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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실존의식!
(에스더 4:10-17)
미당 서정주 시인의 유명한 시 한 구절을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국화 옆에서' 라고 하는 제목의 시입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너무나 아름다운 시구입니다. 국화꽃은 가을에 핍니다. 그러나 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이 있었고 여름이 있었습니다. 비바람도 있었습니다. 뜨거운 여름철이 지나고 그리고 가을에 비로소 한 송이의 국화를 보게 됩니다. 시인은 생각합니다. 이시간 이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위하여 그 긴긴 여름이 있었다고. 그리고 소쩍새는 한여름 내내 울었던 것 같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라고 하는 유명한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기독교는 '주의'라고 하는 말을 싫어하지만은 또 '주의' 일수가 없지만은, 왜냐하면 신앙은 이념이 아니니까 말이죠. 그렇지만, 부득이 만일에기독교에게 어떤 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현실주의일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현실을 도피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떠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닙니다. 피안의 세계만을 바라보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현실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 의미와 그 목적을 알고 현실에 대하여 적극적 자세로 긍정적으로 창조적으로 대하며 변화시키고 개척해 나가는 파이오니아적 종교란 말씀입니다. 현대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질병도 가난도 아닙니다. 현대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허무'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미 상실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겠고,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지를 모르겠단 말입니다. 왜 내가 참아야 하는지 그걸 알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의미상실, 이것이 결정적으로 우리를 괴롭히곤 하기도 하고 절망하게 하기도 합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의 대표이사가 얼마 전에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회의장에서 연봉 400만 불의 지위를 자진 사임해 버렸습니다. 회장이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 연봉 400만불, 이 자리에 왜 자진 사퇴하는 것입니까? 잘 나가는 사람인데요, 잘 나가는 시간인데요. 발표한 이유는 그저 "보다 더 활력을 찾아가기 위하여" 라고 말했습니다만은 진실한 의미는 그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일에 대하여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월급은 넉넉하게 줍니다. 돈은 벌 수가 있었더라구요. 그런데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삶의 보람과 의미는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한다고 하는 그 회장자리를 대표이사 자리를 사표냈어요.
여러분, 삶의 의미란 어디 있는 것입니까?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적어도 이 일을 위하여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할 수 있는 그런 의미의 일이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나는 지금 누구에 의해서 조종되고 누구를 위하여 사용되고 있느냐, 고용되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해 죽는 사람도 없어요. 도대체 나는 누구를 위하여 그리고 누구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느냐?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어느 순간에 죽을는지 알 것이 아니지만은 적어도 내 생을 바쳐서 죽을만한 이유가 돼야 된다는 거죠. 그렇게 충만하고 꽉 찬 그런 의미의 생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표를 내던진 것이죠.
오늘 본문에 보면 에스더가 중요한 결단을 해야하는 시점에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고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아서 이스라엘 나라가 바빌론으로 포로되어 갑니다. 모든 유대사람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포로되어 가서 포로 되어간 포로 중에 사는 사람들이지만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서 이 에스더라는 여자는 아버지 어머니도 안계시고 사촌오빠인 모르드개가 자기 딸처럼 키운, 즉 그러한 처녀였습니다만은 용모가 아름답고 단정해서 발탁되어 아하수에로왕의 왕후가 되게 됩니다.
이야말로 참 특전이올시다. 팔자가 열렸습니다. 노예 신세에서, 고아 신세에서 왕후가 되었습니다. 여자는 좌우간 잘나고 볼 것입니다. 이렇게 됐는데 이 좋은 처지인데요 문제가 생겼어요. 그 하만이라는 못된 사람 하나 때문에 그만 그의 간계에 넘어가서 왕이 실수를 했어요. 왕이 잘못된 일을 그만 결정을 해버려서 이 수산성에 있는 온 이스라엘 사람이 하루아침에 몰살되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 왕후로서 왕에게 들어가서 그래서는 안됩니다, 라고 하는 것을 간해야 되겠는데 이게 위험한 일이거든요. 왕의 실수를 바로 잡아야 되겠는데 이거 자기밖에 할 사람이 없는 거 같은데 그러나 한없이 위험한 일이에요.
