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마족몬스터> 6
"......"
「이제 그만 둬.」
"......"
「이런 짓은 무의미해. 이런다고 기뻐할 드린...... 아니 크리니스카이쳐가 아니야. 그리고 무엇보다고 그는 이
제 우리편이 아니야. 우리의 적이라고!」
"......조용히 해."
잔뜩 억눌린 자이커의 말에 누스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자이
커가 노란검을 팽개쳐두고 와서 누스는 혼자의 힘으로 검을 옮겨야 했다. 집 같았던 검이 그때부터는 원수같
아지긴 했지만. 그의 힘으로는 검을 옮기기엔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게도 있지만 누스는 작은 요정의
힘밖에 내질 못했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노란검을 옮기는데 사력을 다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락사락
자이커가 풀을 헤치고 나아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누스는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수면을 취했다. 그 때 검을 옮
긴다고 쓴 힘이 아직까지 보충되지 않았던 것이다.
"......"
"크르르르......."
거대한 오거검을 들고 있는...... 오거였다. 오거의 눈이 붉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마족오거는 아님을 알 수 있었
다. 자이커는 가만히 오거의 눈을 바라보았다. 인간이 개를 계속 노려보고 있으면 개가 도망을 가는 것처럼 오
거는 자이커의 눈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몸이 워낙 거대해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사락사락
다시 자이커가 풀숲을 헤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자이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지고 있어
붉기만 했다. 자이커는 가만히 서서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해는 지고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
나무가 불에타는 소리만 들렸다. 자이커는 가만히 앉아서 불에 타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자이커는
이 자세에서 바뀌어지지 않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눈에는 초점도 없었다.
사락
무언가가 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자이커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지만 무엇이 나타났음을 알았다. 작은 토
끼였다. 자이커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그 토끼를 바라보았다.
그 토끼는 인간을 보고도 도망을 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인간과 접촉을 해보지 못한 토끼인 것 같았다. 가만
히 자이커는 손을 내밀었다. 냄새를 맡던 토끼가 자이커의 손 위로 올라섰다. 자이커는 초점 풀린 눈으로 토끼
의 붉은 눈을 바라보았다. 토끼는 자이커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한채 주위를 향해 계속 냄새를 맡고
있을 뿐이었다.
자이커는 가만히 손을 내려 토끼가 갈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는 무릎 사이고 고개를 뭍고 한동안 고개를 들
지 않았다. 토끼는 자이커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자이커의 옆에 있으면서 주위의 냄새를 맡았다. 자이커는 무
릎사이의 틈으로 보이는 토끼를 바라보았다. 몸도 하얀것이 세상물정모르는 아이같았다. 자이커는 피식 웃었
다.
사락
이번엔 무언가 거대한 것이 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있던 자이커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검을 쥐었
다. 이번엔 토끼같은 작은 동물이 아니라 몬스터인것 같았기때문이었다.
끼략.
순간 자이커의 충혈된 눈이 커질 수 있는데로 커졌다. 자이커는 부들거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끼략.
자이커의 커진 두 눈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보고 있는 자신조차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이었다.
작은 소년이 서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드린과 같은 소리를......
"여기서 뭐하세요......?"
"......"
경련을 일으키던 자이커의 눈은 어느새 평소대로 돌아왔고 자이커는 말없이 그 소년을 얼굴을 바라보았다.
금발의 머리에 푸른색 눈을 지니고 있었다. 정통 자이드라 인이었다. 자이커는 다시 무릎사이로 고개를 뭍었
다.
"이봐요."
토끼는 의외의 인물에 놀랐던지 자이커의 몸에 기대고선 바들바들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공포가
토끼의 몸을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자이커는 가만히 손을 들어 토끼를 덮어주었다. 떨고 있던 토끼의 몸이 좀
안정되는 것 같았다. 자이커는 고개를 들어 소년을 보고 말했다.
"이봐......"
"가라."
"무슨......?"
자이커는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렇지 못
한 것 같았다.
