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대한 경의
윤병화
지금도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은 어김없이 왠지 모를 넉넉함으로 차오른다. 윌리엄 워즈워스가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라고 읊었던 것처럼…….
내가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를 떠올려본다. 그때 나를 매혹시켰던 것 중의 하나가 하늘에서 본 흰 구름바다였다. 창 측 자리에서 처음 덮개를 열고 내려다본 하늘 위 구름바다는 나를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광활한 설원 같기도 하고 하얀 양털 같기도 한 구름밭에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비행기 타는 일이 예사가 돼버린 지금에 와서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은 뜬구름처럼 설레고 가슴은 뛴다. 꽃처럼 피어나 햇빛 아래 하얗게 빛나던 그 순간의 눈부심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저것이 지상의 모든 물을 받아 바다가 만든 새로운 구름이라니. 순환되는 새로운 물의 기원이라는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때의 감동은 너무도 컸다. 그것이 지구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음은 물론이요, 그로 하여 나는 감탄했고 경탄했고 그리고 그에 대해 경의를 표해야만 했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의 명제
는 접어두고서라도, 구름의 산물인 물은 우선하여 이 지구 생물의 은총이며 축복이다.
이런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는 구름에 대한 찬사와 감사함의 표시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역시도 그에 대한 고마움을 시적 은유로 기막히게 표현해 낸 바 있다.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이 시구에서의 키워드는 ‘덧없는 풍부함’이라는 표현일 것인데, 그중에서도 ‘덧없는’이라는 적절성은 과연 20세기 최고의 시인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 하나의 시어 선택이 가져다주는 확장성은 우리 인생 전체를 포괄하고도 남는다. 시적 사유와 문학적 비유는 물론 ‘문학文學’에서의 ‘학學’이라는 배움의 깨우침까지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대
시인다운 풍모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풀어보면 구름이 우리에게 풍부함을 가져다주었고, 동시에 그 풍부함의 덧없음에 대해서도 가르쳐 줬다는 의미다. 우리 누구나가 추구하는 것이 삶에서의 풍부함일 것이다. 그러나 구름처럼 사라지는 것이 또한 삶이고 보면, 그 풍부함이라는 것 또한 한없이 덧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시인의 번득이는 통찰과 혜안이 스며 있다. 이어 시인은 그 풍부함을 가져다주고 그것의 덧없음을 일깨워 준 구름에게, 우리는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지를 묻고 있다.
사실 네루다의 그 물음에 대하여 답할 수 있는 인생이 얼마나 될까마는, 그래도 내 인생으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밥맛도 잊은 채 며칠을 고민했던 적이 있다. 내가 구름에게 더 나아가 자연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것은 마음에서였을까? 아니면 글에서였을까? 내가 심어 가꾼 몇 그루 나무, 내가 씨를 뿌린 꽃밭에서였을까? 도무지 딱 떨어지는 답이 없어 그렇게 헤매었던 것 같다.
어떻든 환경 변화로 걱정이 없는 바도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도 바다는 구름을 만들고 구름은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같이 해맑은 날 하얀 구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부자 된 듯 또다시 풍부함으로 차오른다. 그것이 비록 사라질 수밖에 없는 덧없는 것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