오늘 성경 11절에 이걸 자세히 말해줍니다. 이 왕은 아주 정말 옛날에 전제군주기 때문에 뭐 생사권을 손에 쥐고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왕의 허락 없이 안뜰에 들어서면 그대로 목을 치게 되어있어요, 누구든. 그런데 허락 없이 들어올 때 왕이 그를 기쁘게 보아서 홀을 들어주면 살지만은 만일에 그렇지 못하면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위험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고백하는 대로 벌써 30일 동안이나 왕의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순간에 그는 중요한 결단을 해야 하게 됩니다.
자, 이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모르드개는 그에게 강하게 말합니다. "이 때에 바로 이 시점에서 네가 잠잠하면, 이 중요한 사명을 네가 기피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을 어찌하든지 다른 길로라도 구원해 주시겠지만 너와 네 집은 망하리라." 아주 강하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알겠느냐?" 이때를 위하여 바로 이 순간을 위하여 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모르드개는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과거는 어떻습니까?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고, 실수한 일도 있고, 무엇인가 운명이 잘못된 것 같은 그런 과거가 있겠지만은 이제 묻지 마세요. 그 과거가 있어서 오늘 내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현재를 그 과거가 만들어낸 것이요. 그 과거에 의해서 오늘 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은 사실입니다. 과거는 현재 속에 그 의미가 살아있습니다. 또한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의 미래라고 하는 것은, 오늘 현재의 연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쓸데없는 운명론을 생각하고 점을 치려고 할 때가 있어요. 제가 뭘 알겠습니까만은 그래도 북한에 몇 번 오락가락했다고해서 그런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언제 통일될까요? 언제 남북이 통일될까요?"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점쟁이입니까? 어떻게 알아요? 그러나 나는 중요한 대답이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하기 탓이오. 우리가 하기 탓이오. 그걸 잊지 말라고. 자 이제 "내 아들이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너 할 탓이지. 왜 우리는 현재의 의미를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오. 현재와 관계없는 아주 미래가 하늘로부터 덜렁 떨어지리라고 생각하십니까? No. 그걸 잊어버려야 되요. 나 할 탓이요. 우리가 할 탓이란 말씀이올시다.
현재 저 밝은 미래는 오늘 이때 우리의 자세에 우리의 할 일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그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디시젼 피라밋(Decision Pyramid) 이라고 하는 재미있는 학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결단을 하며 삽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선택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뭐 선택의 폭이 좁지만은 그래도 선택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먼저는 Ordinary everyday decision, 이 무슨 말인고하니 일상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여러분 많지 않은 옷이지만 뒤적거리면서 '오늘 무슨 옷을 입고 갈까?' 그 결정해야 했어요. 그 결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은 허영기가 높은 사람이에요. 이걸 입을까? 저걸 입을까? 남들이 뭐라고 할까? 예쁘다고 할까? 뭐 이거 생각하느라고 세월 많이 보냅니다. 그러나 결정을 해서 입고 나오지 않았어요. 결정 못했으면 벗고 나올 뻔했는데, 어쨌든 결정을 한 거에요. 이걸 입고 나가기로, 또 무슨 음식을 먹을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늘 누구를 만날까? 뭐 이런 일상적인 것. 심지어는 여러분 교회에 나오시는 것도 이거 중요한 결단입니다. 다 그 골프 치러 가자고 하는데 갈까 말까? 그거 굉장한 결단으로 물리치고 여기 나온 거예요. 이게 다 일상적인 결단이구요.
