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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강의] 강사 김삼배 - 심청전에 숨겨진 비밀
지나간 밤 편안히 잘 주무셨습니까? 하룻밤 잠 잘 자는 것도 얼마나 큰 은혜이고 축복인지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더 잘 깊이 아실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사람이 살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 중에 하나는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밖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시선을 자기에게 돌리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제가 말씀을 드리면서 제가 전에 여러분들처럼 이렇게 환우분들이 계신 우리 천북에 있는 살렘동산을 담임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마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제가 직접적으로 질병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을 아마 여러분이 느끼실 겁니다.
여기 다녀가신 강사님들이 아마 그 부분들을 많이 다루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이번에 그 부분을 거의 터치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의 시선을 좀 밖으로 돌리도록 해드리려고 하는 그런 저의 의도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좀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심청전에 숨겨진 비밀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그러는데요.
시작하면서 영상 하나를 좀 먼저 보여드릴 것입니다.
이스라엘 남쪽 서해 바다 근처에 위치한 마사다 요새는 헤롯 대왕이 비시 37년 유대 왕으로 등극하면서 제일 먼저 지은 요새입니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난공블락의 지형 조건을 갖춘 마사다유새는 헤로대왕이 만일의 사태에 자신의 피난처로 삼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몇 년 동안이라도 버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물 저장탱크와 음식창고 변기구 등을 갖추고 있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회장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이곳 마사다 요새는 서해바다 수면으로부터 400m에 위치해 있습니다.
동서로 300m, 남북으로 600m에 달합니다.
이 같은 지역 조건을 갖추고 있어 에이디 66년 유대인 1차 반란 당시 유대인 젤로 당원들은 로마 군대에 저항하며 3년 동안이나 버틸 수 있었습니다.
반란 진입을 위해 요새 바깥을 포위하고 있던 로마 군대는 1만 5천 명을 동원해 6개월 동안 서쪽 성벽 아래에서 돌과 흙으로 경사로를 쌓아 요새 진입을 시도합니다.
로마 군대가 약 6개월간에 걸쳐서 쌓은 그런 경사로가 됩니다.
로마 군대가 요새에 진입하기 하루 전날 이곳 회당에 모인 유대인 960명은 이방인의 손에 죽기보단 집단 자결을 선택합니다.
남자들이 처자식을 죽이고 마지막까지 남은 남자 10명이 제비를 뽑아 9명을 죽인 뒤 나머지 1명이 자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열 명을 제비를 뽑게 되는데, 이 장소가 바로 열 명을 제비 뽑기를 했던 방이 되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토기 조각에 열 개의 이름이 적힌 곳이 발굴이 됐습니다.
유대인들의 최후 항전지였던 마사다 유세는 2천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 학생들과 군인들에게 선조들의 용감함을 일깨워주는 교육의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곳 마사다 요새는 2천년이 지난 최근에야 발견됐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통곡의 벽에 이어 제2의 성지로 여기고 있습니다.
보여드린 것은 들으신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두 번째 성지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의 역사를 역사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역사를 미화하려고 하는 경향이 매우 짙습니다.
특별히 성공한 개인이나 국가일수록 지나간 과거의 아픈 역사를 미화해서 그것을 좋은 쪽으로 이렇게 사용하려고 하는 그런 경향이 아주 크지요.
이스라엘 후손들에게는 독립심을 키우는 교육 장소로 사용되는 곳이지만은 사실은 이것을 바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바라보는 시각과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는 두 시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예수님이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이게 마사다 요새지요. 에디 70년에 로마가 이스라엘을 정복하면서 예루살렘 성에 함락이 됩니다.
그리고 남은 곳이
지금 그 통곡의 벽이라고 하는 예루살렘 성벽 중에 서쪽 벽만 남아 있습니다.
근데 그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에 거기서 나온 아주 유대인 열심당원들이지 960명이 이 마사다 요새로 아주 천연적인 요새입니다.
이 바케스를 이렇게 반토막 잘라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런 천연적인 요새인데요.
