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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박찬덕 선교사
본문말씀 : 요한복음 3장 1절 ~ 3장 21절
말씀주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를 보기를 원하고 또 들어가길 소망할 것입니다.
밤에 은밀히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개역개정)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개역개정)
요한복음은 영적인 복음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라고 계속 말씀하십니다.
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이야기, 장대에 달린 놋뱀 이야기, 생명나무와 선악과 이야기, 요한복음 16장 8절, “그가 와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는 말씀 모두 동일한 맥락의 말씀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인간의 영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그의 영은 하나님의 생명의 숨이 충만이 공급되어 그의 영은 온전했습니다. 그러나 뱀이 아담과 하와를 속여서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생명의 숨이 단절되므로 말미암아 그들의 영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역사했던 그 뱀은 이후에도 사람에게 계속 나타나 역사해왔습니다. 가인에게 들어가서 동생 아벨을 죽이게 하였고 또 숱한 사람들을 속이고 분쟁하게 만들고 죄악의 삶을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하여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나타나 그들을 물었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그 뱀은 베드로에게,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그리고 니고데모에게도 나타나서 계속 그들을 쫓아다니면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역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자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 8:44, 개역개정)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절대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니고데모가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그것을 철저히 준수하는 바리새인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이고 그의 신앙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제는 그의 영이 죽어 있어 그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고 들어 갈 수도 없는 아주 심각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놋뱀 이야기를 하시므로 우리 인간의 영을 죽게 만든 원수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속여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으로 나타난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으로,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발생된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 주셨는지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모세가 뱀을 장대에 매달아 그것을 쳐다본 백성들이 모두 산 것처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므로 죄로 인해서 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개역개정)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그 사랑의 깊이를 깨달으니까 그 은혜에 눈물이 나고 뭘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온전했던 인간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범하게 된 이유는 그 선악과가 그들의 눈에 아주 아름답고 또 먹음직스럽고 그들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 3:6, 개역개정)
이처럼 사탄이 우리 인간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제시하는 것들은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의 선한 것과 아주 비슷한 형태의 것으로 위장하여 그것은 마치 인간들을 위한 것 같고 또 하나님을 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없고 사망의 독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계속 먹고 그러한 삶을 지속적으로 살게 되면, 인간의 눈에 아주 좋아 보였던 그것이 최악의 나쁜 결과인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생명나무의 열매는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 열매보다 겉으로 보기에는 못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인간을 위한 가장 최상의 것인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외형적인 모습은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지만 그 안에는 참 진리만이 있었고 영원한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그 앞에서 연한 싹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것이며, 그는 모양도 장엄함도 없으시니 우리가 볼 때에 그를 흠모할 아름다움도 없음이라.” (사 53:2, 개역개정)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4, 개역개정)
이처럼 선악과를 따먹어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은 결코 스스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게 되어 예수님은 인간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거듭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선악과 문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거듭남이 필요하게 된 것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해서 우리 영이 죽어 그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혼이 산 혼이 돼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새 예루살렘성을 구성하는 아름답고 존귀한 금, 진주, 보석으로 만들어지길 원하십니다.
원래 흙이었던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새 예루살렘 성의 존귀한 보석들로 만들어지는 중간 과정에는 은이 진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반드시 거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는 풀무불과 용광로에서 연단 되는 삶이 있어야 하기에 성경에 은을 단련하는 것이 나오지만,
계시록에는 좋은 금(창2:12)대신에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계 21:21), 은 대신에 진주로(계 21:21), 그 다음에 호마노(창2:12) 대신에 12가지 보석으로(계21:19,20) 변화되었는데, 이것은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빛나고 존귀한 존재로 완전히 성장된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집, 새 예루살렘 성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셨고 성령님께서 연단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빛나고 존귀한 보석과 같은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우리의 혼이 살아 있는 혼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예루살렘성의 존귀한 보석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며 이렇게 하나님 왕국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성령님께서 이것을 저에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말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치가 없는 흙으로 우리 몸을 만드시고 그 다음에 우리 몸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 곧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어 주셨는데, 이것이 영입니다.
