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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何以知其然哉(오하이지기연재) : 내 어찌 그러함을 아는가?
以此(이차) : 바로 이 때문이다.
天下多忌諱(천하다기휘) : 천하에 두려운 것이 많을수록
而民彌貧(이민미빈) : 백성은 더 가난해지고,
民多利器(민다리기) : 백성에게 이로운 기물이 많을수록
國家滋昏(국가자혼) : 나라는 더 혼미해지며,
人多伎巧(인다기교) : 백성에게 기교가 많을수록
奇物滋起(기물자기) : 기이한 물건이 더 늘어나고,
法令滋彰(법령자창) : 법령이 더 드러날수록
盜賊多有(도적다유) : 도적이 많아지는 법이다.
故聖人云(고성인운) : 고로 성인이 이르기를,
我無爲而民自化(아무위이민자화) : 내가 무위(無爲)하면 백성 스스로 변화하고(化),
我好靜而民自正(아호정이민자정) : 내가 고요함(靜)을 좋아하면 백성 스스로 바르게 되고(正),
我無事而民自富(아무사이민자부) : 내가 일을 벌이지 않으면(無事) 백성 스스로 넉넉해지고(富),
我無欲而民自樸(아무욕이민자박) :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無欲) 백성 스스로 순박해지리라(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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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발한 병법으로 군사를 부릴지나,
일을 벌이지 않음으로써 천하를 얻으리라
내 어찌 그러함을 아는가? 바로 이 때문이다.
천하에 두려운 것이 많을수록 백성은 더 가난해지고,
백성에게 이로운 기물이 많을수록 나라는 더 혼미해지며,
백성에게 기교가 많을수록 기이한 물건이 더 늘어나고,
법령이 더 드러날수록 도적이 많아지는 것이다.
고로 성인이 이르기를,
내가 무위하면 백성 스스로 변화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 스스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을 벌이지 않으면 백성 스스로 넉넉해지고,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백성 스스로 순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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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강남 역>
以正治國(이정치국) : 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以奇用兵(이기용병) : 책략으로 병사를 부리고
以無事取天下(이무사취천하) : 무위로 천하를 얻는다.
吾何以知其然哉(오하이지기연재) : 내가 어떻게 이를 아는가?
以此(이차) :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天下多忌諱(천하다기휘) : 천하에 금지하는 것이 많으면
而民彌貧(이민미빈) :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民多利器(민다리기) : 백성들 사이에 날카로운 무기가 많을수록
國家滋昏(국가자혼) : 나라는 더 혼란스러워지고
人多伎巧(인다기교) : 사람들에게 기교가 많을수록
奇物滋起(기물자기) : 괴상한 물건이 더 많아지고
法令滋彰(법령자창) : 법령이 많아질수록
盜賊多有(도적다유) : 도둑은 더 늘어난다.
故聖人云(고성인운) : 그러므로 성인이 말하기를
我無爲而民自化(아무위이민자화) : 내가 무위하니 백성들이 저절로 화합하고
我好靜而民自正(아호정이민자정) :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들이 저절로 바르게 되고
我無事而民自富(아무사이민자부) : 내가 일을 꾸미지 않으니 백성들이 저절로 부유하게 되고
我無欲而民自樸(아무욕이민자박) : 내가 욕심을 내지 않으니 백성들이 저절로 소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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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이함으로 군사를 지휘하며
일삼음이 없음으로 천하를 취한다.
내가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무릇 천하에 금기가 많으면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에게 좋은 물건이 많으면 나라는 더욱 혼란해지며
사람들이 아는 게 많으면 이상한 물건도 많아지고
법령이 복잡해지면 도적은 더 많아진다
이 때문에 성인의 말씀에 이르기를
내가 무위하니 백성은 스스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은 스스로 올바르게 되며
나에게 일삼는 것이 없으니 백성은 스스로 부유해지고
내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고자 하니
백성은 스스로 소박해진다고 하였다.
