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과 공 동 체 라 면?
2011-11
죽임을 넘어서는 살림. 무명유실(無名有實)
박병민 목사(새터공동체)
우리의 강산은 사계절이 있으매, 그 고매함과 아름다움의 품격을 간직한 채, 한발 한발 내딛듯 빛을 뒤로 흩뿌리며 걸어가신, 마음속에 아련히 그려져 있는 한 어르신의 발자취와도 같이 깊으리만큼 다가든다. 그런대 다르게 생각해보면 급속도라는 값어치와 교환해가며 살아가는, 우리네는 품세가 일으켜다준 과물의 행태들 속에서, 앞에서 말한 고매함이라든지, 품격이라든지, 아련함이라든지 하는 것은 찾아보기가 그렇게 쉽사리 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에는 어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것도 나의 비틀어진 소견과 속 사고의 틀 구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시골 속에서 몇 년을 보내면서 겪는 날씨변화들이 요사스러이 흘러오는 것 같다. 봄의 기품은 낙화유수(落花流水)인듯 하다가도, 여름으로 들어서면 그 뻗치어 감은 노발대발(怒發大發)이라고 말하며 표현하면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한풀 오르며 기세 높았던 여름도, 가을의 깊어져감에는 당해내지를 못하여, 그 쬐던 땡볕도 추풍령(秋風嶺)을 넘기지를 못하는 것은, 바람결을 따라서 드높아져가려는, 실 끝에 묶여진 저 풍연(風鳶)도, 그만 나뭇가지에 얽혀들어 걸려 지듯, 푸르렀던 잎새들도 추풍낙엽(秋風落葉)이 되고 만다. 그런데 유난히, 두 달가량의 비 내리는 고모령과도 같은 긴 여름을 보내고 나더니, 뒤이어서는 못해서 아쉬웠는지? 가을바람이 들어올 틈도 막아가며 여름의 뒤태가 맹위를 뿜어내는 것 같다. 그렇지만 가을은 가을이다. 산천은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아롱지어간다. 그러다가 곧이어 덧없어지는 겨울이 올 것이다. 그 겨울 바람결은 더욱 세차저서 급기야는 눈 날려가 찾아드는 만고풍설(萬古風雪)을 우리들은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 사람 살아가는 날들이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희노(喜努)가 있고, 애락(哀樂)이 깃들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국가(國歌)에서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로 커가기 위해서는, 그 몸에 철갑을 둘러가며, 바람과 서리를 겪어내면서도 변함없는 살이를 치러내듯 살아왔던 분들이 우리들의 기상 있는 선인들의 모습이었다고 노래하고 있다. 지난겨울과도 같았던 만고풍설의 겨울나기를 치러내자고 들자면, 너나 나나 움츠려들면서, 눈앞에서 보여지는 대다수의 것들을 꽁꽁 싸매어서 그 자리에 내버려 두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내버려 둔다”는 말은, 아주 재미있는 말이다. 그 말은 “내버리다”는 말과 “두다”는 말이 서로 합쳐져서 된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말이다. 내버리면서 어떻게 둘수있는가? 쓸모없는 것을 그냥 내버리면 되지 왜 보관을 하는 것인가? 그 말은 지금은 당장 쓸모가 없어 내버릴 상황이지만, 나중에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태복음 21:42). 세상의 모든 물건들은 어떻게 보면 절대적이지 못한 채, 상대적 가치로 여겨지며 버려지는 것의 투성이 들이다. 그러면서 그 두어지게 된 투성이들이 적화물(積貨物)이 되다보면 응집과 고착의 영롱어린 재탄생이 부여될 수도 있게 되리라. 그러기에 둘 수 있는 것이기보다는, 내버려 진채, 삶아져가는, 그러다가 스미듯 사그라져 감이 바로 삶인 것이다.그래서 어떻게 보면 ‘쓸모없음의 쓰임’이 되는, 주변에 그 흔하고 널브러져서있는 것들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확 나가는 말을 하여보자면, 내버리는 것과 두는 것은, ‘창은 어떤 방패로도 막지 못하고, 방패는 어떤 창으로도 뚫지 못 한다’고 말하여 대면서 창과 방패를 파는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상인의 앞뒤가 어긋나는 이른바 “모순(矛盾)”과도 같은 이야기가 되는 샘이다. 우리네는 곁으로 막 접어드는 찬바람을 마지면서, 그 바람에 떠밀려가듯 어찌할 수 없다는 나 자신을 볼 수밖에는 없으리라. 그래서 성서에서는 세상을 창조해가는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徵兆)와 사시(四時. 사계절)와 일자(日字)와 연한(年限)이 이루라”라고 그렇게 말하였다(창세기 1:14). 우리는 밤낮의 교차와 그것들이 모아진 사계절의 변화의 아름다움에 살결을 맡겨가며 살아간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이던가? 손가락을 꼽아 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어 보자.
