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풍류(風流) 민족이다. 우리 민족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배우고 일한다. 쉴 때도 신명나게 노래하고 춤추며 이웃과 어울리며, 계절에 따라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 자연과 함께할 호흡할 줄 아는 민족이다. 우리 민족은 글만 읽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껍데기 선비 백면서생(白面書生) 민족이 아니다.
우리는 숨을 내쉬고 들이쉰다. 그래서 호흡(呼吸)이라고 한다. 내가 쉬는 숨에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의 숨결이 들어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존재들에는 나의 숨결이 들어가 있다.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같은 숨을 쉰다. 동식물은 물론 바위도, 해도 달도 숨을 쉰다. 그리고 숨을 쉬는 동안 서로 하나가 된다. 물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존재에 나뉘어 들어가 있는 물은 언젠가 바다로 흘러가고 다시 무수한 생명으로 그 모습을 바꾸며 돌고 돈다. 그렇게 순환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물은 하나다. 바람이 하나이듯이. 또 우리의 말과 행위는 다른 존재에게 영향을 끼치고 또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생명은 하나인 것이다. 태양에서 내리쬐는 빛도 마찬가지요, 누구나 동시 밟고 있는 땅도 마찬가지다. 내 생명의 원천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늘 고마워하며 사는 민족이다. 하늘엔 천제를 지내고, 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내고, 조상에 제사를 지내고, 감을 수확한 후에는 까치 밥을 남기고, 들이나 산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고시레를 한다.
이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생명세계의 ‘그물망’을 불교에선 인드라망이라 하고, 샤마니즘에서는 영혼으로 푼다. 그리고 그 영혼의 울림과 떨림이 현상적으로 드러난 것을 바람, 흐름, 결이라 하니, 그것이 바로 최치원 선생이 말한 풍류요, 그 근본원리를 말한 것이 ‘접화군생(接化群生)’인 것이다. 만물과 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간다. 바람이 없으면 생명은 살 수 없다. 비가 없으면 식물은 자랄 수 없다. 물이 없어도 그렇고, 변화와 움직임이 없어도 마찬가지이다. 바람, 흐름, 결, 즉 풍류가 있기에 뭇 생명이 나고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풍류의 삶 속에서는 일상과 종교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으니 곧 일상이 종교요 기도이다. 열심히 일하고, 기분이 좋으면 노래하고 자연을 벗 삼는 민족에는 일상 속에 신성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지극히 고귀해지는 순간이다. 이를 가리켜 최치원 선생은 ‘포함삼교(包含三敎)’라 하였으니, 이 땅에 유불선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그들의 도(道)를 다 포함하는 아름다운 삶이 있었다는 것이다.
“집에 들어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이웃과 부족과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과 같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침묵을 사랑하는 것은 노자의 가르침과 같으며, 악행을 멀리하고 선함을 위해 힘쓰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과 같으니” 풍류(風流) 안에 이미 유불선이 다 들어있지 않느냐? 고 질책을 한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유불선이 우리에게 들어오면서 오히려 그 아름다운 풍류도(風流道)가 무너지고 퇴색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공염불이 아니라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한국 문화는 이제 전 세계가 즐기는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나란 존재는 그 자체로 완전한 존대이다. 내가 태어날 때 이 세계는 창조 되었고 내가 죽으면 이 세상도 사라진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하겠는가? 우리 민족은 일상 생활 그 자체가 신성함 이었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놀 땐 신명나게 놀고, 때때로 명산대천을 찾아 자연과 호흡할 줄 아는 우리 민족은 풍류(風流) 민족이다.
출처 : 모심과 살림연구소 <생명 이야기> 참조