以正治邦, 以奇用兵, 以无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也哉. 夫天下多忌諱而民彌貧, 民多利器而邦家玆昏, 人多知而奇物玆起, 法物玆彰而盜賊多有. 是以聖人之言曰: 我无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无事而民自富, 我欲不欲而民自樸.
[以正治邦, 以奇用兵]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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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당 역>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올바름이 필요하다.
전쟁에 임할 때는 임기응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을 얻기 위해서는 <함이 없음>을 실천하라.
이렇게 해야 할 까닭을 내가 어떻게 알까?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세상에 금하고 가리는 것이 많을수록
사람이 더욱 가난해지고,
사람 사이에 날카로운 무기가 많을수록
나라가 더욱 혼미해지며,
사람 사이에 잔꾀가 많을수록
괴상한 물건이 더욱 많아지고,
법이나 명령이 요란할수록
도둑이 더욱 많아진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억지로 일을 하지 않으므로 백성이 절로 바뀌고,
내가 고요를 좋아함으로 백성이 저절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을 꾸미지 않으므로 백성이 저절로 부하게 되고,
내가 욕심을 내지 않으므로 백성이 저절로 통나무가 된다.
<임채우 역>
57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려면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려고 하면
결국 속임수로 군사를 동원하게 되나니,
천하는 일을 없앰으로써 다스리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그런 줄을 알겠는가?
세상에 금하는 것이 많으면
백성들은 더 가난해지고,
백성이 이로운 물건을 많이 찾게 되면
국가는 더 혼미해지고,
사람들이 재주를 자주 부리면
기이한 일들이 더 불어나며,
법령이 복잡해질수록
도둑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 성인께서 이르기를,
내가 무위하니
백성들은 나름대로 살아가고,
내가 조용하니
백성들은 스스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 없으니
백성들은 저절로 넉넉해지며,
내가 무욕하니
백성들은 자연히 순박해진다고 했다.
<James Legge 역>
1. A state may be ruled by (measures of) correction; weapons of war may be used with crafty dexterity; (but) the kingdom is made one's own (only) by freedom from action and purpose.
2. How do I know that it is so? By these facts: -- In the kingdom the multiplication of prohibitive enactments increases the poverty of the people; the more implements to add to their profit that the people have, the greater disorder is there in the state and clan; the more acts of crafty dexterity that men possess, the more do strange contrivances appear; the more display there is of legislation, the more thieves and robbers there are.
3. Therefore a sage has said, 'I will do nothing (of purpose), and the people will be transformed of themselves; I will be fond of keeping still, and the people will of themselves become correct. I will take no trouble about it, and the people will of themselves become rich; I will manifest no ambition, and the people will of themselves attain to the primitive simplicity.'
<Lin Derek 역>
Govern a country with upright integrity
Deploy the military with surprise tactics
Take the world with noninterference
How do I know this is so?
With the following:
When there are many restrictions in the world
The people become more impoverished
When people have many sharp weapons
The country becomes more chaotic
When people have many clever tricks
More strange things occur
The more laws are posted
The more robbers and thieves there are
Therefore the sage says:
I take unattached action, and the people transform themselves
I prefer quiet, and the people right themselves
I do not interfere, and the people enrich themselves
I have no desires, and the people simplify themselves
<장 도연 역>
제57장 통치자가 탐욕하지 않으면 백성들도 자연히 순박해진다
나라는 바른 법으로 다스리고
군대는 기발한 병법으로 싸워야 하지만
천하는 인위적으로 행하지 말아야 얻어진다.
내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이로써 안다.
금기된 일들이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빈곤해지고
세간에 무기가 많을수록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사람이 기교가 많을수록 기이한 물건이 계속 생겨나고
법령이 삼엄하면 오히려 도적이 들끓는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하기를
내가 무위하면 백성이 스스로 바뀌고
내가 고요하면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 없이 있으면 백성은 스스로 부유해지고
내가 탐욕하지 않으면
백성은 스스로 순박해진다고 했다.
