 피는 봄날이었네 마음이 도굴되는 봄날이었네
바람은 사랑에게서 불어오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눈에서
불어오는 것이라고 꽃가지는 흔들고 모오든 노래들이 펄럭일 때
바람들 고요에 들어 고요의 상속을 기다리네
이렇게 흰 꽃잎 들여다보는데 마음은 피고 물은 흐르는데
고소한 기름 냄새 풍기는 봄날
바야흐로 빛을 배워 눈 열리는 봄날
놓친 것들이 돌아오는 길목
안내견 한 마리 눈을 끔벅거리며 성자처럼
흰옷을 펄럭거리며 꽃잎 속을 걸어오시네
사람들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며
횡단보도 걸어오시네
<출처: 시와 글벗>
낯선 사람과의 식사
박주택
사람 사이의 견딜 수 없는
침묵과 말 속의 침묵
식기가 부딪쳐 긴장을 깨는 동안
뱃속 어딘가에 꿈틀대는 식물과
유영하는 가늘고 긴 생선
나와 또다른 〈나〉가 암투를 벌이는 만큼
그것은 훨씬 불가항력적이다
아마도 죽지 않아서
저녁에는 연한 고기를 씹으리
그리고 더 많은 일
천지에 살아 있다는 공룡도 만날 것이고
즐겁고 예민한 소설도 읽을 것이다
말과 말 사이의
……어떤 경련
無明
박주택
시간에는 들어가질 않고
시간 밖에서 시간을 본다
책은 읽지 않고
책 밖에서 책을 본다
한 켠에 우두커니 서 있는
세상 힘없는
슬픔
그 흔한 눈물에도
들어가질 않고
……이기적인 몸이여, 눈 먼 무자비여!
싸움
박주택
언젠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도전을 받아 도망쳤다
춥고 꿉꿉한 바람 속에는 욕들도 섞여 있어
견디기 어려웠다
비겁하지만 잊어버리기로 했다
세상 사람들이 지나간다
아예 나를 무시하며 지나간다
기억의 값싼 누드
박주택
해묵은 먼지에서 갑자기 비린내가 나더니
웅크리고 있던 괴물 나타나
힘겹게 일으킨 평온 잘도 흐트려 놓는구나
차라리 벌레가 되는 게 좋겠다
후회도 환멸도 수고도 없는
무감의 생애가 되는 게 낫겠다
튼튼하구나, 기억의 번식이여 불룩한 뱃살이여
부끄러운 기억의 공포
박주택
기억이
창고 문을 부수고
뻔뻔스럽게
걸어나오고 있다
손에는 기계와 수상쩍은 상자까지 들고
그러다 털썩 상자에 앉아
담뱃불을 짓이기며
능멸하듯이 침을 찍 내 앞으로 뱉아냈다
나는 무슨 말을
듣는다는 것이 두려웠다
기억이 일어서며 말했다
"추악한 놈, 네 입에서는
똥구멍에서 떨어지는 똥보다 더
구린내가 나"
나는
황망히 떨고만 있었다
은빛 하모니카
박주택
는개 내린다
저녁의 가는 공기를 뚫고
추억의 막장 속으로
희부윰한 는개 내린다
광막한 추억 속
어떤 것들은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것에
몸을 숨기고
어떤 것들은 솟아오르는 뿌리에
손을 뻗는다
막다른 집 창문에서 아롱대다
아득한 회억의 대지에서
사라져가는 것과 솟아오르는 것들
어떤 것들은 너무나 슬프고
어떤 것들은 너무나 부시다
희미한 은빛 하모니카 소리 들리는
모든 가을, 모든
추억의 풍경 속으로
젖은 가랑잎 뒹군다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박주택
여행자처럼 돌아 온다
저 여린 가슴
세상의 고단함과 외로움의 휘황한
고적을 깨달은 뒤
시간의 기둥 뒤를 돌아 조용히 돌아 온다
어떤 결심으로 꼼지락거리는 그를 바라다 본다
숫기적은 청년처럼 후박나무 아래에서
돌멩이를 차다가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물방울이 간지럽히는 흙을
바라다 보고 있다
물에 젖은 돌에서는 모래가 부풀어 빛나고
저 혼자 걸어갈 수 없는
의자들만 비에 젖는다
기억의 끝을 이파리가 흔들어 놓은 듯