이 영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으로 짐승들에게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영을 소유하도록 하셨고, 그 영은 영이신 하나님과 인간이 교제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기 전에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안에 거하는 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산 혼으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몸속에 생명의 숨, 영을 불어넣으셔서 인간 안에 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영과 몸이 합해져서 혼이 만들어졌고 죄를 범하기 전에는 그것은 산 혼이었지만 죄를 범한 이후에는 생명의 숨을 공급받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없는 혼, 그냥 육체의 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 나오는 그 생명에 대한 얘기는 혼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혼’으로 말하지 않고 ‘영과 혼’을 통칭한 ‘영혼’으로 잘못 번역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죄 범하기 전에는 영이 살아 있어서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했던 산 혼이었습니다. 그 산 혼이 살아있는 생명체, 자아 곧 나 자신입니다.
혼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혼에 속한 것들 중에는 생각들과 또 다른 것들도 있지만, 하나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 자신입니다.
죄를 범하기 전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에는 아담의 영이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숨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은 나의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서 그분의 것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혼이 된 것입니다.
혼과 영을 통칭해 영혼이라고 하기에 이 둘을 구별없이 영혼으로 이해하지만, 성경에서 ‘영’과 ‘혼’을 명확히 구별하여 말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영혼’으로만 번역하면 그 의미를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과 ‘혼’을 명확히 구별을 해야 성경 말씀이 전달하는 의미를 올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성경 말씀에서 영과 혼을 구분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면, 영이 혼의 주인이고 둘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둘을 구별하지 않고 ‘영혼’으로 표현하는 것도 무방할 것입니다.
선악과 사건을 통해서 이를 이해하자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어 죄를 범하므로 그 영은 하나님의 생명의 숨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어 그 기능이 훼손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영이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속에 생명의 영을 주입시킴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살아 있는 혼이 되어 그 영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숨을 받아 마시므로 산 혼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인간 안에 있던 영은 그 기능을 상실해버려서 생명의 숨을 공급받지 못하게 됨으로써, 영을 따르던 인간의 산 혼은 더 이상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고 육체를 따르는 혼으로 전락해 육체의 정욕을 쫓아 죄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명하시면서,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3장 14절에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반드시’라는 표현이 없지만 성경의 전체적인 의미와 영어 성경의 표현, “…must be lifted up”으로 되어 있어,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곧 예수님께서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으면 인간이 살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지은 죄로 인하여 심판 받아 죽어야 하는 인간을 대신해 예수님이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상, 인간의 죄를 결코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해서 그의 지은 죄를 아무런 처벌없이 그냥 지나친 다면,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임을 부인하는 것이며 이는 곧 하나님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의로운 속성에 따라서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시던 하나님의 생명의 숨을 차단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아담이 생명의 숨을 공급받아 들숨 날숨을 쉴 수 있도록 생명의 영이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고 그분의 얼굴을 아담에게 보이시고 아담과 동행하시며 산책도 하셨지만, 아담이 선악과를 먹어 불순종하는 순간에 아담에게 생명의 숨의 공급이 차단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생명의 숨이 단절되니까 죄를 범한 아담의 영은 그 생명을 잃어버렸고, 그의 혼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숨이 없으므로 영을 따르는 산 혼으로 남지 못하고 육체를 따르는 혼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미혹한 뱀을 저주하면서 창세기 3장 15절 말씀으로 인간들에게는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는 최초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인간들의 죄에 대해서는 즉시로 심판하여 죽음의 형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여인의 후손이 오기까지 그 심판을 유예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므로 그를 믿고 거듭난 자들에게는 그 심판을 면제하고 영생을 주시려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한복음 3:18, 개역개정)
우리는 이 유예기간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까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 아담과 하와는 유예기간이 종결되는 때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이라는 심판의 유예기간을 두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인간이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시므로 하나님의 공의의 법이 성취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그 심판의 법에 따른 형벌, 곧 죽음을 합법적으로 면제받았음은 물론 새로운 생명의 법에 따라 영생을 약속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개역개정)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개역개정)
