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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관 유홍준 강명수 고양규 이충호 조영철 구순자 백동섭 호병탁 김기화 김덕임 이문희 황경순 이연심 표순복 박선희
홍선경 서상옥 김혜경 정량미 김종선 유영숙 박혜경 전병윤 박종은 양선호 김영진 이주리 류인명 김 영 전재욱 한선자 전재승 류희옥 하 송 서지월 홍승우 남서향 고안나 백성일 우정연 이희정 김옥중 임솔내 채 들 최재언 곽문환 송 희
김용옥 김동수 김필영(해설)
초대시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이준관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
새떼들도 밟지 않은 저녁놀이 아름답구나.
사과 속에서, 여름의 村落들은,
마지막 햇빛을 즐기며 천천히 익어간다.
연한 풀만 가려 뜯어먹던 암소는 새끼를 뱄을까,
암소가 울자
온 들녘이 다정다감한 어머니로 그득하다.
지붕 위에 초승달 뜨고,
오늘 저녁, 딸 없는 집에서는
저 초승달을 데려다가 딸로 삼아도 좋으리라.
게를 잡으러 갔던 아이들은
버얼겋게 발톱까지 게새끼가 되어 돌아오고
,목책이 낮아,
목책 밖으로 자꾸 뛰쳐나가기만 하던 하늘은
조금씩, 조금씩 어두워져 돌아온다.
처녀들이 몰래 들어가 숨은 꽃봉오리는
오늘 저녁,
푸른 저녁 불빛들에게 시집가도 좋으리라.
이준관 약력
1949년 정읍 출생. 전주 대 및 고려대 대학원 졸업.
1974『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황야』『가을 떡갈나무 숲』
『열 손가락에 달을 달고』등다수
저수지는 웃는다/유홍준
저수지에 간다
밤이 되면 붕어가 주둥이로
보름달을 툭 툭 밀며 노는 저수지에 간다
요즈음의 내 낙은
저수지 둑에 오래 앉아있는 것
아무 돌멩이나 하나 주워 멀리 던져보는 것
돌을 던져도 그져
빙그레 웃기만 하는 저수지의 웃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긴 한숨을 내뱉어 보는 것
알겠다 저수지는
돌을 던져 괴롭혀도 웃는다 일평생 물로 웃기만 한다
생전에 후련하게 터지기는 글러먹은 둑, 내 가슴팍도 웃는다
유홍준 약력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반시』등단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나는 웃는다』『저녁의 슬하』등
소월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시작문학상 수상
현) 이병주문학관 사무국장
낭독시
법성포 부르스/강명수
바람이 산등성이 아래로 해를 밀어 넣는다
산등성이를 기어오르는 갈대꽃들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허연 갈기를 흔들고 있다
갯벌은 하루의 고단함을 슬며시 풀어놓으며
삐져나온 마지막 햇살을 깔고 드러눕는다
젖어드는 짠 바람 물고
엮어진 굴비들이
어둠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밤바다 휘황찬란한 크루즈를
목 늘여 바라보면서
한숨으로 꼬들꼬들 해져가는 지느러미로 투덜댄다
만찬장에 노릇노릇 구워진 리듬을 선보일 그날이 올 것인지
바다바람이 수놓은 별빛을 쓰윽 끌어당겨
뜬 눈으로 검은 밤의 스텝을 밟는다
강명수 약력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월간문학』 등단
천강문학상(시), 동서커피문학상(동시), 중앙시조백일장(시조)
이메일 주소: ownwe278@hanmail.net
당신의 병실/고양규
산 모퉁이를 돌아온 바람이
당신의 창가에 와서
머뭇거리다 가고
정원의 느티나무 가지를
용케도 비켜온 아침햇살은
고통의 시간마져 멈춰 버린 병실 안
빛 바랜 창틈으로 들어와
당신을 본다.
아직은 꿈을 꿀 수 있는데
사랑했던 가족 마져
온기 없은 당신의 손을 놓고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잊어지는 기억으로 울음을 울고
어쩌다 찾아오는 그리운 사람
당신의 눈물 안에
내 눈물을 담고
또 다른
통곡의 문을 연다
고양규 약력
고창문학회원
미당문학회원
고창군 성내 심원 부안 흥덕 면장 역임
기다림/이충호
산 너머 산 산 위에 또 산
해는 아직 멀리 떠 있는데
그 속에 갇혀 버린 안개
내일 아침이면 걷어낼 장막인가
저녁은 아침에 준비하면서
길 위에서 길을 그리고 있는 나
세월은 물결처럼 굽이져 흘러왔고
사연은 뭉치고 엉켜서 쌓여 왔다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을 기다리며...
이충호 약력
한국외국어대 중퇴
한국 방송통신대 국문과 중퇴
경찰공무원 정년퇴직
숲 속의 꿈/조영철
숲속에 살면
화장도 필요 없고
민낯으로 수면을 보며
응어리진 사연과
한 숨을 녹여낸다
새소리 합창에
삶을 연주하고
또랑물 소리에
귀를 맡기고
맨 몸으로 바위에 서
창공을 노래하며
구름 위를 걷는다
조영철 약력
온글문학 회원 ,미당문학 회원
천리향 되어/ 구순자
보고프다 말만 하고
잠 못 든다 하고서
달랑 옆서 한 장 보내면 그리움만 삼삼할 뿐
보고픔 달래봐도 한숨만 길뿐
달빛 가까이 와서
내 손 잡아 이끄는데
나도야 따라 나서는 말없이
수줍은 마음
한 송이 천리향 되어 그대에게 갑니다
이 몸이 발밤발밤
고개 넘어 더디 갈지라도
그대 창문 달빛 비치거나 바람이 흔들면
보셔요, 달빛 손잡고 그대 가까이 와 있다는 걸.
