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20: 20. 절하며 구하니 - 마 20: 23. 내 아버지께서
3.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요구 ( 20: 20-28. 막 10: 35-45 )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 20. 절하며 구하니 -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
여기에 모든 사람 속에 있는, 특히 어머니들 속에 있는 욕심, 자기 자녀가 남보다 더 나은 자, 더 높은 자가 되기를 원하는 욕심이 보인다.
그것은 세상적 욕심이요 헛된 명예심이며 허영심이다.
사람이 이런 세상적 욕심을 제거하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그러나 성도는 이런 욕심을 품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단속해야 한다.
1]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 요청한 자는 야고보와 요한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나머지 열 제자가 그들에게 분개한 사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24절).
* 막 10: 35 -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여기서 세베대의 집안에 대하여 알아보자. 그 당시 집만 있어도 부자였는데 세베대는 두 채나 있었다. 하나는 갈릴리 북쪽 시골 가버나움에, 다른 하나는 대도시 예루살렘에 소유하였다. 다른 제자들은 겨우 배 한 척으로 고기잡이를 했지만, 세베대는 어업회사 사장으로 상당한 재력가여서 예수님의 사역을 경제적으로 많이 뒷받침했다.
야고보와 요한은 남들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 시대 최고의 인물은 세례 요한이었는데, 야고보와 요한은 이미 그분의 제자였다.
세베대 집안은 제사장 집안이었다.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가야바의 궁전으로 같이 갔는데, 앞서 걸어가던 젊은 요한은 제사장 집안이라 궁전 문을 쉽게 통과했고 베드로는 보초들에게 걸려 들어오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때 요한이 되돌아가 같이 온 고향 사람이라고 말하자 들여보내 주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야고보와 요한은 대단한 집안의 자제였다. 권력과 명예를 향한 야망을 품고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인물이 될 요소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세례 요한이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을 가리키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나는 저 분의 신발 끈을 매어줄 자격도 못된다. 저 분은 흥할 것이고 나는 저 분을 섬기며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다.
야심에 찬 야고보와 요한은 바로 세례 요한과 작별하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이들은 큰마음을 품고 장차 이스라엘의 최고 인물이 되고픈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 둘은 예수님의 제자 중 제일 어렸지만 예수님이 자기들의 야망을 이뤄줄 분으로 알았다. 이들은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본문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가 예수님을 찾아와 절을 했다. 그는 예수님의 친척으로 어떻게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열심은 대단하다. 보통 어머니 같으면 장성한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체면을 무릅쓰고 어떻게 하든지 간구해서 아들을 잘되게 해야겠다는 열심히 있는 어머니였다.
시쳇말로 표현하면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어머니다. 사실 치맛바람의 위력은 대단하다. 살로매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그 고난의 길에까지 와서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때에'는 어느 때입니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받아야 할 고난을 이야기한 그때다. 당시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거의 모든 사람은 그릇된 매시야 관을 갖고 있었다. 로마의 압제 아래 국가의 주권을 빼앗기고 고통을 받는 자신들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해방 시키며 과거의 찬란했던 다윗 왕 시절과 같은 강력한 국가를 세워 주변국을 통치할 수 있게 해주는 해방자로 구약에 약속한 메시아로 알았다.
바로 이러한 잘못된 메시아 관을 바로 잡기 위해 예수님은 세 번이나 걸쳐 자기의 메시아 관을 설명하였다.
2]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 중 세베대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간청에 대한 기록이다.
'절하니' 는 하나님께 경배한다는 뜻이기보다는 세상 권력을 쥔 왕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다.
'무엇을 구하니' 는 막 10: 35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즉 자신의 두 아들을 출제시키고 싶어하는 모성의 심정으로 원하는 바를 무조건 허락해 주기를 간청하는 것이다.
살로매는 누구입니까? 요 13: 25 을 보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친자매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예수님의 이모가 되며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이종사촌이 된다.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들 두 형제의 어머니가 예수께 나아와 예수의 오른편 자리와 왼편 자리를 간청한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육신의 소욕
① 육신의 소욕은 남보다 높아지려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높아지기를 원한다. 남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남보다 귀한 명예를 누리기를 원하며, 남보다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자 한다.
마치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 선악과를 따 먹었던 아담과 자신의 이름을 하늘까지 높이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과 같이 인간은 끝없이 높은 데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낮아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겸손은 곧 비굴로 생각하였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비참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높은 것, 위대한 것만 알았지 겸손과 온유, 그리고 낮은 곳을 향하는 진정한 용기는 몰랐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낮아지셨고 낮아지심으로 그의 귀한 사역을 완수하셨다.
진실로 낮은 곳을 향해 찾아오신 주님, 그 주님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낮추지 않는다면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없다.
