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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신앙의 기록
단재는 선인왕검이라 함은 3국 시대에 수두교도의 일단을 '선배'라 칭하고 선배를 이두문자로 선인(仙人) 혹은
선인(先人)이라 기록한 것이며,
선사(仙史)는 곧 왕검이 가르침을 베푼이래 역대 '선배'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니,
후세에 불, 유 양교가 서로 성행하면서 수두의 가르침이 쇠퇴하고 선사(仙史)도 남은 것이 없어 그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지나의 고서인 굴원의 「초사」,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에 흩어져 있는 기록
을 볼 수 있다 하였다.
그리하여 「사기」<봉선서>에 "삼일신은 천일, 지일, 태일이니 삼일의 가운데 태일이 제일 귀하다" 하며
"오제(五帝)는 태일의 보좌"라 하고 <진시황본기>에 "천황, 지황, 태황(인황)의 3황중에 태황이 최귀"라
하며,
「초사」에 동황태일이라는 노래가사가 있고 「한서」<예문지>에 <태일잡자(泰一雜子)>의 서명(書名)이
있으니 3.1신과 3황은 곧 고기(古記)에 기록한 3신, 3성(聖) 등의 종류이니
3.1신을 우리 고어로 번역하면 천일은 말한이니 상제(上帝)를 의미한 것이요, 지일은 불한이니 천사(天使)를
의미한 것이요, 태일은 신한이니 신은 최고최상이란 말이니 신한은 곧 '천상천하 유일무이'를 의미한 것이니,
말한, 불한, 신한을 이두문자로 마한(馬韓), 변한(卞韓), 진한(辰韓)이라 기록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상의 사기 봉선서의 내용과 진시황 본기의 내용만 가지고도 이들 하늘의 상제님에게 천제를 지내는
동이족의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역사 전통과 신관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굴원의 초사에 등장하는 단군성조
동황태일이 현실적으로는 상제님이신 천황과 태모님 위격에 해당하는 지황 즉, 천일과 지일보다 더한층 최고로
귀한 태황(인황)이라 한 점에서 지상 최고 통치자(대두목)의 위격을 더 높이 친 인본주의 사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산해경(山海經)」<해외서경>에 보면 웅상(雄常)이라는 나무 아래에서 성인이 대를 이어 즉위하는 숙신(肅愼)
국에 대해 나온다.
정재서 역주에 정 인보 ,안 재홍 제 씨는 중국 고서에서 출현하는 주신(珠申), 식신(息愼), 직신(稷愼)과 마찬
가지로 조선(朝鮮)을 음사(音寫)한 별종의 표기로 파악했다 하였다.
또한 이 숙신국이 바로 단군 조선임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바로 「환단고기」<단군세기>에 보인다. 즉, '경인
원년에 11세 단군 도해(道奚)가 5가에게 명하여 열두 명산 가운데 가장 훌륭한 곳을 골라 국선 수두(蘇塗)를
세우게 하였다.
수두에는 단수(檀樹)를 빽빽하게 둘러 심고 그 가운데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환웅상(桓雄像)을 모셔 지내며
나무를 웅상(雄常)이라 이름하였다.'
「산해경(山海經)」<해외동경>에 '군자국이 그(대인국) 북쪽에 있다. (그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있으며 짐승을 잡아먹는다.
무늬 호랑이를 부리는 군자의 나라 동이족 삼신각 탱화(버클리 도서관 소장)
두 마리의 무늬 호랑이를 부려 곁에 두고 있으며 그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다.'하였고,
동서 <대황동경>에 '동구산이 있다.
군자국이 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찬다.(有東口之山 有君子之國 其人衣冠帶劍)'고 했다.
흔히 사찰의 대웅전 뒷켠에 있는 삼신각은 본래 불교의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 신교의 유산인 삼신상제를
모시던 유습이 습합된 흔적인데, 바로 이 삼신각에 그려져 있는 탱화아닌 탱화에 바로 호랑이를 곁에 둔 신선
노인이 바로 「산해경(山海經)」<해외동경>에 언급된 호랑이를 곁에 두고 있는 군자국의 조상모습이다.
