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를 보고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자"할 때에
나는 기뻤다.
[시편 122:1]
시편 122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었다.
오경웅은 1절을 이렇게 해석했다.
'친밀한 벗 나에게 "성산에 오르자 야훼 전에 함께 들어 주 얼굴 뵙자"했네.
마음 합한 그 말은 은은한 난향이라.[시편사색]'
순례의 길을 떠나는 이에게 함께할 도반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래서 '사람들이'라는 번역보다 '친밀한 벗'이 더 와닿는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샬롬의 도시, 삶의 모든 조건이 온전한 도시라는 의미요, 그 중심에 성전이 있다.
그러므로 '순례자'의 최종 목적은 '샬롬'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그들의 성소로 삼은 이후 진정한 평화의 시간이 있었을까?
평화의 도시가 아니라,
팔레스틴 가자지구의 평화를 무력으로 파괴하는 악마의 도시가 된 것은 아닌가?
예루살렘 성전과 같아야할 오늘 날 교회에는 진정한 평화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밀한 벗과 같은 도반이 있어 순례자의 길을 걸어갈 힘을 얻는다.
도반은 극소수이고, 함께 걷는 길도 좁고 험하다.
하지만,
그 길이 성산에 오르는 유일한 길이요, 주님의 얼굴을 뵙는 길이기에 묵묵히 걸어간다.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갈 때에 도반이 있느니 힘이 난다.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
함께 하는 이 있으니, '샬롬'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