<왕필 노자주 / 임채우 역>
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면 속임수로 군사를 동원하게 되나니, 일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천하를 취한다(즉 일 없이 다스린다).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도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가 평안해지지만, 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면(즉 바름을 강요하면) 기묘한 술책을 부리는 군대가 일어나고, 일을 만들지 않으면 천하를 취할 수 있다. 윗 장(48장)에서 말하기를, 천하를 취하는 이는 항상 일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하니, 일이 있게 되면 천하를 취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면 천하를 취하기에 부족하게 되므로, 기이한 술책으로 군사를 쓰게 된다. 저 도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근본을 높임으로써 말단을 그치게 하는 것이요, 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편벽된 것을 세워서(혹은 형벌을 수립해서) 말단을 다스리는 것이다. 근본이 서지 못하고 말단이 박약하면 백성에게는 해줄 것이 없게 되므로, 반드시 기이한 술수로 군사를 쓰는 데 이르게 된다.
<주석>
루우열은 ‘벽’(辟)은 ‘법’(法)이라고 했다.
以道治國則國平, 以正治國則奇[兵]起也. 以無事, 則能取天下也. 上章云, 其取天下者, 常以無事, 及其有事, 又不足以取天下也. 故以正治國, 則不足以取天下, 而以奇用兵也. 夫以道治國, 崇本以息末; 以正治國, 立辟以攻末. 本不立而末淺, 民無所及, 故必至於[以]奇用兵也.
내가 어떻게 그런 줄을 알겠는가? 이것으로써이니, 천하에 금하는 것이 많으면 백성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이 이로운 기물을 많이 갖게 되면(혹은 인주가 병기를 중시하면) 국가는 더 혼미해지고,
<주석>
장석창은 이 부분에서 쓰여지는 ‘민’(民)은 ‘인’(人)의 잘못으로 ‘인주’(人主)를 가리키며 ‘이기’(利器)는 ‘병기’(兵器)의 뜻이라고 한다.(『노자교고』 참조) 혹자는 ‘이기’(利器)를 지혜와 권모(權謀)라고도 한다.(진고응, 『노자주석급평개』 참조)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주석>
‘빈’(貧)이 죽간본에는 ‘반’(畔)으로 되어 있다.
이기(利器)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도구다. 백성들이 강하면 나라가 약해진다.
利器, 凡所以利己之器也. 民强則國家弱.
사람들이 재주가 많아지면 기이한 일들이 불어나며,
人多伎巧, 奇物滋起;
<주석>
죽간본과 백서본에는 ‘인다지’(人多智)로 되어 있다.
백성이 꾀가 많아지면 교묘한 속임이 생겨나며, 교묘한 속임이 생겨나면 잘못된 일들이 일어난다.
民多智慧, 則巧僞生; 巧僞生, 則邪事起.
법령이 복잡해질수록 도적이 많아진다.
法令滋彰, 盜賊多有.
바름을 세우는 것은 원래 잘못을 막으려는 것이었으나 오히려 속임수로 군사를 동원하게 되고, 금하는 것을 많게 한 것은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려한 것이었으나 오히려 백성은 더 가난해지고, 이기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한 것이었으나 나라는 더 약해지니, 모두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다스리려고 함으로써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立正欲以息邪, 而奇兵用; 多忌諱欲以耻貧, 而民彌貧; 利器欲以强國者也, 而國愈昏[弱]; 皆舍本以治末, 故以致此也.
그러므로 성인께서 이르기를, 내가 무위하니 백성들이 스스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들이 스스로 바르게 되며, 내가 일을 만들지 않으니 백성들이 스스로 넉넉해지며, 내가 무욕하니 백성들이 스스로 순박해진다고 했다.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윗사람이 하고자 하면 백성은 바로 따르는 것이니, 내가 욕심 없기만을 바라면 백성도 무욕하여 저절로 순박해진다. 위의 네 가지는 근본을 높임으로써 말단을 그치게 하는 것이다.
上之所欲, 民從之速也. 我之所欲唯無欲, 而民亦無欲而自樸也. 此四者, 崇本以息末也.
<Stefan Stenudd 역>
Use justice to rule a country.
Use surprise to wage war.
