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1. 19세기 러시아는 혼돈의 시기였다. 서구의 급진적 사상의 도입과 함께 그것을 추종하는 서구주의자들과 러시아의 전통과 종교를 중시하는 슬라브주의자들과의 갈등이 점점 고조되던 시대였다. 사상의 대립은 근본적으로 러시아 사회를 지배하는 차르체제에 대한 인식과 농노제도를 통해 벌어지는 인간에 대한 착취와 해방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기도 하였다.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은 1860년대를 배경으로 구시대의 사상적 관점과 새로운 세대의 도전과 충돌을 사회적 배경을 통해 그리면서 인간의 보편적 지향점을 탐색한다. 그의 시선은 제도의 변화를 통한 급격한 현실의 개조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따뜻함과 생명에 대한 존중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2. 지주의 아들 아르카디는 니힐리스트라고 자처하는 친구 바자로프와 함께 고향을 방문한다. 그 곳에는 상처한 아버지 니콜라이와 독신으로 살고 있는 큰 아버지 파델이 있다. 니콜라이는 따뜻하고 자연에 공감하는 성품이라면, 파델은 냉정하고 신념에 가득한 자유주의자이자 전통적 가치를 준수하는 인물이다. 그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충돌한다. 충돌의 중심에는 바자로프와 파델이 있다. 파델은 서구 사상에 영향을 받은 니힐리스트에 대해 “아무 것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폄하한다. 반면 젊은이들은 니힐리스트가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보며 어떤 권위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무리 존경받는 원칙이라도 그 원칙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3. 이러한 인식 차이는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원칙에 대한 견해 차이로 발전한다. 라자로프는 원칙이 아닌 개인의 선택적 자유를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가 유익하다고 인정하는 것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부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유익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정하는 겁니다.” 하지만 파델의 견해는 다르다. “귀족주의, 이것은 하나의 원칙이며 우리 시대에 원칙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도덕이 없는 무뢰한이나 속이 텅 빈 시시한 인간들뿐이라는 거요,” 대립과 견해의 충돌이 이어지자 결국 파벨은 “요즘 젊은 것들은 건방지기 짝이 없어”라고 결론내린다.
4. <아버지와 아들>은 러시아 사회를 갈등으로 몰았던 사상적 대립과 함께 오랫동안 러시아 사회의 핵심이었던 ‘농노제도’의 현실적인 붕괴를 그려낸다. 농토는 황폐해지고 농민들은 게을려지며 다만 이익을 얻기 위해 눈속임만을 할 뿐이다. 비록 귀족들에 대한 형식적 예의는 지키지만 그것은 진정한 존경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농노제도’를 지탱할 수 있느 근본적 토대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사유 재산에 대한 보장이 없는 제도는 점점 설자리 없어지고 있었다. 바자로프는 귀족들에 대해서는 혐오했지만 농민이나 하인들과는 좋은 교분을 맺었다. 그는 과학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차별을 반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5. 소설의 축은 이렇듯 사상의 대립과 제도의 존폐에 대한 갈등이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또 다른 축은 등장인물들의 열정적인 사랑이다.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과거 또는 현재 뜨거운 사랑을 경험했거나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냉정하고 여성에 대한 약간의 혐오감까지 갖고 있던 바자로프 또한 아르카디와의 여행 중에서 만난 우아한 귀족부인과의 만남을 통해 억누늘 수 없는 사랑의 감정에 휘둘리게 되지만 결국은 실패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흥미로운 묘사는 사회적 갈등보다는 이들의 사랑과 관련된 감정적 동요 그리고 충동적 변화를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령 사랑은 단순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바자로프와 사랑에 빠진 오딘초바는 그를 붙잡고 만남을 지속하려 애썼지만 막상 바자로프의 격렬한 사랑 고백을 받자 오히려 어색해진다. 사랑의 미묘한 속성이 고통스럽게 전개되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사랑은 “여러가지 막연한 감정, 사라져가는 인생에 대한 자각, 새로운 것을 향한 염원-이런 것들의 영향을 받아 그녀는 자신을 일정한 한계까지 밀어 붙이고 그 너머를 언뜻 바라보았다. 거기에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심연이 아니라 공허.....혹은 추악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6. 니힐리스트 바자로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건은 파벨과의 사상적 대립이기도 했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자연에 대한 공감을 갖고 있던 니콜라이와의 인간적 대조이기도 했다. 사회제도의 변화를 통해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바자로프는 오딘초바와의 연애 그리고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변화한다. 스스로 잘 소통하고 있었다고 믿었던 농민들과의 관계도 농민들의 시각에는 결국 ‘광대’에 불과했다. 결국 그는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고향에서 농민들을 치료하면서 살아가는 아버지와 함께 작업하기로 결정하고 오딘초바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너무 오랫동안 나와 인연이 없는 세상을 돌아다닌 것 같아요, 날치는 얼마동안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지만, 곧 물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다시 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7. 추상적이고 급진적인 관념과 객관적인 과학에 대한 지나친 몰입은 때론 타인을 매혹하는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지만 자연에 대한 공감과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배제된 형태로는 어떤 성취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라자로프의 귀환은 그를 사랑하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부모들은 언제나 라자로프와 함께하는 삶을 꿈꿨지만 냉정한 아들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박한 삶으로 복귀한 라자로프는 사고로 인해 전염병에 감염되어 사망하게 된다. 작가는 후일담을 통해 라자로프의 무덤을 돌보는 부모의 진정한 사랑을 묘사한다. 그는 그 시대를 지배했던 가치의 충돌 속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이성의 세계보다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8. <아버지와 아들>은 발표 후에 격렬한 논쟁에 휩쓸리게 된다. 라자로프의 삶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드러냈다는 진보주의자들의 불만이 터진 것이다. 그렇다고 보수적인 사람들이 라자로프를 옹호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혼란스러운 러시아의 현실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러시아를 변화시켜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이자 작가의 응답일 것이다. 서구적 변화를 반대하지 않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서 무너져가는 자연에 대한 존중과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실종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 한 것이다. 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버지와 아들>의 아름답고 감동스런 묘사는 자연에 대한 니콜라이의 감성, 자식들에 대하여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라자로프와 아르카디의 부모들의 헌신을 통해 감동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연인들의 사랑과 관계된 인간적 존중과 이별의 고통을 절묘하게 그려내는 데서 더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첫댓글 - 영웅적 서사의 줄거리와 맞닿아 있다는 느낌 : 모험을 향해 떠나고, 갖은 고초를 겪은 다음에 깨닫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인간적 삶의 원형인가 -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