산해경에서 말하는 호랑이를 곁에 두고 부리는 삼신각 탱화
<산해경>'해외동경'
君君子國在其北 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虎在旁 其人好讓不爭 有薰華草 朝生夕死 一曰在肝 楡之尸北
[ 군자국이 북쪽에 있는데 옷을 입고 관을 쓰고 칼을 찬다. 짐승을 먹고 두 마리 큰 호랑이옆에 둔다.
그 사람들은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다. 훈화초라가 있는데 아침에 생겼다가 저녁에 죽는다]
무늬 호랑이를 부리는 군자의 나라 동이족(버클리 도서관 소장)
*「산해경(山海經)」<해외동경>에 '군자국이 그(대인국) 북쪽에 있다.
(그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있으며 짐승을 잡아먹는다. 두 마리의 무늬 호랑이를 부려 곁에 두고
있으며 그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다.'하였고,
동서 <대황동경>에 '동구산이 있다. 군자국이 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찬다.
(有東口之山 有君子之國 其人衣冠帶劍)'고 했다.
흔히 사찰의 대웅전 뒷켠에 있는 삼신각은 본래 불교의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 신교의 유산인 삼신상제를
모시던 유습이 습합된 흔적인데, 바로 이 삼신각에 그려져 있는 탱화아닌 탱화에 바로 호랑이를 곁에 둔 신선
노인이 바로 「산해경(山海經)」<해외동경>에 언급된 호랑이를 곁에 두고 있는 군자국의 조상모습이다.
「산해경(山海經)」 <해외동경>에 훈화초(薰華草)(=목근화)로 기록된 무궁화(蕣)
靑丘國在其北 其狐四足九尾 一曰朝陽北
[청구국이 북쪽에 있는데 그 곳의 여우는 네 개의 발과 아홉 개의 꼬리가 있다. 혹은 조양의 북쪽에 있다고 한다]
<산해경>'해오서경'
白民之國在龍魚北 白身被髮有乘黃 其狀如狐 其背上有角 乘之壽二千歲 [백민국은 용어의 북쪽에 있는데 몸빛이
희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다. 승황이라는 집승이 있는데 모양은 여우 같으나 등 뒤에 뿔이 있다. 타고 다니면
이천살을 산다]
肅愼之國在白民北 有樹名曰雄常 先八伐帝 于此取之 [숙신국이 백민의 북쪽에 있다. 나무가 있는데 웅상이라
부른다. 앞선 8대 임금이 이 나무에서 자리를 취했다.此는 웅상이란 나무고 之는 八伐帝이니 웅상아래서 제위를
취했다고 해석된다]
東胡在大澤東
[동호는 대택의 동쪽에 있다]
夷人吊胡東
[이인이 동호의 동쪽에 있다]
貊國在漢水東北 地近于燕 滅之
[맥국이 한수의 동북쪽에 있어 연나라에 가까운데 그것을 멸하였다]
<산해경>'대황동경'
有白民之國 帝俊生帝鴻 帝鴻生白民 白民銷姓 使四鳥虎豹熊
[백민국이 있는데 제준이 제홍을 낳았고 제홍이 백민을 낳았다. 백민은 성이 소씨이고 네 종류의 새를 부리고
호랑이, 표범, 곰을 부린다]
大荒之中 有山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
[대황의 한가운데 불함산이 있고 숙신의 나라가 있다]
有靑丘之國 有狐九尾
[청구국이 있는데 여우가 있어 꼬리가 아홉 개이다]
<산해경>'해내북경'
蓋國在鉅燕南 倭北 倭屬燕
[개국이 거대한 연나라의 남쪽에 있고 왜의 북쪽에 있는데 왜는 연나라에 속한다]
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
[조선이 열양의 북쪽에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있다.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
<산해경>'해내경'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天毒 其人水居 他人愛之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어 이르기를 조선 천독이라 한다. 그 사람들은 물에 살고 남을 가까이
하고 사랑한다]
고조선, 천독, 숙신국, 묘민국, 고죽국, 그리고 전욱을 낳은 조운국(朝雲國)과 사체국, 그리고 전욱의 자손이
세운 숙촉국, 숙사국(淑士國), 강씨의 국가라는 북제국(北齊國), 소호와 관련 있으며
제준의 자식이 세운 계리국(季釐國),
백민국(白民國), 제준이 낳은 중용국(中容國), 염제의 후예가 세운 불여국(不與國), 우려국(牛黎國), 흉노국
(匈奴國)이 모두 한(韓)민족인 동이족이 세운 국가 입니다.