"이봐요. 그런 곳에 있다간 지나가던 산짐승에게 당할지도......"
"......"
"이봐요. 사람말이 말 같지 않은가요?"
"......"
"쳇!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좋아요! 당신 맘대로 해요!"
소년은 불퉁거리며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풀을 헤치며 사라졌다. 자이커는 소년이 사라진 것을 알자 토끼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 주었다. 토끼는 한동안 냄새를 맡더니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또 가버리는군.'
자이커는 토끼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물이나 몬스터나...... 다 저런 존재인가...... 인간이 정을 주면 그 정에 답할 줄 모르고 오직 자신만 살면 되
는......'
자이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자신이 아무리 한심해한다지만 어차피 그들에게 말을 해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이커는 다시 무릎사이고 고개를 뭍고 잠이 들었다. 언제나 일어나서 공격할 준비를 하고서
는......
사락
자이커는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가 수풀을 헤치는 소리에 잠이 깨어버렸던 것이다. 자이커는 가만히 자신의
오른손에 쥐어진 노란검의 촉감을 되살렸다. 짜릿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지나가면서 자이커는 자신이 보고 있
던 방향으로 살기를 보냈다. 상대는 살기는 느낀 것인지 나타나지 않았다. 한동안그렇게 살기를 보내던 자이커
는 이제 갔겠지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사락
자이커는 다시금 놀라며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락사락
잔뜩 경계하던 자이커는 순간 경계심이 풀려버렸다. 토끼들이였기 때문이다. 아까 자이커의 옆에 있던 토끼가
자신의 동료들을 데려온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 토끼가 느끼기에는 자신들의 집보다는 이 자이커의 옆에 있는 것이 더욱 안전하다고 느낀 것 같았
다.
자이커는 황당감을 느끼며 토끼들을 바라보았다. 색도 가지각색에 하는 행동도 가지각색이었다. 자이커의 머
리위에 올라가는 토끼가 있는 반면 자이커의 옆에 누워 잠을 자는 토끼도 있었다. 또 이미 불이 꺼진 모닥불
의 옆에서 장난을 치는 토끼도 있었다.
자이커는 갑자기 몰려든 토끼떼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허탈한 마음에 피식웃고는 그도 토끼가 되어 놀기
시작했다.
'나의...... 어긋난 생각이었나......'
자이커는 몇달동안 잊어버렸던 웃음을 떠올렸다. 수면을 취하던 누스도 자이커가 기뻐하고 있음을 알고는 깨
어났다. 그리고 웃는 자이커의 얼굴을 보며 자신도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자이커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풀. 그 속에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토끼와 어울리는 자이커를 바라보는 보라
색눈이 있었다.
짹짹
새들이 쫓아왔다. 자이커는 웃으며 그 새들을 방갑게 맞았다. 이미 그의 발주위에는 엄청난 숫자의 동물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는 아무래도 그런것은 상관도 없다는 듯이 그들을 받아들였다.
토끼들이 자이커와 어울리고 나서 다음날, 그 토끼가 수다쟁이였는지 숲을 지나가던 자이커를 본 동물들은
모두 달려와 자이커의 옆에 있었다. 자이커의 옆에는 심지어 오크도 있었다. 오거와 곰도 몇몇 보였다. 그들은
서로가 낼 수 있는 소리로 음악을 만들어내며 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며칠간의 동물들과의 생활로 자이커는 예전과 같은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워낙 웃지 않아 낯설은 웃음이
었지만 이제는 익숙했다. 잊었던 웃음을 찾은것을 그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누스였다. 드린의 일로 슬퍼하던
자이커가 웃음을 찾은 일이 마치 자신의 일인양 누스는 기뻐했다. 자이커는 누스의 마음을 알고 더욱 밝게 웃
었다.