가방을 오른손으로 바꾸어 들고
느릿한 걸음으로 돌아 온다
저 오랜 투병의 가슴
집으로 돌아 온다
지친 넋을 떼어 바다에 보탠 뒤
곤한 안경을 깨워
멀고 먼 길을 다시 돌아 온다
별
박주택
창문을 달지 마라
피가 흐른다, 창문을 달 때마다
꽃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분다
어느 먼 곳에 더운 눈물 떨어진다
누가 죽고 누가 사는가
사람들은 저녁해를 받으며
정류장의 느린 어깨로 가고
그 중 누구는
비가 내리는 편지를 쓰며
하루의 잠을 걱정한다
사연 없이 죽는 사람이여
꾹꾹 다져온 진물을 바닥에 흘리며
꽃을 꺾어 강에 던진다
살을 베인, 그 꽃
핏방울을 흘리며 검은 별로 간다
꽃장식
박주택
석조 궁륭 위로 포동포동하게 살찐 구름 흘러간다 고독 을 바싹 채광창 옆으로 밀어붙이고 도통한 가방 문양의 구 름을 말끔히 바람에 씻긴 채 성당 위를 지나간다 자발적이고 즉흥적인 구름의 당당한 행진 스테인드 글라스. 비위가 거 슬리는 듯 한쪽이 짧은 빛을 성당 안으로 꺾는다 봄싹들이 길게 자란다 그 뿌리의 자력으로 생을 지탱할 수 있는 평 온함 마침내 기억 속의 반점들도 평온함에 몸을 숨길 때 성당의 기둥 다소 종교적으로 보이려는 듯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점점 저무는 사람의 일생 불룩거림도 붕싯한 쾌활 도 없이 너무 많은 세월을 사람들은 이교도로 살아 왔다 말에 오르는 기수처럼 책을 고르는 소년처럼 단지 시작을 조심스럽게 했을 뿐 표면의 들쭉날쭉한 것들은 손을 쓸 수 없었다 일생의 얕은 산이 생길 때 신의 별장처럼 생긴 성 당 위로 살찐 구름 흘러 간다 볼품없는 사람들 거만한 성 당 앞에 모여 바이올렛 봄싹들을 본다
이 비릿한 저녁의 물고기
박주택
바람의 배후에서 끈덕지게 남은
집들만이 창문에 힘을 모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관을 닫으며 누군가가 운다
서시
박주택
네 개의 기둥, 이 하얀 시집
너의 손에 말들이 죽어 갔다
곳곳에 말의 입술 틈 사이로
흐르는 피! 누가 시를 쓴다
말의 목에 올가미를 씌운다
저녁이다,
말의 공동묘지에서 누가 시를 쓴다
공중에 떠 있는 의자
삶을 속이는 저 하얀 시집
검은 노래의 학교
박주택
비가 새는 교실
등이 굽은 아이, 비에 젖은 채
숨을 불어 오그라든 간을 펴려 하네
입속에 바람을 잔뜩 넣고 바둥바둥거리네
교실 한 모서리에서
금지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모여
은사시나무 가지를 꺾어
등이 굽은 아이의 등을 찌르네
비는 새고 책 속의 문장들이 비에 젖는데
아이들 모여
창백한 아이의 통치자가 되네
통치자가 된 아이들
신이 나서
아이의 동공을 노려보다
얇은 유리로 아이의 살갗을 베어내네
물에, 책이 젖네
식민지가 되어버린 아이
얇은 유리에 베이네
선홍빛 피가 뚝뚝, 책속에 스며들어
젖은 절규가 될 때
비가 새는 책상 사이로
검은 학교의 노래 들리네
물에, 책이 젖네
숭어
박주택
아스라이 배가 ,떠나가는 배가,
수평선 밖으로 사라졌다
산의 나무가, 산의 계곡이, 달 아래
잠이 들었다, 그녀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신다, 턱을 두 무릎에 올려놓고
그녀는 생각에 잠겨 있다, 먼 곳에
배가 있다, 물결의 힘으로 떠나는
그 배, 떠나가는 것을 보아라!
아이는 길 위에 서 있고, 달의 고요한 물결이
미루나무 사이의 아이를 휘감아 돈다
그녀의 성기에서 실지렁이가 뽑히고 있다
속옷을 빠져 나와 마루를 기어다니다
실내를 가득 가득 채우고 있다!!
