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현세는 셋방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우연히 만난 옛 친구인 두갑이는 어떤 집의 주인이 셋방 사람들을 내보내려 하는데 그들이 나가려 하지 않는다면서, 현세가 그 집을 구매하는 것처럼 연기를 해 준다면 그 대가로 방을 내어 줄 것을 약속한다. 고민 끝에 현세는 집을 구매하는 척하여 결국 사람들을 내쫓고, 구문*을 지불하기 위해 집주름* 영감을 만난다.
“선생님, 이러지 마시구 좀 더 생각해 주셔야죠.”
하는 것이었다.
“그만하믄 되디 않습네까?”
[A] [ “선생님두 다 아시다시피 이번 사신 집이야 그저 읃으셨죠. 어제두 요 뒤에 집 매매가 있었는데 매 칸에 꼭꼭 일만 오천 원씩에 팔렸죠. 그런 데 비기면 그저지 뭡니까. 거 다 선생님 복이시지만, 내가 별별 수단을 다 써서 그렇게 싸게 사셨다는 것두 생각허셔야죠. 그리구 전에두 잠깐 말씀드렸지만서두 일이 성사만 되게 허느라구 저편에서는 일 전 한 푼 못 받았습죠. 그뿐인가요, 전재민*으루 오신 선생님네 하루라두 속히 이사 오시두룩 허느라구 셋방 사람들 방 내는 덴 을마나 또 속을 썩였다구요. 선생님두 그날 같이 가셨었으니까 짐작이 가시겠지만 그동안 내가 하루에두 몇 번씩 그 노파 성화를 받었는지 모르죠. 증말 이번에 학질 뗐습니다, 학질 뗐어요. 제 자랑이 아니라 나 아니면 절대루 셋방 사람들 내보내지 못헙니다. 그 다 선생님네 하루라두 속히 이사 오시두룩 허기 위해 헌 게 아닙니까. 그러니 선생님이 이런 거 다 생각해 주셔야 헙죠.”]
셋방 사람들 내보내는 데 힘들었다는 것은 집주름 영감의 말대로 그렇다 해도, 저편 집주인의 구문은 물론 셋방 사람들 방 얻어 내보내 준 삯까지 모두 두갑이의 말대로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어찌됐건 현세는 이 일을 어서 끝내고만 싶었다.
“우린 전재민이 아니웨까?”
“그런 말씀을…… 어디 전재민이구 전재민 아니구가 있나요. 선생님 겉은 이헌테 비기면 우리가 전재민이죠. 수다한 식솔에, 식구가 자그만치 열넷이랍니다. 버는 사람이라군 이 늙은 것 혼자구 그나마 조금씩 보태든 아들 녀석은 턱 앓아눕지를 않었수. 그런데다 엊그젠 또 며늘애가 몸꺼지 풀어 놨으니, 그래 우리 성한 사람이야 어쨌건 앓는 사람 죽술이나 허구 애어미 미역국이나 끓여 먹여야 허잖겠수? 선생님 그러시지 마시구 더 좀 생각해 주십쇼.”
그러는 늙은 집주름의 얼굴은 온통 땀투성이가 되고 눈도 충혈이 돼 있었다.
현세는 문득 자기네도 미역 이파리나 사 놔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현세는 이 늙은 집주름에게 이번 집 매매의 내막을 툭 털어놓고 얘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현세는 그런 이야기를 할 경황도 경황이려니와 우선 그럴 기운이 없다는 걸 느꼈다.
현세가 그냥 걷기 시작하니까 집주름 영감은 다급하게,
“아니 선생님, 다른 건 다 그만두구 보통 구문대루 일 푼만 친대두 천 원이면 십만 원에 대한 구문밖엔 더 안 되지 않수? 어디 그래서야 되나요.”
하고 수표를 도로 돌려주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를 보이는 것이었다.