② 육체의 소욕은 이웃을 무시한다.
높아지려는 마음은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웃을 그 희생물로 삼고 짓밟는다. 그러한 자들은 타인의 권리나 이익, 그리고 그들의 아픔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도리어 그들은 그러한 이웃의 고통이 자신들의 출세에 대한 명확한 증거라 생각하며 추구할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교만한 자의 특성이다.
교만은 타인에 대한 우월감으로 드러난다. 약자를 밟고 서서 즐거워하는 우월감, 그러나 그보다 더욱 강한 자 앞에서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며, 언젠가는 그도 자신의 발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고야 말겠다는 사특함을 품는 악함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창조주로서의 우월감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는 우리의 따뜻한 위로자였으며 다정한 친구였고, 그리고 우리의 발을 씻기신 겸손한 구주셨다.
(2)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결국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인간은 물질을 통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질이 영원한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육신의 것으로 영원한 삶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은 다 바람을 잡으려는 부질없는 노력에 불과하다. 물질에 대한 집착은 우리에게 행복보다는 불행을, 평안보다는 근심을, 그리고 즐거움보다는 고독을 안겨다 준다.
우리는 물질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 생애의 마지막 날에 수의 한 벌 밖에는 가지고 갈 수 없다.
우리는 물질이 내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내게 영원한 생명은 커녕 도리어 도둑과 강도의 위협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인생은 모두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의 참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아는 자는 극히 드물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적인 것의 궁극이 어떠한 것인가를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는 사실이다.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시며, 생명이신 하나님 외에는 우리의 소망과 유익이 없다.
(3) 우리도 주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다.
초대교회의 많은 순교자처럼, 그리고 사도 바울과 많은 주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주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참되고 진실한 것인가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과부의 두 렙돈과 부자의 많은 헌금 중 사람 대부분 사람은 부자의 많은 돈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으리라 생각하듯이 우리의 눈은 인간의 마음 중심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 그분은 우리를 어머니의 태중으로부터 조성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일에 충성한다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칭찬에 내 일의 보람을 느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인정받아야 할 분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은 몰라 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면 그것은 만족할 줄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분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와 최고의 선이기 때문이다.
마 20: 21. 무엇을 원하느뇨? -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
여기에 어머니들 마음속에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이 보인다.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 세베대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주님을 찾아온 이유도 알고 계셨다.
그러나 그에게 물었다.
예수님은 이미 그들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 계셨으나 우선 그들의 요청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들기를 원했다.
2]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자기 자녀들이 그리고 자기 자신이 남들보다 더 나은 자, 더 높은 자가 되기를 원하는 욕심이다.
그것은 세상적 욕심이요 헛된 명예심이다. 그것은 부패된 허영심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적 사랑을 제거하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그리고 사람이 자기 마음을 단속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친인척이 문제다. 지금 자기 아들을 위해 명예를 간구하고 있다. 여기 우편과 좌편은 제2의 권력자의 자리다. 여기에서 어떻게 보면 살로메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믿는 자였다.
여기의 '주의 나라'는 주님이 통치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나라로 성경에서의 천국은 세 가지다.
(1) 교회를 천국,
(2)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우리의 심령
(3)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이라고 했다.
그런데 살로메가 구한 주의 나라는 예수님을 세상적인 통치권자로 보고 예수가 로마를 쳐부수고 새로 건설하는 이스라엘 국가를 의미한다. 잘못 알아도 크게 잘못 알았다.
살로메는 아들들은 잘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 구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바로 구하지 못했다. 열심도 좋고, 정성도 좋았으나 기도를 바로 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그들의 어머니가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신앙의 3대 원리는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는 것'이다.
마 20: 22.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
하나님 나라의 명예는 세상적 욕심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자신은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었다.
그와 같이, 주의 나라에서의 명예는 이 땅의 방식과 다른 방식, 곧 주와 함께 고난을 받는 방식에 의해 얻어질 수 있을 뿐이다.
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야고보와 요한은 하나님 나라의 참된 성격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나라는 폭력과 정복을 통하여 이 땅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는 사람들의 눈에 실패처럼 보이는 예수의 죽으심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속에 은밀히 임하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예수는 모든 사람들 앞에 영광과 권능으로 임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말에 예수님이 심판주로 임하실 때를 말한다.
우리는 약삭빠른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약삭빠른 마음은 약삭빠른 도둑보다 훨씬 무섭다. 이 세상에서 제일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약삭빠른 생각을 하면서 '내가 참 영리하구나! 내가 잘 살 거야!'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 자기에게 속이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사기를 치는 것보다 자기에게 사기 치는 것이 더 무섭다. '약삭빠른 것'은 '영리한 것'이 아니다. '어리석은 것'이다. 약삭빠른 사람이 더 잘 살 것 같지만 아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약삭빠른 사람을 기뻐하지 않는다. 주님은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을 기뻐하신다. 어린아이와 같이 그렇게 살면 인간적으로는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
2]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라는 말씀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하나님 나라의 명예는 세상적 욕심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자신은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었다.
