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중순쯤 이었으리라. 깊은 밤인지도 알겠고 부산대학교 앞인줄도 알겠으나, 내가왜 이런 장대비를 맞으며 거리를 배회 하고 있는지는 도통 몰랐다. 퍼붓는 장대비를 맞으며 그닥 구경 할것도없는 뿔쌍한 거리를 홀로걷고 있는데 무척이나 낮이익은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서는 날더러 이렇게 말한다. "이게 뭐예요,도대체 어쩌자는거예요"그녀는 만삭의 배를하고는 한손엔 펴진우산을 치켜세우고 한쪽팔에는 접은 우산을 끼고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집이었고 안면 많은 여인네는 말이 없었다. 나또한 별말없이 출근했다.출근해서는 전후사정을 알아보니 어제 노조에서 전교조팀과 모임이있었고 나도 그자리에 끼었었는데..거기까지는 알겠고, 그담이 문제다.술이 만취해서는 또 그노래를(푸르른날)을 부르기 시작하더니 화장실 간다며 나간사람이 돌아오지 않았고, 급기야는 술자리를 파하고 여러 사람들이 찾으러 다녔지만 찾을수 없었기에 누군가 집에다 전화를했으며, 전화를받은 아내는 뭔일이라도 생긴줄알고 좌천서 택시를타고 부산대앞에 날 찾으러 와서는 나만큼이나 헤메고 다녔던것이다. 그러고는 날 찾았다.희안하게도..도대체 무슨생각으로 장대비 쏟아지는 야밤에 술이취해 헤메고다니는 남편을 찾으러가야겠다는 열녀스런 생각을했을까... 한편으로는 갸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련곰탱이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민주화? 90년대초반 그시절은 뒷골목에 개새끼 두마리만 모여도 민주화를 주제로한 박력있는 토론을 일삼았다든데, 사실 나는 민주화가 뭔지 아직도 잘모른다.어디선가 이런소리를 줏어듣긴했다. "민중들에 의한, 민중들을 위한, 민중들의 정치" 기세 등등하던 민중들의 폭거에 비위를 맞출수밖에 없었던 정치권의 과도기적 시대였다. 나름으로 수긍하는 민주화에 관한 시대적 정리 이겠으나 한편으로 보면 다소 무식해보이기는한다. 각설하고, 그시절 봇물터진 민주화 열기는 극렬한 노동운동을 부추겼으며, 그들의 요구를 관철 시키기 위한 파행적 행위는 적절한 수위를 훌적 넘기고 있었다.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시절 사회적 분위기에 압도되어 하루가 다르게 마지노선을 재지정하며 나름의 울분을 삭이며 와신상담? 하던 형국이었던것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처가에서는 우리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으나 아내는 나를 선택하고 따라나섰다.정관 농공단지 내의 종업원 300쯤되는 중소기업에 취직을했고 좌천역앞에 600짜리 방을얻어 신혼비슷한 생활을 시작했다.신혼생활이 맞긴한데 결혼이라는 형식의 절차를 밟지못했으니 신혼생활이라 짤라말하기는 찝찝함이 있었다.떳떳하지 못하다는것, 그리 작은문제가 아니였다. 나는 늘 아내에게 미안했고 고마워했으며 더러는 안스럽다는 생각을 늘 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마음만큼 잘해주지는 못했던거같다. 어쩌다보니 회사에서 등떠밀려 노조간부 완장을 얻어차게 됐고 그로인해 술자리가 잦았다. 큰 모임이든 작은모임이든 내가빠지는 술자리가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지금와서 솔직히 고백하건데 내가 그시절 그리 중요인물이라 그랬던건 아니다. 사실난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모르는 무식한 인간이다. 내가 찾아다닌 술자리였다. 낄곳 안낄곳 가리지않고 못생긴 턱쪼가리 드리미는 뻔뻔스런 하예나 였던것이다. 그시절 나는 아예 지갑이 없었다.바지주머니에 만원짜리한장 비상금으로 넣어다니며 이곳 저곳 술자리에 끼어들어 킁킁거리며 술냄새를 맏고 다니며 개걸스럽게 얻어먹고 다녔다.그리고는 질떨어지는 뒷골목 개그로 사람들을 웃게했다.내겐 분명 나름의 얍삽한 재능이 있긴 있었나보다.