구순자 약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4년 『대한문학』 시부문 신인상 수상
한국문인헙회 회원
전북문인협회 회원
버팀목 문학회 회장 역임
국제펜클럽 전북지부 사무국장 역임
동박새/ 백동섭
용케도 알고 찾아 왔다
곰소만 물이랑에 밀린 해풍을 타고
먼 이백리 길 찾아 묻고 물어
꽃 잔등 환하게 밝힌 숲 속에서
안기며 반갑게 상봉한다
팥죽 끼얹고 새 집들이 하던 날
부지깽이 만할 때 운호*에서 이사 왔는데
사십년 묵은 정 잊지 못하고
올해는 새끼 두 마리 더 데리고 왔다
이제는 훌쩍 큰 동백나무 두 그루
먼 길 찾아온 친구에게
대접마다 꿀 가득 채워 잔치 벌인다
서해 낙조 물고 온 그 아래에서
오늘 밤은 회포나 풀고 묵어가려나
*운호: 곰소만을 품고 있는 마을,부안 진서면 운호리.
백동섭 약력
전북 완주출생
전주농고졸업
공무원 25년 정년퇴임
온글문학 회원
밭둑에서/호병탁
곱상했지만 손은 거칠었다
밭일 많이 허는구먼
아낙은 얼굴 살짝 붉히며 수줍어했다
야, 자주하는 하는 편이구만유, 좋은게유
그려? 동상은 참 맘씨도 고와 그렇게 고생하면서 포용심도 많고
아이고 성님도,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세유
밤일하다보면 포옹이사 저절로 되는걸유
심심한 뻐꾸기 종일 보채는
찔레 냄새 나른한 봄 한낮이었다
호병탁: 시인·문학평론가. 부여출생. 한국외국어대, 원광대대학원.
18회 표현문학상, 1회 군산문학상.
시집 칠산주막, 평론집 나비의 궤적 등.
괘종소리 / 김 기 화
이사 날짜가 잡히자 아내는 며칠 전부터 커튼과 홑이불, 베갯잇, 소파 덮개까지 차례로 빨아 널었다.
이제 이 한밤을 새면 26년이나 가슴에 풀무질하며 금강계단金剛戒壇처럼 오르내린 이 아파트 70계단 꼭대기 집에서 이사를 한다.
아내는 주방에 앉아 무엇이 또, 그리도 아까운지 밤이 이슥하도록 달그락 달그락 삶의 먼지를 털어가며 남루를 돌돌 말아 싼다.
나는 고요가 쌓인 서실에서 팔을 괴고 앉아 긴 강둑을 해찰하며 걸어온, 때 묻은 날들을 북창 너머 먼 별빛에 헹궈낸다.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합천, 순창, 고창, 김제, 전주 걸어온 길 마디마디 손가락 꼽아보는 아내의 젖은 눈빛이 뎅뎅 자정을 넘어가는 괘종소리에 걸린다.
김기화 약력
1939년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황조마을 출생
1065년 전북대학교 상과대학 상학과 졸업
1998년 경찰공무원 정년퇴임(근정포장. 대통령 표창 수상)
2004년 월간 『문예사조』 등단. 시집『산 너머 달빛』 『고맙다』
온글문학, 미당문학, 석정문학, 경찰문학, 우리시회, 현대불교문인협회, 완주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전북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등꽃/김덕임
모악산 올라가는 길에
쉬었다가는 정자가 있다
칭칭 감은 등나무들이
연보라 꽃들을 늘어뜨려
은은한 향기를 품어낸다
등나무는 혼자 살지 못하고
서로 기대어 산다
한 평생
네 어깨 내 어깨 내어주며
감고 살아온 부부가
구불구불 산에 오르다가
등나무 아래 앉았다
산에 오르지도 않고
두런두런 또 하나의 꽃을 피워낸다
맑은 계곡에서 놀던 햇살이
꽃잎 하나 등에 업고
물 따라 흘러간다
김덕임 약력
전주 출생
국어 국문학을 전공
제41회 여성 백일장 차상
미당문학 온글문학 회원
아득하다는 말 /이문희
그대와 나 사이 깊은 골짜기 있어
이월에서 삼월로 지나는
긴 전쟁 같은 고비의 골목이 있어
길 잃고 해 넘은 언덕
목소리 메아리 되어 돌아올 때
아득하다는 말 있어
아득하다
아득하다의 말 속에는
크고 둥그런 동굴 같은 심연의 바다가 있어
가슴 저리는 마음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뒤란 꽃잎 구르는 소리
낙숫물에 멀어지는 하늘과
산책길에서 만난 도토리 한 알
때로는 낮은 담장을 끼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중절모자 같이 희미해지는 것
그렇게 불현 듯 일어나는 바람 같은 거라
잡으려면 이내 빠져나가고 마는 것
고요히 저녁 빛을 불러 모으듯
무릎을 그러모아 얼굴을 묻어본다
전생을 두고 온 그날처럼
**이문희 약력
전북 전주 출생
계간 『시와경계』2015년 봄호 신인우수작품상으로 등단
미당문학제 백일장(차상) 전북여성백일장(장원) 의정부문학상
전북시인협회 회원 전북작가회의 회원 ,온글동인, 미당문학 기획위원
아중 湖/황경순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바이러스가 퍼렇게 꿈틀댄다
청둥오리 쇠물닭 낳아 기르는
그녀, 오늘도 분만중이다
억세어진 물갈퀴가 가르어도
찢어지지 않는 가슴팍
생살을 찢고 나온 물푸레가
어깨를 그러모아 그림자를 품어안는다
백신도 막지 못하는 출산 바이러스
사철 마르지 않는 물푸레 빛 양수
물주름 겹겹이지만 결코 늙지 않는
그녀의 자궁
골짜기를 드러내지 않는 저수의 숲에서
풍덩, 홀로 깊어간다
황경순 약력
2011년 『시선』 등단
2011년 『물의 나이』 시집 발간
제1회 온글문학상, 산림문화상, 펜아시아 백일장 장원
온글문학 회장 역임
눈부신 동행 /이연심
꽃봉오리에
찰랑거리는 햇빛
그 밝은 기운으로
추억하는 환한 봄빛이여!
