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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소설데뷔작 (66호)
천사의 집
두 사람이 차에 오르자 현민의 차는 미끄러지듯 주차장을 빠져나와 고속도로 위에 올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현민은 시트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며 기사 강석에게 말했다.
“음식은 넉넉하게 준비했지?”
“예, 아이들과 자원봉사자, 선생님들 것까지 해서 80인분을 시간에 맞춰 가져오라고 해놨습니다.”
“수고했어.”
현민은 짧게 한마디하고 길게 몸을 눕힌 뒤 지그시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이 지금 가는 곳은 강원도 홍천의 작은 시골에 자리 잡은 ‘자애원’ 이라는 고아원이다.
자애원은 현민이 10여 년 전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은 후 한동안 방황하다가 아내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작은 시설로 시작했다.
지금은 제법 규모가 커져 50여 명의 원생과 10여 명의 선생님들이 함께 하고 있으며,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도와주고 있다. 자애원의 원생들 중 상당수가 장애를 가진 장애우이고 보호자의 손길이 항상 필요한 정신지체 아이들도 여러 명 있다.
현민은 처음 이 시설을 세우고 정부와 주변에 약간의 도움을 받았지만 후원자들이 후원한답시고 들고 온 라면박스 수만큼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소리와 행복하게 웃어보라는 강요 섞인 언행이 거슬려 일체의 도움을 거절하고 지금은 자원봉사자와 지인들의 도움만 받으며 운영하고 있다.
자애원의 다섯 살 된 샛별이를 떠올렸다.
샛별이는 갓난아이 때에 버려졌고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자아이로 늘 세상에 대한 관심과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다.
현민은 샛별이와 같이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서로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또 그들의 때 묻지 않은 삶과 꾸밈없는 미소를 볼 때면 이들이 모두 천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샛별이를 버린 부모는 샛별이를 감싼 담요에 편지를 한 장 달랑 남겼다. 결혼도 안 한 샛별이의 아빠는 죄를 짓고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샛별이의 엄마는 정상인이 아닌 샛별이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내용과 함께 지금 자신이 샛별이를 버리는 행동이 죽기보다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글과 함께 3만원을 봉투에 넣어 파출소 앞에 두고 떠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샛별이가 자애원에 온 후 현민이 뿐만 아니라 모든 남성들을 모두 아빠라고 불렀다.
“이게 뭔데요?”, “왜요?”라며 끊임없이 묻고 또 묻곤 하였다.
현민은 10년 전 부산에서 박선화를 만나 첫사랑의 열애를 하던 중 결혼에 골인했다. 이후 현민을 닮은 아들 초롱이가 태어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음주 운전자의 실수로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아내와 아들을 잃고 말았다.
한순간에 가족 모두를 잃은 현민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안담함에 1년여를 타락해 미친 사람처럼 떠돌다가 아내와 아들 앞으로 나온 생명보험금과 사망보험금으로 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위해 아무도 모르게 강원도 홍천 작은 시골에 자애원을 설립해 아이들을 하나둘씩 보살피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현민은 자신의 어둡고 암울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이 아이들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자활 자립센터를 만들어 아이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여권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요즈음 그의 고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우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과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재활센터 설립도 그의 숙제였다.
현민의 어린 시절은 지금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불우하게 지냈다. 현민의 부모는 편지 한 장 없이 분홍색 손수건에 때 묻은 은가락지 한 개를 곱게 싸서 현민의 머리맡에 놓고는 현민을 부산역에 버렸다고 했다.
그 후 현민은 구포에 있는 작은 고아원에 수용되어 꿀꿀이 죽 보다도 못한 밥을 먹고 사흘이 멀다 하고 살갗이 찢어지도록 때리는 사감선생의 매질을 견디며 눈물겨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현민은 그곳에서 긴 생머리에 오똑한 콧날과 쌍꺼풀이 잘 어울리는 박같이 하얀 피부의 선화를 만났다. 선화는 현민이 있는 고아원 인근 빨간 벽돌집에 살고 있었다.
