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8
韓경제, 팬데믹으로 가계부채 ‘오버행’… ‘저소비→내수위축→저성장’ 위험
‘이력현상’으로 포스트 팬데믹 글로벌 경제 험난 관측…美 연준 금리인상·자산축소도 불안 요인
韓 가계부채 폭증하고 소비의 성장 기여도는 추락… 내수 위축 따른 부실한 실물경제가 위험의 근원
나라 안팎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경제 관련 국내외 기관들은 올해를 글로벌 경제가 포스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가는 전환기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포스트 팬데믹, 즉 팬데믹 이후의 글로벌 경제가 팬데믹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에서 차용해 경제용어가 된 ‘이력현상(Hysteresis)’이 지칭하듯, 팬데믹 위기가 사라져도 동시대 사람들이 경험했던 일련의 사건들이 남긴 유산은 포스트 팬데믹 경제의 진로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에 팬데믹 위기는 인플레이션과 가계 빚 증가를 부르고 소비의 성장 기여도를 감소시켜 궁극에는 내수 부족에 따른 저성장을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
◇ 팬데믹 인플레
팬데믹은 산업 간, 국가 간, 한 나라 계층 간 비대칭적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 소비자들이 여행·외식 등 대면(對面)에서 비대면 업종으로 수요를 대체하면서 공급사슬에 과부하가 발생하는 등 인플레이션은 수요뿐 아니라 공급 측면에서도 일어났다.
특히 소비국 미국에서 정부의 재난지원금이 수요에 불을 붙이자 기업은 재고에 대한 가수요를 부추겨 공급사슬에 ‘채찍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반면에 세계의 공장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생산, 수출, 선적에 애로를 발생시키는 중이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공급사슬에 막대한 장애가 발생하고 해상운임까지 폭등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악화일로다. 만약 또 다른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한다면 그만큼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 지난달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전망에서 드러나듯이 경제회복의 열쇠인 백신은 선진국과 신흥개발도상국을 갈라놨다.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많은 나라가 외채 상환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현재 IMF는 90개 회원국에 대해 1700억 달러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향후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이 신흥개도국을 경제 회복과 외채 상환의 이중고로 몰아넣을 것은 뻔하다.
◇ Fed의 위험한 통화정책
최근 동향을 보면 오는 3월 미 Fed의 금리 인상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미 Fed의 통화정책 정상화는 ‘자산 매입 완료→금리 인상 시작→자산 축소(QT)’의 세 단계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과거 사례를 돌이켜 보자면 이 가운데 QT가 증권 및 외환시장에 가장 큰 충격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2017년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에서 QT를 시작했을 때 재닛 옐런 당시 Fed 의장(현 재무장관)은 ‘페인트가 마르는 것을 보는’ 것에 비유했다. 그러나 1년 뒤 증권시장과 외환시장이 요동치자 2019년 3월 금리 인상과 QT를 모두 중단했다.
QT가 언급된 Fed 회의록이 공개된 연초에 나스닥이 급락했다. 나스닥에 상장된 대부분 기술기업은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아 그만큼 금리에 민감하다. 여기서 금리는 인플레이션 연동국채(TIPS)의 수익률, 즉 실질금리로 측정되는데 Fed는 발행된 TIPS의 20%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QT의 가능성이 TIPS 수익률을 크게 올려 기술주가 폭락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 중심국 미 Fed의 통화정책 방향은 글로벌 경제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많은 전문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대응해 액셀을 밟을 때 높은 인플레이션 하에서 경기 회복이 더딘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더 위험한 경기침체와 같은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우려는 올해 들어 장단기 미 국채 수익률 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경기침체에는 예외 없이 금리 역전이 선행했다.