또 하나는 Middle level 의 decision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결단입니다. 그래서 비가 막 올려는데 자, 이제 그래도 세차를 할까 말까? 전공과목은 뭘 택해야 하나? 나는 어떤 일을 위하여 기여하며 한평생을 살 것인가? 특별히 결혼, 아주 중요한 결단이요 선택입니다. 하고많은 남자 중에 이 남자, 하고많은 여자 중에 이 여자, 이게 보통 결단입니까? 이건 내가 선택한 것이에요. 그리고 거기다가 운명을 걸었습니다. 보세요, 이건 다 중요한 결
단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Real important decision이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 결단. 그것은 생과 사에 대한 결단입니다. 여러분, 좀 생각을 높이, 한번 깊이 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죽음이란 게 있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리고 죽는 시점이 있습니다. 죽는 장소가 있습니다. 적어도 위대한 사람은 자기 죽음을 자기가 선택하는 거예요. 믿거나 말거나, 이건 사실이요. 보세요, 순교자는 누구입니까? 얼마든지 안 죽을 수 있어요. 내가 결정을 하는 겁니다, 죽기로.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잘 아는 유명한 "쿼바디스"라고 하는 영화가 있죠? 베드로가 로마성 안에 핍박이 있을 때 도망을 갔습니다. 로마 성을 빠져나갈 때 예수님이 딱 길을 가로막습니다. 깜짝 놀라서 예수님이 로마쪽을 향해 가는 걸보고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그거 유명한 얘기 아닙니까? "네가 버린 로마를 향하여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려고 내가 가노라." 베드로가 깜짝 놀라 "아니올시다 제가 가겠습니다." 자진해서 제 발로 들어가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 아닙니까. 자, 안 죽을 수 있었잖아요. 죽음의 장소와 시간을 자기가 결정한 것이에요. 이걸 잊지 말아야 되요.
심지어는 우리 조그마한 일에도 그렇습니다. 제가 목사로서 많은 임종을 봅니다. 그것도 거 좀 뭐 그저 웬만하면, 이젠 끝났다 싶으면 잘 정리하고 좀 곱게 가 줬으면 좋겠구만 끝까지 말이에요 아이들에게 뭐 수술 안해준다고 그러고 의사를 욕하고 이렇게 발악 발악하다가 그야말로 심연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죽는 사람이 있어요. 그거 참 안됐어요. 여러분, 굳게 결심하세요. 마지막 시간은 내가 해야 되요.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실례가 돼서 이름은 안댑니다. 제가 아주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은 그랬어요. 제가 보았어요. 위암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시다가 피가 좌악 빠져나가서 그만 몸이 약해지면서 기진해가지고 실신을 했어요. 정신이 나갔는데 이제 수혈을 했어요. 다른 피를 넣어주니까 다시 깨어났어요. 깨어나서 딱 보니까 아, 이 붉은 피를 넣고 있거든요. 목사님 빙그레 웃으시면서 "왜 쓸데없는 짓을 하노? 나는 어차피 가야할 사람인데, 저 피가 없어서 젊은 사람도 죽어 가는데 왜 저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뽑으라"고 자기 손으로 다 뽑았어요. 수혈하던 거 산소마스크 다 뽑아놓고 다 모이라고 딱 붙들고 하나하나 위해서 숨이 차지만은 기도하고 그리고 딱 눈을 감는 걸 보았습니다. 그 목사님의 장례식에 그 장로님이 광고를 하시면서 그랬어요. 오신 손님들에게 인사 하면서 "우리 목사님은 명설교가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설교를 하고 가셨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참석해서 많이 울었고요 굳게 결심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한다' 결심했습니다. 여러분 단 1분이라도 좋아, 단 한시간이라도 좋아, 내가 결정하세요. 시시하게 끝까지 살려달라고 몸부림. 그거 왜 이러는 겁니까? 이거 아니죠. 죽음은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선택적으로 죽는 것이 바로 순교라는 것 아닙니까? 여기에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번 생각해 보세요. 행복, 불행, 이게 뭡니까? 오래 살면 뭘하고 행복하면 뭘하고 가지면 뭘합니까? 어느 순간에 소중한 일을 위하여 행복도 차버리는 거예요. 명예도 차 버리는 거예요. 끊어버리는 거예요. 그 결단이 꼭 필요합니다. 오늘 에스더는요, 자 이게 생각해 보세요. 노예로 끌려왔다가 왕후가 됐어요. 이게 웬 복입니까? 아 이거를 그래 차버려요? 이거를 내버려야 한단 말입니까? 그가 왕에게 들어갈 때, 오늘 보니까 자기도 사흘동안 기도하고 수산 도성에 있는 모든 유대사람은 다 금식기도하라, 나를 위하여. 내가 들어가리라. 죽으면 죽으리라. 들어갑니다. 그 시간 다 포기했습니다. 명예고 지위고 행복이고 뭐고……. 오직 하나님께 맡기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때를 위하여 나는 존재한다. 이 시간을 위하여 나는 세상에 있다. 이 시간을 위해서 나는 가노라, 그러한 중요한 결단이었습니다.