새벽녘
하늘 문 열리면
봄은 깊어가고
꽃망울 터지는 소리
온 동네 축제이거늘
또다시
봄이 떠남을 염려한다.
지난한 삶에
늘 봄 기운 흐르라는
염원 염원이 모여 피어난다
.짧은 날들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눈부신 동행이여!
이연심 약력압화 작가복지 원예사토탈공예 강사아로마 전문 관리사
서울 노들공예대전 장려상(압화부문)
벚나무 /표순복
60년을 살고도
아픔을 모르는 나무
기다림 속에 사월이면
튀밥 튀듯 터지는 하얀 축제
일 년을 웅크려
봄을 피워냈지만
열흘을 살고 지는 품 안의 꽃
상처 나고 옹이 박혀
까맣게 변한 몸통
오늘 따라 비 내리고
물러설 수 없는 노목
몸으로 빗물 받는다
내 삭신도 덩달아 쑤시고
성한 듯 성하지 못한
제 몸의 살과 뼈로
60년을 살면서
아프지만 정성스레
가지마다 몽실몽실 부푸는
꽃잎 꽃잎
내 아비의 바람 같구나
표순복 약력 : 월간 『한국시』 신인상 등단
서울시인상, 고창문학상 수상
고창문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 『특별하지 않은 날의 주절거림』
감자/박선희
삶아 내온 감자의
포슬포슬한 서슬이 시리다
아주 오래 전 너와 걸었던 눈길
그 길이 감자 사이로 나 있어
분이 오른 감자를 들여다본다
바람이 시래기소리를 내며
몰려다니던 저물녘
너의 마을이 가까워오고
나무판자가 잦은 기침을 해대던
옛 정미소였던가
스뎅 대접의 막걸리에
이 시린 두부 한 접시
신 김치에 찌푸려지던 미간도
미소를 자아내던 그날
갓 삶은 감자 분 같은 눈이
들판을 덮고
나란히 걸어온 발자국을 덮어
지나온 혼자 모두 지워져
나무판자 정미소마저
통유리 건물로 메꾸어진 자리
삶은 감자의 하얀 서슬에서
그날의 눈길이 보얗게 인다
박선희 약력
남원에서 태어남
효성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미당문학』으로 등단
미당문학 기획위원, 남원 솔바람 권역 근무
사랑방진료소
- 김영란법 첫날
홍 선 경
김영란법 실시 첫날
산 너머 포구에 사는 벙어리 현문 씨
많이 잡았다며 백합 한 소쿠리 내민다
물 먹은 보리가마니마냥 몸짓이 둔해지고 머릿속이 시끄럽다
알이 굵고 실한 것이 초고추장에 발라 한 입......
값은 얼마나 나갈까?
삼만 원은 넘것는디
요런 것이 다 사람 사는 정인디 말이여
어따 모르것다,
머루 따 먹은 곰맨티로 왼눈 깜짝 안하고 받아먹어 버려
아니여,
시세 모르는 하루살이마냥 그러다가 워쩔라고
벼락 떨어질 줄 암시롱 고목 밑에 있을 수는 없잔혀
아따, 아무도 안 봤잖혀
결정적으로 현문 씨는 말을 못하니께
구름 끼어 있는디 달이 보이것써
홍야홍야 타시락거릴 것 없어
이 새, 저 새해도 먹는 새가 젤인께.
홍선경 프로필
간호문학상 수상(2014년 시 부문)
미당문학 감사 및 고창문학 회원
고창군 상하면 자룡보건진료소장
꽃무릇 연정/서 상 옥
애틋한 그리움 치솟아
불꽃 튀는 사랑으로
땅 깊이 뿌리 맺고 하늘 향해
붉은 정열 태우나보다
나뭇잎새 풀벌레 소리
초록빛 이슬 먹어 치켜온 넋
기다림에 지쳐 사라져 갈 때
못내 아쉬움으로 찾아온 연정
활활 타오는 가슴 열어
산자락 화사하게 덮여 와도
한줄기 꽃무릇
외로움으로 남는다 - 고창 선운사에서
서상옥약력
원광대학교법대졸업.
월간 『韓國詩』등단(2009). 『대한문학』등단(수필)(2009)
『백두산문학』등단(시)(2010) 백세시대신문주최 시 분야 장원(2008)
상공부장관상(1983)전라북도 교육감상(1992) 국무총리상(1999)
『꽃무릇 연정』 『사랑과 그리움이 메아리쳐 올 때』 등 다수
요강바위/김혜경
연분홍 꽃잎에 홀려 한참을 따라들어
깊은 산 골짜기 자궁 같은 마을 있네
장군목 그 한가운데 들어앉은 바위 하나
새각시 꽃가마에 넣어온 요강이었네
구름자락 들추고 일보는 만삭의 달
강물은 흐벅진 궁둥짝을 은근쩍 치고 갔네
오백 리 굽이돌아 남녘 촉촉 적시는
천년을 퍼내도 마르지 않을 저 강물
밤마다 속곳을 내린 울 할매 오줌발이네
*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섬진강 상류에 있는 바위.
약력 : 2015년 『시조시학』으로 등단
현재) 한자 강사
아담에게/정량미
자, 이제 에덴에 가기로 해요
아직도 내 입안에 남아 있는 “금단의 열매”
당신의 갈빗대가
가끔씩 나를 괴롭혀요
깊고 따스하면서
차가운 당신의 손은
나의 밤을 지배를 하니
여전히 나는 당신의 여자예요
몹쓸 그 뱀이 교묘한 시간으로
당신과 나 사이에
흐르고 있어요
어서 배를 띄워요
재빨리 노를 저어요
성스러운 기도문 외워
다시 열린 낙원에
아무도 들이지 말도록 해요
우리
정량미 약력
1970년 출생
2015년 5월 『동방문학』으로 등단
현 미당문학 회원 , 온글문학 회원, 온글 편집장
패/ 김 종 선
푸른 오월
한 나라를 이끌
일꾼을 뽑는 바둑
불꽃 튀는 끝판 싸움
판세는 흰 돌로 기울고
검은 돌 던지려는 찰라
둥그나무 잎새 흔들어
맘얼 깨우친 바람소리
문득 번개처럼 떠오른 묘수
다 이긴 듯 빈틈을 보인 흰 돌
금세 돌의 생사가 걸린 승부 패
기찬 패싸움 비춰 보려는 해님
그늘을 옆으로 살며시 밀었다.
