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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창조에 대한 기사는 창세기 1장을 이어받아 2장에서 반복되고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동산을 통치하는 자의 권한을 부여 받고,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준다. 아담의 이러한 행위는 창세기 1장에서의 하나님의 명명 행위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아담이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브루스 월트키 교수는 에덴동산 이야기를 최초 역사의 전형적인 거대 담론을 예표하는 것, 최초 역사의 교훈적 예표라고 설명하였다는 것을 지난 번 살펴보았다. 오늘은 같은 주제로 스티븐 뎀프스터 교수의 설명을 살펴보고자 한다. 짧은 글 속에 알찬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어 유용하다. 한국어 번역서는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읽는 구약신학』이지만 원서는 Dominion and dynasty: A theology of the Hebrew Bible(히브리 성경신학: 왕조와 통치)이다.
에덴동산
창세기 1장 1절~2장 3절이 창세기와 '타나크'의 서두라면 두 번째 장 역시 왕조와 통치라는 이중적 측면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지리적 영역은 왕국의 왕좌가 있는 공식 알현실인 에덴동산으로 한정된다. 인간 부부가 주로 거주하게 될 장소는 하나님이 심으신 동산이다. 이 '심다'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고 그 주변을 조성하기 위해 만드신 것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의미심장한 신학적 용어다. 동산은 생명과 과실수와 생명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에덴에서 흘러나와 그 근원이 네 지류로 갈라져 세상 모든 곳에 물을 제공하는 강으로 가득했다(창 2:8~17). 이야기 이후에 등장하는 그룹들의 존재(3:24)와 주 하나님이 거니시는 장소로서의 에덴동산(8절)의 모든 묘사는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고 에덴동산으로부터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우주의 산으로 이해하게끔 만든다.1) 어떤 학자들은 에덴동산과 후일의 성막과 시온산의 성전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한다(Wenham 1986). 창세기 2장의 의도는 에덴동산과 주변 강의 중심성을 보여 주는 것이고, 남자와 여자의 창조는 그런 묘사를 지지해 준다.
본문이 사실주의적인 이야기로 써졌다면 거기에는 또한 지배적인 상징주의가 포함되어 있다.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임재를 강조하는 생명의 강은 이후 성경 다른 곳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겔 47:1~12; 욜 3:18[마소라 4:18]; 슥 14:8; 시 1:3, 36:8[마소라 36:9]).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 ('하지 말라')은 어떤 면에서 훗날 시내산에서 주어지고 성소에서 보관될 십계명의 요약으로 보일 수 있다. 여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는 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아마도 도덕적, 인지론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명령의 거역을 상징하는 듯하다.2)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족보에 대한 측면은 인간의 창조에 초점을 맞추며 지리적 영역과 뚜렷이 구분될 수 없다. 이것은 본문이 "이것이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창 2:4)라는 구조적 공식에 의해 시작됨에 따라 처음부터 분명해진다. 이 공식이 본문에서 사용될 때마다, '하늘과 땅'이라는 표현이 있는 곳에 인간의 이름이 삽입되고, 그 뒤에 족보나 공식 속에 나오는 인물 혹은 그 인물의 친척의 중요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따른다. 그러나 독특하게 여기서 '하늘과 땅'은 사람이 아니기에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늘과 땅의 내력이란 표현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후에 이어지는 인간 창조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서 인류의 초기 역사가 하늘과 땅의 산물로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차일즈(Childs 1979: 150)가 적절히 표현했듯이 “인류는 '톨레도트'의 전달 수단이다. 따라서 창조에 대한 묘사가 부분적으로 겹침에도 불구하고 2장은 인류의 역사를 하늘과 땅 창조의 의도된 후손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1장과 기본적으로 다른 역할을 한다."