이를 다시 설명하자면, 원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에 따라 심판을 받아 죽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씨가 올 때까지 심판의 유예 기간을 두셨습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들은 전원이 차단되어 불을 밝히지 못했던 전구에 스위치를 켜 전원을 공급하면 다시 불을 밝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생명의 숨을 우리 영에 다시 불어넣으므로 우리는 산 혼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절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될 수 없고 바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공로로 생명의 숨을 다시 불어넣어 주시면 우리가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구원할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심판의 유예기간을 두셨다는 것을 아담이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좋아해서 “우리가 죽을 줄 알았는데 사는 길을 약속해 주셨다. 우리가 살았다. 우리가 살았다.”고 외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판에 대해 유예기간을 두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작정하시고 계획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온전히 이루시므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인간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교통을 나누고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데, 죄를 범함으로, 전원이 차단되어 버린 것 같이 하나님과 인간의 영적인 연결 통로가 끊어져 버려 하나님의 숨을 공급받지 못하므로 인간은 영의 생명이 없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짧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다 결국 죽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비참한 운명에 처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으면 끊어진 하나님의 생명의 숨을 다시 공급해 줄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예수님을 유일하게 독생자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 분, 인자이신 그 분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생명의 숨을 다시 불어넣으실 수 있는 생명의 길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의미로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계속 물과 성령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침례 요한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을 요단강 물에 잠기게 했다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침례를 시킨 것은 옛 창조물 곧 아담의 죄에 속한 사람들의 모든 문제를 새 창조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종식(終熄) 시키는 것을 물과 성령님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를 더 쉽게 말하자면 생명나무 과일을 먹으면 흘러 흘러 영양분이 되고 물은 계속 흐르고 흘러가서 수많은 생물들에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물을 공급합니다.
또 인간의 신체는 피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이 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므로 살 수 있게 합니다. 보통 인간의 마음이 가슴에 있다고 말하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마음은 실제 머리, 인간의 두뇌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뱀이 발꿈치를 물어서 혈관 속에 나쁜 독을 주입시켜 그 독이 머리까지 퍼지게 되면 인간의 몸이 죽는 것처럼, 사탄이 죄악된 정신을 우리 안에 주입시키므로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까지 퍼지게 되면 우리의 혼이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산 혼이었던 인간의 혼은 뱀의 거짓말을 받아들여서 범죄함으로 망가짐으로써 하나님의 생명의 영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과 교제가 끊어진 상태에 있는 인간의 영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그 마음 속에 죄가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의로우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히 씻어내는데 그 씻어내는 것을 물을 통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침례는 침례 요한의 사역의 중심적인 내용이었는데, 물은 옛 창조에 속한 아담의 죄의 문제를 종식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침례와 관련된 사건 곧 물 속을 건넌 사건이 두 번(홍해 도하, 요단강 도하) 나오는데 그것의 의미는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출애굽기 14장)은 육체의 죄, 곧 애굽에서 있었던 모든 죄들을 완전히 청산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40년 광야 생활 후 가나안 땅에 들어 갈 때 요단 강을 건넌 것(민수기 3장)은 혼의 죄, 곧 하나님께 대적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며 내 뜻대로 하려는 등 온갖 잘못된 우리의 본성, 자아를 완전히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영은 아담이 선악과 문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의 숨이 차단된 상태입니다. 그게 영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숨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되어야 혼이 살아있는 혼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영의 교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찾아올 수도 없고 그 영광스러운 얼굴도 볼 수도 없고 말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게 되므로 모든 관계가 단절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창세기 3장 15절 말씀, 여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죄로 인해서 죽어 있던 영,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를 물과 성령으로 완전히 종식시키고 다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다는 의미입니다.
