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사다. 목회를 하면서도 간간히 선교 사역도 감당하는 종이다..
그러나 난 항상 부끄럽다. 늘 나 자신이 부끄러워 하나님 앞에서 자주 눈물을 흘린다.
늘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서 살고픈데 그렇지 못함이 너무 죄송하고 안타까워서다.
말로는 늘 사랑 사랑 하면서도 행위는 언제나 이기적이고 위선적일 때가 많다.
하늘을 향하는 사람은 입으로가 아닌 행함으로 산다...
물론 하늘을 향하는 사람들의 행함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를 말한다.
내 의를 드러내거나 내 자랑을 위해 행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요즘 교회 안을 들여다 보면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하면 어떻게 그려질까가 궁금해진다.
교회 안의 움직임에 대하여 한 마디로 정리하면 곧 '타락'이다.
교회를 개혁하려면 먼저 교회의 타락됨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개혁을 이룰 수 있다.
교회의 타락 한 장면을 제가 몇 주전 목사 퇴임식에서 보고 온 것을 이야기하면,
난 얼마 전에 43년을 목회하시다가 퇴임하시는 두 분의 공동퇴임식에 참석을 하였다.
좀 처럼 행사에는 가지 않던 내가 그 곳에 간 것은 가까운 분의 권유 때문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입구부터 성도들로 북적였고 많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예배당으로 들어가면서 난 마음이 조금씩 씁쓸해지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카메라맨이 많은지, 예배당 안에서 왔다갔다 분주하다.
분명히 하나님께 43년 목회 퇴임예배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가 아니었다.
목사도 하나님께 감사예배요 교회도 하나님께 감사예배요 참석자들도 하나님께 감사예배이어야 하는데,
온통 목사가 영광을 받는 자리다. 설교도 목사의 수고에 촛점이다.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에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온통 사람 잔치요 사람 자랑뿐이다. 말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면서도.
설교보다 긴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퇴임 목사 중 한 사람이 나와서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본인도 본인이지만 사모가 나와서 인사하고 또 자식들까지 모두 나오게해서 또 인사하고...
똑 같이 두 사람이 함께 퇴임하는데도 한 사람에게 더욱 라이트가 비쳐진다. 행사 담당자는 그냥 놔둔다.
왜냐하면 그 목사가 시무했던 교회에서 이 행사를 치르기 때문인가보다.
타락이 구석구석 붙어있고 온통 사람 잔치요 타락 잔치다. 교회의 영원히 머리되시는 주님은 없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들은 죽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목사는 살아있고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으셨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성도 가운데 계시지만 말이다.
말로는 하나님을 말하고 사랑을 말하고 영광을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실제 흐르는 내용은 없다. 온통 말잔치다.
믿음을 말하고 헌신을 말하지만 입만 살았고 보여주기식만 살았지 실제 주님을 향한 믿음과 헌신은 없다.
말로 모든 것을 떼운다. 목사도 설교 단상과 내려옴은 모든 것이 바뀐다.
내려오면 불신과 불만과 걱정과 인간의 계략이 넘친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행함이셨다. 사랑의 실천이셨고 예수님 자체가 사랑이시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 말씀하면서 믿음의 행위를 강조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신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행함 없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변명을 하는지 모른다. 이 역시 말이다.
말로, 입으로 모든 것을 떼운다.
사람들은 그 달콤한 말에 넘어가고 유혹되고 인정할는지는 모르나 주님께서는 모른다고 하신다.
입으로 아무리 시인을 할찌라도 마음 내면에서 영접하여 모셔들이지 않으면 옥토밭이 아니다.
먼저 입을 다물자. 입을 다무는 것이 겸손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주님을 되새기며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를 죽이며 주의 지체로서 행동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