Use non-action to govern the world.
How do I know it is so?
As for the world,
The more restrictions and prohibitions there are,
The poorer the people will be.
The more sharp weapons people have in a country,
The bigger the disorder will be.
The more clever and cunning people are,
The stranger the events will be.
The more laws and commands there are,
The more thieves and robbers there will be.
Therefore the sage says:
I do not act,
And people become reformed by themselves.
I am at peace,
And people become fair by themselves.
I do not interfere,
And people become rich by themselves.
I have no desire to desire,
And people become like the uncarved wood by themselves.
People Can Govern Themselves
Some translators of the Tao Te Ching presume that the first three lines of this chapter say what not to do and what to do. Justice and surprise are inferior, and only non-action, wu-wei , is in accordance with Tao. I think that’s too harsh a judgment.
Lao Tzu is not unrealistic, nor is he impractical. For ruling the country, justice is a reasonable ideal. For winning wars, surprise is a commendable strategy. That’s all fine, considering the limited perspectives involved. But for governing the world, only non-action will do.
He is not dismissing the two former methods, since they are relevant in connection to their objects. He just reminds us that on a larger scale, and for truly lasting purposes, we need to return to Tao and its principles.
In the following, he specifies what terms apply to the grand perspective. In the world as a whole, and in a government that wishes to last, restrictions and prohibitions just lead to poverty. That will have its recoils. That’s where justice fails. An armed population and preparations for war will cause calamity. Weapons have that consequence. So much for military strategy.
Furthermore, when people are clever and scheming, there’s no way of telling what will happen. The surprises will be far greater than any warlord might come up with. And for each new law there will be many more people committing crimes, both such that had not been illegal beforehand and such that always were. The smaller the pasture, the more of the livestock will jump the fence.
So, the sage leans back and avoids doing the least bit more than what is absolutely called for. That’s much less than most leaders ever imagine. People search for norms and make their own decent rules, when not cornered by laws. A multitude of laws mostly triggers disobedience and the search for loopholes.
The uncarved wood is a frequently used metaphor for a pure and simple mind. For people to conform to it, their leaders have to do the same. It starts by the leaders admitting that they are not different from the ones to be led.
Lao Tzu also points out, playing with words as is his habit, that a leader must be free of desire. He stresses it by doubling it. Desire, if just restrained, is still desire. One must be free of the desire to desire.
Many versions of the Tao Te Ching only have one occurrence of the word in the last sentence of this chapter, but the oldest manuscripts, that from Guodian and those from Mawangdui, use the double. The pun was probably present in the original version.
Truth also needs a laugh. Remember what Lao Tzu says in chapter 41. Without the laughter it would not be T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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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爲 도덕경 비교
(2장)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3장)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爲無爲則無不治
(10장) 明白四達 能無爲乎
(37장)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38장)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
(43장)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
(48장)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57장)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63장)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64장) 是以聖人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無事 도덕경 비교
(2장)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48장)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57장)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63장)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無欲 도덕경 비교
(1장)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교
(3장)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34장)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37장)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57장) 我無欲而民自樸
自然 도덕경 비교
(17장) 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23장)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25장)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26장) 雖有榮觀, 燕處超然
(51장)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53장) 以天下觀天下,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57장)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64장)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
(65장) 元德深矣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66장)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 天網恢恢, 疏而不失
(77장)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靜 도덕경 비교
(16장) 致虛極 守靜篤 /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26장) 重爲輕根 靜爲躁君
(37장)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45장)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57장)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61장)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
樸 도덕경 비교
(15장) 敦兮其若樸
(19장)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28장) 復歸於樸,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32장)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37장)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57장) 我無欲而民自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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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이함으로 군사를 지휘하며
以正治邦, 以奇用兵
'정(正)'은 '정(政)'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는데(부혁본 등), 두 글자는 서로 통한다. 공자는 "정치라는 것은 올바르다〔正〕는 뜻이니 당신이 올바름으로써 이끈다면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게 되겠습니까(『논어』 「안연」)"라고 하였다. 이런 공자의 말과 이 문장을 연결시키면 "올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은 명분을 바로잡는 것, 곧 정명과 관련을 가지게 된다.