현민은 그녀의 박같이 하얀 얼굴을 보며 밤늦게 까지 그녀의 집 앞을 서성이다가 사감선생으로부터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매를 감당치 못해 열두 살에 가출하여 사창가인 완월동 조직 충무상회 칼의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지냈다. 늘 열심히 일하는 현민을 착하게 여긴 대성장 주인인 최필녀의 관심을 받게 되어 양아들로 들어갔다. 초·중·고를 검정고시로 패스하고 S대학에 입학을 했다. 이리하여 제천시와 인연이 되었고, 그길로 이곳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현민의 양모 최필녀는 현민이 대학 3학년 때 현민의 앞으로 거액의 유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현민은 최필녀가 세상을 떠나자 전공과목을 한의학에서 건축학과로 바꾸어 어릴 때 자신의 꿈인 건축공부를 하며 지금의 청림건설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이윽고 현민의 차가 홍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도락산 기슭에 위치한 자애원에 도착했다. 자애원 원장 김순임이 천사 같은 샛별이를 안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샛별이만 현민의 눈에 들어왔다. 현민이가 차에서 내리자 샛별이가 쪼르르 달려와 현민의 품에 달려들었다. 샛별이는 현민의 머리에 걸쳐진 선글라스를 벗겨내어 “아빠, 이게 뭐야?”라고 물었다. 현민은 샛별이의 볼에 뽀뽀를 하며 “샛별아, 아빠 안보고 싶었어?”라고 말하곤 샛별이를 번쩍 들어 한 바퀴 빙그르르 돌렸다.
샛별이는 무서운 듯 눈을 꼭 감으며 “아빠, 무서 무서.”하고 소리를 질렀다. 현민은 재미있는 듯 한 바퀴 더 돌려주고 내려놓으며 샛별이의 몸에서 치킨 냄새가 난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현민의 옆에 있던 김순임이가 “빨리 오셨네요.” 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치킨과 피자가 배달되어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식당에서 먹고 있어요. 오빠는 식사 했어요?”
“난 천천히 먹을 테니 강석이나 챙겨 줘.”
“저도 천천히 먹겠습니다.”
강석은 두 사람을 위해 샛별이를 안고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현민은 김순임의 얼굴을 천천히 살핀 후,
“왜 이리 얼굴이 상했어. 무슨 걱정 있는 사람마냥?”
현민이가 걱정스레 물었다.
“제가 걱정 있을게 뭐 있나요. 아무 걱정 없어요.”
순임은 웃어 보이며 말했다.
현민은 순임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살폈다.
“병원에는 다녀왔어?”
“예, 저번에 차 보내주셨을 때 항암치료 받고 왔어요.”
현민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김순임은 부산 구포의 고아원에서 현민과 함께 자랐다. 현민 보다는 다섯 살이 어린 순임은 전형적인 동양미를 가진 청순가련형 여인이었다.
현민은 고아원을 탈출해 나와 완월동에서 숨어 지내면서도 순임과는 늘 연락을 취했다. 그는 양모 최필녀가 세상을 떠나자 순임을 데리고 나와 제천시에서 함께 살았는데 대학 3학년의 김순임이 같은 과의 황건동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졸업을 앞두고 결혼하였다. 제천시 인근 원주시내에 현민의 도움으로 레스토랑과 커피숍을 운영하며 지내던 중 황건동의 잦은 외도와 잇따른 사업실패로 둘은 갈등을 하다가 황건동이 김순임을 배신하고 떠나 버렸다.
현민이 몇 번 중재하며 황건동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었음에도 끝끝내 배신을 하자 화가 난 현민이 황건동의 아킬레스건을 잘라버렸다. 이 때문에 황건동은 다리를 절며 타락해 술로 지내다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문을 얼마 전에 듣게 되었다.
어릴 적 순임은 현민을 친 오빠처럼 따랐다. 순임이가 이성을 알게 될 무렵 현민을 짝사랑 했지만 그녀를 친동생처럼 여긴 현민은 야속하게도 순임에게 눈길 한번 주질 않았다. 순임이 사춘기가 지나 현민과 비슷한 외모의 황건동의 자상함에 이끌려 둘은 서둘러 결혼을 했다.
그가 마음이 변해 순임의 곁을 떠나자 시름에 찬 나날을 보내던 순임은 유방암까지 걸려 한쪽 가슴을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항암치료를 받으며 자애원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며 생활하고 있다.
순임의 어두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현민은 걱정이 되었다.
“내일 차 보낼 테니 사무실로 나와. 사무실 아래 동양한의원에 예약해 놓을 테니 진맥 받고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다 먹어.”
순임은 괜찮다며 완강히 거절했다.
현민은 성난 얼굴로 화를 내며 말했다.
“까불지 말고 내일 차 보낼께.”
순임의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
현민의 성격을 잘 아는 순임도 그제 서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 오빠.”
100여 평의 자애원 식당 안은 치킨과 피자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현민이 순임과 함께 식당에 모습을 나타내자 사감 선생인 김소형 선생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빠 오셨어요. 크게 인사들 해야지.”
“안녕하세요?”