침례요한은 물이 그 사역의 중심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5절 말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에서 성령이라기 보다는 “영”으로 표현해야 옳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거듭나는 일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일이 나중에는 성령님께서 이 사역을 행하시지만,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이때는 예수님께 이 일을 주관하여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옛 창조 곧 아담 안에 속해 있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에서 물을 말씀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적인 사역, 영을 통해서 새 창조물 곧 자신의 그 십자가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생명의 씨를 심은 것을 완전히 발아시키는 것을 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물과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옛 창조물인 아담의 죄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완전히 종식시키고 신성한 생명력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입시킴으로 완전히 새 창조물로 만든 것을 영으로 나야 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생명의 숨이 내 안에 들어와야 하는데,
우리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고 지금처럼 매일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계속 수도 없이 따먹는 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결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아담이 실패하여 발생한 문제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완전히 해결하기까지 우리 인간들에게 유예기간을 주셨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들어 올린 것 같이 인자로 오신 예수님도 반드시 높이 들려져야 우리 인간의 거듭나는 일, 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듭난다’는 개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옛 창조에 속한 아담의 죄의 문제 곧 선악과를 먹는 일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걸 분명히 알고 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다시는 따먹는 행동과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물 곧 옛 창조에 속한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는 역사를 그리스도의 영, 십자가를 통해서 선악과를 바라보고 따르는 그 불의한 마음과 행위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새 창조물이 된 우리 안에 신성한 생명을 발아시키면 그 생명의 씨로 인하여 우리가 선악과나무 대신 생명나무를 바라보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신성한 생명으로 발아시켰고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루어진 일들을 영원한 생명력으로 계속 자라게 하여 성숙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라게 하는 것은 이사야 51장에서는 ‘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1절 2절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사야 53:2, 개역개정)
이는 주님이 하나님 앞에서 연한 식물과 같은 모양인 것은 그 분을 통해서 산출된 교회 성도들이 용광로와 풀무불과 같은 삶속에서의 연단을 통해서 자라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인고의 세월입니다.
한글 성경에 ‘연한 순’으로 번역을 했는데, 이는 ‘연한 식물’으로 표현하는 것이 주님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좋은 표현 같습니다.
왜냐하면 ‘연한 순’이라고 하면 나뭇가지나 식물의 줄기에서 나오는 연한 싹을 말하고 있어서 연한 식물보다는 의미상 그 형태가 온전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반면, 연한 식물이라는 것은 아직 어리지만 그 형체는 다 이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그분 앞에 연한 식물처럼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처럼 자라는 까닭이라 하면서 우리에게 이 거듭남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 영어 성경 KJV, a tender plant (연한 식물)로 번역]
거듭남은 옛 창조물에 속했던 모든 것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력을 통해서 새 창조물로서 그 생명이 태동되어 발아된 것을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신 성령님을 통해서 자라고 성장하게 합니다.
때문에 성령님의 역할이 지금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님이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죄에 대해서’라고 했는지를 알려면, 우리는 아담으로 발생된 근원적인 죄를 보아야합니다. 인류의 죄는 첫 사람 아담이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의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에 죄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의에 대해서 선포하시는데, 이 죄의 문제, 불의한 마음을 갖고 불의한 행동을 하고 죄의 독소, 죄의 피를 받아 마시므로 계속 불뱀에게 물리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아담의 죄를 받아들여 죄의 성향으로 귀울어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두 번째 사람인 가인을 통해서 나타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류들에게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의 성향으로 기울어 있던 물줄기를 생명의 물줄기로 바꿔주는 일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그게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지금 어떤 의미에서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깊은 의미를 알고 십자가를 대하며 ‘예수님이 이러한 분이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먹는 행위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곧 생명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일들입니다.