김종선 약력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미당문학회 이사
전북문인협회 이사
전북시인협회회원
잃어버린 하루를 찾습니다/유영숙
진하게 마신 커피 탓일까
잠이 오지 않는다
박차고 일어나
제쳐두었던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양손에 들고나갔다
누군가의 하루가
우리 집 계단에 앉아 있다
쪼그려 앉은 하루
선뜻 일어서지 못하는 정리 안 된 하루
비켜 달라는 말 대신 되돌아와 앉으니
비워진 찻잔의 받침 위로 또 다른 이의 하루가 머문다
요사이 들여다보지 못한 나의 하루,
겨울 산에 오르고 나서야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며 가지를 뻗는 나목을 보았고
나목의 벗은 몸 사이로 비켜 다니는,
귀가를 머뭇거리는 나의 하루를 보았다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담겨 묵혀지는 게 싫은 나의 하루는
이미 오래전에 가출한 상태이다
현관문을 열 때 따라 들어오지 못한 나의 하루를 찾는다
내일은 신문사에 전화해서
비워내야 할 나의 하루를 찾겠다는
전단지라도 배포해야 할까?
유영숙 약력
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 회원
미당문학회 회원
데이드림 /박혜정
슬픔 한 움큼을 들었다 놨다
구름 한 자락을 쥐었다 폈다
네브라스카 지평선을 한 바가지 퍼서
마다가스카 바오밥나무를 흠씬 적시고 나서야
스르륵 풀려가는 고삐
와르르 무너지는 멍에
입춘 지나 춘분이 왔건만 갈 줄 모르는 찬바람
펄떡 뛰는 개구리 뜀박질을 보고서야 놓으려나
헐벗고 장대처럼 크기만 한 나목에 성급히 드리운 낙엽
본다이 비치의 해변에서 모닥불을 펴고 날리는 하얀 연
밤톨이 외톨이의 외침도 허망한 웅변이 되는
그런 이상하고 야릇한 어느 날의 한낮의 꿈
박혜정 약력
1970년 고창 출생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고창영어체험학습센터 근무
2016년 꽃무릇 시화전 특별상 수상
한국 문인협회 고창지부 회원
미당문학회 회원
소리고운 나팔꽃으로 피어나자
전병윤
밤하늘 별을 깨우는 저 소리, 소쩍
어둠 헤치고 사리문 밖까지 찾아와
내 가슴 두드리는 소리, 소쩍
울어라 더 아프게
너와 함께 이 밤을 새우자
슬픈 날 밤에 맺힌 이슬이
아침 햇살에 더욱 빛난다더라
그 때 마냥
손톱엔 봉숭아가 물들고
노을 빛 고운 날 밤이 오면
소쩍, 소쩍,
그대가 부르는 소리에
내 심장은 지금도
부정맥으로 절름거린다
저 별들
마주보는 눈빛 저렇게 초롱 한데
손잡지 못한 너와 나는 누구냐
한 밤 내내 소쩍새로 흐느끼다가
내일 아침엔
소리 고운 나팔꽃으로 피어나자.
전병윤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졸업.
진안문협 초대회장 역임.
1996.3. 『문예사조』 신인상수상 등단
전북문협 부회장역임. 전북시인협 부회장역임. 미당문학회이사
수록시
선운사 동백꽃
박 종 은
선운사 뒤꼍에 동백화는
저절로 핀 그냥 동백꽃이 아니라
송이마다 화불花佛이라
천년 목탁소리와 조석 예불로
은하의 수많은 별처럼 피어난
붉은 가사가 잘 어울리는 삼천만 불
꽃 중에 화불花佛이라
복전이 무슨 필요 있으랴
대자대비 붉은 미소 가득한 생불이라
눈빛 진하게 마주 부딪치다가
숨이 꽉 막히게 가슴 가득 따 담으면 되지
선운사 뒤꼍에 동백화는
묵언의 말씀 사철 푸르게 펄럭이는 잎들의
기도로 피어난 화불花佛이라
박종은 약력
전북 고창 출생
고창교육청 교육장(역임)
미당문학회 수석부회장, 고창예총회장,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시집『카이로스』등 7권, 산문집『캥거루키드와 셀프키드』등 2권 발간
영랑문학상, 전북문학상, 고창군민의 장(공익장) 수상
감을 따면서/양선호
파란 물이 흐를 것 같은 하늘
흔들리는 잎사귀 사이로
붉은 대봉시가 묵묵히
바람 소리를 듣고 있다
긴 여름을 이겨낸 감
아내와 함께 땄다
세월이 내려앉은 저녁노을
둘아 보니 이제 감이
나를 따고 있다
양선호 약력전주 출생미당문학 이사온글문학회원
천변을 거닐며/ 김영진
끼룩끼룩 청둥오리 떼 날아드는 겨울
서해안 바닷가 돌무더기 밭에서
묵직한 암컷 한 마리를 붙잡아 왔다
둥글 납작 주둥이에 머루 알 까만 눈
파닥파닥 뜨거운 가슴으로 날개 짓 하는
‘저걸 어떻게’ 하다가
눈 딱 감고 토막을 내어 고추장을 발랐다
잊혀 질 만하면 그 놈이 찾아온다
바윗돌 아래 백사장에 앉아 빤히 바라본다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다
순수 한 마리 통째로 먹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입 씻고 살아간다
하늘 보고 미안하다 치면 땅을 보고
땅을 보고 염치없다 치면 하늘 보고
일 없다는 듯 하늘 보고 땅을 보고 산다
어느 때 부터인가 숭숭 깃털이 돋아난다
바람이 일고 날아갈 듯 날개 짓 해보지만
몸이 무거워 비상할 수 없다
머리 들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다