10월 9일이 찬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이었으며, 24일에 서리가 내리게 될 상강(霜降)을 지나면서, 어저께는 새벽으로 어렴풋한 서릿발이, 심겨진 식물위에 희옇게 얹혀졌다. 이 서릿발의 무게를 견뎌낼 풀잎이, 그 몇 개나 된다는 말이냐? 서리의 덤터기를 쓰고, 솟구쳐 서있을 풀대들이, 몇 풀이나 되리오. 나는 들녘에서 고개가 숙여져가는 저 수수모가지를 보면서 나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우리 사람들은 세상 가운데에서 숙연(肅然)해 지지가 못한 채, 고개를 쳐들어가며, 모가지가 길어서 슬퍼지게 된 짐승 마냥, 하늘을 뚫고 그 위에 고개를 내미려고 드는 형국들이다. 그래서 확대해서 말하자면 한자어로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고 말을 하였다. 무슨 말이던가? “무더운 여름날의 난로(煖爐)요, 한겨울의 왠 부채란 말이던가?” 세상이 너무 뜨겁게 되어져 감을 사람들은 심각하게 고민들을 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그것은 자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불러들인 기상천외와 같은 기계문명의 자초지종이 지구온난화로 이어져서 하늘을 뚫고 사람들이 뻗쳐가며 여러 징조들을 자초하여 들였다. 이제는 극지방에서도 빙산일각(氷山一角)의 세상으로 몰려가고 있다. 얼음산에서 물이 흘러내린단다. 그래서 풍풍 연기를 내뿜어야만 쓰여 지는 화석연료로 가동되는 차량이나 기계의 사용을 줄여가며, 이제는 그린에너지라는 말이 대두되는 때로 접어드는 것 같다. 우리 사람들이 그만 내버려 두지 않고, 만들어진 그 징조(徵兆)와 사시(四時. 사계절)와 일자(日字)와 연한(年限)의 틀을 깨뜨려가며 역행으로 치닫게 되면, 연륜(年輪)을 찌그러트려가는, 일그러진 세상의 겉 너울을 만들어가는 끔찍함을 오늘도 인공으로 꾸며가고 있지는 않은지?
성서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공동번역성서는 삽입)죽은 자로다”(요한계시록 3:1). 바로 유명무실(有名無實)하다는 말과 같은 말이 되는 샘이다. 사람들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실상(實狀)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큰 염려가 된다. 뜨거운 얘기를 하다보니까? 어느 분의 말씀을 빌려본다. “녹슬어서 없어지지 말고, 달아서 없어져라. 하나님을 향하여 달구어져 있습니까?” 타고 다니기 보다는 걸어가며 나의 채신머리를 줄여가야 될 때이다. 경망보다는 숙고가 필요한 때는 안일는지?
“살림”이라는 말을 나는 학생 때에, 한국신학대학의 연구소에서 만들어 내던 월간지인 “살림”이라는 책자에서 확 접해졌다. 왜냐하면, 그 전제인 “죽임을 넘어서”라는 말이 무겁게 와 닿았다. 우리는 세상을 살리고 보자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살림”이라는 말은 본래 불교에서 흘러들어온 말이었다. 그 말은 ‘산림(山林, 혹은 産林)’에서 나왔다. 산림은 원래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가리켰는데, 이 말이 소리내기 좋게 살림으로 변하여 일반 가정집의 생활이나 재산을 관리하는 것까지 말하여지게 되었다. 성서는 생명으로 살려내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져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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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박성찬 조창봉 이은주 김복순 지명수 권희숙 채경일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매월 섬김의 시간을 갖어주시는 대전살림교회가(박상용 목사님), 교회 창립10주년을 맞이한 2011년 10월 30일 오전에 새터공동체 식구들을 초청해 주셔서 함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ㅈㄷㅁ(ㅇㅎㅇ.ㅍ국선교사.2회).금성교회.충전교회.금산군모란회(8인).수영교회.김기홍.진명구.정무래.최영애.오정교회8남선교회(3인).라홍채.박종만.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9인).이은주.최성재.채윤기(박현실).대한적십자사금산군추부봉사회(성삼순외3인).양오석.신평교회.윤소정(남영).신건태.대덕교회.변화교회(변화복지원.변일섭).금산군청사회복지과(1인).표순자(최선희.2회).임정순.동춘교회6여전도회.이원교회.반석전원교회.김복순.최영관(신평리.2회).금산군보건교사회(5인).살림교회(권영일외5인).주식회사EG(이광형).김용환(최정숙).쎄븐미용실(손연화외1인.추부제일교회).사랑의쌀나눔공동체(장진성).지방교회(양광연외2인).대덕교회(이중삼.최병창).꿈이있는교회6여전도회(허정무외6인).동춘교회4남선교회.오정교회(최세영.서쌍식).양명신.금산군모란회(5인)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