높이가 450m고 깎아지는 절벽이 있기 때문에 아주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난공불락의 요셉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3년을 넘게 실이 버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정확히 말하면 AD 73년 5월 2일날 여기가 함락이 됩니다.
그런데 이곳을 어떻게 함락하냐면 난궁불락이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이 그 강한 로마 군인들이 3년 동안 포위를 했지만 공격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쪽 한쪽에다가 토성으로 흙으로 이렇게 토성을 쌓습니다.
그래서 그냥 바로 올라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결국은 들어갔는데요.
이 부분에 대하여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가 쓴 이 유대 전쟁사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유대 전쟁사 이번에 보면 이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합니다.
여기 보면 아주 끔찍스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보여드렸던 이 부분 가운데에 보면 여기 아주 유대인들 가운데에 아주 그 가문이 아주 참 좋은 그런 가문에서 여기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이 역사가 어떻게 밝혀지냐 하면 960명 중에 2명의 여인이 아이들을 5명을 데리고 어린아이들이겠죠.
숨습니다. 모두가 다 죽는 그때 두 여인이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숨어서 그 모든 걸 다 나중에 다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밝혀진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 요세푸스가 쓴 역사 전쟁사에 보면 정말 그 상황이 아주 굉장히 참혹하고 끔찍스럽습니다.
이게 이제 예루살렘 서쪽 벽 통곡의 벽인데요. 이 사건은 사실은 유대인들이 바라볼 때는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독립심이 있고 이렇게 믿음이 강했다 이렇게 미화하지만 실상 이 사건은 이미 예언돼 있던
어떤 면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예언의 성취의 사건입니다.
여기 구약 성경 다섯 번째 책인 신명기서에 보면 여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곧 온순하고 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에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내 대적이 내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라.
이 요세푸스는 뭐라고 기록하냐면 이 당시의 사건에 대해서 그 안에서 예루살렘 성 안에서 일어났던 끔찍스러운 역사를 아주 적나라하게 기록을 했어요.
예루살렘 성은 정말 잘 지어진 난공불락의 요셉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안에 풍부한 식량이 저장돼 있었고, 몇 년 동안 수년을 넉넉히 외부의 적들을 대적해서 버틸 수 있는 아주 좋은
그 요새가 예루살렘 성입니다. 아까 그 마사다야 요새 못지않은 계실이 아주 좋은 성이 예루살렘입니다.
근데 로마가 언제 거기를 포위했냐면 67년에 1차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항복하려고 그럴 때 퇴각해서 갑니다.
그다음에 3년 뒤에 70년에 다시 포위를 했는데 그 당시가 유대인 명절에 포위를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 명절은 우리는 고향으로 가지만 유대인들은 각자 다 예루살렘 성으로 와서 명절을 지킵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예루살렘 섬 같으면 수년 동안 넉넉히 버틸 수 있는 곳인데, 명절에 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양식이 쉽게 바닥이 날 수밖에 없는 형편에 포위를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먹을 게 없었어요. 그런데 그리스도인 시각으로 볼 때는 이게 어떤 내용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여기 요세푸스가 쓴 이 내용이 무슨 내용이냐 하면요.
아가야 이리 와서 내 음식이 되었다오. 그래서 강도들에게는 복수의 분노를 보여주고
세상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의 재난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어다오.
이게 무슨 내용이냐 하면은요. 적이 이제 포위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먹을 양식이 떨어질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어떻게 했냐면 옛날 우리 어려울 때 풀뿌리 나무 껍질 다 벗겨 먹은 것처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먹었습니다.
가죽으로 된 허리띠에서부터 신발, 가죽으로 된 신발, 또 그 방패 싸울 때 사는 가죽으로 된 방패 이런 것들을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었어요.
그리고 더 이상 먹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끔찍스러운 일이 벌어졌냐 하면 어린 아이들 자기 자녀를 삶아 먹는 끔찍스러운 일이 벌어졌어요.
그런데 그 안에서 벌어진 일의 실상은 외부 로마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에요.