무거워진 몸으로 지상에 묶일 수밖에
그마저도 뒤뚱뒤뚱 자유롭지 못하다
슬쩍 바꿔먹은 양심이
돌아 갈 수 없는 자유 되어
지상을 배경으로 천변을 걷는다
김영진 약력전북 익산 출생, 시집 『주님 찾기』로 작품활동 시작, 목포문학상 신인상 수상 등단한국문인협회회원, 전북문인협회 회원, 전북시인협회 회원, 미당문학회 회원, 석정문학회 회원시집 『주님 찾기』, 『내 마음의 수채화』, 『나무들이 사는 마을』, 『타지마할의 눈물』, 『여섯 시 반』hhkyj@chol.com
밤의 소묘 / 이주리
밤은 모든 형용사를 제외시킨다
밖은 주어와 동사의 세상
그것으로 그들은 역사를 쓴다
설사 하루의 노을이 스러져도
창을 경계삼아 침략처럼 오는 침묵의 빛깔위에
오롯이 앉아있는 하루 분량의 자존심
이주리 약력
2006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9 『현대시문학』 당선
현대문학수필작가회 회원
미당문학 편집위원
시집 『도공과 막사발』
오월
류 인 명
오월은
산도들도 신록이 파도를 친다
겨우내
칼바람과 맞서고 있던
저 허연 설산이
다시 초록의 옷을 갈아입고
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뒷산에 뻐꾸기
한바탕 울고 나면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들녘, 어디쯤에서
장끼 한 마리 목울대를
길게 뽑아 올리고
세상을 향하여
내지르는 소리
오월은
한 그루의 고목도 초록이 된다.
류인명 약력
전북 부안출생
98년 전북지방경찰청에서 정년퇴임
2006년 『한국시』 로 등단
시집 『바람의 길』 『둥지에 부는 바람』
전북문협, 전북시인협회, 경찰문학,현대불교문인협회, 온글문학 회원
비로소 궁극
김영
모래 먼지 속
아홉 시간 달려왔는데
이곳이 바다의 바닥이라 하네
갓 구운 토기처럼 즐비한 모래언덕들
여기도 바다의 바닥이라 하네
깊어지고 깊어져 깊이를 여읜
이를테면
바다의 내일이 사막이라 하네
낙타풀이 가시를 기르는 것도
바람이 제 발자국을 키우는 것도
오늘의 바닥을 감싸 안는 일이라네
재빨리 모래 속으로 잠적하는 도마뱀도
한사코 달에 스며드는 빗방울도
어제의 그늘을 돌아보는 것이라네
허실삼아 달을 살짝 건드려보면
좌르륵 바닷물이 쏟아진다네
개미, 메뚜기, 딱정벌레가 드나드는
깜깜한 기억들, 어둠 속에 떠오르는 저걸
굳이 달이라 해야 하나
저 언덕은 저 혼자 굴러서 지금에 닿았다네
이 빗방울은 여기에 스며서 맨발로 바다까지 걷는다네
이걸 굳이 모래언덕이라고 해야 하나
김영/ 약력
김제예총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집 : 『눈 감아서 환한 세상』 『다시 길눈 뜨다』 『나비편지』
수필집 『뜬돌로 사는 일』 『쥐코밥상』 『잘가요 어리광』
이메일 주소 : say-amen21@hanmail.net
눈이 내린다/전 재 욱
천지가 고요하다
가진 것도 아는 것도
하얀 눈이 되어 내린다
뜨거웠던 내 가슴도
홀로 서있는 풀꽃처럼
때론 낯선 짐승처럼
떨고 있는
가녀린 알몸
하얗게 눈을 맞는다
전재욱 약력
전북 부안 출생
전남대 행정대학원 수료
전) 국토교통부, 익산지방국토관리청 근무
공무원 창안상, 대통령 표창 등
공무원 문예대전 입선, 『한맥문학』등단
온글문학회원, 전북문인협회회원, 전북시인협회회원
시집 『 민들레 촛불』
산벚꽃을 보며 / 전 재 승
황사 바람 부는 봄날
가까이 또는 멀리 보이는 산에
산벚나무 여기저기 꽃을 피우니
가뜩이나 흐린 풍경이 환하게 밝다
쉰 살에 접어들면서
머리털이 약쑥같이 희어진다는 옛말처럼
내 머리에도 산벚나무 꽃이 피었다
거울 속의 시간과 공간을 상깃상깃 밝히면서
하얗게 세어가는 머리칼을 보며
저만큼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해 본다
산벚나무 연분홍 꽃을 피워
봄 한철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나이 오십에 공자는 천명(天命)을 알았다는데
어쩌다 밤잠을 못 이루며 뒤척이는 밤에
내 영혼도 저리 환한 꽃을 피울 것인가
산벚나무 가지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 약력
1986년 월간『시문학』 추천으로 등단
제9회『문학과 의식』신인상 수상
CBS 문화센터 강사
계간『문학과 비평』편집장을 거쳐 편집인 역임
시집『가을詩 겨울사랑』『푸른 시절의 노래』『휴전선 철조망』등
바람
류희옥
천 년을 깃 쳐도
늙지 않는 휘닉스
모양이기를 거부한 채
떠돌이 넋이 되어
어디를 가 보아도
한 걸음 앞서
어느 조각공원에서
너는
나의 눈길이 닿기도 전에
비너스의 보드라운 곡선을
더듬으며 있었고
바닷가
모랫벌을 거닐 때는
의문에 부풀은 어린아이가 되어
버려진 소라고동 속을
휘돌기도 하다가
물비늘을
세웠다 뉘였다
정염의 힘줄이 솟으면
거대한 물기둥을 뿜기도 했지
그리고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무인도 숲속으로
잎새 하나
돌이끼 하나에도 맥박을 짚어
식어가는 가슴에
불씨를 찾아내고
밤낮없이 시간의 빈터에서
5할의 탄생과
5할의 소멸로
질서 정연한 움직임 속에
꽃잎 피는 和音
헤겔의 변증법을
읽어내리고 있다.