작은 아이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합창을 한 뒤 아이들이 뛰어와 현민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잠시 뒤 조금 나이가 든 아이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현민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모두 맛있게 먹고 축구하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와!”하며 환호하며 좋아했다.
현민은 순임의 원장실 방으로 들어가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순임의 안색을 살피며 옷장에서 숄을 꺼내 순임의 등에 덮어 주었다.
“춥게 다니지 말고 방에 불도 많이 넣고 따뜻하게 지내.”
현민은 순임의 등을 토닥였다.
순임이 젖어있던 눈동자에선 현민의 얼굴을 담은 작은 물방울이 무심하게 툭툭 떨어졌다.
현민은 가슴이 아렸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는 축구공을 꺼내 강석과 편을 나누어 축구시합을 했다.
순임은 낙엽이 떨어진 앙상한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아이들과 놀아주는 현민을 보며 지난날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없이 원망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푸른 가을 하늘엔 고추잠자리 몇 마리만 배회했다. 오늘 보는 하늘도 순임의 가슴처럼 멍들어 있는 것만 같아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물이 번졌다.
현민은 온종일 이들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업무관계로 강남을 가야하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강석과 함께 차에 올랐다.
강남 뱅뱅 사거리,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아폴론 B.D.경비원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현민과 강석은 84층 Vision 21 center라고 써져 있는 문 앞에 서서 지문 인식기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검정색 방탄 유리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현민이 들어서자 문은 빠르게 닫혔다. 뒤이어 강석이 빨려 들어가듯 문안으로 사라졌다. 그들을 삼킨 Vision 21 center의 실내 분위기는 블랙과 화이트의 묘한 대칭으로 왠지 모를 중압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넓은 복도 양옆 많은 문들은 숨을 죽이고 입을 닫고 모두 붉은 글씨로 통제구역 이라고 적혀져 있는 플라스틱 패찰이 명패처럼 붙어 있었다.
현민은 실내 구조를 잘 아는 듯 ‘종합상황실’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면을 갖다 대었다. 형광빛의 레이저가 현민의 안면을 재빠르게 훑고 지나며 문이 덜컥 열렸다. 뒤이어 강석도 같은 방법으로 재빨리 현민의 뒤를 따랐다.
상황실의 100여 대 모니터엔 알 수 없는 화면들로 꽉 차 있었다. 그 화면들을 지켜보는 사내들은 10여 명 모두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현민의 등장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모두들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팀장인 김원현이 금테 안경을 쓰고 현민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몇 마디 말을 건넸다. 현민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몇 번 치고는 상황실을 나와 옆 대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10여 명의 사내가 각기 테블릿 P.C를 앞에 놓고 긴장된 얼굴로 앉아 있다가 현민이 등장하자 모두 일어섰다. 사내들이 앉자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아래로 내렸다.
사내들 모두 현민에게 목례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현민이 앉자 20대 후반의 날카로운 눈을 가진 권영안이 익숙한 솜씨로 말했다.
“지금부터 비전21의 인터네셔널 드림 비즈니스 3/4 분기 진행상황을 브리핑 하겠습니다. 먼저 해외 사업부 마이클 볼튼 씨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해외사업 한국팀장 마이클 볼턴입니다. 먼저 세계 최대 해수 담수화 플랜트 사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해수 담수화는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여러 나라에서 건설 중에 있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캐나다 등도 담수화 프로젝트 사업에 뛰어들어 서로 선점하려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두산 중공업이 이미 사우디아라비아나 리야드 현지와 주베일에서 북서쪽으로 75km 떨어진 라스아주르 지역에도 건설 중에 있습니다. 공사금액은 약 2조원 상당이고 우리 비전21에서 추진 중인 나라는 쿠웨이트와 UAE 등에 로비중입니다. 이미 쿠웨이트 왕자 알 압둘라와는 여러 차례 미팅을 마쳤고 실사를 위해 한국에도 여러 번 다녀갔습니다. 알 압둘라 왕자도 이번 일에 최선을 다해 비전21을 지원하기로 약속이 된 상태입니다. 저희 비젼21에서는 담수화 플랜에 실직적인 공사실적이나 기술이 전무한 상태이지만 캐나다 ‘엠코’사와 컨소시엄을 맺어 활동 중에 있습니다. 바닷물을 끌어오는 과정 중 인공적인 해수력 발전을 2차로 계획해 일거양득으로 자원을 이용할 플랜트를 설계중입니다. 이번공사는 캐나다 엠코사가 설계에서 기자재 제작 설치, 시운전에 이르는 과정을 EPC 방식으로 일괄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비전21은 로비 수주 등의 역할만 하고 총 공사 금액 15%를 받기로 약정 하였습니다. 이번 쿠웨이트 해수 담수화 플랜트에 투입될 공사 금액은 약 5조원 규모로써 1단계에 2조원, 2단계에 3조원이 투입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 로비를 맡고 있는 에드워드 권의 일거수일투족을 상황실에서 체크하며 비전21 특수 팀에서 경호 및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라크 내전지역 시야르 유전 개발 사업은 미국 퍼시픽사로부터 계약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폭스사로부터 이번 유전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상황입니다.”