그 안에서 좀 힘 있는 유대인 민족 중에 힘 있는 사람들이 강도질을 했습니다.
뭐 음식 냄새만 나면 들어가서 무조건 그걸 뺏어다가 먹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그 안에서 벌어지냐 하면 유대 가문 중에 아주 아주 유명하고 아주 좋은 그 가문의 한 여인이 그 강도들이 너무 끔찍스럽게 그렇게 막 하니까 너무 괴로워서 나중에는 자기 어린 아이를 삶아서 먹었어요.
그러니까 냄새가 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강도들이 들어왔어요.
그 음식을 뺏으려고 들어왔는데 반 먹고 반 남은 자기 아이를 내밀었어요.
그러니까 깜짝 놀래가지고 기겁을 해가지고 도망을 간 겁니다.
그 내용을 요세푸스가 기록한 거예요. 근데 이 사건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미리 예언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하고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험같이 내가 내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그러면서 제자들이 그 성전, 예루살렘 성전이 참 아름다운
아마 그게 남아 있었다면 세계유산 가운데 가장 1호 보물이 됐을 겁니다.
그 성전을 가리키면서 그 자부심 넘치는 마음으로 성전을 자랑할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가라하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 오리라.
예수님의 그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신명기서에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을 때 일어날 그 예언이 그대로 성취가 역사에서 된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민족은 상당히 뛰어난 민족입니다. 유대인 교육법 중에 하부르타라고 하는 교육법이 있어요.
이 유대인들이 얼마나 뛰어나냐면 노벨 수상자 중에 30%가 유대인들이 그 상을 가져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1967년에 아랍권과 싸운 그 전쟁에서 아랍 전체가 힘을 합쳐서 유대인 이스라엘하고 싸웠죠.
6일 만에 승리했습니다. 지금도 그 역사가 끊이지 않아서 지금도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어쨌거나 세상에서 과거에 알려지기로는 제일 머리가 좋은 민족이다.
2천 년 이상 나라 없이 디아스포라라고 그러죠. 흩어져가지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전통, 그들의 관습을 지키고 세계에서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됐습니다.
미국의 금융 재정을
거의 유대인들이 잡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함부로 이스라엘을 함부로 취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나라에 찾아온 비극이 왜 왔을까요?
그것은 여기 성경에 이렇게 딱 이야기합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1-3)
이스라엘의 그 끔찍스러운 패망과 더불어서 2천년이 넘도록 그렇게 고난의 시간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노력과 자기의 지혜로 의를 이루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 저는 기독교 기독교의 그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 진리를 여러분에게 좀 다시 한 번 소개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조금 전에 보았던 성경책 가운데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라고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끔찍스러운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 이유가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기별을 자기들의 생각으로 자기 방식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동일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형편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내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오.
내가 내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내 자녀들을 잊어버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책망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 지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귀한 진리를 자기 방식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유대인들이 어떤 선택을 하냐면 유대인들은 굉장히 열심히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인인으로 보자면 정말
특심한 열심이 있는 신앙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습니다. 그 사람들이 참 어떻게 지내냐면요.
그들도 안식일을 지킵니다. 저희처럼. 그런데 안식일날 그들은 아무것도 안 합니다.
엘리베이터 버튼도 안 누릅니다. 다른 사람 시켜서 누릅니다.
안식일날은 밥도 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사람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 시켜서 안식일날 필요한 일을 다 합니다.
유대인들은 여러분이 다녀오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스라엘에 가면요.
안식일날은 차가 안 다닙니다. 그리고 이사를 가면 그들의 우리로 말하면 교회죠.
그들을 회당이라고 하는데 이사 가면 어디에다 집을 마련하는 줄 아세요?
회당 가까이에 걸어서 갈 수 있는 회당을 걸어서 갈 수 있는 회당 중심에 가까운 거리에 집을 마련합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안식일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데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는지 모릅니다.