모반의 사랑 1
박주택
나, 조금도 너를 위해 성경을 읽지 않는다
남부도시로 가는 트럭들이 고속도로를 달릴 때
네가 읽은 보브아르의 책들은
피아노 위에 있고
그 위의 시계가 화요일 5시를 가리킨다
너, 각진 건물 안에서 급히 뛰어 오는
나를 바라보며
표정없이 차를 마신다
오토바이를 탄 한 떼의 젊은이들이
사거리를 돌진해갔다
너와 나는 금지의 팻말이 붙어있는
이 구역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내가 막 담배를 피우려 라이터를 켰을 때
너는 조금 화장을 고쳤을 뿐이다
모반의 사랑 2
박주택
너, 또한 불안한 음모자였으니
사랑의 눈먼 숭배자였으니
낮강의 무한한 물 쉼없이 흘러
미라보 다리 아래로 간다
나, 너무 오랫동안 도심의 식탁에 앉아
어느덧 사랑도 함부로 하는 나이가 되었네
거만했던 젊은 기록들이
나쁜 추억만 남기고 극장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버린 지금
네 미친 불길이 옷들을 태우며
내 방의 열쇠를 훔쳐
대교를 커어브 돌아 들어가네
나, 마른 손으로 아픈 허파를 만지며
너 다녀간 밤의 늦은 저녁을 먹네
하늘로 가는 단칸방
박주택
방이 있다 그 방은 물에 젖어
시간에 떠 있다
늙은 어머니가 중풍으로 누워
수족은 움직이지 못하고
삼십을 넘게 건사해 온 장애 아들은
못에 노끈을 매고 있다
말 못하는 어머니, 사지를 뒤틀며
의자 위에 선 아들을 오려다본다
툭! 의자가 굴러가고
노끈에 목을 맨 아들이 컥컥거릴 때
그 온몸으로 쥐어짠 눈물의 힘으로
단칸방 하늘로 올라간다
가을의 옛집
박주택
가을의 옛집 저 곳, 구부러진 발톱을 바라보며
스산하게 등을 기대던 가을의 번지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이리저리 불려 다니다
흙 틈에 끼어 쓰린 소리를 내며 부서지던 곳
청춘의 집이 그렇게 구부러져 있었으니
낮이 가고 밤이 가고 가을이 왔다
가을이 왔다, 어쩔 것인가
누가 저 집의
누룩 슬던 방을 기억할 것인가
아직도 숨골에 오목하게 남아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연기로 피어 오르는
상처들의 누옥
나뭇가지가 스산하게 그리움을 부추겨 세우는
또 다른 가을의 땅에
아물지 못한 상처들만 모여 검은 잎사귀로 뒹군다
대추나무에게로 가는 법
박주택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하숙집에 앉아
시간의 하얀 줄무늬가 창 틈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상어의 지느러미가
한 쪽이 심하게 휘어진 채 뒷숲으로
사라져갔다
읍내로 가는 버스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부옇게 사라져갔다
까끌까끌한 희망이
수척한 별과 함께 깜빡거렸다
산이 있었다 그 너머 바다로는
安山 가는 배
마루에 보얗게 먼지가 쌓이고
가슴에 보푸라기가 일 때
울거 삭혀야 대추나무가 되고
배배 틀어져야
꼿꼿한 미루나무가 되었다
누떼
박주택
누워 별을 본다
동백꽃 폈다
검은 상처의 배
깊은 곳에
부서지던 서랍과
땀의 노란 젖들
누워 별을 본다
하얀 누떼를 본다
운명은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 3
박주택
너의 눈에는 황량한 모래의 풍경이 깊이 잠겨 있다.
너의 입에는 전염병에 누워 있는
물고기를 달래는 말투가 들어 있다.
너의 손에는, 너의 손에는
깨진 창문이 달려 있다
꽃나무를, 허파의 정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할 수
있는가, 부서진 의자의 수기를 읽으며 꽃나무의
잎사귀를 뻗게 할 수 있는가,
해는 닳고, 부서지고, 미끄러져 흘러내린다
모래가 있는 길 위에, 너는,
비스듬히 갈라진 나무의
틈새를 보고 있다,
깨진 창문 사이에 끼어 너는,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