생명나무에 머물러서 그 열매를 따먹는 행위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더 주님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로 인하여 실패하였고 영이 끊어진 상태로 그 영이 죽어서 살아있는 혼이 살아있던 생명체가 그냥 혼이 되어버렸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완전히 다시 거듭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나게 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 물과 영으로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예수님이 아니면 할 수 없고, 그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셨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해 주시고 우리가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영, 죽어 있던 영을 거듭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물과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영 얘기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6절 말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우리 영은 절대 하나님과 단절되면 안됩니다. 영이 단절되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피를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생명이 있게 하셨고,
또 성령님이 오시면 아담의 죄에 대해서,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구원의 의에 대하여, 마귀가 아주 간교하게 위장하고 속여서 인간이 선악과 열매를 먹게 하므로 말미암아 죽음의 길로 가게 한 것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영이 살아야 혼이 살아있는 혼이 되고 이 살아있는 혼이 육체의 몸을 지배할 때, 온전히 하나님께 살아있는 제물, 곧 아벨이 드린 것 같은 기뻐 받으시는 희생 제물로 드리는 삶을 드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때가 온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옛 창조 안에 있었던 아담이 죄의 독소, 사망의 피를 공급받고 있던 선을 둘째 아담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끊어버리시고 대신 생명의 선을 연결시켜 생명을 공급해 주신 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러한 뜻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라고(요 15:5)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의 기쁜 소식을 주었을 때, 아담은 그 약속을 믿고 “우리가 살았구나”라고 고백했지만,
우리는 그 약속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기쁜 소식을 듣고 또 우리 영이 거듭남을 통하여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진실로 살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고 그 일을 성령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완전히 살게 된 것이 다시 훼손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성령님이 오셔서 더욱더 바쁘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지식의 나무의 열매, 선악과가 에덴 동산에만 존재하는 줄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지금도 우리 삶에도 늘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얘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생명나무도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을 통해서 역사 하는데, 사탄도 지식의 나무 열매를 우리에게 먹이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 선한 것으로 위장하여 나타나 속여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처음부터 살인한 자인 것은 우리의 영에 생명이 공급되는 것을 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뱀이 먹어서는 안되는 선악과를 먹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영과 접촉하는 우리의 영이 활동을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임하실 수 없도록 생명의 공급을 끊어 놓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죽여버렸습니다.
그 죽임이 가인을 통해서 아벨을 죽인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입니다. 처음부터 속이는 자입니다.
이제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그 사탄의 정체와 그리고 어떻게 우리를 속이는 지를 아니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뱀이 내미는 선악과를 먹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고 돌이켜 생명나무의 열매만을 올바로 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모르고 그냥 지나갔지만, 내가 선악과를 따 먹어 죄의 독소가 퍼져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돌이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불뱀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을 것으로 나타난 것처럼, 지금도 똑같은 방법으로 교회에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첫 아담이 실패하여 인간의 영에 생명의 공급이 단절된 것을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 생명을 공급해주므로 우리가 새로운 영의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선악과로 가는 길 대신에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의 길을 가고, 그분에게 손을 뻗고, 그분의 발을 보고, 입을 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세속적인 것,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들, 사탄, 뱀이 주는 것에 우리가 관심과 호기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그것들 보다는 이 세상 삶에 있어서 외형적으로 안 좋아 보여도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는 일에 전적으로, 일만%, 일백만% 전념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또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죽으면 영은 잠자는 상태, 곧 죽은 상태를 말하며, 육체는 늙어 죽든 하나님께서 취하셔서 죽든 흙속으로 들어가고, 인간의 살아있는 생명체, 우리의 혼은 하나님께서는 취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 혼이 살아있었던 혼이라고 가정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 혼을 살리기 위해서 죽어 있는 그 영에 하나님께서 숨만 불어넣으시면 그 혼이 살아 있는 혼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 곧 그 혼이 살아 있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에 하나님의 생명의 영을 불어넣어 주시면 그들은 살아 있는 혼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고 세상에 속해서 선악과 나무의 열매만 먹어서 죄의 독소가 퍼지므로 죄악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살리고 싶어도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후에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에 누군가 그 단절된 것을 다시 이어줘야 하는데,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 그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말씀을 깨닫고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서 사는구나 정말 예수님 없이는 이건 안 되는 거였구나”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우리에게 이 독생자를 보내셨을까? 