류희옥 약 력
1989년 월간 『시문학』데뷔
한국문협,전북문협,두리문학 등등
전북문학상 수상
민들레
하송
길가에 민들레 피었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눈총을 맞아
어깨에 피멍이 들고
허리는 반쯤 굽었다
민들레는 알고 있다
한 송이 꽃을 피우는 일은 멍에를 쓴 소가
길 위에 발자국을 찍는 일이라는 것을….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삶의 치열한 존재에 귀결될 때
특별한 존재가 된다
눈치 빠른 꽃들이 앞 다투어 피는 날에도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밟히고 밟힌 꽃대궁을 일으켜 세워
어느 날 꽃 한 송이 피워
바람 좋은 날 이 세상 홀연히 떠나면
비로소 꽃으로 대접 받는다
하송 약력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공문원문예대전 행정안전부장관상 수상
향촌문학회 학생시조백일장 지도교사상 수상
대한민국사회봉사대상 수상 외 다수
동시집 『내 마음의 별나무』 동화『모래성』 등 다수
미당은 가고 뻐꾹새는 우는데
서 지 월
미당은 가고 뻐꾹새는 우는데
고추장에 밥 비벼 먹던
옛날의 그 얼큰한 뻐꾹새는 우는데
도라지 밭둑에 않아
영 너머 흘러간 구름 바라보던 누이
그 구름 다시 오지 않듯
영 너머 간 누이도 돌아오지 않는데
뻐꾹새는 울어 온산이 몸살 앓는데
아,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 위에 뻐꾹새는 우는데
청산은 그대로 뒷짐 지고 듣고만 있는데
*미당:시인 서정주선생님의 호.
서지월 약력
1955년 대구 달성 출생.
1985년『심상』,『한국문학』 시가 당선되어 등단.
중국『長白山文學賞』수상. 연변『시향만리문학상』수상.
연변과기대 및 평양과기대 총장으로부터 중국 연변「민족시문학상」수상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공동의장.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풀잎/홍승우
처량한 풀이 되고 싶다
도처에 구름 한 점 머물고
슬픈 절망 또한 날아오르니
날개를 달아 현재 있는 곳
쓰러짐이 있는 황홀한 순간
젖어 있는 노래의 끝까지
풀잎의 한 잎까지
오직, 위장을 하지
풀잎에 감기는 이 시대의 오해
또, 복수
그대, 눈물의 왕자
눈물방울 떨어뜨리어 머리칼을 쥐어짜면
가위로 우리시대의 사랑을 잘라내고
이유를 묶어두고 까닭을 흔들면
세월을 때리는 빗방울은 풀잎에 묻어 반짝인다
홍승우 약력
1955년 경북 경주시 안강 출생. 본명 홍성백.
계간『동서문학』신인작품상에 시 <새>외 4편 당선으로 등단.
시집『식빵 위에 내리는 눈보라』(나남) 간행.
「한민족作家賞」본상 수상.「연변 시향만리문학상」수상.
대구시인협회 편집국장, 대구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역임.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상임위원장. 미당문학회 대구지회장.
어머니/남서향
초록치마 노랑저고리
그대는
누구신가요
동 터오는 새벽길
이부자리 접으시고
물동이 이고 물 길러러
가시는 발자국 소리
돌아오는 길목엔
아침이슬이 눈부셨지요
오늘은
쓴 웃음으로 파란 달개비꽃 바라보며
눈물자국 지으시더니
달님을 보며 말 없으시네
돌덩이 끌어안은
고향집 돌담 아래
초록치마 노랑저고리
각시붓꽃 되었네
그린 듯 고운 얼굴
우물물에 비춰질 때면
나는 엄마 엄마 불러보네
남서향 약력
1964년 경북 영천 출생.본명 남선희. 대구대학교 도서관학과 졸업.
호미곶 문화예술제 운문부 최우수상, 백산여성문예상 시부문 우수도자기상 수상.
영양 조지훈문학제 시부문 우수상 수상. 통도사 전국꽃시축제 금상 수장.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상임시인. 대구시인학교 문화부장.
미당문학회 대외협력 이사. 대구 LAONZENA HOTEL 라온뷰티센타 운영.
붉은 相思花/고 안 나
바람이 써 내려가는 주홍글씨
핏자국으로 더욱 붉어져천 개의 꽃으로 출렁인다
낱낱의 실핏줄
아프게 터트리는 어긋난 사랑
감당할 수 없어 긴 목젖 멍울져 갈 때
맹렬하게 저항하던 붉은 입술
비수처럼 타는 목마름, 피빛이다
바람아
가슴에 낙관을 찍어라
나는 붉게 멍든 사랑을 가졌다
고안나 약력
시인. 시낭송가.한국오페라교육문화진흥원 추진위원.국제에이즈 연맹 한국 홍보이사.부산시인협회 회원. 모닥불문학회 부회장. 한국낭송가협회 전문시낭송가로 활동.