그와 같이, 주의 나라에서의 명예는 이 땅의 방식과 다른 방식, 곧 주와 함께 고난을 받는 방식에 의해 얻어질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그것을 명료하게 알지 못했을 것이다.
3]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주의 마시려는 잔을 자기들도 마시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말은 스승을 위해 수치와 박해를 견디어 내겠다는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중심은 그 점에서 순진했던 것 같다. 십자가의 고난의 아픔을 잘 모르는 자가 어디든지 가겠다고 용감하게 대답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자들은 십자가의 원리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 있게 '할 수 있나이다.'라고 했다.
참 대단한 제자들이다. 무지는 만용을 낳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바로 제자들의 모습이다.
세베대의 두 아들은 곧 닥쳐올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때 있을 자신들의 배반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영적으로 무지했다.
그런데도 '나의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할 수 있나이다.' 영적 무지의 소리다. 요한의 어머니는 자기의 구한 것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물어보는 뜻도 몰랐다. 그 뜻을 모르니 대답도 모르고 한 것이다.
마 20: 23. 내 아버지께서 -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
주의 마시려는 잔을 자기들도 마시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들의 중심은 그 점에서 순진했던 것 같다.
십자가의 고난을 잘 모르는 채 그들은 그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용감하게 대답하였다. 주께서는 그들이 주의 고난에 참여할 것을 암시하셨다.
그러나 주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자에게 주어질 것이다. 지금 그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작정이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의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감추어진 것을 알려고 할 것이 없다. 그런 관심 자체가 올바르거나 선하지 못하다.
1]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잔은 고난의 분량을 의미한다. 주께서 마셔야 할 고난의 잔이 있었다. 주께서 당하셔야 할 고난의 분량이 있었다.
그것을 그들이 마실 수 있는가? 그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주께서도 그들이 주의 고난에 참여할 것, 곧 순교의 고난을 당 할 것을 시인하셨다.
여기서 과연 이라고 하는 단어다. 이 말은 시인과 양보의 뜻을 지닌 단어로써 어떤 사실을 강조하거나 단언할 때 사용하는 언어다.
예수님이 마시려고 하는 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한 야고보와 요한의 말에 긍정과 수락을 나타냄과 동시에 반드시 잔을 마시게 될 것이라는 단언적인 의미까지 포함된 말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고난의 길에 대한 죽음의 잔을 모르고 대답했으나 예수님은 그들의 미래를 아시고 너희도 이 잔을 마실 수밖에 없음을 말한 것이다. 실제로 A.D. 44년 헤롯 왕에 의해 야고보는 12사도 중 제일 먼저 순교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고난의 쓴잔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한은 일평생을 유배 생활로 극심한 핍박 속에서 보냈다.
순교에 두 가지 정형이 있다. 하나는 주님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외형적인 순교와 다른 하나는 자신의 삶 전부를 바치는 내면적 순교가 있다. 요한과 야고보는 그들의 대답대로 고난의 잔에 동참자가 되었다.
'내 좌우편에' 이 말씀은 좌편, 우편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 자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가 받을 것이라고 했다. 누가 받습니까? 주님이 마셨던 그 잔을 마시는 자가 받는다. 주를 위하여 헌신하고 주를 위하여 충성한 자들이 받게 된다.
예수님이 마시는 잔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다가 당하는 고난의 잔이다. 신앙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란 예수님을 위하여 살다가 당하는 잔이 고난의 잔이다. 이 잔을 많이 마시면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고 적게 마시면 작은 자가 된다.
* 마 5: 10-12 –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2]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주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주님의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자에게 주어질 것이다. 지금 그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작정이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의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감추어진 것을 알려고 할 것이 없다. 그런 관심 자체가 올바르거나 선하지 못하다.
3]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성도의 하늘나라에서의 지위에 대하여 살펴보자.
(1) 하나님께서 주권대로 주심
예루살렘으로 출발하시기 직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때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자기 두 아들이 천국에서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천국의 자리는 성부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대로 얻게 된다고 답하셨다. 이 말씀은 이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에서도 각자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① 예비 된 나라
* 마 25: 34 -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② 절대 주귄
* 롬 9: 21 -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 이 땅에서 섬기는 자가 큰 지위를 얻음
천국에서의 지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결정이 불공정하게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천국에서 큰 상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으면 이 땅에서 큰 고난을 받도록 하신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서 고난을 받는 자가 하늘에서 큰 자리를 얻는다는 의미다.