한편 『윤문자』는 인·의·예·악과 명(名)·법(法)·형(刑)·상(賞) 여덟 가지가 오제 삼왕의 통치술이라고 하면서 『노자』의 이 문장을 소개하고는 정(政: 正)은 명·법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명이란 존비를 바로잡지만 동시에 위세와 찬탈을 낳고, 법이란 여러 가지 다른 것을 가지런히 하지만 동시에 명분을 어그러뜨린다(「대도하」)." 이렇게 보면 "올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은 형명 법술과 관련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공자의 정명론은 형명 법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둘은 개인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명분을 세우고, 그 명분을 지킴으로써 질서를 보존한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단지 정명론은 형명 법술의 제도적 장치를 전사회적으로 확대하여 제도적 상벌 장치가 작동되지 않는 곳에서도 명분을 지킨다는 원리를 그대로 관철시킨다. 형명 법술보다 적용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기 때문에 정명론의 처벌은 도덕적 비난의 차원으로 약화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올바름으로 다스린다는 말은 정명론의 시각에서 이해해도 좋고, 형명 법술의 시각에서 이해해도 좋다.
육희성은 전자다. 그에 따르면 "정명은 넘치지 않으니 나라를 다스릴 만하고, 기모(奇謀)는 궁하지 않으니 군사를 부릴 만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겨우 환란을 구제할 뿐이고 장구하고 위대해질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오징은 후자다. 그가 보기에 여기에서 올바름이란 법제와 금령을 가리키므로 이것으로 나라를 다스린 사람은 관중과 상앙이고, 기이함이란 권모술수를 가리키므로 이것으로 군사를 부린 사람은 손자(孫子)와 오자(吳子)이다. 육희성·오징은 이런 방법이 천하를 취하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점에서 같다.
"기이함으로 군사를 지휘한다"는 것은 당연히 병법과 관련된 말이다.
공(환공)이 물었다. "야전에서 필승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관중이 대답했다. "기이함〔奇〕으로 대적해야 합니다(『관자』 「소문」)"
그러므로 기이한 계략을 잘 내는 사람은 무궁하기가 천지와 같고, 마르지 않기가 강·바다와 같다(『손자』 「세편」).
지금 『노자』는 아무런 일삼음이 없음을 통해서 천하를 취하려고 하므로 기이함을 중시하는 이런 병법·병략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여기에서도 '기이함〔奇〕'을 비판하고 있지만 『노자』는 다른 곳에서도 단호한 태도를 보여준다. "만약 백성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옳지 못한 행동〔奇〕을 한다면 내가 잡아죽일 것이니 누가 감히 그렇게 하겠는가(74)."
하지만 사실 『노자』만큼 병가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책도 드물다. 그 말이 기이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왜 『노자』에 주목하겠는가. 그 말의 위력은 일단 상식을 기습하는 데 있다. 다음에 나오는 "일삼음이 없음으로 천하를 취한다"는 생각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지만 일단은 기이하게 느껴진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회남자』는 통행본 『노자』 36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용병가의 말이라고 하였다. 병가의 정신과 『노자』의 정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왕진은 『노자』에서 용병의 요략(要略)을 읽었고, 장태염(章太炎)은 『노자』가 고대 병서의 요지를 개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또 후쿠나가(1988)는 "도가의 도의 철학은 전국시대에 발생해서 패하지도 멸망하지도 않고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살아남기 위한 처세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고, 그 지혜를 도의 형이상학에 근거하여 철리화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도가의 도의 철학은 그 본질에서 인생을 싸움으로 보고 있는 병법서라는 성격을 현저히 가진다"고 하였다(35쪽). 대단히 정확한 지적이다.2)
일삼음이 없음으로 천하를 취한다
以无事取天下
"천하를 취한다"는 말은 『노자』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다. 이 말은 이미 나왔고(48) 앞으로도 나온다(29). 이 목적의 달성을 위한 『노자』의 일관된 전략은 무위의 통치술을 통해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사람들의 신망을 얻으면서 천하를 취하는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천하를 취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공작을 하지 않는 것이 천하를 취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은 『노자』의 독특한 아이디어인 것 같지만 사실은 누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느냐는 양 혜왕의 물음에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통일할 수 있다(「양혜왕상」)"고 말한 맹자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노자』도 맹자처럼 "무릇 살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천하에 뜻을 얻을 수 없다(31)"고 말한다. 맹자에게서는 패도가 천하를 취하기 위한 적극적 정책이며, 유위이다. 무위 정치가 일단 인간(신하)의 자율성에 사회의 운영을 위임하고 있다면 왕도 정치도 사람들의 도덕적 자발성을 기대한다. 왕도 정치가 훌륭한 왕을 상징으로 놓고 그 상징성을 견인력으로 하여 백성을 계몽하려고 한다면 무위 정치는 성인을 통해 똑같은 일을 진행하려고 한다. 아울러 왕도 정치의 뒤편에 일정한 감시 체계와 징벌 체계가 놓여 있다면 『노자』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원래의 무위 정치 역시 그런 장치를 가진다.