마이클 볼턴의 보고가 끝났다.
“다음은 평창 동계올림픽 상황 본부장인 김현철 팀장님 발표해 주시죠.”
커다란 키에 콧날이 오뚝한 사내가 일어나 현민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평창 동계 올림픽 진행 상황을 맡고 있는 김현철입니다. 현재 동계 올림픽 진행 상황을 말씀 드리면 2018년 강원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에 따른 정부예산 규모는 약 5조원입니다. 또 민간자본이 10조원이 움직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희 비전21에서 추진 중인 사업은 프랑스 ‘바통’사와 합작한 강원도 원주에서 평창 간 무진동 무소음 전철 궤도사업에 참여 중입니다. 이음새 없는 초 경강 레일은 300℃의 열에도 -150도의 한중에도 변화가 없는 특수합금으로 탄소플라스틱과 비철금속과의 합금으로서 앞으로 철도 및 전철 사업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비전21 연구진이 개발 중인 재생고무 침목 등은 이미 여러 번 실험에 성공하여 지금은 두 가지 기술을 접목한 시설을 시험 운영 중에 있습니다. 이 궤도와 재생고무 침목의 특징은 전철의 움직임에 무진동 무 소음이며 이것들이 현실화되면 세계 최초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계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공사에도 초경량 극세사 섬유로 지붕을 만들어 덮으면 자동채광과 통풍이 잘되어 사계절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소재의 특성상 가벼워서 스타디움 지붕을 개폐하는데 드는 비용도 많이 절감될 것입니다. 트러스도 기존의 금속제품이 아닌 탄소섬유에 열가소성 플라스틱을 결합해 만든 천연 봉으로 시공을 하게 되면 내구, 내화성이 아주 우수하고 가벼워 공사기일 및, 공사금액도 상당히 절약됩니다. 이 공법으로 대규모 공사를 건설한 사례는 아직 없지만 이번 무진 시에 배드민턴 구장을 민자 유치로 건설 중에 있습니다. 이미 천연봉은 강철보다 단단하고 가공하기 쉽고 오래가는 것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제품입니다. (주)천년과는 독점 계약을 한 상태이고 (주)천년의 주식 33%는 비전21의 자산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천년의 연구진 대부분도 비전21에서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김현철 팀장의 발표가 끝나자 콧수염을 기른 키 작은 사내가 일어섰다.
“국내 경견 사업을 맡고 있는 모건프리먼 입니다. 경견 사업은 2,4분기에 J시와 약정한 일본 겡꼬사가 계약이행 보증증권을 끊어 납부한 상태이고 현재 J시와는 경견장 부지 100만평에 대해 환경영향평가와 도시계획 변경 등을 의회에 승인 요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부지 내 사업시설로는 경견 경기장 2개소와 경견 훈련장 1개소, 월드 애견학교, 애견병원, 콘도미니엄 10개동, 호텔 2개소, 애견 연구소, 애견공원 등이 건립될 예정입니다. 겡꼬사와는 비전21이 시행사로 약정되어 있으며 이 시설 내 운영권 지분은 추후에 협약하기로 하였습니다. 겡꼬사의 자금 유입은 경견이 합법적인 게임 사업으로 국회에 상정되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 같습니다.”
이때 발표를 듣고 있던 현민이 오른손을 들어 모건프리먼의 말을 잘랐다.
“게임 사업에 외국자본이 몇%까지 투자될 수 있는지와 현재 내국인 카지노, 청도 소싸움, 잠실 경마장 등에 대해 운영실태 등을 조사해서 보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회의장을 빠져나온 현민은 대 회의실 옆 CEO Room이라고 써져 있는 검정색 문 앞에 서서 안면인식기에 얼굴을 갖다 대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실내에는 파스텔 톤의 벽과 천정이 회색의 양탄자와 어울려 모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CEO Room 한쪽에는 대형 스크린과 모니터 등 여러 가지 전자장비가 가지런히 장식되어 있었다.