노을 /백성일
서녘 하늘 붉게
이글거리는 노을
아무도 모르게
한 바가지 퍼담아
늦은 저녁나절
울타리 물주는 내 님
손톱을 슬쩍 담갔더니
봉숭아 꽃물
붉게 물들었네
백성일 약력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2017년 현재 : 주식회사 대성무역 회장
김영삼 대통령: 신한국인 선정
대통령인증 패 수상
노태우 대통령: 수출의 탑 수상
대통령표창장 수상
흔적 2/ 우정연
흔적이 사라집니다
살아서 죽었고 죽어서 흔적이었던
그들이 조금씩 나눠집니다
물속으로 땅속으로 햇살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진 그들이
어느 순간 꽃이 되기도 합니다
흔적은 사라진 게 아닙니다 흩어진 듯
또 한순간 오묘한 빛이 되기도 합니다
애써 머물려 하지 않는 그들은
물 흐르듯 다시 이어 갑니다
그렇게 섞이고 섞인 흔적이 새 생명을
잉태합니다
이슬 받으며 별빛 받으며 바람 사이로
태어납니다
흔적은 또 다른 흔적이 되기 위하여
한 걸음씩 물러서 있을 뿐입니다
나도 한때는
누군가의 흔적이었습니다
우정연 약력
전남 광양 출생
2013년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송광사 가는 길』
woojy926@hanmail.net 핸폰 010 2630 0366
주소/ (57936) 전남 순천시 삼산로 103-13, 103동 607호 (용당 삼산현대아파트)
여름밤 /월암 이 희 정
반딧불이
여름밤을 유혹해도
밤은 변함이 없다.
개구리 울음이
온 마을을 덮어도
싸리문 옆 살구나무 그림자
달 가는 것만큼 움직인다.
벼 포기 살찌며 풍기는
흙냄새
우주를 포옹하는
어머니의 향기인가
밤이 있어 별이 빛나고
고향이 있어
그 속에 아직 내가 있다
이희정 약력
중등교장 퇴임
2003년 시집『어름밤』발행으로 등단
한국시인협회원
온글문학회 명예회장
미당문학 부회장
낭떨어지 뜰에서/ 김옥중
한 생으로 꾸린 집,
그 벼랑 붙들고 터로 다져서
집 짓는 사연에 손 모으니
바람에 이기는 물결이랑
샛별에 달린 그믐달 받아다가
비탈에 한껏 주춧돌로 돋우니
샌 바람 따라 창틀 맞추자
해풍은
장난감으로 일삼아 만지작거리니
로봇 공룡에 한 뜰 맡겨주자
바람은
피노키오네 장난감 깎는 듯이
이마저 노리개처럼 굴러대니
태초로 지금까지 스치는 듯이
3D 안경에 공룡 알 앉힐 때
해무는 제 것인 양 품으러 오니
바다 것 건져보자 하며
한 발 다가서는 낭떠러지 뜰에서
김옥중 약력
전북고창출생
교원 정년(2016년)
계간 『열린문학』 신인상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무화과』 새만금씨네 나문쟁이』 『가을 끝의 손님들』
사월에/ 임솔내
갔다가 다시 온 꽃잎
세상에나
그리움의 답은 저런가봐!
임솔내 약력
『자유문학 』 등단,문화 칼럼니스트
시집 『나를 바꾼 두 번째 남자』, 『잠을 깬 아마존의 함성』 외 다수
한국문학비평가협회상,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
플라타너스 혀
채들
플라타너스는 혀를 자른다
바람 부는 대로 내 뱉었던 말
쓸어 모아 태울 수 없어
세상 화끈 달아오르도록 나부낀 죄 물어
스스로의 혀를 자른다
잘라낸 뒤에도 흙이 되라고
뿌리 없이 나뒹굴어 다니는 말들
닿는 대로 발등에다 누이고
찬찬히 삭인다 그럴 때마다
나이테 한 살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징소리
벙어리매미처럼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가슴에다 새긴다
한 잎 허물도 삶의 밑거름 되어야
온전히 나무 될 수 있다
오는 봄날, 푸르른 제 혀 내밀 수 있다
채들 | 2005년 《불교문예》로 시, 같은 해 《월간문학》과 새벗문학상으로 동시 등단.
시집 『허공 한 다발』과 어린이그림책 『복숭아씨 하나』가 있음.
어머니는
최재언
밤새 소복하게 내린 눈 위에
내 발자국 살며시 남기는 일은
하늘에 아주 미안한 일이다
봄볕이 드는 날, 나들이 다니다가
새초롬한 새순을 짓밟는 일은
쉬엄쉬엄 다가온 봄날을 겨울이라고
착각해서다
어머니는 집을 짓고 씨앗도 뿌린다하여 전부를 내주고
가물가물한 요양병원이라는 이름이 따라온다
짓밟혀 시퍼렇게 쏟아내는 눈물이 들려오고
잘려진 마디에 몸서리치도록 호소하는 아우성에도
어머니는 끔벅끔벅 눈물만 내리신다
새 한마리가 나뭇가지를 흔들고 날아간다
최재언 약력
2006 고창문협 입회, 『문예사조』 등단
2014 한국문협 회원 ,2015 전북문협 회원
2014~2016 고창문협지부장
2015년 미당문학회 창립 총무국장
고향
곽문환
萬頃江
긴 소매자락
얼룩진 밤
잊고자 울며 지대던 물새.
댕기머리 따은
풀각시 적삼
속갈피에선 연신
선지 빛 향내만 묻어났다.
곽문환 약력
중앙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시문학』 추천 완료
시집 『형상시초』 『천수동 시』 등 다수
시문학상, 영랑문학상, 중앙대문학상 등 수상.