<산해경>'해내경'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 朝鮮天毒 其人水居 外人愛之
[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 조선천독 기인수거 외인애지]
*<산해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북해는 발해만을 동해는 황해를 의미하므로 조선이 북해와 황해내륙에 있었
다는 해석입니다.
또 맹자는 백이숙제는 북해에 살았다 했고 강태공은 동해변에 살았다고 했으므로 조선은 발해와 황해사이의
대륙에 있었던겁니다.
산동성 환국(청구국)시대와 그 이후의 은(殷)왕조 주도세력과 노나라, 제(齊)나라의 95%이상이 한(韓)민족
세력권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조선천독이 대륙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록은 바로 동이족들의 강역과 문화가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보여주며, 설화적 관계 또한 중국의 설화는
아님을 알 수 있다.
* 환단고기에도 웅상이라는 말이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화랑의 임관식에는 큰 나무를 세워 웅상(雄常)이라 했는데 이는 환웅의 신상이다. 상(常)은 항상 있다는
뜻이다.
-소도가 도처에 세워졌는데 산마루에 산상(山象)과 웅상(雄象)을 세웠다.
-국선소도에는 단수(檀樹)를 둘러 심고 가장 큰 나무를 환웅형상으로 삼아 웅상이라 불렀다.
-삼한에는 10월 상순에 제사를 지내는데 둥근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지내고 모난 언덕에서는 땅에 제사를
지내며 산에는 웅상을 세우고 조상제사는 나무를 다듬어 썼다. 이것도 이미 고대부터 나무와 연관지어
환웅을 뜻하는 웅자와 상자를 썼다는 것이 된다. 어쨌든 웅자는 진작부터 쓰여 진 것이다.
산해경 이후 사마천을 기점으로 해서 동이족을 묘사한 것을 보면 야만족화 해서 묘사한 글을 수없이 볼 수
있는데 이는 공자로부터 비롯된 춘추사관의 날을 세우기 위한 지나족의 억지요 견강부회일 뿐이다.
박문기는 한복 바지고름에 매는 대님의 기원에 대해 말하면서 이 호랑이와 산신각에 대해 얽힌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복식에 단임(檀 )이라는 것이 있다. 대개 단임이란 바지 끝을 발목에 매는 끈을 말하는데,
원래는 옷섶의 왼쪽이 오른쪽을 덮는 좌임(左 )을 말하는 것이다.
옛 군자국 사람들은 왼쪽 허리에 칼을 차고 다녔기 때문에 왼쪽 옷섶이 오른쪽을 덮는 좌임복식이라야
오른 손으로 칼을 뽑을 때 옷깃이 칼자루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바지 끝을 발목에 매는 끈 역시 단임(檀 )이라 이르는 것도, 그걸 매고 다니면 어디에도 걸릴 것이 없기
때문에 단군의 옷깃이라는 뜻으로 단임(檀 )이라 일컬어져 온 것이다.
신라가 당군을 불러들여 고구려와 백제를 멸한 후에 우리의 좌임복식을 되레 오랑캐의 복식이라 하여 중국
사람들처럼 우임(右 ) 복식을 했는데 오직 단골만은 끝까지 좌임복식을 고치지 않았다.