자이커는 기뻤다. 자신의 생각을 어긋나게 만든 드린이란 생물이 있었지만 다른 생물들은 그렇지 않았다. 다
른 생물들은 정을 준만큼 돌려주었다. 자이커가 동물들의 생존을 보호하는 한편 동물들은 열매같은 것을 갖다
주어 자이커는 한동안 음식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드린의 일을 겪고 자이커는 식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물이나 먹고 가끔가다 약간의 고기를 먹을 뿐이
었다. 정말 살기위해 필요하지 않으면 먹질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동물들이 가져다 주는 열매
를 보는 자이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동물들이 자신들을 따라주는 것만큼 자이커에게 기쁜일은
없었던 것이다.
"예상외인데요."
갑자기 자이커와 동물들의 앞에 한 소년이 서면서 말했다. 자이커는 아까전부터 느끼고 있던 기운이라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오크나 오거는 무기를 꺼내들려고 하였다.
그때 자이커를 걱정하던 소년이 앞에 당당한 자세로 서 있었다. 금발머리에 푸른색눈을 가진...... 전형적인 자
이드라인. 자이커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이런, 무기를 꺼내진 마. 우리들에게 살기는 없으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군요."
자이커의 말을 듣자 몬스터들은 안심했는지 무기를 집어넣었다. 인간의 말을 따르는 몬스터의 모습을 바라본
소년의 눈은 커졌다. 소년의 머릿속에 존재하던 몬스터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저 인간을 보면 죽일
줄 밖에 모르는 존재가 바로 몬스터였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는 꼼짝도 못하는 것도......
"무슨 말이야?"
"인간이 몬스터를 조종할거라라고는......"
"이런이런,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난 조종한 것이 아니야. 이들에게 충고한 것 뿐이지."
"추, 충고......"
소년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으로는 지금 이 일이 도대체 해석이 되지 않았다. 어떻
게 몬스터가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인간은 몬스터에게 충고한단 말인가...... 하기야...... 그의 몸을 싸고 있는 동
물들을 보면 이해할 수 있긴 했지만.
"어? 왜 그래?"
소년의 상태가 조금 이상한 것 같자 자이커는 그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멍하게 있다가 자이커가 다가오
는 것을 보고 말했다.
"더 이상 나에게 접근하지마!"
"엥?"
몸을 보호하는 소년의 모습은 강간을 당하려하는 처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자이커는 순간 얼떨결해짐을 느꼈다.
"더, 더 이상 나에게 다가온다면......"
"......"
"주, 죽여버릴테다!"
"황당하군...... 내가 너한테 뭔가 죽을죄라도 지었나?"
"무, 물론이다!"
자이커는 그 소년을 향하여 한발을 내딪었다. 그러자 소년은 얼떨결에 한발 뒤로 물러섰다. 키가 비슷한 둘이
한발을 내딪으면 다른 쪽은 물러서는 이 황당한 그림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럼 그 죄가 무엇인지 말해봐. 만약 합당하지 않은 이유라면 난 널 죽일지도 몰라."
"무, 무슨 소리냐! 네, 네가 날 죽일 수 있단 말이냐?"
"물론이다."
자이커가 한발을 내딪었다. 소년이 물러섰다.
"원한다면 내 힘을 보여줄까?"
"시, 시끄럽다!"
소년은 발악하듯이 외쳤다.
"이, 이...... 추잡하고 더러운 인간!"
순간 자이커는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이커는 억지로 웃음
을 보이며 동물들에게 말했다.
"이제...... 너희들의 집으로 가지 않으련?"
동물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서 숲으로 사라져버렸다. 오크와 오거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이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잔혹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랬군...... 그랬어."
"뭐, 뭐가 말이냐!"
"이 세상에서 인간을 추잡하게 느끼는 생물은 많지. 사실이야. 인간은 추잡하고 더러우니까."
"......"
잔인한 미소를 짓는 자이커를 바라볼 만큼 소년은 간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 있는데 그 앞에서 직접 그런 소릴 할 수 있는 생물은 단 하나뿐이지."
"무, 무슨소리냐!"
"아니, 하나 더 있군. 같은 인간과....... 그리고......"
자이커는 소년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드래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