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가 자리에 앉자 마자 해 준 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듣고 난 웃음이 빵터졌다. 남편도, 친구도, 심지어 나도 생각지 못한 것을 스무살 청년이 말해주다니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한강이 2016년 멘부커상을 받았을때 그녀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유명한 상을 받았다고해서 갑자기 관심을 두는 편이 아니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굳이 찾아보지 않았고 <채식주의자> 책도 읽지 않았다. 좋은 책을 쓴 작가구나 정도로 생각하며 일상을 살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기사를 보자마자 남편이 알려주었을때도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당연히 축하할 일이고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의 수상에 굳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드디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강이 정말 대단한 작가구나 정도의 생각이었다.
페이스북을 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남을 깨달았다. 축하한다는 글과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는 글이 엄청 쏟아졌고 그동안 그녀가 집필한 책 제목들이 많이 보였다. 그 덕분에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책 내용에 깊이 공감하지만 나는 한강의 책을 읽어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과 국가가 저지른 폭력을 생생히 묘사한 책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이다. 나는 어린아이가 희생되는 영화를 일절 보지 않는다. 조폭을 다루는 영화도 보지 않는다. <도가니> 같이 차별과 억압을 다루는 내용도 볼 수가 없다.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영화도 <택시운전사>가 유일하다. 전두환의 만행을 전혀 모르는 엄마에게 실상을 조금이나마 알려주고 싶어서 함께 볼 수 밖에 없었다.
책 대신 나는 한강의 인터뷰 영상을 선택했다. 마침 이번 학기 수업의 한 학생이 온라인 토론글에 한강의 영어 인터뷰 영상을 공유해서 시청했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차분히고 조용히 한마디한마디를 꾹꾹 눌러 담는 그녀의 어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가장 최근 동영상인 포니정 시상식에서의 소감 역시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
폭력에 대한 글을 쓸때 많이 힘들고 아팠다는 그녀의 인터뷰 기사가 비로소 이해가 됐다. 나는 타인이 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고 아파서 아예 읽지 않으려고 하는데 글로 써내려가는 작가는 그것을 온몸으로 참아내고 써야 할테니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텐데 나는 한강의 소설을 좋아한다. 읽지도 않았는데 좋아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지만 나는 안다. <인간실격> 드라마를 안보려고 안간힘을 쓰다 우연히 몇 분 보게 되어 결국 전체를 다 본 후 그 드라마를 너무 좋아했듯이 한강 소설도 그럴테니 말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조금 더 용기가 생겨 한강의 소설을 읽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