인류와 그 탄생에 대한 실제적 묘사에는 여러 개의 핵심 용어가 사용된다. '창조하다', '형상', '모양',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 '다스리다', '정복하다'와 같은 단어들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짓다', '땅' ('아다마'), '불어넣다', '지키다', '남자와 여자' (man and woman) 같은 다른 단어들이 사용된다. 물론, '이름', '아담', '보다', '좋다' 같은 비슷한 용어들은 양쪽 모두에서 사용된다. 가장 분명한 차이는 '하나님'에서 볼 수 있는데, 창세기 2~3장에서는 1장에서처럼 이 단어가 홀로 쓰이지 않는다.3) 하나님('엘로힘')이 서두에서 계획적으로 사용되었듯이, 다른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야훼 엘로힘')이 사용된다. 이 모든 단어들을 창세기 1장과 나란히 놓음으로써 1장의 용어들에 대한 자세한 해석뿐 아니라 인류와 그 역할, 인류와 환경,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도 있게 묘사한다. 개인적인 '여호와'라는 이름을 매순간 하나님에게 덧붙이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훗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이 또한 아담의 하나님임을 가리킨다(Cassuto 1961). 히브리 성경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은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4)
본문은 땅과 그 땅을 적시는 강에 대한 묘사 후에 하나님이 땅의 흙('아다마’)으로부터 남자('아담')를 지으시는 것으로 시작하여 남자(‘이쉬')에게서 여자(‘이샤')를 만드시는 것으로 끝맺는다. 이 이중 창조의 관계적 측면은 언어적으로 나타난다. 아담은 '아다마'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의 생기로 생령이 된다. 아담은 땅과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고 하나님과의 이런 친밀함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암시한다. 그 결과로 다른 피조물에 대한 통치 임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뒤따른다. 아담은 자기가 거주하는 동산, '아다마'를 돌보아야 했는데, 이는 아마도 농부로서 동산을 경작함으로써 개발시키는 것을 뜻했을 것이다. 또한 동산과 훗날의 성소와 성전과의 관련성(위에서 살펴보았듯이)이 갖는 상징으로 볼 때,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맡겨진 직무와 관련해 이 표현이 종종 사용되었다(민 3:7~8)는 사실은 흥미롭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임무가 등장한다. 인간은 동산 안의 모든 과실을 즐길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예외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형벌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언어는 이후 시내산 언약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대한 형벌을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된다.5)
그러나 인간에게는 결여된 것이 있다. 2장 후반부에서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인 것이 좋지 않다고 보신다. 이 표현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표현된 7번의 완벽한 상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아담의 파트너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동물들이 창조되고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 주는 행위는 창세기 1장에서의 하나님의 명명 행위를 반영하며, 따라서 인간의 통치를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잠이 드는데, 이것은 실질상 하나님의 숨결이 인간을 생령으로 만들기 전인 2장 앞부분의 상황으로 아담을 돌려놓는다. 아담의 몸의 일부에서 여자가 만들어지고, 아담은 다시 깨어나 이번에는 '아담에게 상응하는' 인간 배우자를 갖게 된다(창 2:20).
여자의 창조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만들다'라는 단어는 또한 미래의 생명을 낳는 자로서의 여자를 암시한다. 남자는 동물들의 경우와 달리, 여자 안의 '자기 자신’을 즉시 발견한다. 아담이 내지른 탄성은 인류 창조를 강조했던 1장의 절정 시를 그대로 되풀이한다. 아담은 자신의 파트너를 '여자'라 이름 짓는다. 아담에게서 지어짐으로써 그 생명이 남자에게서 비롯된 여자는 아담의 집을 지어줌으로써, 즉, 아담의 자녀들을 낳아줌으로써 아담의 생명을 되돌려 줄 것이다(창 16:2, 30:3). 이번의 아담의 명명 행위는 통치를 강조하기보다 존재적 평등을 보여 주고, 이것은 인간 고독의 끝을 의미한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과 서로와 땅에 대해 관계를 맺고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관계적 피조물이다.
요약하면 본문은 인간 탄생의 결과를 낳은 하늘과 땅의 내력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류와 하나님, 최초 인간 공동체 사이에, 또 인간과 자연 사이에 완벽한 조화가 있던 이상적인 환경을 묘사한다. 인류의 임무는 에덴동산을 섬기고 지키는 일, 즉 통치하는 것이다. 이 역할은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에덴동산을 '경영'하는 것에 의해 수행될 수 있다.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기억해야 했다. 따라서 창세기 1장과 2장 사이에는 중요한 상호작용이 있다. 창세기 1장의 주된 사상이 계속 발전된다. 창세기 1장의 인간 중심의 절정은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특히 집중하며 지속된다. 무엇보다도 부정적 의무가 이 최초의 인류 한 쌍에게 주어지며 부정적 의무를 어길 경우 죽음에 이를 수 있다.
1) 겔 28:12~17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묘사를 참고하라.
2) 또 다른 가능성은 이 나무가 '선과 악의 지식'이라는 제유법으로 상징되는 모든 지식에 대한 갈망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선과 악은 지식의 양극과 그 사이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성적인 해석은 주석보다는 자기 해석(eisegesis)의 문제다. 성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는 분명히 좋은 것이었다. 타락 후에 인간의 성이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간 삶의 성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연합, 황홀, 투명성(창 2:25)을 대표하던 것이 이제는 분열, 수치, 감춤으로 특징지어진다. 성적 해석을 위해서는 Soggin 1975: 102 n. 35와 거기에 거론된 책들을 참고하라.
