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풍경과 상처>를 다독이는 <좋은수필> 제150호(2024. 1).
삶의 풍경과 상처
- 강화도 동막해변, 장화리해변
차용국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아 작년에 정년퇴직했다. 이제 내 차례다. 고등학교 때 그림을 잘 그렸던 그는 퇴직 후 다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소일거리’라며 쑥스럽게 말하면서도 대단한 열성을 보였다. 열심히 즐겁게 활동하는 그가 대견하고 부러웠다. 나는 새로운 신발 끈을 고쳐 맬 때가 다가오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지 알 수 없었다.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았고, 내 발은 늘 그 자리에서 서성거릴 뿐이다.
문득 ‘인생은 춘몽’이라는 뻔한 상투어가 낯설고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늦은 오후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창밖에서 대책 없이 초로의 서정을 희롱했다. 짙은 회색의 구름이 남산타워를 핥으며 오르고 있었다. 타워는 운무 속에서 대가리만 드러내고 신기루처럼 아련히 떠 있었다.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멀리서 그의 메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와 목을 적시고 싶었다.
“나올래?”
“그래, 보자.”
퇴근 시간을 박차고 사무실을 빠져나와 들어선 골목집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덜 삭은 홍어 냄새가 밋밋한 가슴을 찌르고, 비릿한 삶은 돼지고기가 묵은지에 싸여 허기진 목구멍을 비집고 들어와 울먹이는 사연을 들춰냈다.
나는 그가 겪은 상처의 충격을 위로할 수 없었다. 지병이 있었던 것도, 새로운 병이 발견된 것도 아니었다.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그의 부인은 아침에 깨어나지 못했다. 돌연사였다. 장례식장 부인의 영정 앞에서 문상객을 맞아 맞절하는 그의 허물어진 어깨를 나는 차마 볼 수 없었다.
아, 부부의 연을 맺고 한평생 함께 살아온 배우자를 돌연히 홀로 죽음의 세계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는 가혹했다. 나는 아무런 위안조차 할 수 없는 내 영세한 언어의 한계를 질책하며 울었다. 울음소리는 숲을 헤매는 풀죽은 별빛처럼 귓전에 달라붙어 떠날 줄 몰랐다.
반백을 훌쩍 넘겼건만, 나에게 죽음의 문은 여전히 닫혀있다. 나는 알 수 없는 죽음보다 산자의 울음이 더 두렵다. 내가 아는 삶은 산자의 얘기뿐이어서, 사랑과 미움과 기쁨과 슬픔과 기다림과 그리움은 오로지 산자의 몫일 뿐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산자의 몫이 두렵다.
허름한 골목집 벽면에서 튕겨 나오는 왁자지껄 소리가 짧은 숨 고르기로 잠잠해질 때쯤, 나는 세월의 계급장처럼 그어진 그의 주름살을 바라보며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도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불현듯 그와 나의 바다 걷기는 약속되었다.
초지대교를 건너자 강화도 산마루는 구름을 밀어내기에 바빴다. 물 빠진 동막해변은 아득해서 바다가 멀었고, 흐린 하늘과 맞닿은 바다 끝으로 빠져나가는 구름의 행렬은 분주했다. 텅 빈 갯벌은 스산했고, 해안의 모래밭과 갯벌의 경계를 따라 두서넛씩 짝을 지어 드문드문 거닐고 있었다. 그들의 걸음은 한가로웠다.
몇몇 아이들은 질척이는 갯벌에서 멀리 떨어진 소나무 숲 가까운 모래밭을 뛰어다니며 놀았고, 젊은 아빠와 엄마들은 소나무 숲에 돗자리를 펴고 담소를 나누었다. 도로 건너편 음식점과 카페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비트가 강하고 빨라서 내가 듣고 따라부르기에는 벅찼다. 도로 양쪽으로 승용차가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으나, 해변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드물어 바다는 적막했고, 갈매기는 바다와 섬 사이를 오가며 갯벌의 배경 위에서 끼룩끼룩 울었다.
그와 나는 소나무 숲 의자에 앉아 멀리 밀려난 바다를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헐렁한 시간을 돌려 기억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풍경과 소리를 복원했다. 기억의 능선은 헐거워서 끊어지고 이어지면서 널뛰었다. 기억의 조각들은 하강의 능선으로 떨어지며 아파했고, 상승의 능선을 오르며 힘들어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와 내가 한여름 열기를 피해 찾아온 강화 해변에서 복원된 기억의 풍경과 소리는 추레했다. 여름 한철 보낸 강화도 해변에서 기억의 풍경은 가슴 깊이 파고드는 날것의 냄새가 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불판에 익어가는 삼겹살 냄새처럼 비릿하고 허허로웠다. 가진 밑천 없이 서울로 올라와 직장을 잡고 시작한 삶의 부침은 무채색 소주잔에 채워지고 비워지면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헛것의 바이러스처럼 징글맞게 달라붙어 삶을 재단하고 통제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입추의 문턱은 아득히 높았다. 그 질긴 질곡의 시절을 빠져나오며 소진한 젊음의 기운은 자잘한 주름으로 굳어 펴지지 않았다. 하루 이틀 강화의 해변에서 보내며 한여름 더위를 피했던 젊은 아빠의 넋두리가 빈 갯벌에서 들려왔다. 미안함을 감당하지 못한 채 울먹이며 끊어지고 이어지면서 널뛰는 소리였다.
나이가 들면 현명해지고 견고해질 줄 알았던 삶은 힘없이 무너지고 남은 몇몇 익숙한 관계와 규격화된 어울림의 파고 위에서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던적스러운 관계의 헛물을 지우는 일도 치통을 견뎌내는 일만큼 힘든 것인지…… 질척하게 젖은 여백으로 젖은 지우개 똥처럼 떨어지며 아파했다. 그물코 매듭처럼 달라붙은 이해관계를 창틈의 먼지처럼 털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와 나는 삶의 풍경과 상처를 각자 익숙한 방식으로 재현하면서 강화나들길을 걸어갔다. 그는 물감을 풀어 그림을 그리듯 이야기했고, 나는 언어의 저편에 숨어있는 소리의 리듬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오랫동안 그와 내가 기대어 살아온 삶의 배경과 방식은 달랐지만, 바다를 서성거리는 초로의 서정을 공유하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그와 나의 바다를 오가는 언어는 날카롭지 않았고, 알아듣지 못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없었다.
장화리 앞바다는 흐려서 노을을 만들지 못했다. 아이들은 갯벌을 질척이며 놀았고, 갈매기는 바다와 섬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돌렸다. 바람은 시간을 넘나들며 풍경과 상처를 노래했다. 그 노래는 환상도 환청도 아니었다. 그 소리는 과거와 현재의 삶을 오르내리며 육화(肉化)된 소리였다. 언어는 보고 듣고 말하고 적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허약한 언어는 바람이 전하는 삶의 풍경과 상처를 다 기록할 수 없어서 내 몸의 일부처럼 가슴에 담아두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화나들길에서 그와 나는 다만, 그것들을 더듬더듬 꺼내 이야기하며 함께 걸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