라고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였고 막달라 마리아였고 한편 강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숨을 불어넣어 주셨냐면 그들은 지금 첫 사람 아담 안에 있는, 옛 창조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가르쳐줘도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온전히 발아시켜야 할 인간의 생명에 대한 문제 때문에, 그 옛 창조 곧 그 아담 안에 있었던 사람, 영이 존재는 하지만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가까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셔서 그들의 혼을 살아있는 혼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호흡을 그들의 영에 부어 주셔서 그들이 살아있는 혼이 되어 몸을 지배하므로 그 혼은 영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생명이 오순절날 오실 때까지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숨을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22, 개역개정)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때 죽어 있던 자들 중 그 생명의 숨을 받는 자들은 살아있는 혼이 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물과 영으로 거듭난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는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거듭날 수가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야기, 광야의 뱀 이야기, 아담에 대한 이야기 또 죄의 문제, 선악과의 문제 등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지 않으면 그 거듭남의 은혜가 계속 유지가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이 일을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게 됨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룩이 들어 있지 않는 떡을 먹는 무교절을 통해서 죄 없는 삶을 평생 동안 살게 되면 피와 고기가 효력이 유지 되는데, 죄 곧 누룩이 드러나면 그게 또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말씀을 읽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내 영혼에 생명의 빛을 비추어 깨달아야 됩니다. 알아야 되고 빛이 비춰져야 됩니다. 그것이 하늘 이슬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우리의 혼이 아름다운 보석으로 건축이 되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이 살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들의 영이 죽은 상태에 있어서 하나님의 생명의 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그분이 안 오셨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오지 않으셨다면, 아담이 창세기 3장 15절, 최초의 복음을 받았을 지라도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면 그들이 가졌던 믿음이 다 헛된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은 발아가 안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들의 믿음 안에 있는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꺼번에 발아되고 열려진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아벨을 통해서 조금 보여주고, 그 다음에 에녹을 통해서 조금 보여주고, 그 다음에 노아를 통해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보여 왔던 것이 메마른 땅에 단비가 왔을 때 수많은 꽃들이 한꺼번에 만개하는 것처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생명이 한꺼번에 만개한 것입니다. 새 창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옛 창조 안에서 더럽혀지고 죄악의 모든 것을 끝마치는 일을 물과 영으로 주님께서 새 창조 안에서 새롭게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물은 옛 창조의 실패로 더렵혀진 모든 것을 씻어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물과 영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들어 갈 수 없다’ 이 말씀을 우리는 마음 속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침례 요한의 사역의 중심적 내용이 물입니다. 이 물은 옛 사람을 씻어 없앤다는 의미입니다.
옛 창조물에 속한 사람,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모든 사람은 아담이 선악과 열매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모든 죄악의 문제들을 종식시키는 행위, 그걸 물로 씻어내는 행위,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그 옛사람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죄를 종식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온 것입니다. 옛 사람의 죄로 비롯된 모든 것들을 종식시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예수의 사역의 중심적인 개념은 영입니다. 그래서 “내 말은 생명이요, 영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말은 영이다. 그 사역의 중심적인 개념, 그 새 창조 안에서 이제 그 십자가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 모든 사람들을 생명으로 발아시키는 일, 그것이 영의 역할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 두 가지를 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하찮은 티끌로 만들어진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얼마나 노심초사 하시는지 모릅니다.
제가 저번에 얘기한 것처럼, 사탄이 지금도 쉬지 않고 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실 수밖에 없다는 그 얘기가 눈물이나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옛 창조물 곧 아담에 의해서 발생된 그 선악과 문제로 인하여 야기된 모든 문제들 그리고 사람들이 벌여 놓은 악한 모든 행위들을 종식시키고자 거듭나는 것을 말하시면서 물을 얘기했고 새창조물 안에서 신성한 생명으로 우리의 생명을 발아시키기 위해서 영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의 생명이 발아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옛 창조 안에 있었던 우리의 죄의 문제를 없애는 일이 선행되지 않으면 우리의 영의 생명은 발아가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물을 먼저 말씀하신 것이며 그 다음으로 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옛 창조 안에 있던 아담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에 영이 역사하지 않으면 발아가 안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그것을 완전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물과 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가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