여러분 모세를 아시지요? 모세가 80세에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다가 광야에서 호렙산 기슭을 지나가다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는 명령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각합니다. 이 순간이 있으므로 해서 그의 운명은 달라집니다. 생각하면 그가 여기에 80세가 되도록 유리방황한 이 생은 그가 한때에 살인을 했거든요. 애굽사람을 쳐 죽인 죄 때문에 광야에서 40년을 산 게 아닙니까. 그가 왜 바로의 궁전에 40년 있었는지 왜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쳤는지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자신으로 볼 때는 자기 무능이요 자기 실수입니다. 자기 죄 때문입니다만은 이제 그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과거, 이 모든 잘못된 해석을 다 지워버리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기 위하여 오늘 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내가 있기 위하여 지난 80년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거룩한 역사를 위하여 내가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하게 그는 응답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보세요. 3년밖에 일하신 바가 없습니다. 뭐 봉사 봉사 하지만 예수님이 봉사했다는 건 물량적으로 볼 때 도대체가 몇 사람이나 고쳤습니까?
몇 사람이나 먹였습니까? 제자들이라는 건 지금 한심합니다요. 이걸 놓고 어떻게 눈을 감습니까?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결단을 합니다. 비상한 결심, 비상한 결단, 그를 통하여 만민을 구원하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이 때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버려진 과거도 없고, 의미 없는 현실도 없습니다. 무엇을 하나님이 요구하고 계십니까? 나의 과거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실수와 죄로 얼룩져 있습니다만은 잊어버리세요. 그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올시다.
그리고 저 밝은 미래를 위해서 오늘 이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내 모든 의견과 인간적 이상을 완전히 포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크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저 하십니다. 에스더는 이렇게 헌신함으로 인해서 민족을 건지고 크고 놀라운 영광을 얻었습니다. 에스더 뿐이겠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같은 중요한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이때를 위하여 이 시간을 위하여 나는 존재한다.
** 기도
의로우신 아버지여, 미련하고 우매해서 그 많은 세월을 살아가면서도 삶의 참 의미를 모르고 살 때가 많았습니다. 내가 오늘 처한 이 귀한 시간을 우리는 의미없이 쓸모없이 버려진 생처럼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만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시고 주께서 오늘 구체적으로 나를 부르심을 알게 하시고 오늘 이 현실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또 이루고저 하시는 큰 뜻이 있음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으면 죽으리라 그러한 위대한 결단과 함께 헌신함으로써 주의 손에 붙들리어 참으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민족의 살길
성경본문 : 에스더 4: 10-17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11.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일이라 하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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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000명 돌파 기념 총동원 주일을 기해 찾아 나오신 여러 성도님들의 개인과 가정에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사랑이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원래 어린이 주일입니다만 특히 믿음의 열이 많이 식어졌던 성도들도 나오셨고, 뿐만 아니라 국제정세로 보나 우리나라의 상황을 볼 때, 다른 어느 때보다도 위기의식을 절박하게 느끼는 때이므로 절기 설교를 피하고 "이 민족의 살길"이라는 제목으로 성경 말씀을 찾아보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요사이 크메르 정부가 항복하고, 월남 정부가 항복하여 완전히 공산주의자들에게 넘어가고 망해가는 것을 볼 때 많은 충격을 받게 되고 이 모든 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고 우리 민족의 일 같이 느껴지곤 합니다. 그뿐 아니라 자유중국 대만도 위대한 장개석 총통의 위세와 영향력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 왔는데 그분도 세상을 떠났으니 대만의 운명도 가히 짐작할 수 있고, 라오스의 운명도 역시 마찬가지로 되어가 고 있는 실정입니다.
때를 같이하여 북괴도 남침할 준비를 완료한지 오래 되었고 금년은 더욱이 북한 공산당 창당 30주년을 맞이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적화야욕을 달성하는 결정의 해로 삼고 땅굴까지 파놓고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이웃 공산주의 국가들이 승리를 거두는 것을 보고 있는 김일성은 더욱 초조하여 남침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요사이는 중공을 방문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이 때입니다.
