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 洋 對 勢 思 杳 玄 (동양대세사묘현) 동양의 형세를 생각하니 아득하고 캄캄해
有 志 男 兒 豈 安 眠 (유지남아기안면) 뜻있는 남아라면 어찌 맘편히 잠을 이루리
和 國 未 成 猶 慷 慨 (화국미성유강개) 평화 세상을 이루지 못해 마음이 처량한데
政 略 不 改 眞 可 憐 (정략불개진가련) 침략전쟁 야욕 고치지 않으니 진정 가엾네
(감 상)
지은 이는 안중근(安重根, 1879~ 1910), 아명(兒名)은 응칠(應七/조부) 또는 자임(子任/부친)이며,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황해도 해주에서 3남 1녀 중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의 영향을 받아서 1897년 19세의
나이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토마스란 영세명을 받았다.
후에 나라를 위한 교육 계몽운동과 의병 활동에 헌신하였고, 마침내 1909년 10월 26일, 중국 방문을 위해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등박문을 총탄으로 저격하였다.
후에 체포되어 중국 여순(旅順) 감옥에서 옥고를 치루다 일제의 일방적이며 불공정한 재판을 받고, 1910년
3월 26일에 순국하였다. 지성과 행동을 겸비했던 안중근 의사의 한시를 보면 당시 동양의 정세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우리 조선에 미칠 영향에 대한 깊은 고민이 구절마다 배어 나온다.
공의 의거에 대해서는 국내외 많은 분들이 찬탄과 애도의 시를 지어 공을 기렸는데, 그 중의 2편을 소개한다.
먼저 중국의 장개석 (蔣介石, 1887~1975) 선생의 애도 시이다.
旺 星 昨 夜 落 江 頭 (왕성작야낙강두) 어제 밤에 찬란한 별이 강물로 떨어지니
天 慟 地 悲 江 自 流 (천통지비강자류) 땅과 하늘 슬퍼하나 강물은 무심히 흘러
身 在 三 韓 名 萬 國 (신재삼한명만국) 몸은 조선에서 태어 나 이름은 온 천하에
生 無 百 歲 死 千 秋 (생무백세사천추) 살아선 짧은 인생 죽어서 천추에 빛나네
다음은 일본의 고토쿠 슈스이 (幸德秋水, 1871~1911) 라는 분의 四言詩 이다.
이 분은 안중근 의사보다 8년을 먼저 태어난 분으로, 일본의 정치사상가 중의 한 분이다.
舍 生 取 義 (사생취의)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며
殺 身 成 仁 (살신성인) 몸을 죽여서 인을 이뤘네
安 君 一 擧 (안군일거) 안중군 군의 이번 거사로
天 地 皆 振 (천지개진) 하늘과 땅 모두가 진동해
이번에는 우리나라 김택영(金澤榮, 1850~1927) 선생의 한시이다. 조선 왕조가 기울어 가든 시절에 태어 나,
시문(詩文)으로 그 이름을 널리 떨친 선생의 이 추모시는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안중근 의사의 장거
(壯擧)에 대해 그 의미와 가치를 대변하는 듯, 시상(詩想)이 뜨겁고도 통절(痛切)하다.
題 : 聞義兵將安重根報國讐事 (문의병장안중근보국수사)
- 의병장 안중군의 나라 원수 갚은 일을 듣고
平 安 壯 士 目 雙 張 (평안장사목쌍장) 평안도 장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서
快 殺 邦 讐 似 殺 羊 (쾌살방수사살양) 양을 잡듯 통쾌히 나라 원수 죽이니
未 死 得 聞 消 息 好 (미사득문소식호) 아직 죽지않아 이 좋은 소식을 듣고
狂 歌 亂 舞 菊 花 傍 (광가난무국화방) 국화 옆에서 미친 듯 노래하며 춤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