잘 정돈된 최고급 소파와 테이블 위에는 현민과 제임스, 현민의 양모 최필녀, 양부 마이클창이 프랑스 에펠탑 앞에서 현민을 사이에 두고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현민은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아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잠시 뒤 대형 모니터에는 사진속의 남자 마이클 창이 활짝 웃으며 현민에게 “베이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하고 어눌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현민도 웃으며 익숙한 영어로 마이클 창에게 조금 전 회의실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강석과 비젼 21을 빠져나온 현민은 자신의 자동차 뒷좌석에 몸을 길게 늘어뜨린 후 조수석에 앉은 강석과 몇 가지 얘길 나누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현민의 차는 복잡한 강남거리를 빠져나와 중부고속도로를 진입해 경쾌하게 달렸다.
현민은 어린 시절 최필녀의 양아들이 된 후 그녀의 남편 마이클 창과도 부자지간의 연을 맺었다. 또 마이클 창의 굵직굵직한 여러 가지 일들을 현민의 무술사부 제임스를 도와 해결하며 마이클 창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현민은 어린 시절부터 대한민국의 1등 건설, 아니 세계 1등의 건설 회사를 꿈꾸었지만 양모 최필녀의 뜻에 따라 한의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양모 최필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건축공부를 하여 양부 마이클 창과도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다.
마이클 창의 비전21의 한국인 대표 제임스가 부재 시 대리인으로 현민이 마이클 창에게 보고하며 비전21의 여러 가지 일 등을 알게 되었다.
비전21은 마이클 창의 검은 자금 세탁 장소였다. 또 마이클 창보다 더 큰 거물이 배후에 있는 세계적인 비밀 기업으로 국내외 굵직굵직한 사업에 로비스트를 양성해 움직이고 있었다. 비전21은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30여 개 국에 지사를 두고 각 나라의 정보를 수집해서 대형공사 로비 등에 깊숙이 개입해 이권을 챙겼다.
비전21의 실체에 대해서는 현민도 아는 것이 없으며 현민의 회사도 비전21에 공사는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단지 마이클 창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대단하고 무서운 사내라는 것과 양부라곤 하지만 한 치의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 냉혈인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현민은 마이클 창의 비전21을 보며 자신도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기업을 만들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늘 다짐하며 지냈다. 현민 자신의 무술사부이며 비전21의 한국지사장인 제임스 리의 자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지금 하고 있는 자신의 건설사를 국내 1위로 만드는 게 현민의 최대 목표다. 비전21의 특수 팀은 해외 용병들로 구성되어 서로간의 얼굴을 모를 정도로 베일에 가려져 있고, 제임스와 마이클 창의 명령이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특수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민은 언젠가는 비전21을 넘어서는 사람이 될 거라고 마음먹으며 자동차 시트에 기대어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 들며 천사 같은 아이들의 모습을 일일이 떠올린다.
예고되지 않은 반전의 기발함
이번 호에서는 이민우의 「천사의 집」을 선두에 떠올린다.
천사의 집은 자애원이 아니라 주인공 현민의 가슴 속에 있었다. 그는 굴지의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회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바도 〈자애원〉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우인 샛별이는 누구인가. 다운증후군을 앓는 여자아이다. 주인공은 그녀를 통해 천사를 본다.
샛별이는 미혼모의 소녀이다. 소녀의 부친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어 아이를 감당할 수 없고 모친은 샛별이를 파출소 앞에다 두고 떠난다.
여기에서 샛별이가 정상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소설적 주제를 도출해 낸다. 하늘의 도움을 받는 샛별이는 장애우이기 때문에 하늘의 도움을 받아야 살아남으며, 샛별이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현미의 의지야 말로 천사를 대신한다.
작자의 건설회사에 대한 전문성 또한 이 소설을 빛나게 한다. 작자의 의도는 현민을 통해 나타나며 샛별이가 목적이기 때문에 이 소설을 구조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건투를 빌어 마지않는다.
고마운 희망의 선물
하루가 1년 같은 긴 재판 중에 숨길 말도 더 꾸며 낼 말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내 맘 같지 않은 지루한 공방에서 몸과 맘이 지쳐 갈 때 기적처럼 지인들께서 저에게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그 관심은 지금까지 희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고마운 희망의 선물을 받으면서 결심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따뜻한 햇볕이 비추는 세상에 당당하게 다시 서게 되는 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준 좋은 분들 곁에서 예전보다 더 잘하면서 살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곳의 삶도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뜻에서 순간순간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절제된 행동과 마음가짐으로 지난날을 반성하며 글 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시고 용기를 주신 김명자 선생님과 저를 아는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부족한 작품을 심사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을 쓰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