그 정도로 열심히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이거 누가 쓴 이야기냐 하면요. 유대인 중에 최고로 열심히 있었던 이름이 처음에는 사울이었다가 나중에 바울로 바뀐 사도바울이 복음을 깨달은 다음에 자기 민족을 향해서 쓴 내용이 이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구원 얻는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의 방식대로 자기들의 생각대로 그렇게 열심히 의를 얻으려고 구원받으려고 애를 쓴 결과로 이렇게 됐다.
그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 중에 어느 쪽을 선택했냐면 자기들의 방식을 선택했어요.
그 선택한 결과가 아까 그 마사다라고 하는 그 참혹한 역사를 가져오게 만든 원인입니다.
여기 요한복음 17장 3절 저는 이 성격절을 참 개인적으로 참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다.
하나님을 믿되 많은 분들이 내 생각으로 내 사고 방식으로 조금 속된 표현으로 내 멋대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릇된 길로 간 대표적인 케이스가 유태인들입니다.
성경이 그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제목으로 선택한 심청전에 나타난 비결이라고 그랬는데 심청전 여러분 너무 잘 아시죠?
심학교 심봉사와 그 효녀 심청이 정말 아름다운 그런 작품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 심청전에 나타난 정신이 무엇일까요?
심청전에 나타나 있는 사상들은 이런 겁니다. 요약하면 첫째는 유교적인 윤리관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아버지에 대한 아주 지극한 효 앞을 보지 못하는 자기 아버지가 결혼을 했지 결혼해서 낳은 딸이 정말 비로소 소위 정성을 들여서 낳은 딸이 심청이지요.
그런데 이 신청이가 아버지를 아주 지극하게 지극정성으로 섬기지요.
어느 날 신청이 없이 혼자 가다 넘어져 갖고 어려움을 당했는데 지나가던 그
스님이 어떻게 해요? 도와주고 나서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드리면 눈을 뜰 수 있다.
그러니까 눈 뜨고 싶은 마음에 이 신봉사가 뭐 합니까?
덜컥 내가 고양미를 드리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근데 가진 게 없어요.
그래가지고 혼자 끙끙 앓고 있다가 그거를 이 착한 딸이 알게 되지요.
그래서 어떻게 해요? 그 300석 공양미 300석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기 몸을 인당수로 바다에 무역하는 상인들이 그 파도가 막 넘어치니까 가다가 예쁜 처녀를 바다 신인 용왕에게 드리면 그 바닷길이 순탄하게 간다고 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그 공미 300석에 자기 몸을 팔은 효녀 심청이를 들여다가 바다에 빠뜨리지 그래서 재물로 바칩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제 영왕의 바다 세계의 왕비가 돼 가지고 잔치를 열어가지고 자기 아버지를 만나고 눈을 뜨는 그런 아름다운 정말 유교적인 윤리관으로 보면 참 아름다운 이야기죠.
근데 여러분 이
이야기 이 아름다운 스토리에 담겨 있는 사상이 뭘까요?
이런 것입니다. 여기에 담겨 있는 사상은 신에 대한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바다의 용왕신은 지금 분노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 어떻게 해요?
사람이 아주 아리따운 처녀를 용왕신에게 재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 재물을 받고 난 이 분노한 바다 신이 어떻게 해요?
그 분노가 가라앉아서 뭐 하는 거예요? 바닷길을 순탄하게 잘 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이 스토리 이 사상이 기독교 사상에 그대로 거의 많은 분들이 이 세상을 그대로 기독교 신앙에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되 마치 용왕신을 섬기는 것처럼 그런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게 유태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입니다. 여기서 나온 게 이 이 사상을 기독교로 그대로 가지고 온 게 뭐냐 하면은 기복 신앙입니다.
여러분 사전에 보면 기복 신앙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어요.
기복 신앙이란 복을 기대하는 즉
본인에게 득이 되는 복을 바라는 신앙 행태를 말한다.
여기서 복이란 재물 무병장수, 내세의 공덕, 자손의 번창 같은 일체의 인간적 욕심을 포함한다.