물론 왕도 정치와 무위 정치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왕도 정치는 이미 역사적 내용을 가지고 있고, 무위 정치는 그 역사적 내용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왕도 정치의 역사적 내용이란 인의 도덕에 의한 사회 통합이다. 『노자』의 무위 정치는 그것을 유위로 공격한다. 왕도 정치의 역사적 함의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자를 완전히 일치시킬 수 없다. 하지만 그 시스템에는 대단히 유사한 측면이 많다. 순임금이 무위 정치를 구현한 최초의 역사적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吾何以知其然也哉
모든 통행본에는 이 구절 다음에 "이 때문이다〔以此〕"라는 구절이 더 있다. 백서와 초간문에는 모두 없다. 아마도 다른 곳의 비슷한 용례(21·54)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무릇 천하에 금기가 많으면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에게 좋은 물건이 많으면 나라는 더욱 혼란해지며, 사람들이 아는 게 많으면 이상한 물건도 많아지고, 법령이 복잡해지면 도적은 더 많아진다
夫天下多忌諱而民彌貧, 民多利器而邦家玆昏, 人多知而奇物玆起, 法物玆彰而盜賊多有
왕필에 따르면 이 네 가지의 일은 모두 근본을 버리고 말단에 치중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노자』는 왜 일삼음이 없음으로 천하를 취할 수 있는지 일삼음이 있는 것의 폐단을 들어 설명한다.
'기(忌)'는 원래 선왕이 죽은 날을 가리키고, '휘(諱)'는 죽은 왕의 이름을 가리킨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이것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통례이므로 나중에는 여러 금기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백성은 더욱 가난해진다"는 말은 초간문에 "백성들이 더욱 반란을 일으킨다〔畔〕"로 되어 있는데, 그래도 뜻이 통한다. '이기(利器)'에도 여러 설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로운 도구로 본다(왕필·오징). 오징은 아주 구체적으로 이것이 그물이나 여러 농기구, 배나 수레 등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백성들이 이런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그 규격 등이 통일되지 않으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참고할 수 있다. '자(玆)'는 통행본에 '자(滋)'로 되어 있지만 그 자체에 초목이 많아진다는 뜻이 있으므로(『설문』) 구태여 고치지 않아도 이렇게 해석된다.
'기물(奇物)'은 무익한 물건이다(소철). 가령 사람의 눈을 속이는 상품도 기물이라고 할 수 있고(오징), 궁궐과 민가의 찬란한 장식이나 화려한 복식도 기물이라고 할 수 있다(하상공). '법물(法物)'은 '법령(法令)'으로 되어 있는 판본이 많지만(왕필·부혁본 등) 백서와 초간문을 보면 '법물'이다. 그런데 성현영에 따르면 법물이 바로 법령을 가리킨다(강사제본). 대부분의 주해에서는 이 구절을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히 여기지 않아서 백성들이 도둑질하지 않도록 한다(3)"는 말이나 "기교를 끊고 이익을 버리면 도적이 사라질 것이다(19)"는 말과 연관을 지어 "좋은 물건이 많이 생기면 도적이 많아진다"고 해석하지만 그렇게 하면 앞구절과 중복이므로 성현영의 견해를 따라 법령으로 해석한다.