여기서 현세는 두갑이가 말한 찰거머리라는 말과 잡아뗄 적에는 딱 잡아떼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으나 그보다도 이제는 더 서서 말할 기운조차 없어 그냥 걷기만 했다. 이 현세의 태도가 늙은 집주름에게는 또 혹시 수표를 내준다면 그것을 그냥 받아 가지고 갈 것같이 보였던지 탄원하는 어조로,
“그럼 선생님 다시 잘 생각해셔서 처분해 주십쇼. 그럼 조심해 가시우.”
하면서 꾸뻑꾸뻑 절을 했다.
퍽 구름이 걷힌 하늘 아래서 현세는 이제는 다리만 허청거릴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아까보다 아주 흐리어졌다. 눈을 가느스름히 뜨면 좀 낫게 보이지만 그렇게 눈을 가느스름하게 하면 그러지 않아도 자꾸 들어만 가는 눈이 절로 찌쁘득하니 감기어지며 쓰린 눈물이 내배는 것이었다.
(중략)
“그런데 말야, 자네에게 미안한 말 하나 하게 됐네.”
한다.
현세는 왜 그런지 가슴이 섬뜩함을 느꼈다.
“저, 다른 게 아니구 말야, 집쥔이 자기네가 방을 다 써야 될 일이 생겼다누만.”
현세는 종내 가슴이 철렁 무너앉을밖에 없었다.
두갑이는 바지 뒤 포켓에서 십 원짜리 한 묶음을 꺼내 현세 앞에 놓으며,
“그래 미안하다구 하믄서 이걸 보내데. 정말 안됐네. 좋은 일 하려다 되레 자네한텐 원망 듣게 됐어.”
그리고는 살피듯이 현세를 한 번 바라다보고 나서,
[B] [“글쎄 첨엔 단돈 오백 원을 내놓지 않겠어? 그래 내 고함을 질렀지. 그 사람이 돈이나 오백 원 바래구 그런 숭한 광대놀음 할 사람인 줄 아느냐구. 당신 눈에는 오백 원이 대단해 뵐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아무리 전재민이라두 이런 돈 없이두 사는 사람이라구 해 줬지. 그랬더니 오백 원을 더 내놓두만. 서울깍쟁이라더니 정말……”사뭇 분개해 하는 말투요 표정이었다.]
현세는 또 이 두갑이의 분개해 하는 말투와 표정과는 달리 가슴속 한가운데서 누구에게라 없이 악이 머리를 들고 일어남을 느꼈다. 그것은 뱀같이 독이 오른 대가리였다.
“하기야 요즘 아무리 돈 가치가 없대두 천 원이믄 적잖은 돈이지. 그리구 말야, 자네 방 문젠 내 또 알아봄세. 발 벗구 나서믄 그까짓 방 한 칸쯤 문젠가. 내 꼭 책임지지. 아예 이번 집에 못 가게 된 거 서운하게 생각 말라구. 되레 잘되는 일인지두 몰라. 교통두 불편하구 더구나 요새 그 집쥔은 돈냥이나 버니까 뭣 부족할 것 없이 들여다 먹는데 말야, 한집에서 그걸 보구 어떻게 견디나. 내 자네 있기 존 방 하나 구해 주지.”
현세의 악은 이제야 분명히 누구에게보다도 먼저 이 두갑이에게 향해짐을 느꼈다. 그저 이놈의 우뚝한 코를 평안도식으로 한 대 지끈! 그러나 그것은 벌써 이미 다 죽어 가는 실뱀의 악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두갑이가 윗몸을 현세 앞으로 내밀더니 돈 묶음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한 편 끝을 몰아 쥐었다가 펄럭펄럭 놓아 주면서,
“요새 십 원짜리 2호에 가짜 돈이 많다데. 그래서 여긴 2호짜린 한 장두 받아 오지 않았지.”
그러는 두갑이의 두꺼비 입에서는 또 불고기와 소주와 마늘을 먹은 뒤에 나는 냄새가 풍기어 왔다.
현세는 종내 이 두갑이의 입김에 못 견디어 도망이나 하듯이 그곳을 나오고 말았다. 저도 모르는 새 돈 묶음만은 집어 쥔 채. 두갑이의, 자기는 이 다방에만 오면 만날 수 있으니 꼭 만나자는 말을 먼 메아리처럼 등 뒤로 들으면서.
