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자기 땅에 오매 Date 2011. 12. 25
Text Jh 1,9-13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안 그래도 걱정이 태산인 분들은 그 태산의 높이가 한층 더 높아지게 됐습니다. 29살짜리 김정은이 정권을 잘 이어받아도 걱정이고 돌발변수가 생겨도 걱정입니다. 옛날 고구려가 망하면서 당나라에 점령당했듯이 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전 그게 걱정입니다. 여러분, 저한테 한 마디 해주시지요. ‘걱정하지 말고 지금 해야 할 일이나 잘 하세요.’ ‘아~멘.’
오늘이 바로 이 문제 많고 걱정이 태산처럼 많은 세상을 구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아닙니까? 구해주시려고 오신 예수님께서, 구해주시려고 여러 가지 일을 하셨고,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이렇게 구해주시려고 오신 분을 영접한 사람들도 있고 무시한 사람들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해주려고 오신 예수님을 끝끝내 반대하고 무시하고 모르는 체 외면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구원자를 알고, 받아들이고, 그래서 역사가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성탄절을 맞은 우리들도 알고, 받아들이고,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은 여덟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빛을 영접하는 것입니다.(9절/참 빛) 예수님을 빛이라 하는 것은, 그분이 내 삶의 길을 밝혀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세상은 빛이 필요로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는 복음성가 ‘에바다’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 찬송을 하면서 부디 빛이신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어두워진 세상길을 주님 없이 걸어가다 / 나의 영혼 어두워졌네 / 어느 것이 길인지 어느 것이 진리인지 /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네 / 주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삶 실패와 좌절뿐이네 / 사랑하는 나의 주님 내 영혼 눈을 뜨게 하소서 / 열려라 에바다 열려라 눈을 뜨게 하소서 / 죄악으로 어두워진 나의 영혼을 / 나의 눈을 뜨게 하소서 //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 아무 것도 들을 수 없네 / 세상에서 방황하며 이리저리 헤매이다 / 사랑하는 주님 만났네 / 어두웠던 나의 눈이 열리고 막혔던 귀가 열렸네 / 답답했던 나의 마음 열리고 나의 영혼 살리네 / 열려라 에바다 열려라 눈을 뜨게 하소서 / 죄악으로 어두워진 나의 영혼을 / 나의 눈을 뜨게 하소서 / 나의 눈을 뜨게 하소서 나의 눈을 뜨게 하소서
둘째, 찾아오신 분을 영접하는 것입니다.(9-10절/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찾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는 분이 거꾸로 찾아와 주셨음을 깨닫게 합니다.
어렸을 때 무지개 전설을 들었습니다. 무지개 뿌리가 내려진 곳에 가면 거기에 온갖 금은보화들이 있는데 아직 아무도 찾은 사람이 없다고. 아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진리를 찾았습니다. 영생불사를 찾았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찾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는 그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진리, 그 영생 불로초, 행복의 파랑새가 나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 거꾸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예수님의 도움을 받으려고 예수님 계신 데를 찾아가려면 갈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그 분이 황공하옵게도 친히 찾아와 주셨습니다. 얼마나 고마워요? 그러니, 영접하기를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넙죽 받아들이는 겁니다. 믿으십시오. “주님, 구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 믿겠습니다.”
셋째, 자신과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을 지으신 분을 영접하는 것입니다.(10절/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나와 내 인생 문제에 해답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에덴동산이 뭐죠? ‘사람이 살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곳인데, 아주 좋은 곳’이라고 대답하세요. 에덴동산엔 누가 살죠?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이 삽니다.’라고 답하세요. 하나님은 낙원을 먼저 만들어놓고 거기에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묻습니다. 세상이 왜 이리 혼란스럽게 되었죠?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셔서 그렇습니다.’라고 하세요.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좋은 곳이 되고 사람이 잘 사는 길을, 누가 만들 수 있고, 누가 가르쳐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세상과 인간을 만드신 분 하나님이시죠. 마9,6(막2,10)에 보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실 때에 병만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사하는 권세도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하시면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여러분 인생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계신 분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답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접하세요.
넷째, 세상이 모르는 분을 영접하는 것입니다.(10절/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덩달아 곤욕을 치를 수도 있고, 자칫 세상을 따라 방황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을 각오하고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점잖게 말하면 여론에, 막말로 하면 군중심리에 부화뇌동합니다. 제일 겁내는 것이 왕따입니다. 5천년 된 이집트의 한 고분에서 발견된 문자를 해독해보니 그 때도 왕따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마음에 안 들어도 왕따 되는 것이 싫어서 어울립니다.
그런데,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구원자 예수님은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요셉과 마리아, 사가랴와 엘리사벳, 목자들, 동방박사들, 시므온 제사장, 안나 할머니 정도였습니다. 헤롯왕이나 성경연구가들 중에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도리어 박해하며 왕따 시키기에 급급했습니다.
여러분, 다수가 반드시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강한 힘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지요.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도 많습니다. 동조자가 많거나 적다고 어정쩡하게 있지 마십시오. 확실하게 예수님의 편에 서십시오. 때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서 다시 예수님 편에 서야합니다. 아멘.
다섯째, 원래의 주인을 영접하는 것입니다.(11절/자기 땅에 오매) 거짓 주인을 만나면 인생과 영원을 망치지요. 주인이 아닌 이가 주인 행세를 하면 사기꾼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마음 놓고 받아들여도 좋은 진정한 주인이심을 배웁니다.
내가 어떤 비어 있는 집이 있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자기가 그 땅과 집의 주인이라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합시다. 나는 진짜 주인을 찾아서 그 사람과 협상을 해야 하겠지요. 잘 생겼다고, 돈 많게 보인다고, 나한테 잘해준다고, 힘이 세다고, 그 사람과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도 되는 문서에 등재되어 있는 사람을 알아내어 그 사람과 전세계약을 맺든 달세 계약을 맺든 해야 하겠지요.
여러분, 나중에 낭패를 당하지 않을 진짜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다른 것들은 도리어 물리치시고 오직 예수님만 영접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짜 주인으로 선택하신 여러분, 여러분은 잘 하신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놓지 마시고 꽉 잡으십시오.
여섯째, 믿는 것이 영접하는 것입니다.(11절/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접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믿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영접이란, 구원을 위해 하신 주님의 모든 사역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영접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믿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망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하셨습니다. 오실 때부터 마굿간에 오셨고 처음 누우신 곳이 말구유였습니다. 피난을 가셔야 할 만큼 박해를 받으셨고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을 겪으셨습니다. 온갖 욕을 다 들어보셨으며 뼈아픈 배신까지도 당하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단지 주님이 하신 그 모든 일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믿음이지요.
일곱 번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영접하는 것입니다.(12절/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피와 살을 나눈 자녀가 되는 것, 그것이 영접입니다. 이 좋은 것을 왜 거부합니까? 무조건 영접해야죠?
여덟 번째,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영접하는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13절/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일곱 번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영접이라 하였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개선이나 개량이 아닌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서 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3. 미국의 부흥 사였던 무디(Dwight L.Moody 1837-1899)는 말하기를, “그대 자신을 믿어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친구를 믿어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혜어질 것이다. 그대의 명성을 믿어보라! 어느 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엎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고 영접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