① 큰 자는 섬기는 자
* 마 23: 11 -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② 섬기는 상
* 고전 9: 18 -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3) 예수께서 모범을 보이심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 땅에서 고난받고 섬기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예수의 생애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예수는 지극히 높으신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 죽으심으로 부활하신 후 천국의 왕이 되셨다.
* 빌 2: 6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계 19 : 16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그의 옷과 다리에는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그는 분명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 17: 14). 그는 모든 왕을 다스리시는 크신 왕이시요 모든 주인의 참 주인이시다.
① 옷과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 이름이 넓적다리에 쓰여 있다(Charles).
Ⓑ 말을 탄 자의 다리까지 내려오는 웃옷에 기록되어 있다(Mounce).
Ⓒ 웃옷과 다리에 쓰여 있다(Morris).
Ⓓ 다리까지 내려온 웃옷에 의해서 가려지기 쉬운 허벅다리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Ladd, Johnson, Beasley-Murray, Lohmeyer, Swete).
네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이것은계 17: 3 의 짐승의 몸에 기록된 참람된 이름들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짐승의 몸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대적하는 이름이 기록된 반면에 그리스도의 몸에는 하나님의 칭호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칭호가 기록되어 있다.
* 딤전 6: 15 -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②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칭호로 사용되었다.
* 신 10: 17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칭호로 진술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칭호로 나타난 것이다.(에녹 1서 9: 4)
종말에 대적자들을 파멸시키고 온 세상을 지배하시며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권력을 시사한다.
③ 하늘에 있는 군대.
ⓐ 여러 견해
ㄱ 천사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다.
래드[G. E. Ladd] : 성도를 가리키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하늘의 천사들의 무리일 가능성이 크다. 인자가 재림할 때 그의 천사들이 수행할 것이다.[막 8: 38. 눅 9: 26. 살전 3: 13. 살후 1: 7] 하늘 군대의 희고 깨끗한 옷은 그들이 메시아의 승리에 동참함을 의미한다. [래드, 요한계시록, p.331]
바클레이[W. Barclay] : 마태복음 26장 53절에 근거하여, 하늘의 군대는 천군을 말한다. [바클레이, 계시록 하, p.310]
ㄴ 영화롭게 된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일행이다.
벵겔[J. A. Bengel] :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인 성도들을 상징한다. [계 17: 14] [벵겔, 요한계시록, p.221]
* 계 17: 14 -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존슨[A. F. Johnson] : 그리스도를 따르는 승리자이다. 부활하여 휴거된 자들이거나[살전 4: 16,17], 순교자의 일행을 말한다. [존슨, 요한계시록, p.515]
* 살전 4: 16-17 –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ㄷ 예수 그리스도를 수행하는 천사장과 천사들의 무리와 성도들이다.
마운스[R. H. Mounce] : 하늘 군대는 천사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통례이다. 17장 14절의 병행절은 순교자들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마운스, 요한계시록, p.409]
팀 라하이[Tim Lahaye] : 하늘에 있는 군대는 천사들과 구약시대 성도들, 교회와 환난 시대 성도들로 되어 있다. [팀 라하이, 요한계시록 해설, p.472]
ⓑ 저자의 견해
하늘의 천사장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의 무리로 본다.
ㄱ 성도들은 어린 양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 계 19: 7-8 –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본문의 성도들은 어린 양의 신부로써 혼인 잔치에 초청 받은 자이다. 따라서 하늘에 있는 군대는 성도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어린 양으로서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을 동행하도록 한다.
* 계 17: 14 -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 살전 4: 14 -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그리스도는 심판을 위하여하늘 군대인 천사들로 수행케 하신다.
* 계 19: 14 -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ㄴ 주님이 강림하실 때에는천사가 수행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으로 입증된다.
* 마 13: 30, 39-42 –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 마 24: 31 -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마 25: 31 -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사도 바울의 증거로 입증된다.
* 살전 4: 16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사도 요한의 증거로 입증된다.
* 계 14: 18 -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ㄷ 희고 깨끗한 옷은 천사의 성결의 옷이다.
성도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있다. - 계 19: 8.
천사들은 흰 옷을 입고 있다.
* 마 28: 2-3 –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 막 16: 5 -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 눅 24: 4 -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 요 20: 12 -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 행 1: 10 -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따라서 희고 깨끗한 옷은 천사들의 옷임을 증명한다. 우리도 이처럼 낮아지고 섬길 때에 하늘에서 큰 자로 들림 받게 될 것이다.
① 죽기까지 복종하심
* 빌 2: 7-8 –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② 지극히 높임을 받으심
* 빌 2: 9-11 –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