3) 뱀이나 여자의 직접 담화에서 뚜렷하게 사용될 때는 제외다(3:1, 3, 5).
4) '야훼 엘로힘'이라는 표현은 히브리 성경에 35번 등장하는데, 창 2-3장에 19번 나오고, 모세오경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딱 한 번 더 등장한다(출 9:30).
5) 3인칭 단수 수동태 동사로 이뤄진 이 구는 히브리 성경에서 24번 발견된다. 그중 21번이 모세오경에 나오고 나머지는 창 26:11; 삿 21:5; 겔 18:13에 나온다.
[용어 설명]
* 타나크: 유대교 경전으로 기독교의 구약성경을 일컫는다. 성경을 구성하는 토라(율법서), 네비임(예언서), 케투빔(성문서)의 앞글자를 따서 약칭 ‘타나크’가 되었다. 중립적 용어로 ‘히브리 성경’이라고도 한다.
* 톨레도트: 내력, 계보, 족보, 시작을 뜻하는 히브리어. 70인역에서 히브리 원문 창세기(베레쉬트, 태초에)를 톨레도트를 뜻하는 게네시스로 바꾸었다. 구속사적 의미의 족보를 말한다. 즉 하나님이 뜻을 이루어 가기 위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한 족보를 뜻한다.
[본문 속의 참고문헌 표기]
Cassuto, U. (1961), A Commentary on the Book of Genesis, Jerusalem: Magnes.
Childs B. S. (1979),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as Scripture, Philadelphia, PA: Fortress.
Wenham, G. J. (1986), 'Sanctuary Symbolism in the Garden of Eden Story', Proceedings of the Worlk Congress of Jewish Studies 9: 19-25.
스티븐 뎀프스터 지음, 박성창 옮김,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읽는 구약신학』(부흥과개혁사, 2012), pp. 79~83.
첫댓글 책과 오늘 다룬 내용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타나크나 톨레도트 용어 설명은 초신자 등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네, 저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스티븐 뎀프스터 소개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서 운동 생리학(B. A.)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성경학 및 신학(M. A.)과 구약신학(M. A.)을, 토론토 대학교에서 근동학 고전 히브리어(M. A.)와 고전 히브리어와 히브리 문학(Ph. D.)을 공부했다. 크랜달 대학교(구 애틀랜틱 침례회 대학교)에서 37년간 교수로 봉직하고 지금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새 성경신학 사전』, 『성경신학: 회고와 전망』,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읽는 구약 신학』(부흥과개혁사) 등을 저술했다.
출처: 교보문고
원서 //Dominion and dynasty: A theology of the Hebrew Bible(히브리 성경의 신학: 통치와 왕조)//를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읽는 구약신학』으로 번역한 것은 제목에서부터 센 의역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냥 원서 제목울 그대로 번역했으면 좋았겠습니다.
네, 원 제목이 좋은 것 같습니다.
@에이프릴 공감합니다.
"여자의 창조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만들다'라는 단어는 또한 미래의 생명을 낳는 자로서의 여자를 암시한다."
--> 참신하지만 온당한 해석 같습니다.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기억해야 했다. 따라서 창세기 1장과 2장 사이에는 중요한 상호작용이 있다. 창세기 1장의 주된 사상이 계속 발전된다. 창세기 1장의 인간 중심의 절정은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특히 집중하며 지속된다. 무엇보다도 부정적 의무가 이 최초의 인류 한 쌍에게 주어지며 부정적 의무를 어길 경우 죽음에 이를 수 있다."
--> 교리나 조직신학으로 보면 행위언약 같습니다.
공감합니다.
시내산 언약
모세는 40년 동안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가 하나님을 만났던 바로 그곳으로 백성들과 함께 도착합니다. 애굽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난 셋째 달의 첫 날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개인적으로 맺으셨던 언약을 이곳에서 그들의 후손인 백성 전체와 다시 맺으십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다.” 바로 시내산 언약입니다.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이제 그들과 함께 거하시며, 그들을 법으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국민 만들기’에 이어 ‘법 만들기’입니다. 하나님은 이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왕입니다. 왕으로서 그들을 관리하고 돌보시기 위해 친히 입법하신 내용을 발표하십니다. 먼저 십계명을 주시고, 구체적인 법도 하나씩 더해 주십니다.
출처: 형제감리교회
시내산 언약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 주셔서 저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간결명료한 좋은 설명입니다.
본문과 댓글을 통하여 공부와 성경 이해가 더 잘 되게 되어 감사합니다.
월트키와 뎀프스터 두 분의 글은 신학이지만 복음적이어서 평신도들도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