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훈화 <연중 제11주간 (6.21~27)>
성체 조배실이라는 베들레헴 마구간
레지오 마리애 단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는 6월을 보내며 성체조배에 대한 이야기를 지난 주부터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원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미사 전후나 주회합 전후에 성체 조배실에서 주님과 단둘이 머무르는 시간을 꼭 마련해 보셨으면 합니다. 성체조배를 계속 이어 오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성체 조배실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으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신부님, 미사 전에 성당 대성전에 앉아서 기도하면 되지, 왜 굳이 좁은 성체 조배실까지 찾아가야 하나요?" 하고 묻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전에서 바치는 기도도 물론 훌륭하고 귀합니다. 하지만 성당과 성체 조배실은 그 공간이 지닌 영적인 의미와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우리 성전은 제대를 중심으로 온 교우가 함께 모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거행하는 공적이고 공동체적인 공간입니다. 마치 하느님 나라의 '풍성한 잔치 마당'과 같습니다. 공간이 넓고 개방되어 있어 '하느님 백성의 연대감'을 느끼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반면에 성체 조배실은 미사를 통해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연장하고, 더 깊이 음미하는 은밀한 공간입니다. 성당이 잔치 마당이라면, 성체 조배실은 신랑이신 예수님과 신부인 나의 영혼이 단둘이 마주 앉는 '은밀한 골방'에 가깝습니다.
이 작은 골방은 바쁘게 활동하는 레지오 단원들에게 전혀 다른 세 가지 영적 은총을 선물합니다.
첫째로, 시선과 현존의 거리가 좁혀지는 '친밀함'이 있습니다.
넓은 성전에서는 저 멀리 있는 제대와 감실을 바라보아야 하기에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생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체 조배실은 공간이 작고 아늑하기에 성체와 나의 거리가 매우 가깝습니다. 예수님의 숨결이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그 물리적인 가까움은,
"주님께서 지금 이 순간, 오직 나만을 위해 내 눈앞에 계시는구나."
하는 깊은 인격적 만남을 선사합니다.
둘째로, 세상의 소음과 단절된 '내면의 고요'를 줍니다.
미사 전 대성전은 해설자의 안내, 성가대의 연습, 신자들의 이동으로 끊임없이 생동감 있는 에너지가 흐릅니다.
반면 성체 조배실은 철저한 정적이 흐르는 영적 진공 상태와 같습니다. 어떠한 청각적·시각적 자극도 차단된 그곳에 앉을 때, 삶의 걱정, 잡념, 레지오 활동에 대한 부담감과 같은 내 안의 소음들을 내려놓고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온전히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셋째로, '해야 하는 기도'에서 '머무르는 기도'로 나아가게 합니다.
성당에서의 기도는 대개 '미사 시작 전까지'라는 시간적 제한이 있고, 묵주기도나 기도서 위주의 '말로 바치는 기도'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체 조배실에서는 기도의 주도권이 내가 아니라 주님께로 넘어갑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성체 앞에 앉아, 내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게 두는 '응시의 기도', 즉 관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성체 조배실입니다.
단원 여러분,
성당에 모여 다 함께 레지오 기도문과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의무입니다.
하지만 이번 한 달 동안은 성모님이 구유의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시던 그 침묵의 시선으로,
성체 조배실이라는 작고 낮은 베들레헴 마구간을 찾아가 보셨으면 합니다.
5분이든 10분이든 상관없습니다.
기도를 채워 '바치려고' 애쓰기보다, 사방의 소음을 지운 채 나를 너무나 아끼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 그저 '머물다' 오는 은총을 맛보십시오.
활동으로 바쁘고 지친 영혼에 가장 맑은 영적 샘물을 길어 올리는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줄 것입니다.
단원 여러분 모두가 성체 안에 살아계신 주님과 깊은 사랑에 빠지는 온화한 6월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소중한 활동에 늘 성모님의 전구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