그래서 뭐예요?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세요.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이거를 기대하고 뭐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그 하나님 믿는 행태가 뭡니까? 하나님께 헌금도 드리고 또 하나님의 일로 좋은 선행도 하고 공덕을 쌓는 그런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을 그렇게 믿는 겁니다.
가장 큰 기독교 신앙을 하면서 가장 큰 오해가 이런 것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심청전의 사상과 그 생각을 찾아 들어가면 그 바닥이 심청의 사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아주 밑바닥에 파고 파고 들어가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지극한 오해를 하고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면 죄 지은 사람을 이렇게 살피다가 너 왜 그거 죄 지었냐 고 죄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된다.
이런 하나님으로 사람들이 은연 중에 그렇게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을지라도 무의식 중에 그런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마음을 좀 달래고 자기의 그 행위를 그 노력을 통해서 선행을 통해서 공로를 인정받고 그 결과로 뭔가 좀 복을 얻도록 축복을 받도록 구원받도록 의롭게 되도록 그렇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사업에 헌신 많이 하고 봉사 많이 한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마음이 뿌듯해해요.
내가 이 정도로 헌신하고 봉사하고 이렇게 쓰고 섬기고 착한 일 많이 했으니까 나 이 정도면 그래도 하늘에 갈 만하지 않을까 구원받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신앙을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자기가 행한 수고로 행위로 의를 이루려고 하는 그런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복 신앙의 문제점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전혀 이런 성격이 아닙니다.
이게 가장 기독교를 크게 오해하고 잘못된 신앙을 하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와 여타 모든 종교,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와의 차이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겁니다. 기독교는 신이 되신 하나님이 사람을 달랩니다.
사람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합니다. 그런데 그 외에 모든 여타 종교는 반대입니다.
사람이 신을 잘해요. 여러분 헬라의 그 신화들 많죠.
그리스 신화들, 그 신화들의 공통적인 내용이 이겁니다.
우리 설화들 많지 심청전, 장화훈련전 여러 설화들이 많잖아요.
그 모든 사상이 다 여기 담겨 있습니다. 신을 다 내는 거예요.
그 수많은 공덕, 그 많은 수많은 선행 그거 다 무슨 목적이냐 하면 신을 달래기 위한 목적입니다.
복을 받으려고 그게 기복 신앙입니다. 기독교와는 정반대의 사상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잘 가장 잘 보여주는 예증이 하나 있어요.
예수님이 그 가르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라고 일컬어지는 한 비유가 있습니다.
어느 아주 부잣집에 아들이 둘이 있었어요. 근데 둘째 아들이 가만히 보니까 이 둘째 아들이 조금 못 됐어요.
아버지한테 재산 자기한테 돌아올 목 유산 미리 다 달라고 그래가지고 그냥 아버지가 쉽게 주지 않았겠지요.
호랑방탕 멀리 가지고 허락방탕해 그 재산 다 탕진했어요.
그리고 이 아들 마음속에 아이고 내가 이제 아버지 재산 다 탕진했으니까 아버지한테 돌아갈 자격이 없는 거예요.
근데 견디다 견디다가 못 견뎌가지고 어떻게 해요?
이제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 집에 가면 그래도 내가 굶어죽지는 않으니까 그냥 종으로 가서 일하면서 밥이라도 얻어먹으면 살려야 되겠다 하고 아버지 집에 어쩔 수 없이 그 재산 다 탕진하고 완전히 상거지가 돼가지고 돌아가지 근데 아들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지요.
아버지는 그 집 나간 아들이 틀림없이 그 성품을 너무 잘 아니까 다 허랑방탕하게 다 탕진했을 것을 알고, 그래도 그 아들을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날마다 독려하기 위해서 아들을 기다리는 겁니다.
근데 멀리서 보니까 어느 날 보니까 진짜 거지 중에 상거지가 딱 나타났는데 아버지 눈에 금방 알아봤어요.