- 황순원, 「두꺼비」 -
*구문: 흥정을 붙여 주고 그 보수로 받는 돈.
*집주름: 집을 사고팔거나 빌리는 흥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전재민: 전쟁으로 재난을 입은 사람.
41.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대화를 통해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② 여러 인물들의 내적 독백을 나열하여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
③ 특정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상황에 대한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④ 공간적 배경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사건의 전개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⑤ 현학적 표현을 사용하여 인물이 처한 시대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42. [A]와 [B]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A], [B]에는 모두 현세를 위해 행한 노력이 강조되어 있다.
② [A], [B]에는 모두 자신과 현세가 처한 부정적 상황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다.
③ [A]와 달리 [B]에는 현세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드러나 있다.
④ [A]와 달리 [B]에는 현세에 대한 인식 변화가 제시되어 있다.
⑤ [B]와 달리 [A]에는 현세의 상황에 대한 호기심이 표현되어 있다.
43.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작품에서 현세는 일제 강점기에 만주 일대를 떠돌다 해방 이후 큰 기대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온 전재민이다. 해방 후 혼란으로 인해 모두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전재민들은 동포들에게조차 이해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타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궁핍하고도 고단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작품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도덕보다는 자신의 생존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는 혼란한 현실에서 공동체 의식이 흔들리고 있음을 그리고 있다.
① 집주름 영감과 함께 공동체 의식을 바로 세우려 했던 현세의 고뇌에 찬 ‘눈물’을 통해 도덕이 무너진 혼란한 현실을 엿볼 수 있다.
② 자신의 ‘악’이 ‘다 죽어 가는 실뱀의 악’일 뿐임을 깨닫는 현세에게서 당대 현실 속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전재민의 처지를 엿볼 수 있다.
③ 두갑이에게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돈 묶음만은 집어 쥔 채’ 자리를 떠나는 현세에게서 전재민의 궁핍한 처지를 엿볼 수 있다.
④ ‘우린 전재민이 아니웨까?’라는 현세의 말에서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동포들에게 이해를 구하려는 전재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⑤ 자신의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 어려운 처지의 ‘셋방 사람들’을 내쫓는 역할을 한 현세에게서 도덕보다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44.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보기>
우리 설화 속에서 두꺼비는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보다 강한 대상과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동물로 자주 등장한다. 또한 우리 전래 동요에서는 두꺼비에게 집을 달라고 비는 등 두꺼비를 기원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두꺼비 이미지를 변형하여 ‘두갑이’라는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
① 설화의 두꺼비가 강자 앞에서 나약했던 것처럼, 윗글에서도 두갑이를 집주인 앞에서 비굴하게 구는 것으로 그려냈군.
② 설화에서 두꺼비가 은혜를 갚는다는 내용과 달리, 윗글에서는 현세가 두갑이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내용으로 구성했군.
③ 설화와 전래 동요에 두꺼비가 긍정적으로 묘사된 것처럼, 윗글에서도 독자들이 두갑이에게 희망적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형상화했군.
④ 설화에서 두꺼비가 정의로운 존재로 여겨진 것과는 달리, 윗글에서 현세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두갑이가 이용했을 뿐임을 깨닫는 것으로 설정했군.
⑤ 전래 동요에서 두꺼비에게 집을 달라고 기원한 것처럼, 윗글에서도 현세는 두갑이가 방을 얻어 주리라는 기대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 것으로 구현했군.
45. 윗글에 대한 독자의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집주름 영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현세는 기진맥진(氣盡脈盡)해 있군.
② 현세는 두갑이의 말을 듣고 그에게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고 있군.
③ 집주름 영감은 현세에게 돈을 더 받기 위해 애걸복걸(哀乞伏乞)하고 있군.
④ 집주름 영감의 말에 나타난 집주름 영감의 집안 상황은 가히 설상가상(雪上加霜)이군.
⑤ 두갑이는 현세에게 자신이 나중에 방을 얻어 주겠다며 호언장담(豪言壯談)하고 있군.
첫댓글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