때문에 그 복식만 보아도 누구나 금새 그가 단골인 줄을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복식이 바로 옛 군자국의 복식이었고 칼을 차고 다니며 호랑이를 부렸던 것인데 말이다....
백제, 고구려를 멸한 신라는 골품제도를 강화하여 스승의 직분을 가장 미천한 계급으로 전락시켰다.
김씨 왕족끼리 혼인하여 낳은 자식을 성골(聖骨)이라 했고, 왕족과 귀족이 혼인하여 낳은 자식을 진골(眞骨)
이라 했으며,
신라 사람들을 우대하여 범골(凡骨)이라 했고 단군의 풍속을 행하는 백제, 고구려의 유민을 단골(壇骨)이라
비칭한 것이다.
단골은 순색의 옷을 입지 못했고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신라는 오로지 객귀(客鬼)를 높이어 사방에
절을 짓고 우리 조상신을 궁색한 산신각(山神閣)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성골이라야만 왕이 될 수 있다는 기상천외한 법을 만들어냈다.
그로 인해 중국으로부터 늘 오랑캐라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단골이란 단군의 뼈를 지녔다는 뜻이다.
그 하는 일이란 옛 스승의 업을 이어 사물로써 천지만물을 고동시키고 능히 귀신과 화합하여 우리 조상신께
안녕과 복을 비는 것이다.
그런데 신라는 이를 천대하고 대신 객귀에게 복을 빌었던 것이다. 신라뿐 아니라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
까지 단골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
9가(九歌) 자체도 9이(九夷), 9주(九州), 9하(九河:곤륜에서 발원), 천유구중(天有九重:「회남자」), 구소(九韶:
제순의 음악)를 상징하고 있지만 중국문화의 뿌리를 차지하고 있는 「초사」가 바로 동이족의 정신세계에 줄을
대고 있으며 바로 「시경(詩經)」의 주남과 소남의 국풍편이 「초사(楚辭)」의 이소(離騷)와 줄을 대고 있다.
「초사(楚辭)」는 무슨 책인가. 「초사」는 전한(前漢) 성제(成帝) 때에 유향(劉向)이 편집한 책이름에서 시작
된 것으로 주희(주자)가 「초사」 8권을 편집해 굴원(屈原)이 저술한 25편을 '이소(離騷)'라 하고 그를 흠모
했던 문인 송옥(宋玉) 이하의 16편을 '속이소'라 해서 전하고 있다.
굴원은 이소 첫 시가에서 자신의 세계(世系)에 대해 "임금 전욱고양의 묘예(帝高陽之苗裔)"라 하고 있는데 이
말은 「사기」 초세가(楚世家)에 초(楚)의 선조는 제전욱 고양에서 나왔다 한 기록과 동일하고 굴원 가생(賈生)
열전에서 보듯이 초(楚)와 동성이다.
중화사관에 의하면 황하(黃河) 유역의 중원(中原)문화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을 무렵 초(楚) 나라가
위치한 남방은 거의 황무지에 가까운 것으로 몰아부친다. 그리하여 당시 사람들은 남방민족을 형(荊)이니 초
(楚)니 하고 불렀다.
그러나 양자강 유역은 전통적으로 동이 9려족과 형오, 백월, 초, 묘요계 등 동이 9족이 둥지를 틀고 황하의
소위 서하족(주)보다 더 높은 문화를 열어가고 있었다. 이는 후일 양자강 경덕진의 월도요라든가 주남과
소남의 국풍 시가의 전통을 이어받은 굴원의 초사가 후일 당나라 두보에 이어진 것을 보더라도 그 문화의
깊이를 알 수 있으며
비단이 양자강 유역의 동이 9족에서부터(래이족) 비롯해 오늘날까지도 양자강 유역인 항주 소주에서 가장
발달한 것 만 보아도 이를 증명할 수 있고 동이 9족의 전통을 이은 비단으로 짠 고려의 종이라든가 초(楚)
나라의 특수한 문화에 영향받은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일파의 도가(道家)사상을 보더라도 동이족에 바탕
을 둔 이 곳 문화의 우수성과 특성을 읽어낼 수 있다.