내 아들이구나 달려가서 끌어안고 목을 입을 맞추고 자기 옷을 벗어가지고 그 아들에게 입히고, 그리고는 데려와가지고는 자기 아들이 왔다고 살찐 송아지 갖다 잡으라고 그래갖고 잔치를 벌입니다.
아들 생각하고는 너무 다르지요. 아들은 너 이놈 왜 내 재산 탕진했느냐 너는 내 자식도 아니라고 나가라고 오지 마라고 그랬을 때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요?
아버지 제가 아들로 온 게 아니고 종으로 왔습니다.
제가 종으로 살겠습니다. 밥이라도 먹여주십시오.
이러고 왔단 말이에요. 이 비유에서 아버지가 누구냐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성경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성경절이 하나 있어요.
그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으니라.
이게 무슨 사건입니까? 이게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 여러분 중에 질병 치료를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내 병을 고쳐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뭔가 이런 하나님께 내가 좀 뭔가를 들여서라도 내 병을 좀 고침을 받으려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여타 종교에서 가르치는 가르침과 정반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기독교가 가르치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드러낸 거예요.
죄 지은 인간 아버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떠나간 그 배은망덕한 그 아들을 아버지는 여전히 사랑하고 그 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뭐 하신 거예요?
당신의 생명을 내놓으신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아들이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동돼서 새 사람이 되기를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성경 구절 가운데에 이 진리를 가장 잘 설명해 놓은 책이 있는데, 그게 신약성경의 로마서입니다.
그 로마서 가운데에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의 성격절이 바로 이겁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오지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17절 이 한 절 때문에 세계 역사 가운데 그 유명한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신부였던 루터가 마틴 루터가 어느 날 그 빌라도의 계단, 예수님이 재판받았던 빌라도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면서 자기의 선행, 그 공로로 자기 죄를 씻으려고 그렇게 가르침 받았고 그렇게 따라가다가 어느 날 이 성경절이 딱 떠올랐어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자기 행위와 노력과 그 공로 선행으로 의를 얻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 걷어주신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의롭게 되고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이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일어난 게 종교개혁의 역사입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이걸 다 설명드릴 수가 없는데요.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복음이 뭡니까? 복음 조금 전에 본 말씀 가운데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랬어요.
죄인을 변 실질적인 능력입니다. 복음은 그냥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론이 아닙니다.
사람을 실제로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는 능력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그런 겁니다. 근데 그 복음에는 뭐가 나타나 있느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 그랬어요.
유대인들은 자기 의를 따라갔어요. 하나님의 의를 따라가지 않아서 아까 그 마사다와 같은 그런 끔찍스러운 고통을 당하게 된 겁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로마서 3장에서 잘 나타나는데요.
20절과 28절은 시작 부분의 결론이고 마지막 부분의 결론입니다.
기독교의 이 귀한 가장 중요한 핵심 진리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을 신학자들은 로마서 3장 21절부터 26절이라고 보통 이야기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장 20절에서 28절까지라고 저는 그렇게 믿고 성경을 연구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시작법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여기 말하는 율법의 행위는 심청전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행하는 모든 공덕, 그다음에
하나님을 믿고 나서 하나님을 믿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행위, 선행이 다 포함되는 단어입니다.
율법의 행위에는 그러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적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모든 선행과 행동이 다 들어갑니다.
그것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 딱 결론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율법 율법을 지키는 그것으로는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을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기독교의 핵심 가치는 핵심 진리는 사람이 수고하고 노력하고 행위로 선행하고 착한 일 해가지고, 그 공로로 의를 얻거나 구원받고 하늘에 가는 게 아닙니다.
그건 100%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그 100% 잘못된 가르침을 거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이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이렇게 다섯 줄로 핵심 진리를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100%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 100% 의로우신 의 자체가 되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죄인에게 그 100%의 의를 요구하십니다.
그 100%의 의가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죄인은 스스로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죄인의 그 어쩔 수 없는 그 상황을 하나님이 채워주시기 위해서 죄인을 위하여 100%의 의를 준비해 주신 겁니다.