북괴는 김일성을 신격화해서 독립운동을 할 때 축지법을 써서 공중을 날아다니고 모래알이나 솔잎을 가지고 쌀과 음식을 만들어 먹은 마치 신(神)과 같은 대우를 받는 입장으로서 체면상으로라도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 없는 형편인 것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볼 때 우리나라는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위기일발에 처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보따리를 싸가지고 도망갈 궁리나 하고 이민이나 갈 생각만 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분명히 기억하십시요! 우리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월남이나 크메르 같이 그렇게 쉽게 망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성서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한국을 말세에 아시아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할 선교의 사명을 맡길 나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명이 있는 개인이나 국가는 그 사명을 감당하는 한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말세에 아시아와 전세계에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을 깨닫는 한 망하지 않고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만이 이러한 특수 사명을 맡은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몇 가지 사실을 들어서 증거하려고 합니다.
<1. 말세에는 아시아의 선교시대요, 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한국이 가장 신앙이 돈독하고 성서적인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 사도행전 16장 6절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계획을 했으나 성령이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했고,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으나 예수의 영(靈)이 허락치 않아서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밤에 환상 가운데 마케도냐라는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러 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보고서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결과 구라파의 첫번째 교회인 빌립보 교회가 설립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바울이 타고 간 배는 오늘날의 구라파 문명을 싣고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먼저 구라파로 건너가게 하신 다음에 그후 아메리카를 거쳐 말세에는 아시아 로 그 사명이 넘어오게 하시려는 놀라운 섭리와 경륜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복음 전파의 사명이 구라파도 아니요, 미국도 아니라, 아시아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구라파에는 신학자는 있으나 교회가 없어져 가고, 미국에는 교회는 많으나 교인이 없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작년 1년 동안에 미국에 있어서 감리교인이 25만명이나 줄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500명씩 모이는 교회가 무려 500 교회나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장로교인도 9만명씩이나 줄었는데 그것도 300명씩 모이는 교회가 300개가 줄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요한계시록 7장에 있는 말씀대로 말세에는 동방(아시아)에서 인(印)치는 역사가 시작되는 때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곳에 보면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 해돋는 곳은 어디가 되겠습니까?
아시아 여러 나라를 살펴 보십시다. 인도와 같은 나라는 6억의 인구가 살고 있으나 모두가 힌두교 국가이고, 중공은 8억의 인구가 공산주의 국가이고, 인도네시아가 1억의 인구가 되지만 마호멧교가 국교가 되다시피 하고, 일본도 불교나 수십만 종의 잡된 우상으로 꽉 찬 나라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선교의 사명을 맡기시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한국은 복음이 들어온지 90년 밖에 안 되지만 400만의 신자를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토록 아시아의 예루살렘과 같은 한국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순교의 피가 있는 나라를 쓰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8장 10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한국 민족은 5천년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수난을 받아왔습니다. 청나라, 몽고족, 뿐만 아니라 일본에게 36년간 탄압을 받아왔고, 또 6·25와 같은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을 겪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단일 민족으로서 민족성과 민족문화를 유지해 온 것은 말세에 사명을 맡기실 목적으로 쓰시려는 섭리가 계셨던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수난으로 연단받은 민족을 쓰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79편 10절에서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주의 종들의 피흘림 당한 보수를 우리 목전에 열방 중에 알리소서"라고 기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강 강변에 절두산(絶頭山)이 있는데 거기에 순교자 기념탑이 있습니다. 왜정 때에 수많은 목사들이 순교를 했고 6·25 때에도 535명의 목사와 그 외에 수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했기 때문에 세워진 곳입니다. 아마도 제가 알기에는 한국 민족처럼 순교의 피를 많이 뿌린 민족은 없는 줄로 압니다.
<4.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민족을 쓰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교인처럼 기도를 힘차게 하고 많이 하는 민족은 세계에 없습니다. 새벽 기도를 철저하게 하는 나라도 한국 밖에 없습니다. 높은 산마다, 계곡마다 기도원이 있고, 기도원의 굴 속마다 매일 밤낮으로 금식하며 철야 기도하는 교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만도 하루 24시간 언제나 기도 소리가 끊이는 날이 없습니다.