춘추시대(春秋時代)로 접어들 무렵 중국의 양자강 유역에는 초(楚) 나라가 위세를 부리게 되었다.
초(楚) 나라는 중원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게 되면서 이에 위협을 느낀 중원(中原)의 나라들은 급기야 존왕
양이(尊王攘夷)의 구호를 외치게 되는데 가장 먼저 깃발을 든 사람이 바로 춘추전뭣척育� 패자(覇者) 제환공
(齊桓公)과 진문공(晉文公)이다.
사실 황하유역을 제패한 패자가 제환공과 진문공일 때 양자강 유역의 드러나지 않은 패자는 바로 초(楚) 나라
이지만 이 역시 지나사관에 의해 제환공과 진문공만 조명을 받는다. 제환공(齊桓公)이 죽자 이어서 역시 패자
(覇者)인 진문공(晉文公)이 나타나 성복이라는 곳에서 북방진출을 꽤하던 초(楚) 나라 군대를 무찌른다.
춘추시대는 중원문화를 대표하는 진(晉) 나라와 남방문화를 대표하는 초(楚) 나라가 대립하는 국면으로
변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접어들자 중원의 세력권은 고만 고만한 일곱 나라로 압축되는데 이를 역사상 전국칠웅
(戰國七雄)이라 부른다. 그 중에서도 초(楚) 나라는 바로 이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로 전국시대가 끝날
때까지 가장 강력한 세 나라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즉, 진(秦)나라 제(齊)나라 초(楚)나라는 바로 전국시대 내내 삼국정립(三國鼎立)의 형세를 지킨다. 그러다가
초(楚)가 진(秦) 나라에 의해 멸망는 무렵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굴원(屈原)이며 그의 대표작이 바로 <이소
(離騷)>이다.
전욱고양은 누구인가 하면 후계자인 제곡고신과 함께 이하(夷夏)일가의 통일시대를 연 우리 동이족 출신의
임금이다. 전욱고양의 뿌리를 캐면 지나족과 동이족의 상고사가 마치 고구마줄기를 잡아 뽑으면 수많은
고구마가 뿌리채 뽑히듯 뽑혀진다.
따라서 이 부근은 역사를 올바로 보는 맥줄이기 때문에 잠시 부연 설명코자 한다.
「사기오제본기」에 제곡고신은 황제의 증손이라고 했다. 고신의 아버지는 교극( 極)이고 교극의 아버지는
현효(玄 )이며 현효의 아버지가 황제라 했다.
그러나 황제의 혈통에 대해서는 뒤에 따로 설명하겠지만 동이족이며 황제시대는 씨족연맹으로부터 부족
연맹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초기상태였다. 이것이 바로 서량지 사관의 골간이다.
고신의 아버지, 할아버지인 현효와 교극은 모두 제위에 오르지 못했으나 고신에 이르러 제위에 올랐다.
고신은 전욱에게서 족자(族子)가 되었다.
「역사(繹史)」에 "옛날 제곡(帝 )은 나이 15세에 제 전욱을 보좌하여 나이 30에 치천하했다"고 했으며
「춘추외전」에 「한서율력지(漢書律歷志)」를 인용해 "전욱이 세운 바 되고 제곡이 이를 물려받았으니 청양,
현효의 자손이다" 하였다.
또 「조선사략(朝鮮史略)」에 "주몽이 나라를 이어 스스로 (제곡)고신의 후예를 칭하고 국호를 '고구려(高句麗)'
라 하고 이로 인해 성을 고(高) 씨로 했다고 나온다.