그 100%의 의가 되시는 분이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는 믿음으로 내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해결하시고 돌아가셨다라고 진심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분이 가지고 있던 100%의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그냥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르치는 여기 에베소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뭐라고요?
선물이라 구원은 선물입니다. 갈라디아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줄 아는 거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게 기독교의 가장 핵심 진리입니다.
이 진리 위에 모든 것이 다 세워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오해는 이 부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잘못 그릇된 그리스도인, 잘못된 종교로 바르게 표현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근본적인 차이점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의는 모든 거짓 종교 제도의 토대였으며, 심지어는
유대 종교의 원칙이 되었다. 이스라엘이 끔찍스러운 최후를 맞이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그 길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마르치는 10계명 율법이지 10개명을 지키라고 그러지 십계명을 지키는 십계명의 의미가 뭡니까?
십계명을 하나님이 주신 때가 언제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데 모세를 통해서 해방시킨 다음에 신의산에서 모세를 불러올려가지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때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이 십계명에서 가장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 봐야 될 부분이 바로 이 앞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그리고 나서 뭐라고 말씀하냐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있게 말지니라.
그러면서 10가지 계명을 쭉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십계명을 우리가 이해할 때
많은 분들이 10가지 계명에만 집중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아주 그릇된 길로 나아갈 수 있어요.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게 이 1절입니다. 1절 하나님은 십계명을 이집트 애굽 사람들에게 주신 게 아니에요.
주변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민족에게 십계명을 주신 게 아닙니다.
그 십계명을 누구한테 줬냐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줬습니다.
근데 언제 주셨느냐? 애굽에 있을 때 노예로 있을 때 그 고통스러울 때 주신 게 아닙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 우리를 좀 제발 구원해 주십시오.
그렇게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통해서 기적적으로 해방을 시켰어요.
그렇게 해방시켜서 자유의 몸이 됐을 때, 자유로운 민족이 됐을 때 비로소 십계명을 주셨어요.
그러면서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주지를 시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로 가로수되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는 너를 너희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다.
다시 말하면 이런 거예요. 오늘날로 말하면 내가 너를 죄에서 구원을 시켰다.
구원했다. 이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살아라.
그 이야기를 하신 거예요. 더 쉽게 이해하면 이렇게 이해하면 돼요.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우리나라가 경제력이 좋아져서 미국 가는 데 어려움 없지 과거에는 미국 가려면 미국 비자 받기가 참 어려웠어요.
근데 여러분 미국 시민권 얻겠다고 한국에서 아무리 미국 법 잘 지켜도 미국 법 잘 지킨다고 미국에서 시민권 주나요?
그럴 수 없어요. 미국의 법을 지키는 건 미국 시민이 된 사람이 지키는 거예요.
요즘 우리나라에 참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들어오죠.
베트남 사람이 한국 국적 얻고 싶어가지고, 베트남에서 아무리 대한민국법 잘 지켜도 대한민국 정부가 당신 베트남에 살면서 대한민국법 잘 지켰으니까 대한민국 시민권 주겠다고 그렇게 주나요?
아닙니다. 시험 보고 과정 거쳐가지고 대한민국 국적 딱 취득한 다음에 그다음에 뭐 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대한민국 법을 지켜야 돼요. 지키지 않으면 국민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겁니다.
여기 빌립보 3장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건 구원받기 위해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 천국 가기 위해서 순종하는 게 아니에요.
거저 선물로 주시는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구원받고 이렇게 됐기 때문에 하늘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비록 이 땅에 살지만 우리의 시민권이 달라졌어요.
소속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 하늘의 법을 순종하고 감사함으로 지키는 것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행이고 봉사고 헌신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지 이건 순서가 바뀌면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위의 의미가 뭘까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철제 이 9가지 성령의 열매는
우리의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맺히는 열매가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의롭게 되기 전에 맺혀야 될 열매가 아니에요.
의롭게 되고 구원받고 하늘에 가기 위하여 맺혀져야 될 열매가 아닙니다.
구원과 의롭게 되는 건 거저 선물로 주시는 거예요.