금기·법령으로 다스리는 것에 대한 비판은 공자나 맹자에게서도 볼 수 있다. 공자는 "법령으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질서를 잡는다면 백성은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논어』 「위정」)"라고 하였고, 맹자는 백성들이 왜 40리 되는 제 선왕의 정원은 크다고 하고 70리 되는 문왕의 정원은 작다고 여겼는지를 즐거움을 독점하는 금기의 존재 여부로 설명한다.
좀 덜 알려진 이야기로 혜시와 관련된 고사가 있다.
혜자(惠子: 혜시)가 위 혜왕을 위해서 법을 만들었다. 법이 만들어지자 사람들에게 보였다.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하였다. 그것을 혜왕에게 헌상하니 혜왕도 좋아하였다. 그래서 적전(翟翦)에게 보였다. 적전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혜왕이 말하였다. "시행할 만합니까?" 적전이 말하였다. "불가합니다." 혜왕이 말하였다. "좋으면서도 시행할 수는 없다고 하니 무엇 때문입니까?" 적전이 대답하였다. "이제 큰 나무를 들 때에는 앞에서 '영차'라고 하면 뒤에서도 그것에 호응을 하니 이것이 큰 나무를 드는 데에 좋은 것입니다. 정(鄭)·위(衛)에 아름다운 음악이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런 것은 여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나라라는 것도 큰 나무와 같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적전은 적장(翟章)으로도 쓴다. 혜시는 위 혜왕이 죽은 뒤 재상직에서 물러났고, 적전이 대신 위나라의 재상이 된다. 적전과 혜시는 줄곧 라이벌이었다. 『장자』의 혜시는 상식적 개념의 취약성을 공격하는 명가의 이론가지만 현실의 혜시는 법을 만든 개혁적 정치가였다. 서로 멀어 보이지만 상식과 전통 세계에의 도전이라는 점은 같다. 삼진(三晉)의 학풍이라는 게 대체로 이랬다.
「도응훈」은 이 고사를 그대로 옮기고, 마지막에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법령이 복잡해지면 도적은 더 많아진다고 하였다"며 『노자』를 인용한다. 『문자』 「미명」에서는 적전이 노자로 둔갑한다. 『여씨춘추』 등의 고사를 가져와서 「도응훈」이 『노자』와 결합시키는 것이나, 『문자』가 『회남자』(주로 「도응훈」)에서 기사를 가져오면서 이야기의 주인공을 노자로 바꾸어놓는 것은 거듭 관찰되는 하나의 패턴이다.
이 때문에 성인의 말씀에 이르기를
是以聖人之言曰
여기에서 『노자』는 이름 모를 성인의 말을 인용한다. 이것이 누구의 말인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이 정말로 성인의 말인지 아니면 그저 성인을 내세워서 한 말인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노자』에는 지금처럼 성인의 말을 인용하는 문장이 하나 더 있으며, 그것은 누구의 말인지 추적해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인의 말씀에 이르기를 온 나라의 치욕을 끌어안는 것을 사직의 주인이라고 하고, 온 나라의 불길함을 끌어안는 것을 천하의 왕이라고 한다고 하였다(78)"는 문장이 그것이다. 『장자』 「천하」에 따르면 "온 나라의 치욕을 끌어안는다"는 것은 노담의 말이다.
