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밥 비슬리 목사님의 성경해석과 묵상을 읽으며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쓴 『구약 성경에 나타난 101가지 예수님의 형상』 제목을 혹시 신비주의 아닌가? 잠시 의심을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약과 구약의 단절성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극단주의자의 오해와 달리, 구약에는 이미 예수님의 이야기가 아주 많이 나옵니다. 노아의 방주에도 이미 나왔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 개의 방주가 있다. 구분선 아래에서 노아의 방주는 궁극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을 예표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성경이 이렇게 완벽하게 기록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방향으로 읽어 나아가면 분명히 큰 은혜를 받으실 것입니다.
구원의 방주가 되시는 예수님
창세기 6:5-8, 13-14 "여호와께서 사람의 서막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
성경에는 세 개의 방주가 있다. 먼저 홍수에서 노아와 가족을 구원한 노아의 방주가 있고, 둘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시고 다니던 언약궤(the Ark of the Covenant: 언약의 방주)가 있으며, 셋째는 나일 강의 갈대숲에서 안전하게 미 있었던 모세의 방주가 있다 이러한 방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피난처라는 사실이다. 진실로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God-Man)이신 예수께서는 하늘의 방주로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이에 시편 기자가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 46:1-3).
노아의 방주는 궁극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을 예표한다. 노아의 방주를 살펴보면 첫째, 노아와 그 가족과 동물들을 구원할 방주에 대한 설계가 하나님에 의하여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수천 년 전부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이 하나님에 의하여 계획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라고 말하였다. 둘째, 전 세계적인 홍수 및 방주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이 노아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오직 하나님에 의하여 노아에게 제시되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특별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만 알게 된다. 셋째로, 방주는 잘린 끊어진 잣나무(Gopher wood)로 만들도록 되어 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연결되는데 이사야 53장 2절을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말한다. 다니엘 9장 26절은 ‘끊어진’ 기름부음 받은 자에 대하여 말한다. 넷째,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으로부터의 피난처‘였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다가올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으로부터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신다. 다섯째로,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로 초청되었다(창7:1).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11장 28을 보면 예수님이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섯째로, 방주는 완전하게 안전한 곳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원토록 안전하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방주에 들어간 자들을 다 구원하시고 다시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신실하신 우리 주님께서도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 하였사옵나이다"(요 18:9)라고 기도하였다.
방주의 문이 오직 하나였듯이 구원의 문도 오직 하나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학자들의 연구와 증거물에 의하면 아라랏 산에 방주가 머문 날자는 유대력으로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날자와 같은 날이라고 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고 풍성하며 인간의 생각을 훨씬 초월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성경이 이렇게 완벽하게 기록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다. 또한 분명한 많은 증거로 인하여 성경의 내용은 더욱 확증된다(참조 행 1:3).
밥 비슬리, 『구약 성경에 나타난 101가지 예수님의 형상』, pp.45~46.
첫댓글 방주가 구원자 예수님을 예표한다는 것에 매우 공감을 하고 감사의 마음을 갖습니다.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창6:14의 고페르
노아의 방주가 이 나무로 만들어졌다(창 6:14).
개역한글성경에서는 '잣나무'로 번역했다가 개역개정에서는 원어 발음대로 '고페르'라 하였다.
현대인의 성경, 새번역에서는 '잔나무'로 번역했으며, 공동번역은 '전나무'로 번역했다. NIV에서는 'cypress'로 KJV에서는 'gopher'로 번역되었다.
선박이나 성문, 관 등과 같이 강한 내구성이 요구되는 구조물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는 침엽수류의 수지성(樹脂性)나무, '고페르'란 단어는 성경에서는 이곳밖에 나오지 않는다.
출처: 한국컴퓨터 선교회
개역한글 때는 잣나무라고 했었군요. 잣나무의 방수 능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천이다 공감합니다.
창6:14의 역청
천연산의 고체, 반고체, 액체 또는 기체의 탄화 수소 화합물의 총칭.바벨탑을 쌓을 때 사용한 재료이다(창 11:3). 역청'의 원어 '헤메르'는 '끓다'란 뜻의 '하르마'에서 파생된 말로 바벨론이나 사해 부근의 지하 분수지에서 기름(oil)처럼 끓어 오르는 역청(아스팔토스)을 말한다.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창 14:10)고 소개한다.
노아의 방주를 만들때도 사용했으며(창 6:14),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울 때에도 사용되었다(출 2:3)
이사야는 에돔의 심판에 사용하였다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 붙는 역청이 되며(사 34:9)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역청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스팔트인데, 방주에 이용되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천이다 공감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깊은 말씀에 감동을 받습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아멘!
아멘22
비슬리 목사님의 이번 글도 놀라움을 주네요. 노아의 방주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표하는 것 7가지를 제시하였네요. 끊어진 잣나무와 끊어진 기름부음 받은 자, 다 구원하시고 방주에서 다시 땅으로 돌아오게 하심과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에 대한 증거도 확실히 공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분별과 요약에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