◇ 재정, 어떻게 써야 하나
인플레이션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지난달 IMF가 추정한 지역별 인플레이션은 미국이 가장 높은데, 특히 에너지·식품과 같이 일시적 충격에 따른 물가변동분을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은 미국이 유럽보다 2% 가까이 더 높다. 최근 유럽연합(EU) 싱크탱크인 브뤼겔의 장 피사니 페리는 이 차이에 대해 “미국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갖은 명목으로 가계와 기업에 돈을 뿌렸지만 유럽은 고용 안정과 함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타기팅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 결과 미국은 재정비용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1%를 넘었지만 고용은 팬데믹 이전보다 200만 명 이상 부족하다. 유럽은 재정비용이 GDP 대비 3∼4%에 불과했음에도 고용은 거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10년 전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정부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교훈을 준 것이다.
팬데믹 위기에서 비롯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주조권을 독점한 국가가 (마치 독점기업이 그렇듯이) 돈을 너무 적게 생산한다는 비판을 제기한 현대화폐이론(MMT)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지난달 미 국가채무는 30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이 가운데 7조 달러가 팬데믹 기간에 지출됐다. 미 Fed의 금리 인상과 자산 축소가 어떤 함의를 가질지 두고 볼 일이다.
◇ 위험으로 치닫는 한국
팬데믹 위기의 유산이 인플레이션만은 아니다. 초저금리 하에서 조성된 자산 인플레이션은 막대한 빚을 남겼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한국의 ‘가계신용’은 GDP 대비 105%를 넘었다(그림1). 현재 가계 빚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정도가 우리보다 높은 정도다.
가계 빚은 임계치(GDP 대비 35∼70%)를 넘어설 때 소비의 성장 기여도가 줄어들고 ‘부채 오버행’, 즉 내수 위축에 의한 저성장 위험이 따른다. 한국은 GDP 대비 가계 빚이 64%에 달했던 2002년 GDP 대비 소비가 정점(56.1%)에 이른 뒤 줄곧 하락추세를 보였다. 2020년엔 46.4%였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대조적인 이 추세는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에 위험요인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한다(그림2).
더욱이 가계 빚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에 은행 등 금융회사가 소구권(부채 상환 청구권)을 갖는 우리나라에서 그 위험의 소재는 실물경제에 있다. 자산가격이 조정받을 때 한국 경제는 부채 디플레이션에 따른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지게 되며, 2019년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로 시작된 급속한 인구구조 변화와 맞물려 자칫 부채 오버행이 장기화할 수 있다.
김경수 / 성균관대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
문화일보
■ 세줄 요약
팬데믹 파급효과 : 포스트 팬데믹 경제에도 팬데믹 시대의 유산이 ‘이력현상’으로 남음. 정부 재난지원금은 강력한 채찍효과를 일으켜 인플레를 부름. 새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면 인플레 압박은 더욱 커질 것.
팬데믹 시대의 재정 지출 : 미 Fed 통화정책은 글로벌 경제침체를 부를 위험요인이 되고 있음. 미국의 인플레는 주조권을 독점한 국가가 돈을 너무 적게 생산한다는 비판을 제기한 현대화폐이론의 허황함을 말해줌.
위험으로 치닫는 한국 : 초저금리 하에서 조성된 자산 인플레는 한국 경제에 막대한 빚을 남김. 가계신용(빚)이 상승해 소비의 성장 기여도를 줄이며 궁극에는 ‘부채 오버행’, 즉 내수 위축에 의한 저성장 위험을 초래.
■ 용어 설명
‘이력현상’이란 현재의 조건만이 아니라 이전부터의 변화 과정에 의해 물리량이 결정되는 현상을 뜻하는 물리학 용어. 여기선 포스트 팬데믹 경제가 팬데믹 당시의 조건에 규정된다는 의미로 쓰임.
‘오버행’은 주식시장에서 언제든지 매물로 쏟아질 수 있는 잠재적인 과잉 물량 주식으로, 주가에 악재로 작용. ‘부채 오버행’도 언제든지 불어날 수 있는 과잉 부채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