여러분! 한 가지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과 대화 없이는 부흥의 역사도 없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역사인 것을 스가랴서 12장 10절에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5.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열매를 잘 맺는 민족을 들어 쓰시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 21장 4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 2천년 동안 복음을 빼앗겼고, 그후 복음은 로마를 거쳐 독일과 영국과 미국을 거쳐 이제는 아시아의 한국으로 넘어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만큼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단기간에 크게 부흥된 나라가 없습니다. 그 한 예로 우리 금란교회를 보더라도 4년 전에 70여명의 교회가 오늘로써 장년부 1천명 넘는 교회가 되었는데 이러한 역사도 세계에 드문 일인 것입니다.
<6. 한국은 셈(Shem)의 후예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9장 26절에 보면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에게 각각 축복과 저주를 내리는데, 그 중에 셈에게는 영적인, 종교적인 축복을 받게끔 예정되어 있는데, 바로 우리는 셈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즉 하나님을 찬양하는 족속이 될 것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막내 아들 야벳에게는 창대케 하여 물질의 축복을 주셨으나, 둘째 아들 함은 저주를 받아 종이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벳도 물질의 축복을 받게 했으나 결국에 는 27절에 보면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겠다고 예언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물질의 축복을 받았던 서구의 야벳 족속들도, 함의 족속들도, 셈의 장막 안으로 들어오는 때, 곧 종교적인 지도를 받는 날이 오게 만드시고야 만다는 말씀이 이루어질 때가 된 줄로 믿습니다.
<7. 하나님께서는 분명코 약소 민족을 사용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약 성경 신명기 7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1장 27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에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강대한 민족은 자기의 힘과 능력을 자랑하고 자부하지만, 약한 자, 없는 자를 쓰시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므로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약소 민족을 들어 쓰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8.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민족을 쓰십니다>
우리 민족처럼 유일신 사상과 성령의 역사가 활발한 나라는 일찍이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한국은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할 사명이 있는 민족인 줄로 믿는 것입니다.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동방에서 일어난 새로운 정신문화가 구라파의 물질 문명을 구제해 주지 않으면 구라파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골은 노래하기를 "오! 대한민국이여, 그대 옛날에 아시아의 황금시절에 밝은 등불의 하나였도다. 이제 그대 등불 다시 밝혀라 그대 온 동방을 비치는 밝은 등불이 되리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크메르와 월남이 먼저 멸망한 것은 이러한 사명을 맡은 택한 백성인 우리 한국을 깨우치고 회개시키고 부르짖어 기도하게 만들기 위한 속량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구약 성경 이사야 43장 3절에 보면 "대저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 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 사명받은 사람이나 민족을 위해서는 이방인을 대신 죽게 하고 망하게 하면서까지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깨달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모로 볼 때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계신데, 그렇다고 가만 있어도 축복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줄로 믿어서는 절대로 잘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명을 다해야 살고 그래야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① 사명을 충실히 완수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명을 버리면 하나님도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교회나 민족이 사명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 사명은 사업보다도, 생명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만약 이 귀한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우리도 망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②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해야 합니다.]
니느웨성은 멸망시키기로 작정되었으나 회개하므로 구원받았고, 소돔과 고모라는 구원시키려고 했으나 의인이 없고 회개치 않으므로 멸망했습니다. 여러분! 사탄의 사상인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기독교 사상과 신앙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빨리 전도해서 이 민족이 기독교 사상으로 물든다면 바로 이것이 우리 민족의 살길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③ 목숨걸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삽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편이십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무기 아래 있는 나라는 망할지라도 무릎 위에 있는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죤·녹스(J. Knox) 한 사람의 기도가 스코틀랜드(Scottland) 한 나라를 구원했습니다. 기도만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하고 공산주의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기도없이 아무리 데모를 해도 어떤 훌륭한 전략을 세워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새벽마다 부르짖어 기도하십시다! 밤을 세워가며 기도하십시다! 이렇게 기도하는 백성이 있는 한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어리석게도 남으로 내려가려 하고 보따리 싸가지고 이민갔던 사람들도 돌아오는 날이 분명코 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 이 나라는 축복의 땅,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한구석으로라도 택한 나를 버리고 떠나는 것은 축복을 저버리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아무쪼록 이 민족의 살길을 분명히 깨닫고 소망 가운데 담대히 살아 나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