펜문학 주간 역임, 은평문화원 부원장 역임
현)은평구, 송파구, 서대문, 시립대 시민대학에서 시 창작 강의
봄볕에 투망을 치다/송희
봄볕이 지글지글 끓는 망망 들판에 휘익! 투망을 던졌습니다
첨벙 나도 머리꼭대기까지 빠졌습니다
뾰족뾰족 둥글둥글 넓적넓적한 볕알들이 그물 가득
파닥거렸습니다
들이 노골노골 풀리는 것도 두렁에 늘어진 소처럼 내개 납작 익는 줄도 몰랐습니다
사방 들꽃 얼굴이 실룩실룩 넓어지는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살과 뼈 사이, 생각과 가슴 사이, 그물과 나 사이
흐룰흐물 물길이 났습니다
햇빛도 물길에 빠졌습니다
아, 내 몸 거의 물인 것을요 깜빡했습니다
그동안 물소릴 놓치고
어느 구석 단단한 모서리로 있었던 것일까요
아무데나 툭툭 불거진 이 정신들을 갈아엎습니다
송희 약력
1996년 자유문학 등단
시집 ᆞ『탱자가시로 묻다 』 『설레인다 나는 썩음에 대해』
가족치유명상집 ᆞ『사랑한다 아가야!』
전)전북시인협회장 역임
현)전북문인협회 부회장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이사
명상힐링 치유가
밥숟가락
김용옥
밥숟가락은
비워 있어서 밥을 뜬다
그리고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하여
비워진다
너는,
누구의 밥숟가락이냐
김용옥 약력
시인, 수필가 ,1948년,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시문학』 등단, 시집 『누구의 밥숟가락이냐 』등 다수
수필집 『관음 108』등 다수
작촌문학상 등 수상
초대시
허공의 벽/ 김동수
허공에도 벽은 있다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도
벽은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얼굴을 내민 여린 새싹들도
시방 저 무거운 허공을
밀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온 힘 다해
땅을 박차 일어서고 있는 중이다
초원에서 갓 태어난
누우떼 새끼들도
포식자들의 피 냄새를
온 몸으로 맞서
그의 전 생명줄
허공의 벽을 밀어 올리고 있다
두려움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
살아 있음이 벽이고 허공이다.
김동수(金東洙)
. 전북 남원 출생
. 월간 『詩文學』으로 등단(1981년)
. 시집 『말하는 나무』,『그림자 산책』등 8권이 있음
. 시문학상, 한국비평문학상, 대한문학상, 조연현문학상 수상.
. 현재: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미당문학』 발행인
. kitosu@hanmail.net
김동수의 시 <허공의 벽>
-살아있는 존재의 숙명적 항체를 통찰한 우주론적 詩學-
김필영(시인)
허공(虛空)은 사전적 의미로는‘텅 빈 공중’이며, 거지중천(居之中天), 공명(空冥), 공중(空中), 요확(蓼廓) 등 유사의미로 인식된다. 종교[불교]적 해석으로는‘다른 것을 막지 아니하고 다른 것에 막히지도 아니하며, 물(物)과 심(心)의 모든 법을 받아들이는 본체’를 뜻한다. 그런데 그 허공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김동수 시인의 시선(詩線)을 따라 허공을 탐색해본다.
망원경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가시권 내의 허공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무수하다. 대기권 밖의 광활한 공간의 은하와 뭇별들, 태양계의 행성들은 신비롭다. 지구의 대기권 내 땅과 하늘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도 실로 무한하다. 보이지 않으나 분명이 존재하는 공기나 각종 전파, 공기 속에 서식하는 세균 등과 눈으로 볼 수 있는 구름이나, 안개, 흙에 뿌리를 박고 선 온갖 초목들, 허공을 날아가는 조류 등도 그 실존의 근원을 헤아리기엔 인간의 학문의 깊이가 척박하다. 시는 굵은 획으로 그 허공에서‘벽’이란 화두를 제시한다.
첫 행은“허공에도 벽은 있다.”라고 시작된다. 가시적으로 빈 공간에 화자는 ‘벽’이 존재함을 알리며, 심지어“하늘을 나는 새들에게도 벽은 있다”고 주장한다. 그 벽은 어떤 벽일까? 화자는 망설임 없이 바로 다음 행에 “살아 있음이 벽이고 허공이다.”라고 알려준다. 이 표현 그대로라면 ‘벽’과 ‘허공’은 이명 동의어인 셈이다.
화자는 허공 가운데 또 다른 사물을 소개한다. 그 사물은 허공이라는 광활한 존재에 대조하여 너무나 작은 “겨울을 지나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얼굴을 내민 여린 새싹”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발견(주장)이 펼쳐진다. 새싹이 “시방 저 무거운 허공을/ 밀어올리고 있는 중이다.”라는 파격적이고 초월적인 묘사는 놀랍다. 시각적 범위에서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새싹’과 ‘허공’의 힘의 대치상황은 우주론적 시각(詩覺)이 아닌 지상에 발표된 지식과 학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어지는 행간에서 화자는 새싹의 웅거(雄據)를 “온 힘 다해 그의 전 생애를 걸고/ 땅을 박차 일어서고 있는 중이다.”라고 함으로 생(生)이라는 거대한 사유를 ‘허공을 밀어 올리는 새싹의 존재’ 즉 ‘허공’이라는 ‘벽’을 밀어 올리며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생명의 존재에 대한 웅대한 의미를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새싹과 허공의 대조법은 ‘유한과 무한의 격차’였다면 이제 시는 또 다른 사물을 허공의 공간에 대치시킴으로 독자의 심장을 두드린다. “초원에서 갓 태어난/ 누우떼 새끼들도/ 포식자들의 피 냄새를/ 온 몸으로 맞서”는 장면을 행간의 무대에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극한의 대치에 대한 의문 역시 다음 행간에 “그의 전 생명줄/ 허공의 벽을 밀어 올리고 있다.”고 함으로 ‘갓 태어난 누우떼 새끼와 포식자인 맹수의 대조를 통해 약육강식이라는 자연계에서의 ‘생명과 죽음’이라는 극한적 대치상황이 ‘허공의 벽’을 밀어 올려야 하는 살아있는 존재의 숙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마지막 행간에 경전의 한 구절 같은 “두려움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라는 영탄조의 자문은 살아있는 존재가 지녀야할 기본덕목인 겸손과 분수를 알려준다. “살아 있음이 벽이고 허공이다.”라는 결구의 ‘벽’과 ‘허공’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숙명적인 ‘항체’임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