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내에서 프랑스 특유의 달팽이(6마리) 요리와 함께 점심을 먹고 드디어 파라 시내 관광에 들어간다. 파리에 도착하면 무엇보다 가슴이 설레기 마련이다. 패션의 도시, 예술의 도시, 낭만의 도시, 명품의 도시. 등등...
↑ 우선 파리 시내의 명소를 살펴보자
에펠탑이 한눈에 잘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간다.
↑ 가는 길에 기아자동차 매장이 보인다 저 맨 끝 건물 뒤로 트로카데로 광장이 있는 것 같은데 돌아가여 한는가 보다. 콩코드 광장 옆을 지나간다 ↑ 광장에 우뚝선 오벨리스크 높이는 23m정도이고 이집트 람세스2세의 사원(룩소르신전)에 있던것을 1830년 모하메드 알리가 프랑스 왕 루이 필립에게 기증했다고한다. 상형문자로 가득 채워넣은 글자는 파라오를 숭배하는 글로 전각되었다고한다. 이 오벨리스크는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고도 불리운다. 세느강을 건느고 . . . ↑ 드디어 트로카데로 광장 앞으로 . . . ↑ 에펠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 황금색 돔의 앵발리드(Invalides)가 보인다
샤이오 궁 / 샤요궁 [─宮, Palais de Chaillot] 도로카데로궁(宮) 부지에 카를뤼 부알로 아제마가 설계한 것인데, 장대(長大)한 동서(東西) 날개집[翼舍:wing house] 내부에 원래의 건물이 있다. 건축조각 박물관을 토대로 하고 있다. 서쪽 날개는 인류박물관으로, 세계 각국의 인류학 ·민속학 관계의 수집품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서쪽 날개의 일부에는 해양박물관도 있는데, 프랑스 해군 및 상선의 발전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파리 국립극장과 해양 박물관, 인류 박물관, 문화재 박물관, 영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에펠탑을 보기에 가장 좋은 위치로 알려져 있다
개선문 (Arc de Triomphe) 개선문은 에펠탑과 더불어 파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곳과 연결되어지는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보고
↑ 개선문에는 플랑부이양 양식의 부조와 방패무늬 조각들, 그리고 개선문 아치 안쪽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 Champs E·ly·sees 콩코르드 광장과 그 너머 튀일리 공원을 향한 아래쪽 부분은 공원이며, 박물관·극장·식당 등이 있다. 개선문을 향한 위쪽 부분은 식당, 영화관, 명품점, 사무실, 상점가 등이 주로 자리잡고 있는데 저녁 무렵이어서 그런지 안쪽의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어 이곳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17세기에 처음 설계되었을 때는 당시 파리 외곽에 속하던 넓은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센 강을 따라 튀일리 궁까지 이어지는 도로인 '쿠르 드 라 렌을 포함했다. 17세기말 앙드레 르 노트르가 넓고 그늘이 많은 대로를 조경했고 오늘날 개선문이 서 있는 언덕 마루까지 이 길을 연장했다. 18세기에는 그 전체가 샹젤리제라고 불리게 되었다. 개선문이 1836년 준공되었고, 1860년대에 이르러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이 파리의 대로들을 완전히 재설계하면서 샹젤리제 대로는 궁·호텔·식당들이 있는 대로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제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향한다
↑ 가는 길에 파리의 8학군이라는 곳을 지난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면서 생겨난 명소라나 . . .???
↑ 파라에서는 어딜가나 세느강과 연결 되는가 보다 ↑ 드디어 베르사이유 궁정 앞에 도착 했다.
베르사이유궁전 베르사이유궁전은 유럽 최고의 왕권을 자랑하던 부르봉 왕조가 107년에 걸쳐 살았던 절대군주 체제의 대표적인 사적지다.
↑ 파리 서남쪽 23km에 있는 절대주의 왕권의 영화를 상징하는 대궁전이다. '짐은 국가다' 라고 했던 루이 14세가 ↑ 가운데 쯤 있는 건물이 왕실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던 성당이다.
↑ 정원은 최고의 조경사 르 노트르가 설계했다. 정원의 모습은 기하학적인 모양의 꽃밭과 아폴론의 분수도 보인다.
거울의 방은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서 거울이 17개의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있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나폴레옹 대관식' 왕관대신 월계관을 쓴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을 로마의 황제와 동일 시 했다는 것이다. 이는 자끄 루이 다비드가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랑한 여인을 나타내기 위한 자기만의 방법이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내 조세핀을 대관식의 여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의상비로 책정해 온갖 사치를 부렸다. 조세핀과 황제의 대관식 의상 비용으로 총 1,123,000프랑을 사용했고, 황후의 시녀 의상비로 10,000프랑을 사용하여 아내에게 자신의 엄청난 성공과 절대적인 능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를 그려 넣으라고 하였다. 나폴레옹은 조세핀과의 결혼으로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졌다. 나폴레옹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조세핀을 무척 싫어했다.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자식이 둘이나 딸리고 행실이 나쁜 과부 조세핀이 자랑스런 아들을 빼앗아간 요부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들부부가 사이가 좋지 않아 어머니 레디치아는 자식의 결혼식과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랑자빠르뜨망(GRANDS APPARTEMENTS) 일주일에 세 번씩 사치스런 파티가 열렸던 장소이다. 그랑 다빠르뜨망은 뷔페 연회가 열렸던 Salon de l'Abondance와 루이 14세 때에 당구장으로 쓰인 Salon de Diane, 원래는 대기실이었으나 때때로 리셉션 장소로 쓰인 Salon de Mars, 각국의 외교 사절들을 접견하던 Salon d'Spollon, 화려한 천장화가 유명한 Salon de Venus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의 조그만 시골이었던 베르사이유가 궁전이 들어서면서 관할권을 갖게된 이곳에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에 호화 스런 궁전을 짓고 이를 바탕으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베르사이유 궁전이 완성되어 루이14세가 이 궁전으로 옮겨 살게된 것은 게란트(Roger-Henrl Guerrand)가 쓴 <화장실문화사(Les Lieux. Historie des Commdites)>를 보면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건물의 구석 벽이나 바닥 또는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는 '향수의 나라'가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유럽 전역에서는 지금도 하장실 사용료를 내야하는데 이것 또한 로마시대에 여기저기 오물과 쓰레기가 지천인 점을 보완하기 위해 화장실 관리비 차원에서 이루어지던것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관행이 되어버린것이다.
베르사이유 궁전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벌써 어두움이 깔려온다. 이제 다시 시내로 들어가 저녁을 먹고 샹젤리제 거리 밤풍경, 세느강과 에펠탑 야간투어를 해야 한다. 옵션으로 1인당 80유로이다. |
출처: 세포네 원문보기 글쓴이: 세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