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만 과거를 현현(顯現)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재의 상황이 과거의 어떤 정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 우리도 그때의 정경(情景)을 눈앞에서 재현할 수 있다. 힘들고 괴로울 때면 그 정도가 더 강렬하다.
중1 때 담임은 음악 선생님이었다. 다른 수업에 지장이 가지 않게 본관 건물 꼭대기에 별도로 달아낸 곳에서 근무했다. 공부에 찌들고 변성기에 접어든 여드름투성이들을 1시간 동안 맘껏 악쓰게 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배려했다. 인품까지 중후하여 학생들에게 인기가 꽤 높았다.
따뜻한 날, 해운대 동백섬으로 봄 소풍을 갔었다. 자유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준비해 온 낚싯대를 드리웠고, 나를 포함한 몇몇 학생들은 갯가 바위 위를 괜히 서성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뜻밖의 일이 일어난 것은 그런 무료함도 거의 파장이 될 무렵이었다. 장발에 긴 팔 와이셔츠 차림의 청년이 불쑥 나타나더니, 줄이 묶인 수질 검사용 유리병을 바다에 담근 채로 가곡 ‘보리밭’을 멋들어지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푸른 바다에 청보리가 넘실대듯이……
우리는 간드러진 목청의 청년을 쳐다보다가 선생님을 힐끔거리곤 했다. 그것은 그 감격스러운 장면을 선생님도 공감하는지를 살피는 행위였다. 파도 끝머리의 갯바위에 턱 버티고 서서 석양의 검푸른 대양을 향해 거침없이 외쳐대는 청년의 당찬 모습. 노래를 심사하듯이 근엄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얼굴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삶의 경이로움 같은 것이 한 폭의 수채화로 내 뇌리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 순간이었다.
나와 인근에 사는 막냇동생은 송도 암남공원 주차장에 있는 낚시터를 자주 찾는다. 낚시라 해봐야 둘 다 바늘도 제대로 매지 못해 채비가 다 된 바늘 일체를 사서 그냥 장대에 매어 사용하는 수준이다. 한때는 이곳에서 고등어와 매가리 등으로 손맛을 진하게 봤지만 근래에는 허탕을 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장소를 달리하여 가덕도 천성으로 부부동반 낚시를 가기로 하였다. 가덕도는 지금은 다리가 연결되어 있어 차로 가면 되지만, 당시에는 행정적으로는 부산시 강서구에 소속된 섬이어서, 나고들 때에는 진해시 소속의 용원 선착장을 이용하는 아이러니한 곳이었다.
새벽같이 도착하여 낚시용품을 구입하고, 느긋하게 선착장에 배표를 끊으러 나갔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연대봉 등산객 등으로 줄이 한없이 늘어져 있는 것이다. 신항만 공사로 운항 시간은 늘어나고 배 척수는 고정되어 있어 빚어진 현상이라고 한다. 섬에 거주하는 사람은 줄과 상관없이 우선 승선을 시키는 관례로 등산객들과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배를 타게 되었다. 배는 다대포 쪽으로 한참을 우회한 뒤 본래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평소 25분이면 족하던 거리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가덕도 천성은 해안선을 따라 1자 형태로 쭉 늘어선 전형적인 갯마을이다. 멀리 연대봉에서 흘러내린 부드러운 곡선과 낮은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자그만 단층 주택이 주를 이룬 동네다. 한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유선 접안시설을 중심으로, 동쪽 끝의 등대와 서쪽 끝의 아담한 초등학교 분교가 어우러져 전체적인 마을 분위기는 아늑함 그 자체다.
이제 우리 차례다. 오래전에 싼 맛으로 구입한 탓에 한 번씩 줄이 꼬여 애를 먹는 릴과 장대를 꺼냈다. 꿈틀거리는 갯지렁이를 미끼로 단 후, 낚싯대를 머리 뒤로 넘기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저 수평선을 향해 평소에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겠다는 심정으로 낚싯대를 앞으로 힘차게 채면, 짜르르 거침없이 풀려나가는 릴 줄의 소리에 온갖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그것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고기가 안 잡히면 대수요, 그냥 풀어진 낚싯줄을 적당히 당겨놓고 먼바다를 바라본다. 온갖 풍상에 찌들었던 육신과 어쭙잖은 일에 집착하여 추한 얼룩이 진 정신은 간데없고, 한 곳에 오롯이 아직도 때 묻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내 자아만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선 채로 무아의 지경에 빠져든다.
오전 11시부터 시작한 오늘의 조황은 손바닥만 한 도다리 한 수, 게르치 네 마리, 망둑어 두 마리 등 도합 일곱 마리다. 도다리와 게르치 한 마리를 빼고는 모두 여자들의 민장대로 올린 조과이니 남자들 체면이 말이 아니다.
들어올 때 못지않게 배를 타고 나가는 일도 만만치 않다. 오후 5시부터 기다리던 배가 5시 40분쯤에야 도착했다. 서둘러 배에 오르니 정원 50명의 선실이 꽉 차 보인다. 손맛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3등 여객선은 힘찬 기관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깎아지른 절벽과 하얀 갈매기 떼들이 어우러진 가덕도의 해안은 점점 멀어져 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답답한 선실에서 나와 배 후미의 난간에 기대어 섰다. 어느덧 석양의 바다가 검푸르게 펼쳐지고, 뱃전에 부서진 하얀 물살은 긴 꼬리를 물고 숨 가쁘게 따라온다. 갑자기 하얀 포말에 홀린 듯, 주위의 정경이 일순간 멈춘 것 같은 착각 속으로 빠져들고, 찰나 간에, 중1 때 해운대 동백섬에서 스쳐 지나간 한 폭의 수채화가 오버랩 되며 떠오른다.
‘아! 그때 내가 경이롭게 느낀 정경은, 미래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굴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는 용기 같은 것도 포함하고 있었으니….’
요즘 삶이 부쩍 괴롭고 힘들어 멀리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빠져들곤 했었다. 오늘은 나도 뱃전에 서서 그때의 신비의 청년이 되어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고픈,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이 용솟음쳐 오른다.
첫댓글
한 때는 저도 낚시를 많이 다녔죠. 물론 가족 단위로......
저는 찌를 쓰지 않았답니다. 맨 손으로 낚싯대 에서 느껴지는 맛이란 요즘 아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죽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