그 주신 너무 사랑이 커서 그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뭐 하는 거예요?
그 사랑 안에 거하면 저절로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시간 지나고 계절 바뀌면 어떻게 돼요?
풍성한 포도 열매가 맺혀지는 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구원도 기독교의 가르침도 똑같습니다.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이런 재미는 노래가 있어요.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이런 노래입니다.
돈으로 못 갑니다. 힘으로도 못 갑니다. 믿음으로 가는 나라입니다.
벼슬로도 못 가요. 지식으로도 못 가요. 믿음으로 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 믿고 새로 탄생해서 새로운 생명 얻으면 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제가 여기 드릴 말씀이 많은데 시간이 됐으므로 끝내야 될 것 같은데요.
성경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 부분에 대해 있습니다.
하나만 말씀을 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창세기에 보면은 4장에 보면 아담의 두 아들이 나옵니다.
가인과 아벨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두 사람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하나는 받고 하나는 받지 않았어요.
가인의 것은 안 받고 동생 아벨의 것은 받았어요. 근데 가인은 자기가 노력해가지고 농사 지은 소사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을 가지고 죽여서 재물을 들였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것은 받고 가인의 것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가인의 재산은 자기의 자기 의존, 자기가 행한 노력 공로 선행 그걸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 겁니다.
여기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께 대한 호의의 표시로 자기의 재물을 드린 거예요.
다시 말하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애써가지고 수고했으니까 하나님 이거 받으시고 좀 나 좀 인정해 주십시오.
이것 때문에 좀 의롭게 해주시고 구원받게 해 주십시오.
그런 정신이에요. 이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한 자기의 정신입니다.
아벨은 반대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죄인이라고 하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자기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자기의 노력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직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그리스도의 그 속죄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서만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걸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방식대로 하나님의 방식대로 제사를 드린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식대로 아벨의 재산은 받으시고 자기 방식대로 자기 의해 자기 노력으로 구원받으려고 했던 가인 이사는 받지 않으셨어요.
성경 역사는 이 두 사람의 가지고 있는 정신이 모두 다 공통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오해하지 마십시오. 기독교를 심청전의 사상처럼 사상처럼 그렇게 믿지 마십시오.
그것이 가장 큰 오해의 핵심입니다. 이 두 사상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이 어디에서 나오냐면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보여준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십자가 십자가 노래한다고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십자가를 노래해도 그 사상이 자기가 노래,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건 자기가 받고, 그다음에는 자기 노력으로 하늘 가려고 의를 이루려고 하는 그런 혼합된 사상도 아주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100% 0.0001%도 인간의 공로가 섞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데는 사람이 이렇게 되는 데는 100% 하나님의 준비해 주신 의 그걸 선물로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거둬주신 은혜입니다. 그 주시는 은혜를, 그 사랑을 더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사랑에 감동돼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는 순교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상을
꼭 기억하시고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 가장 중요한 핵심 진리,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이 사상을 바르게 이해하면 여러분의 믿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수고하고 헌신해서 질병 좀 낫게 해달라고 그런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그 사랑이 어제 말씀드렸죠.
사랑이 사람이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이룬다고 그랬지 거기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귀한 복음 이것을 복음이라 그럽니다.
복된 소식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예수를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오.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여러분 구원은 하나님이시는 그 귀한 선물을 거져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귀한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 각자의 삶에 꼭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고마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을 저희가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걷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 그것이 하나님께서 무한한 희생과 대가를 치르시고 저희에게 주어진 선물임을 저희들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 이 말씀을 들은 모든 심령에 역사하시고 일깨워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바른 신앙 가지고 바른 믿음으로 살면서 바른 하나님의 사랑을 주위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과 친지들과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는 하나님의 신실한 주의 귀한 자녀들을 다 되게 해 주시고 오늘 하루도 그 사랑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모든 걱정 근심 주님께 다 내려놓고 주님 바라보며 행복한 한 날을 살게 해 주시고 주시는 놀라운 치유의 은혜를 경험하는 한 날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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