6월1일은 둘쩨 놈 출산한 날이다.내가 그날을 정확하게 기억하는것은 첫째녀석 생일이 1월 6일이라 그렇다.첫째가 그랬기에 둘째도 으례히 수술로 출산을했다. 나는 일주일의 휴가를얻어 나름의 출산수발? 이라해야하나? 암튼 그런걸했는데 이제 돌지난지 얼마안되는 큰놈이 걸리적거려서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직 출산을 하지않은 배뿔뚝이 마누라를가진 친구녀석이 일주일간 큰놈을 데리고 있겠다길레 다행이다 싶어 그리하라 했다.그때 병원에 일주일 기거하면서 내가 뭘 어찌했는지 크게 기억나는건 없다.단지 나랑 비슷한 처지의 남정내 한명이 있었고 그친구와 바둑을 원도없이 두었던 기억이 전부다. 물론 술도 마셨다. 대충 얼렁뚱땅 일주일이 지났고 산모를 데리고 집으로왔다.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고있는데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기에 나가봤더니 노인한분이 나이롱줄에 꿰어진 누런 잉어한마리를 불쑥 내민다. 샛강에서 투망으로 잡아올린 잉어라면서 소주병 가득담겨진 들기름도 주셨다. 초여름인데도 장화를 신고있었으며 민방위 모자를 쓰고있는 노인의 안색이 유난히도 검다싶었다. 나는그냥 얼덜결에 받아들고 고맙다는 간단한 인사를하고 노인은 별말없이 가셨다.아내는 그분을 알고있었다. 칠암서 넙치 가두리를 하시는분이고 몇년전에 대학다니던 막내딸이 교통사고로 죽었으며 부인은 화병으로 몸져누워 거동이 불편하다는얘기다. 내가 잉어를 어찌 고았는지는 기억하지못한다.암튼 아내는 나의정성이 담긴 잉어고움을 먹은거같다. 약간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9월쯤됬나?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부릴 무렵이다. 토요일 반나절 일을하고 집에들러 낚시도구챙겨서는 칠암에 낚시 하러 갈요량 이었는데 골목어귀에 안보이던 승용차들이 줄을지어 서있었고 뉘집에 상이났음을 알리는 표식이 벽에 붙어있었다. 집에 갔더니 아내는 그 잉어아저씨가 간암으로 어제밤 돌아가셨다면서 한번 가봐야 되지않겠냐 그랬지만 사실난 별로 가보고싶지않았다. 해서 낚시도구 챙겨서는 그냥 나와버렸다. 늘그렇듯 고기를 많이 잡지는 못했다. 노래미,게르치,술벵이 다 데 요번에는 아내의 문상요구가 제법 단호하고 비장하기까지했다. 어쩔수없어서 아내가챙겨준 부의금 삼만원을 봉투에넣고나름 깔끔한 옷을입고 그집엘갔다.
시골집치고도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그럼에도 문상객들이 많아 북적거렸다. 마당에 멍석도 여러장 깔렸고 예상외로 화환도 많았으며 개중에는 제법 높은사람이 보낸 화환도 눈에 띄었던거같다. 암튼 나는 얼른 절하고 나와버려야지 하는생각으로 영정이 모셔진 방으로 들어서서 향을 피우고 술을치고 이제 절를 할참이었는데 그분의 영정을보는순간 갑자기 뭔가모를 뭉클함이 가슴깊은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느낌이었다. 첫절을 올리는순간 눈물이 나기시작했고 웬지 챙피하다는 생각이들어 나름 억제해보려 노력했지만 두번쩨 절을 올리면서는 나를 제어하지 못했다.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수 없었는데 이제는 콧물까지 쏟아져서는 범벅이 돼버렸고 급기야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버려서는 아예 드러내놓고 엉엉 울어버렸다.곡을하던 상주들도 곡을 접고 모두가 큰소리로 사실적으로 울어버렸다.한참을 서럽게 울고있으니 어떤 나이지긋한 상주복을 입은 한분이 오셔서는 나를 부축해서는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내손에 큰 수건을 주시며 어깨를 다독여 주셨다.그렇게 울면서도 나는 자꾸만 챙피하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고 컴컴한 신작로에 홀로 쭈그리고않아 한참을 더 울었다.지금도나는 그때 왜그리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하지만 그리 울고나니 뭔가 가슴깊이 맻혀있던 답답하던 체증이 뚧힌느낌이있었고, 뭔가 후련하고 개운한 느낌이 있었던거같다. 집에가서는 아내와같이 또울었다.평생 울일을 그날하루 다 울어버렸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연극에 비유한다. 나름 적절한 비유다. 어떤이든 그자신은 자신의 무대의 주인공이면서 연출자이다. 하지만 인생의 무대에서 연출작업은 너무나도 제한적이다. 나름 각본을짜고 자기의지로 연출을 해보려하지만, 그리되기 힘든것은 자신의 인생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자신의 무대를 가지고있으며 그 각각의 무대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등장인물들의 출연 여부도 결정할 권한이없다. 인생의 무대에 등장하는 거개의 인물들은 우연으로, 혹은 필연에의해서 운명적으로 등장하는것이다. 좋건 싫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중에는 인생전반에 관해 크나큰 영향을미치는 인물들이 있겠고, 또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물들도 부지기수 이겠으나, 더러는 짧은 만남 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가는 "까메오"가 있다.특별한 우정출연이랄까? 앞에 얘기했던 잉어노인 이야기는 어찌보면 찌질한 일상사 이기도하겠으나, 나는 그분의 순수한 따뜻함을 잊지못한다. 가끔씩 떠올리며 생각하는 분이지만 아직도 나는 그분을 생각할때마다 착해지고 싶어한다. 그무언가가 부족한듯한..웬지 늘 마음의 배가고픈 결핍의 영혼에게 순수하고 따사로운 온기의 불씨를 선물하고간 그는 나의 프로메테우스 였으며 내 인생의무대에 깜짝 출연해준 까메오 였던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다.누군가 서러움에 치를 떠는 결핍의 영혼에게 따뜻한 붕어빵 한봉지 건내고싶다.말없이..
2010.가을, 경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