물론 「천하」도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천하」에 근거하여 이 말이 노담에게서 왔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고대 중국 연구의 기본 태도다. 설령 이 책에서 내가 그런 의심을 노골적으로 내비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의심은 깔려 있다. 그것이 나의 거시적 세계이다. 단지 「천하」라는 작은 세계만을 놓고 볼 때는 이 말이 노담에게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여씨춘추』도 "그러므로 성인은 소리없는 것에서 소리를 듣고, 형체가 없는 것에서 형체를 보니 첨하·전자방·노담이 이들이다(「심응람·중언」)"라고 하여 노담을 성인으로 부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두 자료를 종합하면 통행본 『노자』 78장은 노담에게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온 나라의 치욕을 끌어안는다"는 말이 정말 노담에게서 왔고, 『노자』가 그것을 성인의 말로 부른다면 당연히 『노자』는 노담의 작품일 수 없다. 『노자』는 단지 그 사상의 일부를 빌려왔을 뿐이고, 나중에 『노자』의 전설이 만들어질 때 그것을 만들어낸 집단이 어떤 이유에서든 그의 이름을 이용했을 뿐이다.
노담을 성인으로 보는 평가는 전국 말기 이전에는 없다. 『장자』 내편에도 노담이 두 번 등장하지만 한 기사에서는 진일(秦佚)의 입을 빌려 죽어서도 사람을 불러모으는 변변치 못한 인물로 비판되고, 다른 하나의 기사에서는 명왕(明王)의 다스림을 소개하는 화자로 나올 뿐이다. 그러다가 『여씨춘추』나 『장자』 외·잡편에 가면 노담은 갑작스레 성인으로 부상한다. 『여씨춘추』는 "공자는 노담과 맹소(孟蘇)와 기정숙(夔靖叔)에게 배웠다(「중춘기·당염」)"고 하여 노담을 공자의 스승으로 소개한다. 이것이 노담이 공자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최초의 기록이다. 『여씨춘추』의 다른 곳에서도 노담은 일관되게 존중받는다.
그럼에도 『여씨춘추』는 『노자』를 인용하지 않는다. 곧 노담이 공자의 스승이라는 설이 먼저 생겼고, 나중에 『노자』가 만들어졌을 때 이 책은 그 '새로운' 권위에 의탁된 것이다.
내가 무위하니 백성은 스스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은 스스로 올바르게 되며, 나에게 일삼는 것이 없으니 백성은 스스로 부유해지고, 내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고자 하니 백성은 스스로 소박해진다고 하였다
我无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无事而民自富, 我欲不欲而民自樸
여기에서 『노자』는 일삼음이 없음으로써 천하를 취하는 일을 언급한다. 그 요체는 무위·호정(好靜)·무사·무욕이다. 이것이 성인의 말이라는 것은 당대에 공감을 얻고 있다는 의미다. 『여씨춘추』에는 적어도 이 중의 하나,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은 스스로 올바르게 된다"는 말과 관련된 글이 있다.
도를 얻은 사람은 반드시 고요해지니 고요한 사람은 아는 것이 없다. 알고 있던 것을 알지 못하게 되면 임금의 도를 말할 수 있다. ……하늘은 크게 고요하니 이미 고요해지고 또 편안하면 천하의 주인〔天下正〕이 될 수 있다(「심분람·군수」).
말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때를 기다린다. 때가 이르면 그에 응하니 마음이 여유로운 자가 이긴다. ……먼저 부르짖지 않고 단지 어울리며, 앞에 나서지 않고 단지 따른다(「심분람·임수」).
이런 말을 통해서 감추어진 『노자』의 맥락이 드러난다. 곧 『노자』는 하늘, 곧 자연에 대한 관찰에서 무위·호정·무사·무욕이 천하를 취하는 좋은 방법임을 깨달았고, 그 좋은 결과는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면서 때를 기다리고, 결코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기회를 보는 좋은 전략에 의해 매개된다고 하였다. 무위가 스스로 교화됨을, 호정이 스스로 올바르게 됨을, 무사가 스스로 부유해짐을, 무욕이 스스로 소박해짐을 낳는 것은 신비가 아니라 전략이며, 사실 그런 의미에서는 결코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부르짖지 않고 단지 어울리며
앞에 나서지 않고 단지 따른다
―『여씨춘추』 「심분람·임수」
[以正治邦, 以奇用兵]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