서 량지는 주몽이 동부여 사람이라(환단고기 북부여기 가섭원부여기와 일치) 말하고, 동부여는 지금의 요동
반도로 조선반도와 교차하여 서로 응하는 지역이며, 고조선(古朝鮮:단군조선을 인정함)의 북면으로 동이문화가
새끼쳐 젖먹인 지역(東夷文化的 乳區)이라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 동이족의 수많은 난생설화와 같이 고주몽이 난생설화의 주인공이며, 주몽이 자칭 고신씨의 후예라
칭하고 그로 인해 고씨라 칭한 것이 그가 내쫓겨나간 일과 함께 난생신화의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것이며 나아가
동이족의 난생신화를 설명해 주는 것이라 말한다.
지나족의 뿌리가 동이 한민족에 있다 함은 수없이 말 한 바 있거니와 「시경」<상송(商頌)> 현조(玄鳥)편을 보면
보다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하늘이 제비에게 명하시어 내려가 은의 조상 낳게 하시와(天命玄鳥 降而生商) 넓은 은 땅에 살게 하시다. 탕왕에
이르니 옛 임검(단제)께서는 사방 넓은 곳 영유케 하사 모든 임금에 내리신 분부 9주의 주인으로 받들라시다
(宅殷土芒芒 古帝命武湯 正域彼四方 方命厥后 奄有九州)'
고신은 은(상)나라를 연 탕 임금의 14대조 시조 설(契)의 아버지이다. 설(契)의 모친 간적(簡狄)은 동이족의 난생
신화의 첫 출발점인데, 그녀는 바로 고신씨의 차비로 현조(玄鳥)가 떨어뜨린 알을 먹고 설을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앞서 서량지가 고주몽의 난생설화와 축출 그리고 고신씨의 후예를 칭한 것이 바로 동이족의 정치 사회적
난생설화의 분위기를 설명해 준다 했듯이 막상 현조씨는 조(鳥) 도등(봉황, 용같은 깃발상징)의 동방족 임금
소호의 사관이었음을 이해한다면 난생신화로 얽혀진 진시황의 진나라도 우리 동방족이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소호금천씨의 후예 휴도(休屠)왕의 아들로 한무제 때 표기장군을 지낸 김 일제의 원손(遠孫)
김알지로부터 시작되는 신라 김씨의 유래와 또한 한(漢)을 멸망시키고 신(新) 제국을 세운 김 일제의 증손 왕망
(王莽)이 후한 광무제에게 망한(AD25) 17년 뒤 김해 6가야를 접수한 알 사건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조 도등(圖騰:깃발등 휘장 상징)인 봉 도등을 가야왕관과 신라왕관의 상징휘장으로 삼은 것은 바로 소호금천씨가
봉으로 도등을 삼았기 때문이다.
서량지는 소호가 왕위에 오르니 봉황이 와 춤을 추어 새를 상징으로 하게 되었다는 담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88년 경남합천에서 발굴된 금동제 환두대도에 새겨진 용봉무늬는 동서방족의 용봉도등적 부락맹의 영향이
한반도 남쪽까지 미친 것이라 해서 한국의 상고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고고학계의 주장이 제기된 바 있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김수로의 난생설화는 대륙 내에 있었던 조(鳥) 도등의 동방족이 새로이 유입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서(漢書)」 <왕망전>에 왕망은 전한을 찬탈한 뒤 고구려를 폄하해서 하구려(下句驪)라 했다. 후한 광무제
에게 망한 그들 일족이 평소 냉대하고 박대한 고구려로 가지 못하고 바다 건너 가야, 신라로 간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량지는 고구려의 고(高)가 높고 낮음의 고(高)가 아니라 그 선조가 고신(高辛)씨였기 때문에 이를
상징하는 성씨라 말하고 있다.
사기오제본기」에 고신의 제위 하의 수도인 박( :박은 殷의 수도이기도 하다)에 대해 황보밀(皇甫謐)의 말을
인용한 집해(集解)에서 지금의 하남(河南) 언사현(偃師縣)이라 말하고 있다.
(안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